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무서운 여자들 (15/17)

제4장. 무서운 여자들

장안성의 은정련은 초긴장 상태였다. 정문을 지키는 수문 위사들의 분위기에도, 깃발이 펄럭이는 담장 위에 서 있는 무사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황실이 하인을 역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직 하인이 진야동과 지계의 무인들을 숙청했다는 소식을 이곳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모든 무인들이 비상사태를 예상하여 긴장 상태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부련주님.”

보고를 하는 사람은 은정련의 유령각주인 진소화였다.

“아직 그이의 소식은 없지요?”

“예. 개방의 정보원들과 유령각의 정보원들이 보낸 소식에 의하면 그이가 북경의 남대문에서 격돌이 있은 것까지입니다. 아마 지금쯤 진야동과 전쟁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부련주님.”

위소옥의 물음에 대답한 진소화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전 그이가 반드시 진야동을 처리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자 방 안에 앉아 있던 귀걸개가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험! 그야 당연하지. 은목전왕이 내 사위라서가 아니라 그를 당할 자는 당금 세상에 없네, 아암.”

그에 화산제일검 양안당이 혀를 찼다.

“쯧쯧. 이보게, 아니, 자네 제자의 남편이지 어떻게 자네의 사위가 되는가?”

양안당의 말에 귀걸개가 눈을 부릅떴다.

“제자는 자식이라는 것을 자넨 정녕 모르는가? 제완완… 아니지, 제 주모는 내 자식과 같네. 그러니 주군은 당연히 내 사위지. 자넨 그런 이치를 모를 거야. 에헴!”

귀걸개가 양안당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것을 보는 양안당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처음부터 따라다닌 자신의 딸은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하인의 여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제완완은 당당하게 그의 여인이 되어 은정련 무인들에게 주모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귀걸개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형편이었다.

대신 양안당은 속이 쓰렸다.

‘어디 두고 봐라. 이번에 은목전왕이 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내 딸과 붙여 놓아 저 거지의 콧대를 꺾어놓을 테다. 이거야 어디 눈꼴시어서, 원!’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인이 있어야 붙이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그저 화만 나는 양안당이었다.

“무사들의 기분은 어때요?”

“무사들의 사기는 충천합니다. 그들은 이제 절대적으로 주군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건 그랬다. 하인이 무림공적으로 몰렸을 때 기회를 노리며 은정련에 가입했던 무인들과 문파들은 떠나갔다. 그러다 하인이 다시 생환하고 무황성의 낙녕 분타를 괴멸시켰을 때 돌아왔지만 위소옥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번 배신한 자는 다시 배신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문파들과 무인들은 그런 면에서 진짜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이런 기회를 빌려 무황성이 도발해올 수 있으니까요.”

위소옥의 말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제완완이 코웃음을 쳤다.

“그까짓 무황성! 도발을 하면 아예 밟아버려요, 언니.”

그녀의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무인들은 이전의 무인들이 아니었다. 하인이 보내준 신안천수를 먹은 후 위소옥은 이미 심공의 초입에 들어섰고, 당수해와 부르나, 허신영과 양설란, 선우미령, 제완완, 진소화는 이미 심공의 상급에 올라 있었다.

하인의 여자들만 해도 세상을 경악시킬 고수로 변모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하인이 보낸 천력단을 먹고 자라난 3천의 고수들 또한 이곳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절정의 고수들.

말 그대로 지금의 은정련은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만약 멋도 모르고 무황성이 도발을 해온다면 그들은 쓴맛을 단단히 볼 것이었다.

아직 은정련의 무서운 힘을 세상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빨리 돌아와요, 내 사랑!’

위소옥이 간절한 마음을 안고 집무실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장안성의 남천로에는 없는 것이 없다. 청루와 홍루, 주점과 객잔 등.

사실 이곳은 원래 조용한 거리였다. 하지만 은정련이 생기고 나서는 완전히 천지개벽을 했다. 1만의 은정련 무인들을 상대로 한 장사꾼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어느덧 하나의 거리를 형성한 것이다.

명월루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술을 마시러 온 사람들, 은정련에 무기를 판매하려고 온 장사꾼들, 무복을 만들 천과 부식품을 팔려고 온 자들.

그런 자들이 모여들어 명월루는 흥성거렸다.

“자네, 은정련에 줄이 있다고 했지?”

“허허, 이 친구 좀 보게. 그게 어디 맨입으로 되나?”

2층 창문 옆에 앉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이다. 한쪽은 하남성에서 장사를 하러 온 사람이고, 다른 쪽은 이곳에서 은정련에 줄을 대려는 장사꾼들의 뒤를 봐주고 돈을 받아먹는 이른바 건달이었다.

얼굴이 약간 기다란 장사꾼이 빙긋이 웃으며 자그마한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길 좀 열어주게. 이건 금이야.”

“으흠, 자네 성의가 이러니 뿌리칠 수도 없고.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알려 주지.”

장사꾼이 준 주머니를 슬쩍 들어본 건달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손에 들린 주머니가 제법 묵직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금자 30냥은 바꿀 수 있는 금덩이였다.

“내일 아침에 대주모님이 천불사로 기원을 드리러 가네.”

아주 큰 비밀을 알려 주듯 하는 건달의 말에 장사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니, 이보게! 대주모님이 예불을 하러 가는 것이 내 장사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러자 건달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쯧쯧. 자네, 장사꾼 맞아?”

“그럼 내가 장사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장사꾼이 약간 얼굴을 붉히며 상대를 쳐다보자 건달이 그의 귀에 입을 붙였다.

“대주모님은 은정련에 있는 여덟 주모님들 중에 가장 힘이 있는 분이셔. 그분이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은목전왕 님의 본부인이거든. 솔직히 미모는 다른 주모님들보다 떨어져도 말일세. 알겠나?”

사람들은 은정련에 있는 하인의 여인들을 가리켜 여덟 주모님들이라고 한다. 그중 위소옥은 대주모로 불리고 있었다.

“그, 그렇긴 하네만, 그게 내 장사와 무슨 관계…….”

“이런 답답한 친구 같으니. 이보게, 대주모님이 천불사로 가시면 점심은 먹을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아, 그때 자네의 부식을 찬으로 만들어 그분들에게 드리는 거야. 천불사 앞에 있다가 말일세. 대주모님이 맛있게 드시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그럼 어떻게 되겠나?”

“그렇군!”

장사꾼의 얼굴에 웃음이 확 피어났다. 천불사는 이곳에서 1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산속이라 객잔도 주점도 없는 곳이었다.

장사꾼이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대주모님 혼자 가시나?”

“아니. 내 조카의 말에 의하면, 여덟 주모가 함께 간다고 하네. 그러니 호위 무사들이 따라가게 마련이지. 아마 백 명은 넘을걸?”

술잔을 쭉 들이켠 남자가 장사꾼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 정도 정보를 넘겨줬으면 금값은 한 것이다. 나머지는 장사꾼의 수완에 따라 부식품이 은정련에 들어갈지 말지가 결정될 것이었다.

솔직히 그에게는 장사꾼이 성공해서 돈을 왕창 벌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자신은 금값만 하면 그만이 아닌가!

“고맙네. 부식품 차입이 성공하면 내 한턱 내지.”

“자네 수완이면 성공할 거네.”

장사꾼이 급히 일어나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흐흐. 저 친구, 부식품을 은정련에 넣으면 돈깨나 벌겠네!”

창밖으로 장사꾼이 급히 걸어가는 것을 본 남자가 히죽이 웃었다. 위소옥이 천불사로 예불을 드리러 간다는 것을 어제 집에 왔던 조카에게 들은 것이 이렇게 큰돈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은정련은 참 좋은 곳이야. 흐흐흐.”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머니도 두둑하니 홍루에 가서 오늘은 향월이를 맘껏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하초가 뻣뻣해진 그가 흔들거리며 걸어갔다.

* * *

“문을 열어라. 주모님들께서 나가신다!”

은정련의 대문을 지키고 있던 위사들이 그 외침을 듣고는 일제히 달려들어 문을 밀었다.

찌그윽.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만든 육중한 대문이 양옆으로 갈라지자 안쪽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맨 앞에는 하얀 백마를 탄 위소옥이 나오고 있었고, 양옆에는 부르나와 진소화, 제완완과 허신영, 당수해와 양설란, 선우미령이 나오고 있었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문밖을 나서자 수문 위사장이 포권을 하며 머리를 숙였다.

위소옥이 밝게 웃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말에 박차를 넣었다.

푸르르르.

말이 투레질을 하더니 힘차게 땅을 박찼다.

위소옥의 뒤로 7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일제히 말을 달리고, 하얀 망토를 걸친 친위대가 질풍처럼 내달렸다.

“위 장주가 어딜 가는 모양이군!”

예전부터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아직도 위소옥을 위 장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녀를 친근하게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의 애정이었다.

“어제 내 조카가 하는 말을 들으니 천불사로 예불을 드리러 간다고 하더군!”

“왜?”

나이 지긋한 남자가 옆에 좌판을 놓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야 은목전왕 대협의 무사귀환을 바라서가 아니겠는가!”

“그렇군.”

좌판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들은 남천로가 생길 때 모두 쫓겨 나갈 뻔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장안성주를 끼고 이곳의 땅을 모조리 사들였던 것이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위소옥이었다.

‘만약 대인이 불쌍한 양민들을 내쫓는다면 내가 좌시하지 않겠어요. 이건 은정련의 부련주로 하는 말입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장안성주는 질겁해서 장사꾼들의 뒤를 봐주던 것을 철회하였다. 위소옥이 누구던가? 바로 세상을 떨어 울리는 은목전왕의 부인이고 은정련의 부련주였다.

지금 장안에서 은정련의 일을 방해할 세력은 전무했다.

1만의 무인들을 거느린 문파.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있는 장안성주가 벌벌 떠는 것은 당연했다. 관군도 감히 어쩔 수 없는 것이 저들 무인들인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위소옥을 대주모님이라고 불렀고, 각지에서 온 장사꾼들도 좌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는 양민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뿐이 아니다. 장안성에서 사람들의 돈을 뜯어가던 불량배들은 더 이상 없었다. 위소옥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유 없이 장안성 양민들의 생업을 방해하는 자, 은정련이 철퇴를 내릴 것이다!’

이 포고가 위소옥의 이름으로 나붙은 후, 장안성의 뒷골목 불량배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자칫하다가는 은정련 무인들의 검에 목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은정련에 호의적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흠, 드디어 떠나는군! 이제 네년은 죽어도 그냥 죽지 못할 것이다.”

은정련의 대문과 일직선으로 있는 육고집의 주인이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쓰기 시작하였다.

<은정련의 여덟 개 꽃이 날아갔음. 호위는 백 명.

-흑영 10호>

푸드득.

수십 마리의 비둘기가 육고집의 지붕에서 날아올랐다. 어떤 비둘기는 천불사 쪽으로, 어떤 비둘기는 섬서의 남쪽으로. 북쪽과 동쪽, 서쪽으로도 비둘기가 날갯짓을 하기 시작하였다.

섬서의 동쪽에 있는 이산현.

삐이걱.

이산 밑에 있는 거대한 장원의 문이 열리고 1천 명가량 되는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자! 이제 우리의 터전을 찾을 때가 왔다!”

장비처럼 용맹하게 생긴 자가 머리 위로 쳐든 도끼를 흔들며 소리치자 무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가자! 우리의 터전을 찾자!”

“장안은 우리 귀부십방(鬼斧十幇)의 것이다!”

“은정련을 박살 내자!”

도끼를 든 무인들이 미친 듯이 소리쳤고, 그들의 눈에서 탐욕이 이글거렸다.

이들은 원래 장안에 있던 귀부십방이라는 흑도 방파였다. 장안성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에게 보호비를 받아 흥청거리며 살던 이들에게 철퇴가 내려진 것은 은정련이 생긴 후부터였다.

은정련은 귀부십방에 떠나라는 경고를 보냈고, 귀부십방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은정련의 주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은목전왕 하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은목전왕 하인, 그가 장안성에서 이름 높던 일월방을 어떻게 도륙했는지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은목전왕을 우습게 알고 위가장을 공격했던 일월방은 은목전왕에 의해 방주 이하 부하들이 도륙을 당했다. 그 때문에 위소옥의 경고가 떨어지자 귀부십방은 줄행랑을 쳐서 이산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장안성에서의 그 화려한 생활을 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하나, 무인은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법. 은정련의 힘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밤중에 찾아온 검은 흑의의 고수들. 그들이 은정련에 대한 공격을 제안한 것이다.

처음 그 제의를 받았을 때, 귀부방주 광혈부(狂血斧) 과잔양은 코웃음을 쳤었다.

‘이보쇼, 은정련은 은목전왕이 주인이오. 오래 살고 싶으면 돌아가시오.’

그때 과잔양은 흑의인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보았다.

‘은목전왕이 그렇게 무서운가? 광혈부, 그럼 우리 힘을 보여 주지.’

그리고 과잔양과 부하들은 기겁했다. 10명의 흑의인들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던 검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쐐애액!

스걱스걱.

허공을 비행하는 검들.

20장 밖의 나무들을 베어버린 검들이 돌아왔을 때, 과잔양은 무조건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한 말 때문이었다.

‘과잔양, 우리 암천대 오백 명은 모두 이런 고수들이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너희들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린 무황성의 비밀 무사들. 그 때문에 암중에서 활동한다. 이번에 우리는 은정련을 말살시킬 것이다. 그 공로는 너희들이 가질 것이고, 섬서 역시 너희들의 몫이다. 알겠는가?’

‘예, 감사합니다!’

과잔양도 바보가 아니다. 이제 무황성이 어떤 목적으로 은정련을 제거하려는지 알고도 남았다. 또한 그들은 은정련을 없앤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 했다. 그건 백도를 자처하는 무황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과잔양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 귀부십방이 은정련을 없앤 것으로 되고 장안성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들러리일 뿐.

하지만 열매는 달콤했다. 장안성의 수많은 상가들과 주루, 객잔과 주점, 홍루와 사창가들이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자! 장안은 우리 것이다!”

“우아아!”

귀부십방이 장안을 향해 떠났다.

그 시각 서쪽의 호현에서는 철마보(鐵魔堡) 1천 명이, 북쪽의 함양현에서는 묵검부(墨劍府) 1천 명이, 남쪽의 사구현에서도 청룡파(靑龍派) 1천 명이 기세등등해서 장안성을 향해 출발했다.

모두 장안성에서 쫓겨났던 흑도의 무뢰배들. 그들이 가는 곳은 은정련이었다.

드디어 무황성 제갈만산의 계획대로 은정련을 말살하기 위한 암천대의 공격이 벌어진 것이다.

* * *

똑딱똑딱.

스님들이 두드리는 목탁 소리만이 울리는 산사, 이곳은 천불사다.

천불사의 뒤쪽은 험산준령이 줄줄이 뻗어 태백산과 연결되어 있고, 앞쪽은 짙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숲 속에 한 떼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숨어 있었다.

“이젠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모두 검은 흑의를 입은 사람들.

날카로운 살기를 뿌리는 이들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쪽을 쏘아보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일단 계집들이 나온 다음 시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인정을 베풀어야죠. 흐흐흐.”

“그래. 어차피 계집들을 사로잡자면 그것이 좋겠지.”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암천대의 대주인 뇌화삼살(雷火三殺) 단엽상.

암천대는 삼 형제가 우두머리였다. 첫째가 단엽상, 둘째가 단명인, 셋째가 단절천.

지금 셋째는 4백 명의 암천대를 이끌고 장안성의 은정련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천계의 계주인 무황의 직속 부대인 암천대. 이들은 전부 마령곡에서 무공을 수련한 자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면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들. 지금까지 이들의 손에 죽은 사람들은 그 수를 셀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소문나지 않은 것은 이들이 실전을 치를 때마다 새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타클라칸 사막의 수많은 소부족들이 이들의 공격으로 비참하게 죽었지만 중원의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막에서 횡행하는 마적들이 저지른 짓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형님, 수마칸족의 딸년이 생각나는군요. 그년 참 화끈했는데. 크크크.”

단명인이 옛날 일을 생각하는지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에 단엽상이 희미하게 웃었다.

수마칸족.

실전을 치를 때마다 사막의 여러 부족들을 초토화시키고 계집들을 강간했지만 수마칸 부족장의 딸년 같은 여자를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한 떨기 꽃 같았던 수마트라. 그녀는 삼 형제에게 잡혀 보름 동안을 강간당했다. 그리고 5일 동안 암천대 부하들에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겁간을 당한 뒤 마지막 날 사막의 이리 떼에게 먹이로 던져졌다.

지금도 그녀가 죽어가면서 퍼붓던 저주가 귀에 삼삼히 들렸다.

‘악마 같은 놈들아! 언제든지 네놈들은 여인들의 한을 돌려받을 때가 올 것이다!’

“크크크. 여인들의 한? 웃기는 소리. 하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미인들을 선물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동생의 말에 단엽상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마치 이리가 먹이를 먹기 전에 짓는 흉포한 웃음 같았다.

“그래. 지금까지 맡은 임무 중에 오늘처럼 흥분되기는 처음이다!”

단엽상은 천불사의 입구를 보며 흥분으로 벌떡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처음 이곳을 통과하는 8명의 여인들을 보았을 때, 단엽상은 그만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1명도 2명도 아닌 8명의 여인들. 그녀들은 하나같이 절세의 미인들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명의 남자에게 저런 미인들이 모여들었단 말인가!

단엽상으로서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또, 한쪽으로는 은목전왕이라는 자에게 증오와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신들은 근 1백 년 동안 마령곡에 박혀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저런 미녀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은목전왕이라는 자는 양귀비도 울고 갈 미녀들을 8명이나 품에 안았단 것이 아닌가?

뇌화삼살의 삼 형제는 단엽상이 100살이고 둘째가 95살, 셋째가 90살이다.

비록 겉으로는 중년이지만 그건 마령곡의 마기 때문이었다.

단엽상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은목전왕, 너의 여자들은 내가 잘 쓰겠다. 두고두고 내 노리개들로 만들어주지.”

“여부가 있습니까, 형님? 우린 이번에 대박을 만난 것입니다. 크크크.”

단명인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징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이자가 바로 부식품 상인으로 가장하고 위소옥 일행이 이곳에 오는 것을 알아낸 그 장사꾼이었다.

“어? 형님, 우리의 귀염둥이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킬킬거리며 웃던 단명인의 눈이 커지더니 천불사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서 8명의 여인들이 재잘거리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도 보고 있다.”

“꿀꺽!”

“꿀꺽!”

단엽상과 단명인의 목구멍에서 동시에 나는 소리였다. 지금 두 형제는 저 여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황제라면 황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대체 저게 사람이란 말인가! 보면 볼수록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 같았다. 그런 절세의 미녀들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으음!”

“으으!”

두 형제는 목구멍이 마르고 가슴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저 여인들을 품고 마음껏 욕정을 풀어야 이 갈증이 가실 듯했다.

그런데 자신들의 귀에 들리는 이 소리는 뭐란 말인가?

“꿀꺽!”

“꿀꺽!”

“죽인다!”

“으흐흐, 첫 번째는 나다!”

“무슨 소리! 먼저 잡는 자가 주인이다!”

뒤를 돌아본 두 형제는 눈에서 불이 일었다. 암천대원들의 눈이 탁 풀어지고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며 자신들의 귀염둥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개자식들이 자신들도 만져 보지 못한 보물들에게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폭발했다.

쩡. 쐐애액.

퍽퍽퍽.

“컥!”

“캑!”

“윽!”

단엽상의 손에서 검은 빛줄기가 날아가자 3명의 부하들이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그들의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린 것이 보였다.

뇌화삼살지(雷火三殺指)!

지옥의 뜨거운 불이라는 뇌화에 맞은 3명의 머리에서는 피도 나오지 않았다.

“개자식들! 감히 누구에게 침을 흘리는 것이냐? 우리가 건드리기 전에는 누구도 저 여자들을 만질 수 없다. 그런 자는 나의 뇌호검이 먼저 벨 것이다.”

단엽상의 협박에 1백 암천대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개 같은 새끼!’

‘시발 놈. 또 지 놈들이 먼저 시식하려는군.’

‘에이, 더러워서!’

하지만 어쩌랴, 뇌화삼살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는 강자들인 것을. 그저 힘이 없으니 먹던 찌꺼기라도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아니, 저 희번덕거리는 눈을 보니 당장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뇌화삼살은 그러고도 남을 인성을 지닌 자들이었다.

“잘못했습니다, 대주.”

“다시 그녀들에게 눈알을 굴리면 네놈들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부하들을 협박하고 돌아서던 단엽상은 눈을 부릅떴다. 머리가 황금색인 계집이 허리에 차고 있던 짧은 창을 꺼내더니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그제야 단엽상은 자신의 실수를 알았다. 자신들 삼 형제의 독문 무공인 뇌화삼살은 사용하면 우렛소리를 동반한다. 그러니 저 여인들이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지풍을 쏘았기에 소리가 비교적 작았지만 저 여인들은 무공을 익힌 여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혀를 찬 단엽상이 등에 지고 있던 무지막지하게 큰 검을 뽑아들었다. 화기를 감당해야 하기에 삼 형제의 검은 50근이나 나가는 엄청난 무게였다. 그것도 지하 수백 장 밑에서만 생성되는 암흑 묵철로 만든 검이었다.

우르르르, 쩌저정!

하얀 구름 속에서 나타난 10개의 번개 모양의 강기. 그것은 하얀 뇌전창이었다.

무적뇌격창의 초식.

무적뇌격창법의 운뇌환격은 변(變)과 환(幻)의 정수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없게 만드는 환영창이었다.

“응? 저건 뇌전!”

단엽상은 날아오는 하얀 번개를 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저것은 분명 열과 빛을 가진 뇌전창법이었다. 1백 년 전 색목인 자르치가 사용하던 무공. 비록 처음 보는 것이지만 분명 저 창법을 알고 있었다. 천계의 무고에는 이 땅의 무공에 대하여 없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년이 자르치의 후예?”

그제야 단엽상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무적뇌격창은 자신의 뇌화삼살공처럼 화기의 무공인 것이다.

“크크크. 계집, 넌 적수를 잘못 만났다. 귀여운 것.”

그의 손에 쥐어진 양손 검이 날아오는 뇌전을 향해 휘둘러졌다.

우르르르, 번쩍!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우렛소리와 하늘을 가르며 암흑의 화전(火電)이 10여 개 나타났다.

하얀 번개와 검은 번개의 충돌.

쩡쩡! 콰르릉!

뇌전들이 충돌하자 공기가 터지고 나무들이 강기의 파편에 맞아 낫으로 벤 것처럼 잘리고 부러졌다.

우지끈. 짜자작.

“큭! 이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뇌전을 쳐 낸 단엽상의 눈이 둥그레졌다. 계집의 일격이 얼마나 강한지 손아귀에서 피가 흐르고 어깨까지 부르르 떨렸다.

그가 놀란 눈으로 금발의 부르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와 같은 급이란 말인가!”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누구던가? 천계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인 암천대의 대주가 아닌가!

물론 천계에는 암천대보다 더 강한 무력 집단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심공의 초입에 들어선 지고한 경지의 무인이었다.

저 색목인 계집은 아무리 봐도 20대 중반. 저 나이에 심공의 경지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공격하라! 호위대는 모조리 죽이고 계집들은 잡아라!”

“명.”

그의 발작적인 외침에 암천대원들이 허공을 날아 8명의 여인들에게 쏘아졌다.

그 앞에선 뇌화삼살의 두 형제가 미친 듯이 날아왔다.

“흥! 역시 쥐새끼들이 숨어 있었구나.”

부르나가 코웃음을 치며 옆구리에 걸려 있는 나머지 창을 뽑아 쥐었다.

“호호, 무황성의 쥐새끼들인가?”

스르렁.

선우미령이 도를 뽑아들며 방실거렸다. 하인이 보내준 신안천수를 먹은 후 적당한 상대가 없어 언니들과 수련만 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쏘아져 오는 2명의 느끼한 중년을 보는 순간, 저것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무위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녀가 익힌 은하천강도법의 기운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찬 것과 뜨거운 것의 대결. 극과 극의 만남이었으니 당연했다.

“한 놈은 내가 맡을게요.”

그녀의 도가 번쩍 빛을 뿜었다.

“은하천강(銀河天쾝)!”

쩌저정. 쐐애액.

하늘을 덮으며 쏘아지는 얼음의 강기. 주위가 한겨울처럼 싸늘한 기운으로 덮이고, 하얀 얼음의 강기들이 단명인을 향해 쏘아졌다.

“헛! 이년이?”

깜짝 놀란 단명인이 두 손에 든 묵철 검을 휘둘렀다. 줄기줄기 생겨나는 새카만 강기. 번쩍거리는 검은빛과 귀청을 찢는 우렛소리.

콰콰콰콰콰.

휘고 구부러지며 쏘아지는 암흑의 강기를 맞받아 선우미령의 도가 줄줄이 강기를 뽑아냈다.

“호호, 이것도 받아봐. 빙강기(氷쾝氣)!”

쿠쿠쿠쿠.

단명인의 눈이 벌컥 뒤집혔다.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거대한 얼음의 강기. 마치 통나무 같은 빙강기가 대지를 찢어발기며 날아들고 있었다.

‘이 정도라니! 대체 이 계집들은?’

기가 막혀 형 쪽을 본 그는 눈을 부릅떴다. 금발의 계집이 맹렬하게 달려 들어가며 짧은 2자루의 단창을 휘두르자 하얀 강기들이 형을 향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뇌전강(雷電쾝)!”

짜자자자.

비단 필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뇌전이 형의 암흑 강기와 충돌했다.

콰콰쾅! 콰쾅!

폭발의 여파로 주변의 나무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날아가고, 땅 위에 구덩이들이 움푹움푹 파인다.

“이것들은 우리보다 약하지 않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단명인은 나머지 계집들을 살펴보았다. 그녀들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는 암천대원들. 하나, 계집들은 누구 하나 겁을 먹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빙긋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심심하던 차에 잘 만났다는 표정.

그것을 본 단명인은 기가 막혔다.

그때 아름다운 여인의 말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호위대는 위 언니를 보호하세요.”

“명!”

위소옥의 호위대가 일제히 그녀를 가운데 두고 원형진을 만들자 명을 내린 진소화가 검을 뽑아들었다.

“감히 우리에게 덤벼들다니! 은목전왕의 여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네놈들은 오늘 뼈가 저리도록 느끼게 될 것이다.”

“가요, 언니.”

“이 새끼들, 오늘 잘 만났다!”

제완완과 양설란이 암천대를 향하여 쏘아지고, 그녀들의 뒤를 따라 진소화와 당수해, 허신영의 검과 흑룡편이 하늘을 갈랐다.

“삼양신장(三陽神掌)!”

퍼펑! 펑!

당수해의 신형이 제일 먼저 쏘아져 오는 암천대로 날아들며 당문의 장법을 내갈겼다. 순간 은은한 녹색 기류가 부챗살처럼 전면을 휩쓸고, 달려들던 암천대가 비명을 질렀다.

“컥! 당문의 삼양장이다!”

“윽! 가슴이…….”

“흥! 내가 바로 당문의 독화 당수해다.”

그녀의 손에서 기다란 흑룡편이 날아오르고 독강기가 날아갔다.

“흑룡만천(黑龍萬天)!”

흑룡이 날아오르면 만 개의 하늘을 휩쓴다!

전면이 온통 흑룡편으로 덮이며 암천대의 얼굴과 손발, 검이 녹아내렸다.

치지직.

“아앗, 손이 녹는다!”

“으악, 내 얼굴!”

암천대는 그만 기절초풍하였다. 당수해, 녹색 머리를 휘날리는 그녀의 무위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그녀는 심공의 중위급. 감히 독강에 맞서 싸울 자가 없었다.

하나, 암천대에게 진짜 악몽은 이제 시작이었다.

“매화혈우(梅花血雨)!”

허공에 버티고 선 양설란의 검이 빛을 뿌리자 분홍빛 매화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꽃이었다. 하나하나가 강기로 만들어진 혈매화.

아버지인 화살제일검 양안당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고수가 된 양설란의 검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촤악. 촤악.

분홍빛 매화가 날아가며 암천대의 몸통을 잘라버리고,

“청풍분광파(靑風分光破)!”

허신영의 검에서 청색의 빛이 수십 갈래로 쏘아졌다.

청성의 장문인에게만 전수되는 청풍검(靑風劍)이 장문인을 능가할 정도로 전개되었다.

우르릉, 콰콰콰콰!

제완완의 손에서 개방의 절기인 창룡신공이 거의 10성의 경지로 펼쳐지고, 진소화의 두 손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음무영의 깃털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인간의 혼마저 뚫는다는 유령참혼우.

퍽퍽퍽퍽!

깃털에 몸이 관통된 암천대원들이 달려오던 그대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것을 본 단명인은 기가 막혀 붕어처럼 입만 벙끗거렸다.

그의 부릅뜬 눈에 보이는 절세의 미녀들은 하나같이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녀들이 한 번 손을 휘저으면 독강기가, 깃털이, 매화가 쏟아지고, 자신의 부하들이 논밭의 허수아비처럼 쓰러져 갔다.

사방에 흐르는 걸쭉한 피. 잘려진 팔다리가 펄떡거리는 땅. 이곳은 마녀들의 살육장이었다.

“혀, 형님, 저것들이…….”

하지만 그는 미처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앞으로 쏘아진 선우미령이 도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이봐, 아저씨, 앞에 정신을 집중해야지. 안 그래?”

그리고 날아오는 거대한 기운.

홱 머리를 돌린 단명인은 혼비백산하였다. 하얀 꼬리를 달고 빛처럼 날아드는 거대한 강기. 은하천강도법의 하나인 은하섬강(銀河閃쾝)!

콰콰콰콰!

“으헛!”

단명인은 얼결에 자신의 무공 중 가장 강한 뇌화절혼강(雷火折魂쾝)을 전개했다.

콰- 콰쾅! 우르릉!

하얀 강기와 암흑의 강기가 충돌하며 대폭발을 일으키고 단명인은 10장을 날아가 패대기쳐졌다. 마치 집어 던진 개구리처럼…….

“컥! 이런 개 같은 년이!”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번개처럼 허공을 날아온 선우미령의 작은 가죽신이 놈의 얼굴을 걷어차 버린 탓이었다.

퍽! 콰직!

단명인의 머리가 그녀의 발에 맞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허연 뇌수와 깨어진 머리뼈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강기를 감은 발에 맞았으니 뼈와 살로 된 머리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망할! 더러운 피가 안 묻었는지 몰라.”

자신의 신을 찬찬히 내려다본 선우미령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그곳에서는 부르나가 단엽상을 무지막지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흥! 겨우 이런 수준을 가지고 우리를 잡겠다고? 네놈들은 은목전왕의 여자들을 너무 쉽게 보았어!”

선우미령이 암천대를 보았지만 이제 땅 위에 서 있는 암천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진소화와 허신영, 양설란의 공격에 일차로 죽은 자들은 제완완과 당수해의 장풍에 몸이 찢겨지고 마지막에는 당문의 암향천독에 뼈마저 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부르나와 치열하게 싸우던 단엽상은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천계의 무사들인 암천대가, 출전만 하면 승리였던 암천대가 모두 죽었고, 시신마저도 한 줌 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때 부르나의 싸늘한 말이 그의 귀에 들렸다.

“네놈들이 누군지 묻지 않겠다. 우린 은목전왕의 여자들. 우릴 공격한 이상 살아 나갈 생각은 버려라.”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대기의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파강격(破쾝擊)!”

2자루의 창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쏘아진다. 그리고 마치 생명이 달린 듯 무서운 속도로 비행하며 단엽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바로 이기어창이었다.

“으와! 이 개 같은 년들! 뇌화천살(雷火天殺)!”

이제 혼자 남았다. 설사 살아서 무황에게 돌아가도 단엽상에게 차례질 것은 죽음뿐. 그의 분노를 담은 검이 암흑의 강기를 기둥처럼 뿜어냈다.

콰쾅! 쾅쾅쾅!

연이어 울리는 강기와 창의 폭음. 하지만 살처럼 날아다니는 부르나의 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촤악!

“컥!”

짧은 단창이 지나가자 단엽상은 목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주르르 흘러내리는 붉은 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단엽상의 피도 똑같은 붉은색이었다.

“내가, 이 단엽상이 고작 계집들에게 죽다니……. 원통하구나!”

털썩. 데구루루.

그의 머리가 땅 위로 굴러가고 몸뚱이가 스르르 무너졌다.

휘익, 척.

허공을 비행하여 날아온 창을 받아 쥔 부르나가 몸을 돌렸다. 1백 명의 호위대가 진을 친 곳에 있던 위소옥이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위소옥은 아직 사람을 한 번도 죽여 보지 못한 사람. 아마도 심적 충격이 컸을 것이었다.

“언니, 이제 끝났어요.”

부르나의 맑은 말에 위소옥이 힘겹게 머리를 들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동생, 빨리 가야겠어. 은정련이 위험해!”

그제야 여인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자신들을 공격한 자들은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니었다. 2명은 심공의 초입이었고, 나머지는 초절정의 최상급인 무인들. 이자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여인들의 무위를 몰랐기에 이렇게 빨리 몰살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은정련에 남아 있는 무사들은 3천의 은명단과 광명단만 절정의 고수들. 그들만 가지고는 위험할지도 몰랐다. 아무리 종남의 태오자와 귀걸개, 화산제일검이 있다고 해도 적이 모두 이 정도라면 위험했다.

“알았어요, 언니.”

재빨리 돌아선 부르나가 명을 내렸다.

“모두 은정련을 향해서 달린다! 형제들이 위험하다!”

“명!”

8명의 여인들이 질풍처럼 내달리고 1백 명의 호위대가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뒤를 따랐다.

* * *

은정련의 안쪽에는 작은 가산이 만들어져 있다. 원래 위가장일 때는 없었지만 은정련이 된 다음부터 사람들을 동원해 만든 것이 바로 이 가산이었다.

그것은 1만의 무인들이 마시는 물을 이 가산으로 끌어올려 저장한 다음 은정련 내부의 곳곳에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은정련에서 가장 중요한 식수원이 바로 이 가산에 있었다.

때문에 이곳에는 식수원을 지키는 무인들이 있었다.

“자네, 딸을 낳았다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무인이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동료에게 묻자 동료의 얼굴에 웃음이 퍼져 나갔다.

“그래. 아들을 낳고 딸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 모양이네. 흐흐.”

“그럼 한잔 내야겠구먼.”

“흐흐, 걱정 말게. 교대하면 우리 풍월루에 감세.”

“역시 자네야!”

두 사람이 웃으며 말할 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솟아났다. 마치 땅에서 나오듯…….

그의 손이 두 사람의 마혈을 순간적으로 짚었다.

“헛! 당신은 누구… 컥!”

하지만 두 사람은 미처 말을 끝내지도 못하였다. 검은 옷의 남자가 손가락을 쳐들자 두 사람의 눈이 희뜩 뒤집어졌다.

그들이 본 것은 검은 옷의 손에서 날아오는 지강이었고, 그것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고 말았다.

털썩. 털썩.

두 사람이 쓰러지자 검은 옷이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흐흐. 은정련, 명년 오늘이 너희들의 제삿날이다!”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하얀 가루가 식수통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얀 가루, 탈혼몽령분(奪魂夢靈粉)은 하루 동안 정신을 잃게 하는 미혼약이었다. 하나, 그 독성이 강해서 일단 먹기만 하면 죽은 듯이 쓰러진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서산 너머로 기울어가는 해를 바라본 검은 옷이 훌쩍 몸을 날렸다.

휘리릭.

이제 밥 먹을 때까지는 겨우 한 시진. 그 시간이면 은정련은 대참사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은정련의 원로원에는 화산제일검 양안당, 청풍무적검 노적봉, 개방의 귀걸개, 종남의 태오자, 그 외 종남의 원로 30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위가장의 호위 무사나 다름없이 이곳에 왔지만 이제는 진짜로 은정련 원로가 된 사람들이었다.

“자, 한 번만 물리게. 응?”

“아니, 일수불퇴란 말 모르십니까, 태오자 님?”

원로원의 마루에 두 사람이 앉아서 아옹다옹하고 있었다. 종남의 태오자와 화산제일검 양안당이다.

이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장기를 둔다. 하지만 종남의 태오자는 단 한 번도 양안당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달려드는 그였다.

“자넨 선배에 대한 예의도 모르나?”

태오자가 이번에는 나이로 해보려고 들었다. 하지만 양안당이 누군가? 그가 능청스럽게 태오자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이건 경기입니다. 여기서도 선후배를 따지다니요? 그러려면 내기 장기는 왜 하자고 했습니까?”

양안당의 말에 태오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이번 장기를 두면서 내기를 하자고 한 것은 태오자였다. 어떻게든 이겨 보고 싶은 그였지만 도저히 양안당을 이길 수가 없었다. 무공에서라면 태오자가 한 수 위였지만 장기는 아니었다.

“좋네. 그럼 이번 판은 없던 것으로 하고 새로 한판 하세. 내 이번에도 지면 군말 안 하겠네.”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귀걸개가 슬쩍 한마디 던졌다.

“흐흐. 그건 안 되죠, 선배님. 일단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 사람이! 아직 장기는 끝나지 않았어.”

화가 난 태오자가 장기판에 눈을 박은 채 끙끙거렸다. 하나, 이미 판의 형국은 돌려세울 수가 없었다.

‘젠장, 한 번도 못 이기다니. 엥이!’

속으로 두덜거리던 태오자의 귀가 토끼처럼 쫑긋해졌다. 밖에서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것이다. 무엇이 급한지 달려오는 소리가 다급했다.

‘흠, 빨리 와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장기는 무승부로 만들 수 있겠다! 흐흐.’

태오자가 희미하게 웃고 있을 때, 귀걸개의 말소리가 들렸다.

“허어! 장기꾼 어디 갔나?”

그때였다.

와당탕!

원로원의 대문이 벌컥 열리고 개방의 거지가 미친 듯이 달려 들어왔다.

“바, 방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흥미진진하게 장기판을 보며 태오자를 놀리던 귀걸개의 눈이 커졌다. 지금 달려온 사람은 개방의 전도유망한 후개로 (제완완이 하인의 여자가 된 다음 후개의 지위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방랑개 운칠이었다.

“사람들이… 헉헉! 사람들이 모두 쓰러졌습니다. 도, 독입니다!”

“뭐라고?”

그 소리에 제일 먼저 일어선 것은 바로 태오자였다. 그는 일어서면서 슬쩍 장기판을 건드려 장기짝이 와르르 흩어졌다.

“어어, 이런 낭패가!”

양안당이 기가 막힌 눈으로 태오자를 쳐다보았다. 태오자가 일어서면서 슬쩍 건드린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능구렁이 같은 영감태기!’

양안당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도 지금 닥친 일이 얼마나 중대사인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라. 누가 쓰러졌다고?”

귀걸개의 물음에 땀을 뻘뻘 흘리던 후개가 말을 이었다.

“한 시진 전에 밥을 먹은 무인들이 모두 쓰러졌습니다. 음식에 독이 든 것 같습니다. 은명단과 광명단, 그리고 일반 무인들이 전부 당했습니다.”

후개의 말에 원로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양안당이 몸을 날렸다.

“아니, 자네 어딜 가는가?”

“무인들을 봐야겠네.”

귀걸개의 외침에 대답한 양안당이 쏜살처럼 사라졌다.

“독을 썼다면 분명 식수에 사용했을 터. 지금쯤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빨리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아라.”

역시 늙었어도 연한은 속일 수가 없었다. 즉시 침착성을 회복한 태오자의 말에 종남의 원로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너는 즉시 청성의 제자들을 모아라. 어서!”

“옛, 장로님.”

청풍무적검 노적봉의 명에 청성의 제자 역시 달려 나갔다.

그것을 보는 태오자의 노안에 근심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어떻게 주모님들이 천불사에 간 이때에 공격을 한단 말인가?”

“태오자 님, 혹시 주모님들도 공격받지 않았을까요?”

그때야 깜짝 놀란 귀걸개의 말에 태오자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마 공격했겠지. 하지만 주모님들을 공격한 자들은 지옥을 봤을 거야. 자네도 알잖은가? 그분들을 공격하려면 초절정의 고수 수백 명이 있어야 돼. 그러고도 힘들걸?”

“하긴!”

귀걸개가 머리를 끄덕였다.

하인이 보내준 신안천수를 먹은 후, 그녀들의 무공은 이제 은정련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런 주모들 8명을 잡으려면 웬만한 고수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외부에서는 모르고 있지만 은정련의 가장 무서운 고수들은 바로 8명의 주모들이었다.

“그럼 그쪽은 괜찮고 이곳이 문제군요, 태오자 님.”

“그래. 주모님들이 오실 때까지 어떻게든 사람들을 보호해야 해.”

태오자가 말하는 새에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화산에서 이곳에 나와 있던 2백 명, 종남의 제자들 2백 명, 청성의 제자들 2백 명이다. 거기에 개방의 거지들 3백 명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너희들은 지금 즉시 쓰러진 무인들을 한곳으로 모아라. 우리의 임무는 그들을 지키는 것이다.”

“명!”

귀걸개의 명에 무인들이 달려 나갔다.

“사람이 너무 적어.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때였다.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은정련을 들썩하게 만들었다.

“은정련을 공격하라! 원한을 갚자!”

“우아아!”

“귀부십방의 권리를 찾자!”

“철마보는 공격하라.”

“으하하! 청룡파도 왔다. 은정련을 박살 내라!”

“묵검부는 들어가라. 놈들을 죽여라.”

기세충천해서 외치는 소리. 창칼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

어느새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태오자의 얼굴 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대문을 통과한 흑도 방파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흑도의 쓰레기들이 쳐들어오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아무리 약에 취해 쓰러졌다고 해도 이곳은 은정련. 구파일방의 4개 문파 무인들이 있고, 정도의 무인들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을 고작 흑도 방파가 쳐들어온다는 것은 저들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황성입니다!”

노적봉이 검을 잡으며 하는 말에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진짜 적은 이곳 어디에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태오자는 즉시 기를 퍼뜨렸다. 사방을 잠식하는 청명한 기운. 선천태을기공(先天太乙氣功)의 청아한 기운이 사방을 휘몰아쳤다.

‘기감에 잡히지 않는다!’

태오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의 기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놈들이 자신보다 강하거나, 아니면 은신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피식 웃었다.

‘은목전왕에게 받은 호위 무사의 임무를 톡톡히 하게 됐군!’

결심을 다진 그가 전음을 보냈다.

-이 주변에 이번 사건의 원흉들이 있어. 한데 기감을 잡을 수 없구먼.

-그럼 놈들이 선배님보다 강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노적봉의 말에 태오자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수도 있고, 은신술이 뛰어날 수도 있고. 일단 저 쓰레기들을 치우세. 놈들이 죽기 시작하면 더 이상 숨어 있지는 못할 터.

태오자의 말에 노적봉과 귀걸개, 종남의 원로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일단 저 흑도 방파를 처리하면 놈들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군요. 그럼 한판 합시다.

-가세.

핑핑핑핑.

하늘을 수놓으며 태오자와 노적봉, 귀걸개가 쏘아지고, 종남의 원로 30명이 날아갔다. 마치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사람들. 기세등등해서 은정련으로 쳐들어오던 귀부십방의 방도들이 주춤했다.

“종남파다!”

“개방!”

“청성파다!”

아무리 인원이 적다고 해도 구파일방을 우습게 보는 자들은 없었다. 더구나 뒷골목을 쥐락펴락한다고 해도 구파일방의 무인들에 대한 공포가 흑도 방파에는 뿌리 깊었다.

“클클클. 알아보는구나. 내가 종남의 살아 있는 귀신인 태오자란다. 들어보았느냐?”

“태, 태오자!”

“맙소사!”

귀부십방의 무사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젊었을 때 태오자는 섬서에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도 악명 쪽으로!

40년 전, 섬서의 함양현에 하나의 흑도 문파가 생겨났었다.

궁도부(弓刀府).

그들은 도와 활을 쓰는 사람들로,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생겨난 지 불과 1년 만에 섬서의 뒷골목을 대부분 장악했고, 섬서 흑도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러던 그들이 철퇴를 맞은 것은 종남의 제자를 건드리면서부터였다. 당시 함양현에 집이 있던 종남의 제자가 집에 와보니 부모들이 궁도부의 사람들에게 매를 맞아 죽어가고 있었고, 18살이던 제자의 누이동생이 궁도부에 끌려갔다. 궁도부의 부주가 여동생의 미모를 탐해 벌어진 사건이었다.

분노로 몸을 떨며 달려갔던 종남의 제자는 무리로 달려드는 궁도부의 무인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 당하고 거리에 내쫓겼다.

‘감히 궁도부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우린 구파일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종남의 제자를 거리에 내던진 궁도부주의 일갈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태오자가 나타났다.

5척 단구의 그가 궁도부의 대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코웃음을 쳤다.

‘종남에 사람이 없군. 겨우 내 거시기만 한 자를 보내다니. 크크크.’

그 말을 한 탓에 그자는 거시기가 뽑혀 죽었다.

그날 태오자가 나간 다음 궁도부에 가본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마당 가득 널려 있는 찢겨진 시체들. 그들의 입에는 예외 없이 자신의 거시기가 물려 있었다. 그리고 궁도부의 마당 가운데 뽑힌 부주의 머리가 장대에 꽂혀 있었다.

‘종남의 제자를 건드리는 자, 나 태오자의 방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태오자는 섬서에서 죽음의 대명사로 불렸다. 한데, 이제는 늙어서 죽은 줄 알았던 그 죽음의 사신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나를 아는 자들이 있군. 그럼 잘 알 터. 여기서 물러가라. 그럼 너희들은 살 수 있어.”

비칠비칠.

귀부십방의 방도들이 물러서려고 할 때였다. 광혈부 과잔양은 순간 머리를 번쩍 들었다.

-공격하라!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가 나서겠다!

그것은 하늘에서 들리는 구세주의 음성이었다.

“이 새끼들아! 우리에겐 고수들이 있다. 잊었느냐, 그분들을? 공격하라! 저놈들은 겨우 몇 명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장안은 우리 것이다.”

과잔양이 도끼를 추켜들며 기세 좋게 외쳤지만 부하들은 우물거리고 있었다. 죽으면 모든 게 끝. 흑도의 밑바닥에서 굴러먹은 뒷골목 인생들은 그렇게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들이 우물거리자 과잔양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나가! 안 나가? 그럼 죽어라!”

그가 도끼를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태오자의 손이 허공을 잡고 잡아당겼다.

“으헛!”

과잔양이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허공을 휭 날아 태오자의 손에 멱살이 잡혔다. 가공할 허공섭물! 질겁한 흑도 무인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놈아, 내가 말했지? 여기서 물러가면 살 수 있다고. 그런데 넌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우두둑.

태오자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과잔양의 목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과잔양이 발버둥 쳤다.

“나, 난 살고 싶… 캑!”

“살고 싶어? 하지만 너의 주인들은 네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구나. 불쌍한 것. 하지만 걱정 마라. 아프지 않게 죽여주마.”

친근하게 말한 태오자가 가차 없이 목을 꺾었다.

뿌드득.

“컥!”

과잔양의 목이 부러지고 혀가 한 자나 흘러나왔다.

털썩.

과잔양을 집어 던진 태오자가 공간을 쏘아보았다.

“이젠 그만 나오는 게 어떻겠나? 내가 손을 써야겠는가?”

그러자 흑도 무인들은 뒤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어디에도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담장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헉!”

“사람이 담장으로 변해 있다니!”

흑도 무인들에게는 상상외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입을 다물고 몸을 떨었다. 흑의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음습한 기운. 몸을 부르르 떨리게 하는 지독한 마기.

태오자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중얼거렸다.

“엄청난 마기로군!”

“역시 태오자구려. 우리를 알아보다니.”

태오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기를 그렇게 풍기니 어찌 몰라보겠는가? 그나저나 그대들은 마령곡의 인물들 같군.”

태오자의 말에 단절천은 흠칫 놀랐다.

놈의 얼굴을 무심한 척 바라보고 있던 태오자의 얼굴 근육이 굳어졌다.

-이것들은 무황이 보낸 자들이야. 싹 쓸어버려야겠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노적봉과 양안당, 귀걸개와 원로들이 무기를 잡았다. 그들이 보기에 놈들은 우두머리만 강할 뿐 나머지는 초절정의 고수들. 한번 해볼 만했다.

“흠. 어떻소, 태오자 선배? 우리에게 항복하면 우리도 손을 쓰고 싶지 않소.”

“클클클. 나 태오자에게 항복이라? 자네의 능력으로 그게 가능할까?”

태오자가 클클거리며 대꾸하자 단절천은 히죽이 웃었다.

“나 하나만으로는 힘들겠지만 천강시는 태오자 당신이 상대하기 힘들 테니까.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항복하시오. 난 마음이 무척 넓다오. 천강시는 저들을 공격하라!”

그가 뒤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담장 밖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나타나더니 맹렬하게 날아들었다.

그것을 본 태오자의 눈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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