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회: 난세의 시작. -->
옥가락지를 유심히 보던 미려는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이거 얼마주고 샀어?”
뜬금없이 얼마주고 샀냐는 말에 이신은 팔짱을 끼고 기억을 더듬었다.
“두 번째 마을이었던가? 죽순 팔고 있던 할머니가 아주 귀한 거라고 하기에 산건데 은자 두 냥 정도?”
그런 이신의 모습을 보며 미려는 여전히 이신이 물건을 속아서 사는 호구라는 걸 깨닫고 웃으면서 팔짱을 꼈다.
“무림맹은 한 1년만인가?”
이신이 화산파의 정식 제자가 되고 태제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건 불과 1년 전이었다. 때문에 화산파가 봉문 중인 기간에도 이신은 강호를 종횡무진하며 실력을 쌓았다.
“은호(恩好)는 건강해?”
“건강하죠. 청하 누나가 너무 엄하게 키워서 문제죠.”
“미운 3살이라잖아. 이때 엄하게 키워야 해.”
“아이는 귀여울 때 귀여워해줘야죠.”
그렇게 잡담을 나눈 뒤 이신은 무림맹 맹주가 자리한 맹주전으로 향했다. 맹주전에 들어서자 임기를 이제 1년 남긴 판가량이 이신을 맞이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아닙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차는 어떤 걸로 하겠는가?”
“늘 마시던 걸로 주십시오.”
곧 다과상이 차려지고 판가량과 독대한 이신은 품에서 화산파 장문인의 친서를 꺼내 판가량에게 주었다.
“봉문을 풀기로 한 건가?”
“네. 그렇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문을 여시기로 하셨습니다.”
화산파가 다시 무림을 주유(周遊)한다는 건 무림맹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정사대전 종결 이후 갑자기 화산파가 봉문하자 무림맹은 천하를 호령한 단체라고 하기 무섭게 영향력을 떨치지 못했다. 쇠락한 것은 아니나 흑사련과 마교에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입장은 되지 못했다. 그 결과 4년이 지난 지금 무림 3대 세력의 균형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장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군.”
“사숙분들께서 어리셨기 때문에 화산파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물론 화산파가 굉장히 젊은 문파라는 건 알지만 현재 화산파는 장문인만 바뀌었을 뿐 장로들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알겠네. 화산파의 무림맹 입성을 우리는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이신은 이야기가 끝나자 품에서 낡은 두루마리를 꺼냈다.
“저.....”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두루마리를 품에 넣었다.
“무슨 일인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원 사람 실없기는!”
맹주전에서 나온 이신은 기다리고 있던 미려와 함께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떠났다. 사천에서 괴한을 만나고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두루마리에 대해서는 어쩐지 함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르지만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그 시각 강소성(江蘇省)의 한 문파에서는 고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무어라 했느냐!”
노년의 사내가 고함을 지르자 마주보고 있던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혼지를 탈환하지 못했습니다.”
“마혼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단 말이냐?”
“사천까지 가서 행방을 쫒았으나 추적대가 모조리 시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추적대가 시신이 되었다는 말에 노년의 사내는 이를 갈았고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젊은 남자는 중년의 사내를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제가 사천으로 가 마혼지의 행방을 쫒겠습니다.”
“그렇다면 마혼인(魔魂人)을 데려가거라.”
“하지만 장문 사숙 마혼인은 아직.....”
장문 사숙이라 불린 노년의 사내는 젊은 남자의 말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혼지가 없는 상태에서 마혼인을 조종하기는 힘들 것이나 만약의 상황에 빠졌을 경우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럼 소질. 다녀오겠습니다.”
젊은 남자가 밖으로 나온 뒤 거센 비바람이 불었고 천둥이 치며 현판에 새겨진 글자가 드러났다.
모산파(茅山派).
현판에 이 가리키는 곳은 중원의 끝자락에 위치한 채 쇠퇴하고 있다 알려진 모산파였다.
이신은 무림맹에서 지난 1년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난 뒤 연못이 있는 무림맹 정자에 앉아 미려와 함께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무림맹에 계속 있는 거예요?”
명상 중에 가장 껄끄러운 질문을 하자 미려는 명상을 그만두고 옆 자리에 있는 이신의 등을 세게 때렸다.
“집중해.”
천천히 눈을 뜬 이신은 인상을 구긴 채 딴소리를 하고 있는 미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괜찮다니까. 그러네....”
“내가 싫어.”
미려는 이미 혼인할 나이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혼인을 못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안하고 있었다.
남궁세가가 이신에게 내걸었던 조건 때문이다.
“오라버니가 있는데 왜 췌서를 들여야 하는데.”
“괜찮다니까요.”
“화산파도 그걸 원해?”
일단 누가 뭐라 해도 이신은 화산파의 제자다. 때문에 그럴 일은 없지만 제갈 사혁이 허락하더라도 사문 어른들의 반대가 있을 경우 혼인이 불가하다. 물론 제갈 사혁이 남궁세가의 조건을 받아들일 일은 더더욱 없지만......
“괜찮아요. 사부도 이 정도는 타협 보실 거예요.”
“근거 없는 확신이네.”
췌서의 문제점은 이신과 미려가 아이를 낳았을 때 도드라진다. 일단 아이들의 성이 ‘남궁’이 돼버린다. 부계사회인 중원에서 이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밥 먹으로 갈래요? 아니면 옷 사러가요.”
“밥은 진즉에 먹었고 옷은 내가 알아서 사거든.”
인상을 구기며 말하는 미려의 모습이 귀여워보였던 이신은 사근사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오. 내 옷 사러 가는 거예요. 나 계속 이렇게 놔둘 거예요? 봐요. 우리 사부님 말대로 라면 도사 아니 도복 냄새 나는데.”
“좋아......”
여성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큰소리치지 않고 살살 달래는 점. 이런 점에서는 확실히 이신은 제갈 사혁보다 나았다. 물론 그 대단한 청하와 살면서 큰소리치지 않는 게 불가능하지만.....
미려는 그 길로 사천에서 가장 비싼 포목점을 찾아 이신의 옷을 골랐다.
“이거면 될 것 같은데?”
“다른 거!”
벌써 한 식경(食頃)째 옷 한 벌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미려는 명문가 규수지만 사실 그렇게 까다로운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신의 옷을 고를 때면 항상 까다롭게 굴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이신에게 옷을 입히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신은 지인의 숙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남은 방이 없어서 어쩌냐?”
“아니에요. 아저씨.”
그 지인은 바로 봉황대의 동경이었다.
“봉황대는 요즘 어때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마교는 뭔가 준비하는 것 같고 흑사련은 속내를 알 수 없으니.... 게다가 이번에 하오문 도박장 습격 사건도 그냥 그래.”
하오문 도박장 습격 사건이라는 말에 이신은 가슴이 쿡쿡 찔렀지만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했다.
“아! 얼마 전에 마화천이 술 마시러 왔어요.”
“그 양반 대단하네. 장문인은 가만히 계셨어?”
“그럼 어떻게 해요.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그 양반 제자가 생길 때마다 자랑하러 오는데 참아야죠. 그래도 비공식 적으로 몇 번 싸우셨어요.”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비공식적으로 몇 번 싸웠다는 말에 동경을 귀를 쫑긋 세웠다.
“누가 이겼는데?”
“최근엔 사부가 졌죠. 아마.”
“뭐!”
“아니 이겼던가? 아~ 이겼네요. 진 건 두 달 전이었던가?”
제갈 사혁이 졌다는 말에 동경은 자기도 모르게 내공을 실어 외쳤고 옆방에서 사공신이 찾아와 주의를 주었다.
“동경 선배. 거 참 늦은 밤에 웬 소란이요?”
“미... 미안하다.”
사공신이 떠난 뒤 동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신을 달달 볶았다.
“장문인은 천하제일인이시잖아! 그런데 지셨다고?”
“4년 동안 백하고.... 서른여섯 번을 싸웠어요. 한 40판 정도는 졌을 걸요. 무슨 애들 장난하듯 비무하는 사람들도 아니잖아요. 싸웠다하면 누구하나 쓰러질 때까지 싸우니까.”
게다가 136번이나 싸웠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사부는 천하제일인이라고 생각 안하더라고요.”
제갈 사혁이 자신을 천하제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동경의 얼굴을 읽은 이신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천중기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만약 그때 마화천보다 먼저 천중기와 싸웠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때 천중기가 마화천을 상대하느라 기력을 소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제갈 사혁은 최상의 상대를 원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천중기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는 자기 자신이라 하셨지만 천하제일인은 여전히 천중기라고 했어요.”
“나는 장문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편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왜 그리 복잡하게 따지시는지.”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다음 날 새벽 동경은 일찍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무슨 일이에요?”
그 소리에 잠이 깬 이신은 눈을 비비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신! 너도 좀 나와 봐.”
“무슨 일인데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자 봉황대며 황룡대며 할 것 없이 무림맹 다섯 부대가 소란스러웠다.
“동경!”
그때 마침 초영이 자신의 상체보다 큰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초영은 이신에게 가벼운 인사만 건네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원들 준비상황은?”
“끝났습니다. 대주님.”
고개를 끄덕인 초영은 가장 먼저 길을 나섰다. 초영을 뒤따라 봉황대 대원들과 현장으로 향한 이신은 짙은 피비린내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피비린내라면 익숙할 법도 하지만 피 냄새 속에 썩은내가 섞여 있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군.”
새벽 시장의 상인들이 모두 시체가 된 모습을 본 동경은 이를 갈았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사천 바닥 한가운데에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크아아!”
“대주님!”
바로 그때 괴상한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괴한에게 깔려 위협당하는 초영이 눈에 들어왔다.
암향표(暗香飄)를 펼쳐 순식간에 초영에게 다가간 이신은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 펼쳐 괴한과 초영을 떨어트렸다.
“초영 누나. 괜찮아요?”
“일단은.....”
다리가 부러졌는지 초영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서둘러 동경이 초영을 부축해갔고 이신은 괴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
그런데 눈앞에 있는 괴한은 생전 처음 보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위태로운 중년의 남자처럼 다 빠져 있었고 눈은 사시에 피부는 파랬다. 게다가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게 딱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애초에 정상인이면 낙화추영장을 맞고도 멀쩡할 리 없겠지만.....
“뭐하는 놈이야!”
백해를 꺼내든 이신은 상대의 미간을 향해 칼을 휘둘렀지만 괴한 아니 괴인은 마치 도검불침(刀劍不沈)의 몸을 지닌 사람처럼 칼을 튕겨냈다.
“쳇!”
사람도 귀신도 아닌 것이 신경을 긁었다.
날이 밝자 서서히 안개가 걷히더니 눈앞에 있는 놈들 말고도 괴인은 다섯이나 더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무림맹인가?”
그때 어디선가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괴인들은 그 사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나 둘 모인 괴인들은 젊은 사내에게 다가가 마치 그를 호위하듯 서있었다.
“정체가 뭐냐?”
정체가 뭐냐는 말에 젊은 사내는 고개를 까닥거렸고 괴인 다섯이 한꺼번에 이신에게 달려들었다.
“봉황대 앞으로!”
동경은 괴인들이 이신을 공격하기 전에 봉황대의 궁병들을 이용해 괴인들을 쐈지만 화살은 괴인들의 옷자락도 맞추지 못했다.
‘속도가 다르다!’
이신은 괴인들의 상태가 처음 초영을 공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
그리고 그와 함께 방울소리가 들렸는데 젊은 사내가 들고 있는 방울에서 나는 소리였다.
‘저건가?’
저 방울이 괴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일단 이신은 다섯 괴인를 한꺼번에 상대하며 차례대로 적을 꺾어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괴인들은 하나 같이 무림고수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안정된 호흡으로 이신을 압박했다.
“큭!”
무릎을 걷어차여 주춤거린 사이 괴인 다섯은 이신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었다.
“크악!”
온몸에 긁힌 상처를 입은 이신은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인 다섯 괴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놀랍군. 마혼인에게 공격당하고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
마혼인이라는 건 아마도 이 다섯 괴인을 지칭하는 단어인 듯 했다.
“무림맹에서 마혼지를 수거해간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을 돌려준다면 순순히 물러나겠다.”
“마혼지?”
동경은 상대가 마혼지라는 물건을 요구하자 생전 처음 듣는 물건을 내놓으라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물건은 없다!”
“아니 분명 너희가 보관하고 있다. 하오문 도박장에서 사건이 일어난 건 알고 있을 테지?”
하오문 도박장이라는 말에 이신은 자기도 모르게 품속에 있는 낡은 두루마리에 손이 갔다. 이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혼지라는 이름으로 보아 마혼인이라 불리는 저 괴인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더더욱 줄 수 없지!’
“헛소리 하지 말고 덤벼라!”
이신이 덤비라며 손짓하자 젊은 사내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마혼인의 위력을 보고도 큰소리치는 구나.”
그 말을 들은 이신은 어이없다는 듯 백해를 검집에 넣었다.
“겨우 저런 놈에게 얕보이다니 나도 한참 멀었군.”
왼 주먹을 앞으로 내밀며 왼발로 지면을 박차자 거대한 원을 그리며 땅바닥이 내려앉았다.
“화산파 제 1대 제자 태제 이신이다.”
“화산파의 쓰레기였군.”
이신의 도발에 젊은 사내는 화산파를 비웃으며 별 감흥 없이 마혼인 한명에게 명령을 내렸고 마혼인이 이신에게 달려드는 순간 어디선가 번쩍이는 무언가가 날아와 마혼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가 지면에 박혔다.
머리를 뚫고 지나간 것은 검이었고 그 검에서는 거대한 기격이 회오리처럼 몰아치며 마혼인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호황(虎皇)!”
땅에 박힌 검을 알아본 이신은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식은땀이 흘렀다.
“버러지 주제에 감히 화산파를 모욕하다니..... 건방지구나!”
그 외침과 함께 마치 태양이 떠오르며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사라졌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2층 건물 지붕 위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제갈 사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인(眞人)을 뵙습니다!”
“진인을 뵙습니다!”
초영은 불편한 몸을 하고서도 제갈 사혁에게 예를 갖췄고 곧 뒤를 이어 봉황대가 무릎을 꿇었다.
지붕 위에서 내려온 제갈 사혁은 초영의 상태를 보더니 품에서 고약을 꺼내 봉황대 대원에게 주었다.
동경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경려해주는 한편 이신을 보며 위 아래로 탐탁찮게 훑어봤다.
“누구 취향인지 알만하고만.”
“하하하~”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헌담을 하자 이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마혼인 하나가 제갈 사혁을 향해 달려왔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이 손가락으로 마혼인의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짐승같이 달려들던 마혼인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지 않느냐. 이 버러지야!”
제갈 사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마혼인을 감싸더니 마혼인의 몸을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었다.
“!”
사문의 최고 전력 중 하나인 마혼인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하자 젊은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네놈은 누..... 누구냐?”
자신의 정체를 묻자 제갈 사혁은 동경을 쓱~ 하고 한번 쳐다봤고 동경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천지에 설마 자신의 정체를 물어보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조용히 새끼손가락에 낀 은반지를 뺀 제갈 사혁은 손가락으로 은반지를 튕겼고 날아간 은반지는 그대로 젊은 남자의 왼팔을 뚫고 지나갔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의 왼팔은 너덜너덜 흉측하게 붙어있을 뿐이었다.
“끄아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지르자 제갈 사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남의 이름을 물어볼 땐 자기 이름부터 말해야지.”
“이이! 당장 저놈을 없애라!”
젊은 남자는 이를 악물고 나머지 마혼인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제갈 사혁은 봉황대 대원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 좀 빌려줄 사람.”
그러자 검을 소지하고 있는 봉황대 대원들은 전부 제갈 사혁에게 검을 빌려주었고 그 중에 다섯 자루를 고른 제갈 사혁은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을 펼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베어버렸다.
“화산파..... 이기어검술.....”
이 모습을 본 젊은 사내는 그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감을 잡은 듯 했다.
“천하제일인....”
그 말을 꺼낸 순간 소리 없이 다가온 제갈 사혁이 엄지 손가락으로 그자의 왼쪽 눈을 찔렀다.
“끄아아!!!”
“난 누가 날 그렇게 부르는 게 제일 싫더라.”
스스로 천하제일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천하제일인이라는 단어는 천중기를 연상케 하는 단어기 때문에 제갈 사혁은 그 호칭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마혼인을 조종하던 사내가 시체로 변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제갈 사혁의 여전함에 살짝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 마혼지가 뭐냐?”
제갈 사혁이 마혼지가 뭐냐고 묻자 이신은 웃으면서 전음과 함께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어요.
“........”
조용히 이신을 응시하던 제갈 사혁은 고개를 끄덕거린 뒤 봉황대에게 철수 권고를 내렸다.
“일단 여기는 내가 맡겠다. 돌아가 줬으면 한다.”
초영을 한번 본 동경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봉황대를 철수 시켰다.
“내놔.”
내놓으라는 말에 이신은 낡은 두루마리를 꺼냈고 그 순간 제갈 사혁은 그의 머리에 알밤을 놔줬다.
“아프잖아요!”
“내 곰방대 내놓으라고!”
곰방대 내놓으라는 말에 이신은 제갈 사혁의 눈치를 살피더니 제갈 사혁이 들고 다니던 호랑이 무늬가 새겨진 곰방대를 꺼냈다.
“백해도 내놔.”
허리에 찬 백해까지 내놓으라고 하자 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 청하 누나가 선물로 준 건데요.”
그러자 제갈 사혁은 땅 바닥에 박힌 호황을 꺼내 손잡이로 이신의 머리를 때렸다.
“너에게는 이 호황이 있잖아! 대사형 무원! 제갈 사혁 무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의 명검!”
“전통이라고 해봐야 10년도 안된 거를....”
“너까지 이어지면 3대째 전통이 되는 거야!”
툴툴 거리면서 이신은 백해를 건네고 호황을 받았다. 그 뒤 이신에게 마혼지를 넘겨받은 제갈 사혁은 한동안 마혼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어떠한 제조 방법이라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혼인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것이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흑운 공주를 통해 주인에게 전해줘.”
“네?”
주인에게 전해주라는 말에 이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제갈 사혁은 이를 드러내며 간악하게 미소 지었다.
천하제일인이 되고 나서 봉문을 하고 그 후 화산파 장문인 자리를 이어 받은 지 어느덧 3년.
정사대전을 승리로 이끈 화산파와 제갈 사혁의 부재는 흑사련과 마교의 성장을 이끌어냈고 강호는 또다시 동등한 힘을 유지하며 일촉즉발의 상태가 됐다. 게다가 불현 듯 나타난 마혼지와 마혼인.
평화는 채 5년을 넘지 못했고 이는 모두 제갈 사혁이 계획한 일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난세였다. 오직 그것만이 무림인의 존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난세는 힘을 가져다주고 권력을 쟁취할 수 있게 해준다.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다.
만약 이를 누가 부정한다면 천중기가 그래왔고 제갈 사혁이 그래왔듯 자신을 쓰러트리면 될 일이다.
“이신.....”
“네. 사부”
새로운 바람이 불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난세(亂世)다.”
무림(武林)에서는 오직 한 마리의 대호(大虎)만이 포효할 수 있다.
============================ 작품 후기 ============================
화산의협 완결입니다.
후기에 대해서 적자면 뭐랄까요.
제갈 사혁은 이신을 통해 나왔듯 아들 낳고 청하와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산의협의 엔딩으로 잘먹고 잘 살았습니다. 이거는 별로더라구요.
그래서 이신을 내세워 에필로그를 썼습니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 듯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은 제갈 사혁이 난세를 여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혼란을 종결 시킨 자가 다시 혼란을 불러일으키죠.
그것으로 무림이라는 세상의 중심이 된겁니다. 궁극의 목표를 이룬 거죠.
무림인.... 아니 자신을 필요로하는 세상을 만든 겁니다.
내일 올릴 글은 이제 제 후기입니다.
다음 작품 홍보도 겸해서..... 화산의협은 이걸로 끝!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따로 감사인사는 내일 올릴 후기에 진하게 남기고 싶습니다.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시작도 함께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