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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협-245화 (245/262)

<-- 245 회: 패배자들. -->

물론 남궁 미려도 이신에게 아가씨 취급을 받고 싶다던가 하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입고 나오면 옷에 대해 한마디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 얘기도 없어 약간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아미파에는 왜 가는 거야?”

“아미파에 볼 일이 있어서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게 무슨 말이야?”

“가보시면 알아요.”

순간 남궁 미려는 이신이 굉장히 낯설었다. 단순히 좋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의 이신은 마치 제갈 사혁 같았다.

이신과 남궁 미려는 천천히 걸으면서 아미파로 향했고 아미산 입구까지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려 하자 갑자기 남궁 미려가 넘어졌다.

“아.....”

남궁 미려는 앓는 소리를 했고 이신은 서둘러 남궁 미려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무림인이 걷다가 갑자기 넘어지는 일은 흔치 않았다. 이신은 발의 상태를 보기 위해 남궁 미려의 신발을 벗겼다. 외간남자가 여인의 신발을 벗기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버선을 벗기고 발가락 틈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본 이신은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품속을 뒤졌지만 마땅히 지혈할만한 것이 없었다.

“부상 입은 거예요?”

“아니야. 이건 그냥 오랜만에 신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야.”

“네?”

연보소말(蓮步小襪)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발은 미인이 갖춰야 할 덕목처럼 여겨진다.

남궁 미려는 무림인이기 때문에 훈련이나 일상생활에서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신지만 오늘처럼 꾸밀 때는 이처럼 평소보다 작은 신발을 신는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신는 거예요?”

“예쁘잖아.”

예쁘잖아. 라고 말할 때 남궁 미려의 눈에서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

그 정도로 작은 신을 신는 게 고통스러웠으면서 기어이 이런 걸 신고 밖을 나오다니 이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발가락 끝에 힘이 없으면 무공을 펼칠 때 하체의 힘이 모이지 않아요. 이렇게 작은 신발을 신으면 발가락이 가지런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힘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걸요.”

“........”

누구 때문에 이걸 신었는데 무공이 어쩌고저쩌고 막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자 남궁 미려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걷는 건 괜찮으시죠?”

“괜찮지만.....”

신발을 대신해 신을 게 없기 때문에 걷는 건 힘들었다.

“업히세요.”

업히라는 말에 남궁 미려는 망설이지 않고 이신의 등에 업혔다.

아미파가 있는 아미산은 여인들도 쉽게 올 수 있도록 길이 잘 닦여서 남궁 미려를 업고 산을 오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아미파 입구에 도착하자 마당을 쓸고 있던 하우(夏雨) 스님이 두 사람을 반겨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참배객이십니까?”

참배객이냐는 말에 이신은 남궁 미려를 내려주고 포권을 취했다.

“하우 스님을 뵈러왔습니다.”

“제가 하우입니다.”

제갈 사혁이 말했던 하우 스님을 만나자 이신은 준비해두었던 흑임자를 하우 스님에게 주었다.

“저는 이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남궁 미려 아가씨입니다. 저희는 무림맹에서 왔고 이것은 사부님께서 하우 스님께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실례지만 그분

“화산파의 제갈 사혁 무진이십니다.”

제갈 사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하우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차를 대접해주겠다는 말에 이신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안 왔나?’

하우 스님을 따라 현재 아미파를 이끌고 있는 정혜사태(靜慧師太)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림맹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정혜사태가 있는 자리에는 사태뿐만 아니라 두 명의 손님이 더 있었다.

“아앗!”

바로 그때 두 명의 손님 중 한명이 이신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갈 사혁의 제자!”

무례하게 제갈 사혁의 제자라고 외치는 이는 다름 아닌 청리 태린이었다. 청하와는 사형제에 해당하며 무엇보다 그녀는 검현군의 제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태린의 옆에는 검현군이 앉아 있었다.

“청리. 사태께서 계시는 자리이다.”

스승인 검현군이 나서서 태린을 제지하자 그녀는 스승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오호~ 그의 제자란 말입니까? 이리 가까이 좀 와보세요.”

제갈 사혁의 제자라는 말에 관심을 가진 이는 다름 아닌 정혜사태였다.

“화산파 제 2대 제자 이신입니다.”

“남궁세가의 남궁 미려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남궁세가? 음 그렇군요. 함께 가까이 와주시겠습니까?”

정혜사태는 눈을 잘 뜨지 못하는 듯 했다.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더듬으며 ‘인식’했다.

“그래.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오히려 아미파로 향하는 내내 신기할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이신은 마치 제갈 사혁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지 보고 배웠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남궁 미려는 이신이 굉장히 낯설었다.

“오셨으니 마음껏 구경하다 가시길 바랍니다.”

정혜사태와의 짧은 면담이 끝나자 태린은 노골적으로 이신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이봐 너!”

태린이 기세 좋게 외쳤지만 이신은 태린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했고 오히려 수련 중인 아미파의 제자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복호권(伏虎拳)이네요.”

이신이 복호권을 알아보자 하우 스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가요? 제갈 사혁 소협은 복호권의 고수인데.”

원래 복호권은 아미파의 무공이었다.

“글쎄요. 화산파의 복호권은 이미 개량이 많이 된 상태라서 아미파와 비교하면 일권복호(一拳伏虎) 이외에 전혀 다른 무공이 된 상태입니다.”

아미파의 복호권은 말 그대로 호랑이를 굴복 시키는 권법 그 자체였다. 하지만 화산파의 복호권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중점으로 두었기 때문에 같은 초식을 써도 내공을 발산하는 적기가 달라 아미파의 복호권과는 전혀 다른 무공이 되어버렸다.

“기회가 된다면 화산파의 복호권을 견식해보고 싶군요.”

“기회가 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럼 나하고 한번 붙어보는 게 어때?”

바로 그때 태린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는 이신에게 비무를 청했다.

어지간하면 무시하려고 했지만 비무에 대해서 언급하자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신!”

남궁 미려가 이신의 옷깃을 강하게 붙잡자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아가씨. 수준 차이를 보여주죠.”

“수준차이? 그런 걸 언급할 정도인가? 자네는.”

수준차이라는 말에 태린의 스승인 검현군이 무섭도록 이신을 강하게 노려봤다.

하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이신은 정파제일검이라 불리는 검현군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글쎄요. 사내라면 적어도 그 정도 허풍은 떨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재미있군.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검현군은 가소롭다는 듯 이신에게 태린과 비무할 것을 권했고 이신은 대수롭지 않게 윗옷을 전부 벗고 태린과 마주보고 섰다.

제갈 사혁의 제자와 검현군의 제자.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간판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비무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대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신이 가지고 있는 태린에 대한 적대감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태린은 제갈 사혁을 처음 보았을 때 그에게 검을 휘둘렀고 그것은 스승과 제자..... 말 그대로 이신의 부모에게 칼을 들이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청하를 생각해서 멈췄지만 지금은 이렇게 비무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쳤고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뭐냐?”

“죽여도 됩니까?”

죽여도 되냐는 말은 검현군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 순간 태린의 검이 이신의 왼쪽 어깨를 베고 이신의 피가 사방으로 튀겼다.

“얕보인 모양이네? 내가!”

태린이 들고 있는 검은 분명 목검이었지만 그 예리하게 날이 선 검과도 같았다.

“그래. 얕보고 있다는 건 아는 구나.”

피를 뚝뚝 흘리며 이신은 고개를 까딱거렸고 그 모습을 본 태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건방 떨기는!”

태린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이신은 왼손으로 태린의 검을 붙잡았다.

“어떻게?”

완벽하게 왼팔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생각한 태린은 이신이 왼손을 움직이자 깜짝 놀랐다.

“죽여도 됩니까?”

이신은 다시 한 번 검현군을 보며 똑같은 질문을 했고 이신의 오른손이 태린의 목을 붙잡은 순간!

어디선가 두 자루의 단도가 날아와 이신의 오른팔에 박혔다.

“웬 놈이냐!”

이신이 공격당하자 남궁 미려는 서둘러 이신의 앞을 가로막고 눈앞에 있는 흉수를 향해 외쳤다.

“오래간만이야. 아저씨.”

이신에게 단도를 던진 흉수는 다름 아닌 마화천이었다.

“마교의 애송이!”

마화천을 본 검현군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았고 이를 본 남궁 미려는 서둘러 부상당한 이신을 데리고 갔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신과 태린이 시비가 붙더니 갑자기 등장한 마화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 잖아.”

“응?”

그때였다. 이신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건.

“방금 뭐라고 했어?”

남궁 미려가 묻자 이신은 아무 말 없이 마화천을 보고 웃기만 했다.

아미파로 가기 전 제갈 사혁은 이신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마화천을 이용해서 검현군을 실각(失脚) 시킨다.”

마교에서 있었던 제갈 사혁과 마화천 간의 거래. 그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조금 뜬금없긴했지만 태린에 대한 이신의 적대감 그리고 이신을 최대한 제갈 사혁처럼 썼습니다. 격체전공 떡밥 때문에....

뭐 일단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마지막에도 나왔듯

마화천을 이용해서 검현군이라는 정파의 기둥을 제거하는 거죠.

그리고 그 배후에 제갈 사혁이 있고.

청하를 무당파로 그리고 그 때부터 생각해둔 내용이었습니다.

욕망으로 가득찬 제갈 사혁이 과연 검현군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편에서 이제 제갈 사혁의 입장을 써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쓰기엔 정리가 좀 안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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