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32)

배수패

***

“지금도 나는 할매가 내 어미 같아.”

“어휴.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공자님은 진가장의 직계이십니다. 누가 듣습니다.”

“그러니 내가 더 그러는 거야. 앞으로 내 걱정만 하지 말고 송 영감 몸도 좀 챙겨.”

“···다 크셨습니다.”

“내가 한참 전부터 송 영감 보다 컸거든?”

“허허허.”

진가장에서 시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보통 진가장의 자식들이 출동하면 호위무사와 시종들이 따라붙지만, 호충은 송 영감과 둘 뿐이었다. 둘은 도란도란 대화하며 시전으로 걷고 있었다.

시전에 들어와 한 아이가 뛰어와 송 영감을 스쳐지나가기 전까지는 참 분위기가 좋았다.

툭.

호충은 순간 시선에 들어오는 익숙한 손놀림을 발견하고 녀석의 다리를 걸었다.

다리에 걸린 아이가 땅바닥에 대차게 넘어졌고, 호충은 재빨리 뒤에서 아이의 등을 밟았다.

“아악! 사람 살려!”

“영감! 이 녀석 주머니 확인해! 방금 영감 주머니 털렸어!”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는 호충이다. 소매치기도 그 중의 하나였는데, 어설픈 소매치기의 손장난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

송 영감은 얼른 자신의 품을 확인해보고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소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요놈! 감히 진가장의 물건에 손을 대느냐!”

“지, 진가장!”

근방에 진가장을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사람들은 진가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렸다. 진가장의 행사에 끼어들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충의 말대로 아이의 품에서 은전이 들어있는 비단 주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진가장에서 나오신 분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녀석도 진가장의 이름을 듣고서야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충은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등을 밟은 채로 물었다.

“영감. 보통 어떻게 처리해?”

“우선 진가장에 데려가야 하고 이후의 처분은 무사들의 몫이지요.”

가주까지 올라갈 것도 없고 총관까지 확인할 사안도 아니었다.

진가장의 무사 선에서 녀석의 처분이 내려질 것이다. 호충은 녀석의 등에서 발을 떼고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진가장이라는 것을 밝힌 이상 녀석이 도망칠 일은 없었다. 이곳 섬서의 자장(子張)에서 진가장은 곧 법이었고, 진가장의 눈을 피해 달아날 곳은 없었다.

‘자장의 배수라···. 분명 녀석들은 알 것이다.’

“너.”

“예, 예.”

“이름이 뭐냐.”

꾀죄죄한 녀석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말동이라 하옵니다.”

“말똥?”

“···예.”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눈이 어두워 높으신 분을 알지 못하옵니다.”

“······.”

녀석은 진가장의 공자도 알아보지 못하는 초보 배수(扒手)에 불과했다.

“영감. 얘는 우선 데리고 가자.”

“예. 공자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녀석에게 물어볼 일이 생겼지만, 지금은 무기 확보가 우선이었다.

무기를 확보한 다음 녀석이 속한 배수패에 궁금증을 풀 생각이었다.

“따라오너라. 도망칠 생각이거든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히익.”

녀석은 축 늘어진 어깨로 둘의 뒤를 따라왔다. 공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도주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공자님.”

“저 골목에 대장간이 있나?”

“그러하옵니다.”

“···알려지지 않은 대장간은?”

진가장의 눈에서 벗어난 대장간을 찾아야 했다. 기존의 유명한 대장간이라면 진가장의 손길이 뻗어있을 것이다.

송 영감도 호충의 말을 알아들었다.

“···조금 멀리 가시지요.”

“산책도 좋지.”

시전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접어들었다. 멀리서 깡깡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무기를 만드는 대장간은 아니옵고 농기구를 주로 거래하는 대장간이옵니다.”

“진가장과는 거래가 없는 모양이지?”

“예. 농사를 짓는 이들이 주로 찾는 대장간입니다. 진가장의 토지에 소작을 하는 농민들은 사용하겠지요.”

“좋군.”

어차피 자신이 사용할 칼은 주문하여 제작해야 할 것이다.

“계시오.”

송 영감의 부름에도 망치질 소리는 잠시 더 이어졌다.

이후에서야 대장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외다. 철이 굳어버리면 망치질이 먹질 않아서···.”

“괜찮소. 주인이 없어 먼저 둘러봤소.”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소작농에게 주실 농기구라면 대장간 뒤에 더 있습니다.”

대장간에 있는 물건들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기에 찾는 물건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칼을 주문할 수 있습니까?”

“저희 대장간은 무인의 도(刀)와 검(劍)을 만들지 않습니다만···.”

“부엌에서 사용하는 칼 말입니다.”

“아. 그거야 할 수 있지요. 만들어 둔 것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장간에 놓인 칼들은 폭이 넓고 뭉뚝한 형태의 부엌칼이었다.

“생선을 손질할 수 있도록 날카롭고 뾰족해야 합니다.”

“흠. 날이 단단해야겠군요.”

“그렇지요. 칼의 폭이 좁아야 할 테니까요.”

“그래도 칼이 짧다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넉넉하게 네 자루를 주문하리다. 이렇게 만들어주시오.”

호충은 바닥에 대강의 회칼의 형태를 그렸고 대장장이도 눈썰미로 생선을 써는데 딱 좋은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이쿠. 오랜만에 주문이라 저도 입에 풀칠을 하겠습니다.”

호충은 송 영감에게 눈짓을 해서 불러들이고 뒤로 빠졌다.

가격 협상은 송 영감의 몫이었다. 송 영감과 대장간 주인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식당에서 사용하다가 좋으면 여러 식당에 알려주겠소.”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그래서 가격은 얼마나 하오.”

“보통 부엌칼이 십 문정도 하니, 자루 당 십오 문을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십오 문이라···.”

십오 문이라고 해봐야 네 자루에 육십 문에 불과했다. 은자 하나를 주면 사십 문이 남을 가격이었다. 호충은 괜히 송 영감에게 거래를 맡겼다 생각하며 돌아서서 다가왔다.

“영감은 나와 봐. 내가 하지. 주인장. 거 가격이 너무 박하오.”

“아이쿠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봅니다.”

“은자 하나를 드리리다. 물건만 제대로 만들어 주시오.”

“헉!”

옆에선 송 영감은 가만히 호충의 결정을 듣기만 했다.

“대신 어디서도 날 봤다고 하지만 않으면 되오. 아시겠소?”

“···입에 자물쇠를 채우겠습니다.”

“여기 이 사람이 물건을 찾으러 올 터이니 나중에 내주시오.”

“좋은 물건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달포만 기다려주십시오.”

“오래도 걸리는군. 알겠소.”

호충은 송 영감과 대장간을 나섰고 밖에서 기다리던 어린 소매치기가 뒤를 따랐다.

송 영감을 앞세우고 어린 소매치기의 곁에서 걸으며 물었다.

“이름이 말똥이라 했지.”

“예. 말동입니다.”

“너희 패는 시전에 있느냐.”

배수들이 모여 살고 있냐는 물음이었다.

“···그저 없는 것들끼리 모여 사는 정도 입니다. 배가 고파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으나, 오늘이 처음이옵니다요.”

“도둑질이 처음이고 배수패도 아니다?”

“절대로 아닙니다요.”

“의리 지키다가 골로 가는 법이다.”

“······.”

“네 우두머리에게 안내 해라.”

“···사, 살려주십시오. 공자님. 저희 패는 자장(子張)에서 이름도 없는 거지 패에 불과합니다.”

“누가 죽인다고 했느냐. 그저 인사나 하려고 그런다. 너희 패가 내 얼굴을 알아야 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을 것이 아니냐.”

“···정녕 다른 뜻은 없으신지요.”

“큭큭. 내가 너무 온화했나 보구나. 이제 슬슬 기어올라도 되겠다 싶으냐?”

“히익.”

호충은 어린 소매치기를 압박하고 어르며 녀석들의 패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송 영감은 그런 호충이 염려스러웠지만, 진가장이라는 뒷배가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장(子張)에서 이름을 날리는 건달패라고 해도 진가장에는 함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 거지 소굴이로구나.”

호충과 송 영감이 도착한 곳은 시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폐가였다. 얼마나 오래 관리하지 않았는지 벽은 한쪽이 무너졌고, 지붕도 한참 내려앉아 있었다. 딱 거지들이 살기 좋은 모습이었다.

“저희 패가 살기엔 그만입니다. 대형께서 힘들게 마련하셨···.”

말동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말똥이 너 이 새끼! 일 안하고 어딜 쏘다니다가 와!!”

“대, 대형. 그것이 아니라···.”

호충이 옆에 서있었지만, 대형이란 놈은 개의치 않고 말동에게 달려와 발길질을 했다.

퍽.

“아이고고. 대형 진짜로 아닙니다.”

“네가 놀다온 걸 모를 줄 알아? 네가 쏘다니는 걸 본 놈이 몇 인데!”

말을 하면서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 녀석의 귀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난 안 보이냐?”

“뭐?”

녀석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눈에 가득 들어오는 커다란 주먹을 볼 수 있었다.

퍼억!

“꺽.”

녀석은 맞으면서도 팔을 휘둘러 반격하고자 했지만, 반격은 호충의 손에 가볍게 막혔다.

타닥.

그리고 다시 주먹질이 이어졌다.

“사람이 왔으면.”

퍼억.

“아이고. 나 죽네.”

“아는 척은.”

퍼벅.

“어흑.”

“해야지. 새끼야.”

툭툭 가볍게 던지는 손과 발이었는데 고통은 가볍지 않았다.

호충이 실전에서 사용하던 격투기술이 녹아 있기 때문이었다.

“고, 공자님. 대형을 살려주십시오.”

말동이 말리지 않았으면 한참이나 더 이어졌을 주먹질과 발길질이 멈췄다.

“의리 지키다가 골로 간다고 했냐, 안 했냐?”

퍽.

“아고고.”

호충은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말동을 다시 걷어차고 바닥에 쓰러진 대형이라는 놈 앞에 쭈그려 앉았다.

“네 부하들은 의리가 있는데, 너는 의리가 있을까?”

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본 녀석은 호충이 입고 있는 비단 옷을 보고서야 상대가 상당한 집안사람임을 깨달았다.

“···고, 공자님. 어인일로 누추한 곳까지 오셔서···.”

“오늘 말동이가 내 주머니를 털었거든. 그래서 붙잡아 왔어.”

“아···. 저는 모르는 놈입니다.”

“그렇지?”

호충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동에게 말했다.

“말똥아. 이게 정상이야. 불리하면 입을 싹 닦고 모른 척 해야지.”

“저, 정말입니다. 저런 거지새끼는 일면식도 없습니다요.”

“방금까지 말똥이와 살갑게 굴어놓고 이제서 오리발?”

“······.”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호충은 굳은 얼굴을 유지하며 녀석을 압박했다.

“너는 내가 누구로 보이냐?”

“저 같이 천한 것이 지체 높으신 공자님을 어찌···.”

“진가장.”

“!!!”

“지체 높으신 공자님까지는 맞췄으니 나머지를 알려준 거야.”

“진가장의 공자님···.”

“이제 알겠어?”

“사, 살려주십시오.”

진가장이라면 자장(子張)에서 소란을 일으켜도 모두가 편을 들어줄 것이다. 진가장 가주의 핏줄이 배수패와 얽혀서 일이 생기면 누굴 죽여도 탓할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유 없이 사람 잡는 사람은 아니야.”

“인자하신 공자님의 성품에 깊이-”

감사 인사를 다 하기도 전에 호충이 말을 잘라먹었다.

“그런데 네놈들은 죄가 있네? 사람을 잡아도 되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이야.”

“!”

녀석은 호충의 말 몇 마디에 이승과 저승을 오가고 있었다.

“죽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아? 감히 진가장 막내아들의 주머니를 털었으니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겠지?”

“저, 저 놈은 저희와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도대체 몇 번이나 쟤를 배신 하냐? 쟤는 아까 너 맞을 때 내 다리까지 붙들면서 말렸다?”

어느새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쪽으로 보는 말동이다. 말동의 눈은 믿음으로 가득했다.

“······.”

녀석은 모른 척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공자님. 제발···. 제발 저희에게 자비를···.”

바닥에 머리를 박고 비는 녀석을 보니 이제야 대화할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네 놈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녀석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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