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회: 마도천하(魔道天下) -->
산길을 통해 목적지로 향한 제갈 사혁은 간간히 배교의 무사들을 볼 수 있었고 언뜻 봐서는 누가 배교인이고 누가 마교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본 자들이 전부 마교인일 수도 있었다.
이것을 근거로 제갈 사혁은 다시 한 번 무림맹을 움직여 마교가 움직임과 동시에 서장을 칠 계획을 떠올렸다.
반드시 누구 하나 끝장이 나야 한다면 그것은 배교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고집은 지금도 꺾이지 않는 철근처럼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제갈 사혁은 기루의 점소이가 다가오자 흑운공주의 서찰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점소이의 눈빛이 바뀌며 은밀히 제갈 사혁을 기루의 가장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안내를 받아 간 방안에는 당하령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한명 있었다.
당하령(唐瑕怜). 사천당가 가주인 당월찬(唐月竄)의 제자이며 사생아로 추정되는 여인.
현재는 배교를 나와 서장 탈출 의뢰를 한 의뢰인이다.
‘당월찬 그자와 많이 닮았군.’
제갈 사혁은 당하령이 당월찬의 딸이기 때문에 당월찬과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쪽이 하오문에서 온 사람인가요?”
“아니 무림맹.”
“!”
무림맹이라는 말에 당하령은 눈에 띌 정도로 눈이 커졌고 그 모습을 보며 제갈 사혁은 입맛을 다셨다.
“배교의 협력자 당하령. 그래서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죽일 건가요?”
“생각 중이야.”
정파를 배신한 자를 용서할 수는 없으나 사천당가에서 당하령 때문에 이런 저런 일에 엮여 당가의 내공을 몸에 지니게 되고 그 덕에 환골탈태와 독에 쉽게 중독되지 않는 몸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갈 사혁에게 도움을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일단 하오문주께서 내게 부탁을 하셨단 말이야. 서장탈출은 도와줘야겠고 어디보자......”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는 척 하는 그 행동은 마치 장난거리를 찾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 다음에 죽일 생각이군요.”
자꾸 죽인다는 말을 하자 제갈 사혁은 측은한 표정으로 당하령을 쳐다봤다.
“무리에 떨어져 나온 새끼는 언제 어디서 죽든 이상한 일이 아니지.”
“......”
“일단 가자고. 서장은 탈출해야지.”
당하령을 데리고 나온 제갈 사혁은 산길을 이용해 운남으로 갈 계획이었다. 사천으로 가도 되지만 오면서 경계초소에 불을 지르고 아주 그냥 난장판을 쳐놓은 터라 그쪽으로 가는 길목은 이미 마교의 무사들이 쫙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마교의 무사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마교가 배교 내부에 잠입시킨 자들이 어떤 재미있는 일을 꾸밀지 모르는데 괜히 재를 뿌리고 싶진 않았다.
“별일이군. 사천당가 가주의 제자라기에 무공 좀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제자가 아니에요.”
“뭐?”
“제자가 아니었어요. 나는 그냥 사생아일 뿐이에요. 체면상 데리고 있었던 아이였어요. 제자를 삼은 것도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당하란을 그렇게 만든 이유는 뭐야?”
당하란의 이름이 언급되자 당하령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통해 제갈 사혁은 당하령이 왜 당하란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파문됐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런 거야?”
“대들었어요. 왜 나를 차별하냐며..... 대들었어요.”
보통은 그런 말 대놓고 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왜 자신을 차별하냐고 직설적으로 말할 정도면 당가에서의 생활은 외부인인 제갈 사혁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정도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파문. 자기 편할 대로 데리고 있다가 귀찮아지니까 버린 거예요. 내 엄마처럼....”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당하령은 웃었다.
‘하긴 아기였을 때 버려졌으니 아버지고 어머니고 부모에 대한 감정이 상당하겠네.’
한동안 그렇게 험준한 산길을 따라 가던 중 제갈 사혁은 배교의 무사들과 만나게 되었다. 일부러 그들을 피해가 가고 있었는데 운이 나빴다.
“어이 거기!”
배교의 무사들이 부르자 제갈 사혁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사할 게 있으니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다.”
“아니 무슨 일이시기에?”
“잔말 말고 따라와!”
큰소리를 치며 검으로 위협하자 제갈 사혁은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두 손으로 상대의 어깨를 내려쳐 일격에 쓰러트렸다.
“이 놈이 감히!”
배교의 무사들이 검을 뽑자 제갈 사혁은 한 발짝 먼저 뛰어들어 선공을 날렸다.
한명을 빠르게 처리한 뒤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다음 상대의 종아리를 걷어차 쓰러트리고 그대로 발로 밟아 목뼈를 부러트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전부 제압하자 이 모습을 본 당하령은 식은땀을 흘렸다. 무림맹에서 온 무림인은 절대 고만고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갈 사혁은 배교의 무사들에게 발각된 뒤 더욱 깊숙하고 험준한 길을 찾아 들어갔고 당하령은 무림맹에서 온 고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하지만 원래 부족한 체력은 아무리 오기를 부려도 안 되는 법.
결국 체력의 한계가 와 더 이상 걷지 못했다.
“좀 쉬었다 가면 안돼요.”
분명 무림인이 확실한데 체력은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한참하다. 진짜 사문에서 무공을 배우는 열 살짜리 보무제자도 너보단 낫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경공을 펼치지 않고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은 어지간한 무림인이라도 해도 힘들었다.
제갈 사혁은 일단 당하령의 체력을 생각해 모닥불을 피우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대로 가면 한 3일은 걸렸다. 경공을 펼치고 싶지만 내공을 사용하면 오히려 적들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다.
“날 데려 가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게 그렇게 궁금하나보지?”
당하령은 잠깐 잠깐 제갈 사혁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갈 사혁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언행이 재수 없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외선전용도 좋겠지. 배교에 납치되었다 돌아온 사천당가의 사생아. 이거 그림 되는데.”
“그건 안돼요!”
“왜 사천당가 때문에?”
“...........”
바로 아니라고 말을 못하는 걸로 봐선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주공....”
“뭐?”
“주공에게 폐를 끼칠 순 없어요.”
주공. 자신의 주군을 부르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배교의 천주인 그 주공을 말하는 듯 보였다.
“그 배교의 천주라는?”
“그녀는 갈 곳 없는 나를 거둬주었어요. 그런 식으로 선전용이 돼서 그녀에게 폐를 끼칠 순 없어요.”
그때 왠지 모르게 제갈 사혁은 그런 말을 하는 당하령에게 짜증을 느꼈다.
“그런 식으로 길들여지는 건가?”
“뭐예요?”
“무리에서 벗어나 타인의 손에 길러진 건가?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지?”
마치 자신이 무슨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듯 말하는 제갈 사혁을 보며 당하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지만 스스로 있을 곳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꼬마야.”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당하령의 두 손을 붙잡고 그녀를 뒤로 눕혔다.
“아까도 말했잖아. 데려가서 어떻게 할 거냐고? 왜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제갈 사혁이 느낀 당하령은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나약했다. 배교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다른 환경에 적응 아니 길들여지려 하고 있었다.
“무림에서는 강하지 않으면 안 돼. 특히 여자는 더더욱.....”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당하령의 목을 손으로 감싸듯 만지며 그녀를 위협했다.
“난 지금부터 너를 죽일 거야.”
============================ 작품 후기 ============================
휴재공지를 하지 올리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이번편의 마무리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고 오늘도 글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습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항상 구석에 몰렸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이니까요.
사과박스 이야기가 나오셨는데 거기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공모전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3편 올렸는데 다음날 글이 삭제가 됐더라구요. 그 뒤에 빡쳐서 그냥 공모전 포기했습니다.
당시 입상만해도 출판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입상도 불가능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제가 올린 글이 이유없이 삭제 된 건 짜증나더군요.
그러다가 문피아에 갔는데 문피아는 게시판 발급조건이 까다로워서 다시 조아라에 왔습니다. 그리고 조아라를 본진 삼기로 마음먹었죠.
그렇게 마음 먹고 프린세스 나이트라는 판타지를 썼는데 완결을 못하고 습작처리 후 2년 동안 글을 안쓴 건 흑역사.... 그 후에 판타지 쓰려다 뜬금없이 화산의협 쓴 것도 참 아이러니하죠.
이건 이제 화산의협 계약하러 갈 때 이야기했지만 조아라만이 유일하게 내 작품을 쓴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장르소설 사이트 투톱이라고 하면 조아라와 문피아입니다.
문피아는 사람도 많고 장르소설에 대한 열정을 가진 멋진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게시판 제도입니다.
반면 조아라는 최대한 책을 보는 느낌을 주고 수많은 게시판 중에 하나가 아니라 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그게 조아라에서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