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회: 마도천하(魔道天下) -->
가울의 실질적 권한이 높아지자 배교 옛 무공이나 기술 등을 복원하는 장신각(將臣閣)의 책임자인 당하령은 요즘 묘하게 자신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걸 인지했다.
그녀가 배교의 천주인 주공의 총애를 받는 것도 어느 정도 한몫했겠지만 요즘 들어 확실히 그 시선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당하령 또한 외부인사기 때문에 배교의 깊숙한 사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주공과 대립각을 세우는 천주 가울과 관련되어 있다고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자신의 상관인 주공에게 이 이야기를 하려했지만 최근 들어 주공과도 만날 수 없어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사천당가 출신으로서 스스로 무공에 대한 어느 정도 소양은 갖추고 있지만 그녀는 기술자지 무림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쓸 때 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
잡념을 털어낸 당하령은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잠깐 나갔으면 하는데 준비해줘요.”
“네. 각주님.”
배교의 옛 무공을 복원하는 일은 각지에 흩어진 배교의 흔적을 쫓는 것부터 시작한다. 때문에 당하령은 사흘에 한번 꼴로 외출을 했다.
마차가 준비되자 마차에 오른 당하령은 신강 지역의 지도를 펼쳤다.
“배교의 하부조직이 있던 장소를 찾아봐야겠어.”
원래 배교는 서장에 위치했고 서장에는 옛 배교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의 배교는 필사적으로 신강을 차지하려 한 것이다.
당하령이 마차를 타고 나가자 당하령을 주시하고 있던 자들이 어둠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사천의 경계와 마주한 북동쪽으로 향하는 내내 마차 안에서 당하령은 배교에 대한 자료와 마교에 대한 자료를 비교 참고하며 조사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때 마차를 끌던 말이 흥분하며 날뛰었고 마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당하령을 호위하는 호위무사가 밖으로 나가려고 손잡이를 잡은 순간 긴 창대가 문밖에서 뚫고 들어와 호위무사의 복부를 꿰뚫었다.“꺄아!”
당하령이 비명을 지르자 창문으로 손이 뻗어 나와 당하령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렸다.
“이년이 당하령이냐?”
“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당하령을 습격한 이들은 다름 아닌 배교의 무사들이었다.
“가울이 시켰습니까?”
당하령은 그들을 보자마자 천주인 가울을 떠올렸다. 하지만 가울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배교의 무사들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그 놈 이름이 나올까 몰라!”
“가울. 그 병신 같은 놈이 시킨다고 할 우리가 아니란 말씀이야.”
배교의 무사들이 가울을 비웃자 당하령은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들은 정말 배교의 무사일까? 순간 당하령은 이들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파벌 싸움을 떠나 배교의 무공 복원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배교에서 가장 중요한 중책을 지고 있는 자신을 이런 식으로 암살하려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물며 아무리 가울이 주공을 싫어한다 해도 천둥벌거숭이처럼 생각 없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죽는 자는 말이 없는 법. 얌전히 그 목숨을 내놓아라!”
배교의 무사가 검을 휘두르자 당하령은 사력을 다해 그의 검을 피했다. 비록 수련을 게을리 했다고는 하지만 자신 또한 무림인. 최소한 도망은 칠 수 있었다.
당하령이 경공을 펼쳐 도망치자 배교의 무사들은 여유를 그 뒤를 쫓았다.
“당가의 핏줄이라더니 제법이군.”
뒤에서 배교의 무사가 암기를 던지자 당하령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윽!”
하지만 살고자 하는 집념하나로 이를 악물며 경공을 펼쳤고 마을에 들어서자 당하령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 도망쳤다.
등에 단도가 꽂힌 채 골목 구석으로 도망친 당하령은 단도를 뽑고 소매를 찢어 상처를 감싼 뒤 필사적으로 기루를 찾았다.
“어서오십.... !”
기루에서 일하는 점소이는 입구에서 당하령이 쓰러지려 하자 그녀를 서둘러 부축했고 당하령은 의식이 흐려지려 하자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하... 하오문을....”
배교가 하오문을 공격해서 그 존재를 천하에 알렸다는 것을 모를 당하령이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돈에 의해 움직이는 하오문 뿐이었다.
“이걸 어쩐다....”
당하령을 부축한 점소이는 하오문이라는 말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장에 하오문 문도는 있어도 하오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서장은 마교의 영역이었고 좌호법 우사와 흉조의 밀약으로 하오문 지부가 설립됐지만 지금은 배교의 영역이 되었고 배교는 하오문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수 어르신께 말씀드려야 하나?”
현재 서장에 있는 하오문 문도들은 모두 요식업이나 숙박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무공은 전혀 할 줄 모르고 간신히 하오문이라는 간판만 걸고 있는 상태였다. 그조차도 배교의 눈치를 보느라 숨길 수밖에 없지만 엄연히 이들은 하오문 문도였다.
잠시 후 당하령이 정신을 차리자 그녀를 간호하고 있던 기루의 기녀들은 밖에서 누군가를 데려왔다.
“하오문을 찾으셨다 들었소.”
그자는 눈을 천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盲人)인 듯 했다.
“하오문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오?”
제대로 찾아왔다 생각한 당하령은 자신이 배교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하오문에 의뢰를 넣었다.
“날 밖으로 내보내줘요.”
배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이상 배교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배교 밖으로 나가는 게 현재로선 가장 안전했다.
“정사대전 중이기 때문에 검증된 상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이동은 금지 되었소.”
“........”
현재 배교는 외부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상인들의 출입도 오직 보따리상 같은 소규모 장사꾼의 출입만 허락한 상태라 외부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겠어요!”
“돈 문제가 아닙니다. 이곳은 배교의 통제 하에 있고 이 지역만큼은 하오문의 소관 밖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하오문은 배교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오문을 통해서 자신의 상관인 주공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럼 외부에서 도움을 받기도 힘든가요?”
당하령은 힘으로 뚫고 나가는 것을 제한했지만 맹인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하오문 형편상 외부에서 도움을 줄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오문 후계자 사건 이후로 하오문의 전력은 크게 줄었다.
물론 현재 하오문을 이끌고 있는 흑운공주 덕에 하오문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업을 늘리고 번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후계자 사건 이후 흑운공주 파벌과 장로인 흉조의 파벌이 나뉘고 거기에 배교의 습격까지 겪은 터라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한번 기별을 넣어줘요.”
그러면서 당하령은 자신이 끼고 있는 팔찌를 맹인에게 주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금품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녀의 절박함이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다음날 새벽 소금장수를 통해 한통의 서찰이 흑운공주에게 전해졌다.
원래대로라면 흑운공주에게 올라오지 않고 그 밑에서 해결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서찰을 보낸 곳이 서장인 만큼 하오문 최고 책임자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차는 마음에 드세요?”
흑운공주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제갈 사혁이었다.
“맛없어.”
“어머~ 최고급으로 준비했는데 입에 맞지 않으셨나요?”
“내 취향이 아닌가보지.”
“까다로우시네요.”
“내가 좀 까다로워. 차를 고르는 취향도 여자를 만나는 취향도.”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비녀를 꺼내 흑운공주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건 내 까다로운 취향에 딱 들어맞은 그녀가 그쪽에게 주는 선물.”
“청하 소저께 감사하다는 말 전해주세요.”
“쳇... 나한텐 이런 거 선물도 안해주면서 남한텐 잘도 사준단 말이야.”
제갈 사혁이 은근히 질투를 하자 흑운 공주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내가 여인에게 질투를 하다니....
대충 인사를 끝낸 제갈 사혁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장으로 들어가는 상인들을 막아줘. 이왕이면 완전히 고립시켜 버리면 좋겠어.”
“하지만 서장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할 텐데요?”
중원에 남는 게 땅덩어리다보니 상거래를 막아 통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서장은 옛날부터 농사하기 그리 좋은 땅은 아니야. 배교가 자리를 잡는 통에 식량소비가 예전보다 늘었을 거야. 그러니 보따리 상인들만 통제하면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수 있겠지.”
사실 지난번 봉명공의 일로 마교의 식량문제를 눈으로 보고 온 터라 서장의 사정도 신강과 다를 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야 배교에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뭐든 좋지만......”
흑운공주가 말끝을 흐리자 제갈 사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피곤한 거 딱 질색인데.”
“하지만 마침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소협뿐이라서요.”
“나한테 들어오는 이득은 뭐지?”
뭐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하니 가볍게 산책 나가는 겸해서 한몫 두둑하게 챙길 생각이었다.
“화산파에 온천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마침 화산파 밑에 저희가 운영하는 대중탕이 있거든요. 그곳을 경유해서 온천수를....”
“거기 가짜잖아!”
“가짜란 건 어떻게 아셨어요?”
“화산에서는 온천수가 안 나와.”
“아차차~”
흑운공주가 당황한 척하며 이마를 때리자 제갈 사혁은 장난은 이쯤 해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림맹이 구입하는 병장기의 값을 줄여줘. 물론 내가 부탁해서 값을 줄였다는 사실을 무림맹에 흘려주면 좋고.”
제갈 사혁은 병장기 구입 값을 줄여 정사대전으로 인한 무림맹의 부담을 줄이고 자신에 대한 평판을 올릴 생각이었다.
“계산은 철저하시네요.”
“이 바닥이 정으로 가는 건 아니니까.”
“그럼 이걸로 끝난 거죠?”
제갈 사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흑운공주는 제갈 사혁에게 부탁할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서장으로 가서 누군가를 데려오시기만 하면 되요.”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정말 말은 쉬웠다. 그곳이 서장이고 배교의 지배지역이라는 게 문제일 뿐이지.
“꽤 피곤한 일이네.”
“잘 부탁드려요.”
“그거 알아? 너도 꽤 계산이 철저해.”
흑운공주는 이 일을 제갈 사혁에게 부탁함으로서 조금이라도 배교에 피해를 주고 싶어 했다. 제갈 사혁의 성격상 그냥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갈 리 없기 때문이다.
“칭찬 고마워요.”
배교는 물론이고 배교에서 키우는 개라도 죽일 수 있다면 흑운 공주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몸살을 앓고 있는 관계로 죄송합니다.
후기는 건너 뛸게요.
아이스크림이랑 게토O이 얼린 걸 밤새 마셨더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