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회: 미혼지인(迷魂之人) -->
“주군 아니 천중기 그대의 목으로 시험해보지.”
무형검으로 목을 자르겠다고 말하는 마화천의 모습이 가소로웠지만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 자신과 마주할 최소한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우르르 몰려올지 알았는데 혼자 왔구나.”
“혼자 아닌데.”
“?”
혼자가 아니라는 말에 천중기는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몇 시진 전 제갈 사혁이 중심이 되어 구축된 무림맹의 병력은 사천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천중기의 움직임이 감지됨과 동시에 무림맹은 구파일방과 총사 여망상 이하 무림맹 오대주를 주축으로 병력을 구성했다.
제갈 사혁은 천중기가 배교에 자신의 세력을 상당수 심었고 이로 인해 배교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교가 별 문제 없이 배교를 제압한다면 그 시점에서 정사대전은 사실상 종결된다. 때문에 제갈 사혁은 이때를 노려 천중기를 칠 생각이었다.
흑사련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이번 정사대전의 결착이 배교의 멸문이라는 것을 알고 빠르게 세력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번 광서지역을 두고 거래를 한 것이 그 증거다.
제갈 사혁은 흑사련은 절대 무림맹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확신을 했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는.....
“젠장!”
무림맹의 병력이 출진을 함과 동시에 귀주에서 아미파 방향으로 흑사련이 쳐들어왔고 하는 수 없이 병력을 그대로 아미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수백 명의 사파인들을 이끌고 온 자는 다름 아닌 마화천이었다.
“마화천!”
제갈 사혁은 마화천을 보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을 붙잡고 그자의 목을 힘으로 무식하게 뽑아버렸다.
“무슨 짓이냐!”
마교를 상대로 최후의 결전을 치러도 모자를 판국에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오다니.....
“무슨 짓이라니? 사파가 정파를 공격하는 일이 뭐가 부자연스럽지?”
“너 이 새끼 지금 사태 파악 안 돼?!”
“너야말로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어차피 이 싸움은 천중기 잡으면 끝난다. 그럼 누구한테 칼을 겨눠야 할까? 장기적으로 보면 네놈들이지. 안 그래?”
제갈 사혁은 마교가 배교를 끝장내거나 벼랑 끝으로 몰았을 때 마교의 뒤통수를 치려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일부 중 하나는 배교를 제외한 무림맹. 흑사련. 마교. 무림 3대 세력의 난전(亂戰).
하지만 흑사련은 배교멸문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오히려 무림맹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흑사련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사대전의 판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이번 일로 누가 가장 이득을 보고 또 누가 가장 위험한지 제대로 분석했다.
마교가 정사대전을 종전시키면 무림맹이 ‘배교를 멸문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모아둔 힘은 고스란히 흑사련으로 향하게 된다.
마교는 소비하고 무림맹은 축적한다. 그럼 흑사련은?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무림맹이 힘을 축적할 수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흑사련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럼 나는 이만 실례.”
수백 명의 병력을 이끌고 온 마화천은 마치 나들이 나온 사람처럼 휘파람을 불며 사라져버렸다.
“너 이 새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마화천에게 뒤통수 맞은 건 쓰라리지만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었다.
“총사. 상황은 어떻습니까?”
여망상에게 전황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인상을 구겼다.
“아미파의 피해는 엄청날 거다.”
“흑사련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막을 수 있냐는 말에 여망상은 제갈 사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래도 제갈 사혁은 이 전장을 뛰쳐나가 천중기가 있는 곳으로 향할 생각인 듯 했다.
“네 말대로 이곳은 정파의 요충지이며 안방이다. 게다가 아까부터 마화천이 보이지 않는군.”
여망상은 흑사련의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있었고 마화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점을 근거로 이번 싸움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
“아마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발을 묶는 게 놈들의 목적일 거다. 그러니 네게 봉황대를 떼어주겠다.”
여망상이 제갈 사혁에게 봉황대를 붙여준 이유는 어디까지나 제갈 사혁의 생환(生還)을 위해서다.
검현군이 사망한 지금 정파 최고수는 나이를 떠나 흑도섬을 물리친 제갈 사혁이다. 그런 그가 천중기와의 결전으로 목숨을 잃는다면 무림맹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첫째로 화산파의 탈단 가능성이 있고 둘째로 제갈 주원과 제갈 사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상대도 죽자고 덤비는 게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면 물러날 테고 공격보다 방어에 집중한다면 병력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사천. 조금 있으면 지원 병력이 도착한다.
“알겠습니다.”
봉황대를 이끌고 서장으로 갈 수 있게 된 제갈 사혁은 곧바로 이신을 불렀다. 그러자 저 멀리서 사파인을 상대로 싸우던 이신은 파강권(破鋼拳)으로 상대를 제압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디 가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 전투를 치르던 청하는 제갈 사혁이 전장을 이탈하려 하자 서둘러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서장으로 갈 생각입니다. 마화천이 선수 쳤어요.”
“아! 그러고 보니 마화천은?”
청하는 그제야 마화천이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제갈 사혁은 무덕을 시켜 초영을 불렀고 무덕에게는 화산파의 지휘를 맡겼다.
화산파 지휘는 도오진인이 맡고 있지만 사실상 현장에서는 제갈 사혁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무덕은 매화검수들을 지휘하고 무종은 날 따라와라.”
“네? 제가요?!”
무종은 설마 제갈 사혁이 자신을 데려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봉황대는 초영의 지휘 아래 길을 뚫고 제갈 사혁은 이신과 청하 그리고 무종과 함께 마화천을 뒤쫓았다.
“사형. 그런데 셋째 사형이 아니라 왜 저에요?”
“무덕보다는 네가 배울 게 많으니까.”
사실 무종의 말대로 무덕을 데려와야 했지만 아직 10대인 무종이 무덕을 대신해 현장을 지휘 할 순 없었다.
어찌되었든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천중기와의 일전.
이신이 아닌 누군가가 이번 싸움으로 무언가를 얻는다면 제갈 사혁은 그 사람이 화산파의 사람이었으면 했다.
“이길 수 있어요?”
청하의 물음에 제갈 사혁은 실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쓸 때 없는....”
제갈 사혁의 미소를 본 청하는 그의 말대로 쓸 때 없는 걱정이기를 바라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동경의 특기인 추적술을 이용해 마화천의 뒤를 밟은 제갈 사혁 일행은 얼마 후 사방에 널린 배교 무사들의 시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돌겠네.....”
특히 지면에 새겨진 무늬를 본 제갈 사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뭔데 그래요?”
청하도 지면에 새겨진 의문의 무늬를 살펴봤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검을 휘두른 흔적이라 해두죠.”
“흔적이요? 검을 휘둘렀는데 왜 이런 흔적이 생기는 거죠?”
보통 검은 허공을 향해 휘두르기 때문에 바닥에 이런 식으로 흔적이 생기거나 하진 않는다.
제갈 사혁은 지면의 흔적을 보고서 마화천의 무형검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게다가 시체가 된 이들 중 누구도 검을 뽑은 자가 없었다. 저항을 떠나 누구에게 목숨을 잃었는지 조차 모르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남긴 흔적은 모두 천편일률(千篇一律).
자신의 존재를 적에게 알리지 않은 채 귀신처럼 적을 홀렸다.
제갈 사혁은 그 뒤 마화천이 남긴 흔적을 쫓아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화천이 있는 곳에 당도하게 된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끝이냐?”
천중기는 바닥에 쓰러진 마화천의 머리를 밟고 있었다.
“이게 뭐냐고 도대체!”
그를 쫓아오면서 그의 놀라운 신위를 목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전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면을 박차고 뛰어간 제갈 사혁은 천중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천중기의 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애송이까지 왔으니 놀아볼만 하겠군.”
천중기는 손가락으로 제갈 사혁의 눈을 찌르려 했지만 제갈 사혁이 한발 앞서 그의 복부를 발로 찼다.
곰방대에 불을 붙인 제갈 사혁은 천중기의 발언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관은 짜놓으셨나? 초상화는 미리 그렸지? 미안한데 댁 장례식에는 못가. 나도 염치란 게 있거든.”
그러면서 제갈 사혁은 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는 마화천을 발로 찼다.
“일어나 이 새끼야! 뭐라도 되는 양 쳐들어와서 남의 계획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고작 한다는 게 한방에 뻗어서 땅바닥에 코 박고 있는 거냐?”
마화천은 연신 기침을 하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바로 제갈 사혁을 향해 대력검을 휘둘렀다.
바람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피한 제갈 사혁은 마화천의 관자놀이를 향해 주먹을 힘껏 휘둘렀고 대력검으로 공격을 막아낸 그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연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천중기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힘을 합쳐 내게 덤비란 말이다. 이 애송이들아!”
천중기가 뿜어내는 엄청난 창룡음(蒼龍音)은 같은 편인 마교의 무사들조차 내상을 입을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났다.
창룡음을 듣고 싸움을 멈춘 두 사람은 천중기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같이 싸워야 할 이유가 뭔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더니 머리까지 굳었군.”
“이 새끼가 사파고 내가 정파인데 댁을 앞에 두고 같이 싸워야 할 이유는 또 뭐......”
순간 제갈 사혁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온 천중기가 허벅지를 때리자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내쳐졌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무슨 일인지 ‘인지’를 했을 땐 이미 공격을 당한 뒤였다.
“이런!”
제갈 사혁이 바닥에 눕자 천중기는 마화천의 발목을 붙잡고 그대로 빨래방망이 두들기듯 마화천의 몸을 휘둘러 밑에 있는 제갈 사혁을 때렸다.
제갈 사혁이 상대에게 자신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싶을 때 종종 쓰는 방법이 바로 이것인데 직접 당해보니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둘이! 힘을! 합쳐서! 내게 덤비란 말이다!”
한마디 한마디를 강조하며 천중기는 두 사람에게 힘을 합쳐 자신과 맞설 것을 요구했다.
마화천의 몸을 휘둘러 제갈 사혁을 계속 때리던 중 천중기를 향해 누군가 몸을 날렸다. 천중기의 얼굴을 정확하게 가격하려는 순간 천중기는 마화천의 몸을 휘둘러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를 막아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더니 네놈의 꼴이 딱 그 짝이군.”
천중기를 공격한 자는 다름 아닌 이신이었다.
천중기는 손에 쥐고 있던 마화천을 그대로 이신을 향해 던진 뒤 바닥에 쓰러진 제갈 사혁도 발로 차 그쪽으로 보내버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발사!”
초영의 외침과 함께 봉황대가 천중기를 향해 화살을 날렸고 그 화살은 모두 주변에 있던 마교의 무사들이 막아냈다.
“봉황대군..... 놈들에게 가서 인사를 해주고 와라.”
봉황대를 알아본 좌호법 우사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양 옆에 있던 두 명의 부하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검을 뽑은 순간 섬광이 번쩍이며 그들의 머리가 반으로 갈렸다.
“달랑 두 명만 보내서 되겠어?”
그 두 사람의 걸음을 멈춘 건 청하였다.
“주제 파악이 안 되나보군.”
좌호법 우사가 직접 나서려하자 천중기가 우사를 직접 막았다.
“교주님!”
“나서지 마라. 그 누구도 나의 유흥을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하는 물론이고 봉황대조차 그의 기운에 감히 맞설 수 없었다.
“유흥는 무슨!”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마화천이 검을 휘두르자 뒤를 이어 제갈 사혁이 마화천의 등 뒤에서 그의 머리를 잡아당겨 넘어트렸다.
“저 노인네는 내꺼야. 손대지 마!”
천중기의 압도적인 힘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 사혁은 여전히 마화천과 힘을 합칠 기색이 없어 보였다.
“갈사 소협! 이 싸움에는 무림의 판도가.....”
“무림의 판도따위 의미 없다.”
청하가 제갈 사혁을 각성(覺醒) 시키려 했지만 천중기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림이 뭐고 세력이 무엇이냐?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내 앞에서는 모두 약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대의고 명분이고 다 버리고 내게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라.”
“흐하하하!”
천중기의 오만함을 넘어선 말에 제갈 사혁은 연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정말 부러워....... 천하제일인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 당신을 보니까. 권력보다 더 대단한 게 가지고 싶어졌어.”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게 가지고 싶다고 하자 천중기는 고개를 까닥 거리며 제갈 사혁에게 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은 천천히 걸어가더니 뜬금없이 가울의 앞에 섰다.
“뭐야?”
제갈 사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천중기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의 이런 행동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많이 컸구나.”
그 순간 가울은 자신의 단전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난날 가울이 흑운공주를 암살하기 위해 나타난 그날 밤 제갈 사혁이 그의 몸에 스며들게 한 자신의 내공이었다.
“수고했다. 너의 노력과 너의 힘은 나의 일부가 된다.”
“!”
“너의 가치는 거기까지다.”
그 순간 제갈 사혁은 가울의 복부를 꿰뚫었다. 그러자 가울의 몸에서 내공이 빠져나와 제갈 사혁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본 천중기는 미간을 찡그렸다.
“저놈에게도 격체전공을 시전했었나?”
천중기는 제갈 사혁이 가울에게 격체전공을 시전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다만 이신보다는 주입한 힘이 약해서 못 알아봤을 뿐.
“그래. 맞았다.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격체전공으로 내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 내공을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말이다.”
그 가설이라는 건 거짓이었다. 가울의 내공을 흡수한 건 어디까지나 흡정마공.
하지만 가설을 세웠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천중기 덕에 세울 수 있었다.
처음에 가울에게 내공을 전수한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장난을 위해서였다.
가울은 분명 지난생애 종방영(棕訪塋)과 같은 흑요칠마의 일원 황성의(黃聖依)다.
황성의가 아닌 살막의 가울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고 제갈 사혁은 그 오만한 콧대를 아주 멋지게 꺾어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를 살려주고 내공을 주입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에게 내공을 주입한 뒤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몸에 심어진 기운으로 그가 가진 내공을 전부 소멸 시키려 했다. 하지만 천중기와 만나고 격체전공이 전승자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안 뒤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타인의 기운이 아닌 자신의 기운을 흡정마공으로 흡수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해보기전에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타인의 내공을 흡수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이 순간 나타나고 있었다.
전신의 힘이 넘쳐흐르자 제갈 사혁은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힘껏 쥐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네놈이 서 있는 ‘산 위’다.”
“.......”
“자기보다 약한 놈들이 발버둥 치는 걸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어떻지? 응? 말해봐. 노인네. 그 기분은 어떻지?”
천하제일인이라 불린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자신을 마도의 대종사(大宗師)로서 꺾으려는 자들은 많았지만 그의 본질인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노리고 덤비는 자들은 없었다.
검현군도 흑도섬도 그리고 그의 손에 죽어나간 기라성 같은 고수들도 오직 ‘적’을 물리치기 위해 덤볐을 뿐 ‘자리’를 노리고 오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그 ‘본질’을 노리는 자가 나타났다.
“산 위에서 내려와라.”
“!”
그 순간 제갈 사혁의 얼굴에는 탐욕과 욕망으로 얼룩졌고 그의 몸은 자색의 기운으로 물들었다.
“네놈의 목을 물어뜯고 정상 위에 서주마! 나는 무림(武林)의 유일한 호황(虎皇)!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자다!”
============================ 작품 후기 ============================
가울의 내공을 흡수하는 건 예전부터 생각해둔 건데 막상 쓰고 나니 너무 갑자기였나 생각이 드네요.
브리키오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어색한 구간이 있다는 건 정말 정확하게 꿰뚫어보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긴 호흡을 가지고 써본 게 처음이다보니 계속 긴장감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암중세력에 관해서는 배교가 암중세력이 맞습니다. 이제 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암중세력이 붕 뜨도록 만드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계획/계략 보다는 압도적인 무력이야 말로 이 무림을 지배한다. 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갈 사혁이면 식상하니 천중기가 된 거죠.
천중기는 오만합니다.
본문에도 나왔다시피 제갈 사혁과 마화천에게 둘이서 힘을 합쳐서 내게 덤비라고 할 정도로요.
압도적인 힘(천중기) 앞에 배후 세력(배교)의 계략 따윈 의미 없다는 걸 그리고 그를 이길 수 있는 것 또한 힘이라는 것을 화산의협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