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회: 패배자들. -->
이신이 마화천을 보며 ‘늦었잖아.’라고 작게 속삭인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현군과 마화천의 검이 부딪히자 음의 파동이 일어나 지붕 위에 기와가 흔들렸다. 강렬한 첫 일격은 그야말로 잔재주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힘의 충돌이었다.
“마교의 애송이 주제에 내게 싸움을 걸 생각을 다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예전부터 아저씨와는 제대로 겨뤄보고 싶었어!”
“나이차이도 얼마 안 나는 주제에 아저씨 아저씨 거리다니 뻔뻔하구나.”
시답잖은 농담으로 신경전을 하는 사이 검현군이 원을 그리며 마화천의 검 끝을 흘려내자 빈틈이 드러났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강한 일격이 파도처럼 마화천을 덮쳤다.
“검현군이라 불리는 그 명성은 역시 거짓이 아니야.”
“!”
하지만 검현군의 일격은 마화천에게 닿지 않았다. 상처는 둘째 치고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그 거리에서 절대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피하는 게 불가능했을 텐데 무얼 한 거냐?”
“에이~ 피할 수 없으면 막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있나?”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에 의해 공격이 막히면서 닿을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조금만 가르쳐주자면 내게는 세 자루의 검이 있고 방금 그건 두 번째 검이지.”
“?”
마화천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왼손을 휘두른 순간 검현군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뒷걸음질 쳤고 꼭 무언가로 쓸어난 듯 그를 중심으로 먼지바람이 일어났다.
“전력을 다해봐. 나도 그럴 테니까.”
“네 녀석과 내가 동급으로 취급 받는 건 단지 흑사련에서 자신들의 체면을 세우려했기 때문이다. 거짓된 명성에 홀려버린 것이냐? 불쌍하기 짝이 없구나.”
검현군의 손끝에서 펼쳐진 무공은 다름 아닌 구궁연환검(九宮連環劍).
검을 둘러싼 검기가 끝없이 회전하며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는다는 무당파의 절기였다.
“아저씨. 대결을 해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
검기가 미세하게 회전하는 구궁연환검의 기운을 압도하며 수기(手氣)를 두른 왼손으로 검현군의 검을 붙잡았다.
검현군의 검을 붙잡고 늘어진 마화천은 그의 검에 자신의 내공을 주입해 마치 독처럼 퍼져나가 검현군의 내공을 몰아내고 구궁연환검을 무력화 시켰다.
“!”
“말해봐. 목숨을 걸고 대결해본 게 언제야?”
“이놈!”
검현군이 마화천의 손아귀에 붙잡힌 검을 거칠게 잡아당기자 마화천은 피를 흘리며 인상을 구겼다.
“지금의 당신은 고작 이 정도인가?”
“감히 네놈 따위가 나를 가늠하려 하는 것이냐? 가소롭구나!”
검현군의 전신에서 내공이 흘러나오자 아미파에 있는 모든 문하생들이 그 기운을 느끼고 뛰쳐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하우 스님을 필두로 아미파의 여승들은 병장기를 들고 마화천을 공격하려했다. 그러자 이신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고수들 간의 목숨을 건 대결입니다. 정사대전 중이라고는 하나 이들의 대결에 개입한다면 아미파는 세간의 비난을 피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신 소협. 이곳은 아미파의 성역입니다.”
아미파의 뜻은 완고했고 이신은 조금 난감했다.
‘어떻게 하지?’
원래의 계획은 마화천을 이용해 검현군을 쓰러트리던가? 그게 아니면 검현군이 마화천을 이기던가?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제 3자에 의한 개입은 계획에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이신은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냈고 일부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다.
“저는 검현군 대협이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미파는 생각이 좀 다르신가 보군요? 설마 검현군 대협께서 질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아미파는 검현군의 눈치를 봤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남궁 미려는 이신답지 않은 그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그 꼬마 말대로요! 아미파가 이 싸움에 개입한다면 나는 이 일을 잊지 않겠소!”
“그런....”
그리고 이 말을 듣고 있던 검현군이 아미파를 향해 딱 잘라 말하면서 아미파의 개입은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제 3자에 의한 개입을 막을 수 있게 되자 마화천은 기다렸다는 듯 선공을 날렸다. 그러자 그 순간 검현군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그 앞을 가로 막았다.
“이기어검(以氣御劍)!”
이기어검을 알아본 아미파의 승려들은 검현군의 고강한 무공실력에 그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기어검을 앞세운 검현군은 기세 좋게 외쳤다.
“천외천(天外天)!”
이기어검으로 펼치는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은 눈으로 보고 피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대단하군. 하지만!’
마화천이 대력검을 크게 휘두르자 검압(劍壓)이 일어나 무형지기로 둘러싸인 검현군의 검을 무력화 시켰다.
“무림 3대 검사. 그래. 나도 솔직히 그 간판이 마음에 들어. 하지만 말이야...... 시대는 변했어. 오늘 이 시간부로 더 이상 무림 3대 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갈(喝)!”
다시 내공을 불어넣어 검에 의지를 담아내자 마화천은 이기어검을 구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대력검을 검현군에게 집어던졌다.
“!”
그러자 검현군은 어쩔 수 없이 이기어검을 거두고 날아오는 대력검을 피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 검현군을 향해 보법을 펼친 마화천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그의 두 발을 밟고 왼손으로 그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남은 왼손으로 저항해야 했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소매는 패배의 상징..... 이었던가?”
마화천이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은 순간 붉은 피가 메마른 땅에 스며들었다.
“스승님!”
절대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제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스승을 불렀지만 그 스승은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아내는 것조차 힘이 들어보였다.
“으..... 흐으....”
마화천이 오른팔을 비틀면서 움켜쥐자 부러진 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으윽!”
“나는 이걸 사선검(思銑劒)이라고 불러. 제갈 사혁과 싸우면서 최근에 얻게 된 거지. 아! 내게는 세 자루의 검이 있다고 했었지? 하나는 대력검 이랑(利狼). 그리고 나의 왼팔.....”
왼팔에 기운이 모이자 검현군의 남은 왼팔은 힘없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오른팔.”
마화천의 사선검(思銑劒)은 수기로 만들어낸 무형(無形劒)이라 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그러더라고. 천중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검현군과 흑도섬 뿐이다.... 라고 말이야. 그런데 틀렸어.”
“이......”
검현군은 이를 악물고 마화천을 노려봤다. 아니 그것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중기는 네놈들을 살려둔 거야. 네놈들이 아니면 자기한테 덤빌 멍청한 놈들이 없으니까. 가지고 놀 상대가 없으니까. 알아? 이 등신들아! 너희들 동정 받았다고....... 천중기가 너희들 가지고 놀았다고!”
“닥쳐라!”
검현군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마화천은 오른손을 휘둘렀고 검현군의 목이 저절로 허공을 가르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자존심이 있다면 그런 취급 받고 살지는 말아야지. 명성과 허명은 구분할 수 있었어야지.....”
“스.... 스승님!”
검현군의 머리가 잘려나간 것을 본 태린은 인사불성이 되어서 걷지도 못한 채 스승의 잘려나간 머리를 향해 두 팔로 기어갔다.
“스승님...... 스승님!”
잘려나간 머리를 끌어안으며 스승을 찾는 태린의 모습을 본 남궁 미려는 그녀가 가여웠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태린이 마화천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하자 이신이 등 뒤에서 다가와 오른팔로 태린의 목을 졸라 그녀를 기절시켰다. 그 모습을 본 마화천이 인상을 구기자 이신은 눈으로는 인상을 구기며 입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점혈 같은 걸 안 배워서 말이에요.”
이신을 보자 마화천은 어쩐지 제갈 사혁과 마주보는 것 같았다.
-약속은 지켰다.
마화천이 지면을 박차자 먼지바람이 일어나며 눈앞을 가렸고 먼지바람이 잠잠해지자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무엇하느냐! 어서 마화천을 찾아라!”
하우 스님의 수색명령이 떨어지자 아미파의 승려들은 사방으로 경공을 펼치며 그를 쫓았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이신은 말했다.
“그렇게 전해드리죠.”
정파 제일검이라 불리는 검현군의 죽음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그를 살해한 범인이 마화천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검현군과 흑도섬 그리고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래라고 평가되어 오던 마화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한편 마화천을 이긴 제갈 사혁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올랐다.
검현군을 이용해 무림맹의 결속력을 높이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검현군의 사문인 무당파는 이 일로 정사대전에 대한 강경했던 그간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표명하며 절대휴전이 불가능하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검현군이 죽은 지 만 하루가 되던 날. 호남성과 광서성 경계지역.
이제 막 건설을 시작한 계림(桂林) 지부에 물자를 전달해주고 온 공림(空林)은 이제 흑사련에 입단한지 2년 정도 되는 스물한 살의 젊은이였다.
도장에서 무공 몇 개를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기량이 늘지 않아 고민을 하던 중 아는 사람을 통해 흑사련의 말단 무사로 들어갔다. 비록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도장에 있을 때보다는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우기 때문에 실력이 제법 많이 늘었다.
“말단 생활을 청산하려면 상승 무공을 배워야 하는데..... 상승무공만 배우면 이 공림 대협이 나서서 무림을 평정하는데 말이야.”
미래의 무림고수를 꿈꾸며 수레를 끌던 공림은 흑사련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경계지역 부근에서 무언가 불에 타는 냄새를 맡았고 서둘러 근무지로 향했다.
“.........”
공림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불에 타고 있는 성벽 그리고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흑사련 무사들의 시체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한 놈 살아 있네?”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공림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검은 도복을 입은 사내는 천천히 공림에게 다가오더니 호랑이 무늬가 새겨진 곰방대를 입에 물고 대수롭지 않게 공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먹을 거 있냐?”
“네?”
“먹을 거 있냐고.”
먹을 것 있냐는 말에 공림은 서둘러 육포를 꺼내 사내에게 주었다.
“흑사련 경계지역에 임무 서는 애들 실력이 별로다. 어떻게 팔방풍우(八方風雨)도 제대로 못쓰냐? 그런데 너 몇 살이냐?”
“수...... 수..... 스물 하나 됐습니다.”
“동갑이네.”
공림이 나이를 말하자 사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부모님은?”
“두.... 두 분 모두 고향에서 객잔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내는 공림의 뺨을 때렸고 공림은 힘없이 쓰러졌다.
“흑사련 같은 거 때려치우고 고향에 가서 부모님 일이나 도우며 살아.”
고향에 가서 가업이나 도우라며 훈계를 하던 사내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공림에게 걸어왔다. 공림은 저자가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죽이러 오는 줄로만 알았다.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물들어 도저히 그와 대적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망쳐야 하는데 도저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야.”
그가 자신을 부르자 고향에 있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흑사련을 때려치우고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돕고 싶었다.
“흑도섬은 어디가야 만날 수 있냐?”
“.............”
“흑도섬 어디가야 만날 수 있냐고?”
“그건 모르지만 계림 지부가 완공되면 방문하실 겁니다....”
“그래. 계림은 또 어디냐?”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공림은 알 수 있었다. 그 나이에 단신으로 흑사련에 쳐들어와 흑도섬이라는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다면 강호 무림에 오직 단 한 사람.
눈앞에 있는 이자가 바로 제갈 사혁이었다.
============================ 작품 후기 ============================
솔직히 검현군과 마화천의 대결은 오래 쓰고 싶었는데 오래쓰고보니 굉장히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분량을 줄이고 흑사련 말단 무사인 공림이 본 제갈 사혁 이야기를 넣었죠.
어떻게 보면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 제갈 사혁에게 마화천을 이용한 검현군 제거는 최선의 선택이죠.
제갈 사혁 입장에서 천중기에게 패배한 주제에 여전히 정파의 기둥행새를 하는 검현군이 어지간히 꼴보기 싫었으니까요.
그리고 마화천이 이기든 지든 마화천과 검현군 둘 중 하나는 죽겠지라고 생각하면 손해볼 장사는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은 싸움의 결과가 나오자 마자 흑도섬을 찾으러 갑니다.
PS. 크롬을 쓰는데 조아라 소설의 댓글을 못쓰네요. 젠장... 뭐지 이거 일주일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