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232)

진가장

***

“그래. 그래. 호충이 너는 우리 호성이가 소가주 자리를 차지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야.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호성이와 호란이는 네게 잘 해줬지 않느냐.”

“······.”

셋째 호성은 그간 하루가 멀다고 호충을 괴롭혀왔다. 특히 이번 습격에 가장 의심스러운 용의자는 셋째 작은 어미의 딸인 호란이다. 진호란은 호충이 피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짐승의 피로 호충을 놀라게 하곤 했었다.

‘이번 습격도 마찬가지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피를 보게 만들려는 의도였어.’

조금의 피만 봐도 공황 상태에 빠지는 자신을 잘 아는 호란이라면 습격을 통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물론 호란의 머리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 용의선상에서 제외해야 할 테지만, 지금까지는 유력 용의자 중의 하나였다.

“무척···. 잘 해주셨죠.”

‘나 또한 앞으로 녀석들에게 자알 해줄 생각이든.’

당장은 아니라도 꼭 복수해야할 녀석들이다.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라. 네가 관직에 나가 진가장과 호성이를 돕는다면 네가 섭섭지 않게 해주마.”

셋째 어미는 아들 호성이 소가주라도 된 듯이 말하지만,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다.

첫째 어미의 소생인 호현 형님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재였고, 둘째 어미의 소생인 호중은 머리가 비상했다. 그리고 둘 다 진가장 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뒷배를 두고 있었다. 마지막인 셋째 어미의 소생 호성이 소가주가 될 확률은 희박했다.

“물론입니다. 작은 마님. 미약하지만 호성 형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보겠습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을 터이니 어서 가보아라. 송 영감에게 은전을 보탤 터이니 보약이라도 지어 먹으면 되겠다.”

“감사합니다! 작은 마님.”

다른 건 몰라도 금력에 있어서만큼은 가주의 셋째 아내가 최고였다.

‘호성이와 호란이는 조금 덜 때리겠소. 크흐흐.’

***

진씨 세가는 무림에 떠오르는 신흥 가문 중에 하나였다. 강력한 무림 세가들이 무림에 커다란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지만, 진가장과 같은 신흥 세가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기존의 무림 세가는 황보, 남궁, 제갈, 당문, 모용, 서문, 사마 등이 있었고 신흥 무림 세가로는 진가장과 악가장, 종가장의 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진가장의 경우 기존 무림의 무공 수준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는 절학을 보유하고 있었고, 많은 상회를 운영해 금력 또한 출중했다.

거기다 진가장주의 첫째 아내는 모용세가 출신이었고, 둘째 아내는 서문세가 출신이었으며 셋째 아내는 중원에서 알아주는 중부전장의 금지옥엽이었다.

진가장은 가주의 혼맥을 통해 무력과 금력을 고루 갖추게 된 것이다.

‘그래봤자···.’

진씨 세가가 아무리 성장해도 전통의 세가를 넘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무림엔 세가뿐이 아니라 전통의 무림 방파들이 즐비했다. 소림, 화산, 무당이 불가와 도가를 대표하는 무림 방파였고 각 지역의 대표 문파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중원에 떨치고 있었다. 거기서 진씨 세가의 이름을 찾자면 한참이나 들여다봐야 했다.

‘어차피 무공이라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면서···.’

진호충이 거기서 거기라고 한 이유는 진가장의 세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무협 소설에서 봤던 만큼 대단한 무공은 현실에서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 속에 존재하는 중원 무림의 무공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현실에서 프로 격투기 선수들에게 발리던 모습 그대로의 어설픈 무공이 득세하는 중이었다. 본래의 진호충이 본 무림의 일이라는 것이 진가장에 한정되어 있어 확실치는 않으나, 지금까지의 기억으로 보면 상승 무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싶었다.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중원 무림이 본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백 년 전에 황제는 무림 사화를 일으켰고, 영원할 것 같았던 황제의 치세는 이백 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후 삼백 년 전 다시 중원을 통일한 황제에 의해 지금까지 나라가 이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중원의 무림은 오백 년 전과 그 후로 나뉘는데, 오백 년 전에는 진정한 무공이 세상에 많았다고 전해진다. 무림인들은 풀잎을 밟고 도약했고, 물 위를 뛰어다녔으며 눈 위를 걸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빼어난 무인의 경우 허공에서 발걸음을 옮길 수도 있었다고 했다.

‘거기까진 허풍이겠지. 지가 무슨 슈퍼맨이야?’

중원인들 고유의 과장과 허풍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것이니 다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때리던 호성의 무공 수준을 생각하면 그래도 무공이 있고 없음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호성을 떠올리자 무기력하게 맞기만 하던 과거가 떠올랐다. 자신의 본래 성격과는 너무도 다른 기억이다. 호충은 맞은 것의 두 배는 더 때려줘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었다.

무림인들은 무(武)로써 협(俠)과 의(義)를 행한다고 하지만, 호충은 의협심이 아니라 복수와 돈 그리고 생존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생존에 더해 주도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목표까지 더해졌다.

“내 무기부터 찾아야겠군.”

녀석과는 무공의 고하가 있지만, 무기로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순이야. 밖에 있느냐.”

“예. 도련님.”

순이라고 불린 여동이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시전에 나갈 것이다. 채비하여라.”

“···하, 하지만.”

분명 송 영감이 시전에 나가지 못하도록 사전에 여동을 교육했을 것이다. 호충 마음대로 했다간 순이가 크게 혼날 것이다. 여동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송 영감을 불러와. 내가 얘기하지.”

“예. 도련님.”

.

.

.

“······.”

호충의 방에 들어온 송 영감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송 영감.”

“안 됩니다. 아직 흉수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잡을 생각도 없을 걸? 지금까지 진가장에서 뭘 했는데?”

“···그러니 더욱 조심하셔야지요.”

“서책을 사야 해.”

“필요한 서책은 제가 사 오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럼 계속 방구석에만 있으라고? 언제까지?”

“최소한 몸이 나으실 때까지라도 밖에 나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몸은 다 나았어. 셋째 어머님이 주신 금전으로 보약까지 해 먹고 있잖아.”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흉수에 의한 상처는 피륙의 상처에 불과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그마저도 얼마 후엔 흉터로만 남을 것이다.

“···꼭 가셔야겠습니까.”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 나도 내 몸을 보호할 무기는 필요하잖아.”

“!”

피를 보는 것이 두려워 날카로운 것은 눈길도 주지 않았던 막내 공자였다.

“그것만 사 오면 끝이야.”

“도련님이 사용하실 날붙이는 진가장 무기고에도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진가장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알게 되잖아.”

“물론 그렇겠지요.”

“내가 나를 보호할 무기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해.”

“······.”

송 영감도 이번 습격이 외부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흉수가 막내 공자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피를 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려 했다면 성공했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자신과 대면하지도 못할 터였다. 흉수는 막내 공자가 피를 두려워한다는 점을 잘 아는 사람에게 사주를 받아 이번 일을 실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주한 사람은 외부의 인물이 아니라 내부의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막내 공자가 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송 영감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혹을 털어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주한 자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호충은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진가장이 관리하는 중요 상회를 돌아다니기 일쑤인 첫째 진호현은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일이 벌어졌던 시점에 외가에 갔던 둘째 진호중도 제외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셋째 아들 진호성과 진호란.

둘 중의 하나가 이번 장난(?)의 원흉이다.

“일전에도 송 영감이 곁에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야. 송 영감이 옆에 없어도 죽지는 말아야지.”

“···어쩔 수 없군요.”

“남은 은자가 얼마나 있지?”

“셋째 마님이 주신 은자의 절반은 남았습니다.”

우선 돈 걱정은 덜었다.

‘이놈에 집구석은 돈도 많으면서···.’

진가장에 돈이 많아도 자신이 사용할 돈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충이 그동안 사용해온 돈은 진가장 총관이 배정하고 있었고, 용처를 모두 밝혀야 했다. 그마저도 소소한 금액이었기에 무기류를 사기엔 부족했다.

그나마 셋째 어미의 손이 커서 다행이었다.

‘네 수중에서 나온 돈이 네 아들을 해칠 것이다.’

셋째 어미가 준 돈으로 무기를 살 것이고, 그 무기는 그녀의 자식들을 향해 겨눠질 것이다.

“뭐해? 어서 일어나. 시전으로 가야지.”

“···채비하겠습니다.”

호충은 커다란 전각이 즐비한 진가장을 가로질렀다.

진가장은 가히 왕성과 비교할만한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넓은 부지는 높은 전각으로 가득했다. 호충이 뒤를 돌아보자 가장 허름한 전각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거주하는 곳이다. 진가장 내에서 호충이 갖는 위치를 보여주는 거주지였다.

‘내가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나.’

솔직히 호충은 이 집에 있는 사람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지 않은가.

같은 이름의 어린 녀석 몸에 들어와 있을 뿐이다. 녀석의 기억은 남아있었지만,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기반을 잡을 때까지 만이다. 그때까지만 참자.’

미련 없이 떠날 수도 있지만, 아직 자신은 어린 나이였다. 여기서야 열여섯의 나이면 성인으로 치부하지만, 성인이고 뭐고 우선 경제력을 갖춰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나가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돈 많은 집구석이니 뭐라도 챙겨서 나갈 생각이다.

‘한 몫 단단히 챙겨서 떠나야지.’

어려서 가족을 잃고 고아로 살았던 호충에게 이들을 향한 가족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집구석에서 며칠 살아보니 조금이나마 생기려 했던 가족애도 도망칠 판이다.

‘부모가 부모다워야지 말이야.’

아비라는 가주는 물론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미들과 배다른 형제들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충에게 가족이라는 말도 어색했는데, 그마저도 콩가루 집안이니 정이 갈 리가 없다.

송 영감은 뒤를 돌아보는 호충이 겁이 난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고 짐작했다.

“다시 돌아갈까요? 아직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우실 수 있습니다.”

“풋.”

호충은 잠시 웃음을 흘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남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 골골거리는 송 영감 걱정을 좀 해.”

“남이라니요! 공자님을 남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가족들은 몰라도 송 영감은 자꾸만 마음을 간질였다. 녀석도 가족보다 송 영감에게 더 의지하고 있었음이다.

“먼저 가신 할매도 참 고왔는데···.”

송 영감은 진가장의 종복이 아니라 친모가 데려온 종복이었다. 송 영감이 당시 성혼한 상태였기에 송 영감의 아내와 함께 이 집으로 왔다. 영감의 죽은 아내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마지막 날까지 도련님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알아. 어미 잃은 내게 따스한 품을 내주셨잖아. 지금도 나는 할매가 내 어미 같아.”

언제나 호충을 감싸주고 어미 없는 호충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사람이다. 일찍 어미가 죽고 홀로 남겨진 호충은 송 영감과 그의 아내 손에서 자랐다. 지금까지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두 사람 덕분이었다.

자신의 기억이 아닌 어린 호충의 기억이었지만, 호충은 자신도 이런 사람들과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했다.

‘그래도 영 혼자는 아니라 다행이네.’

할멈은 갔지만, 영감은 곁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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