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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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수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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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무어냐.”

“소생 옥비연이라 하옵니다.”

“사내새끼 이름치고는 좀 거시기 하다?”

“아비가 없어 모친의 성을 따랐고 어미가 기루에서 일했던 터라···.”

아마도 홍기(紅妓)였을 것이다. 기루에서 손님을 받다보면 원치 않는 회임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음이다. 물론 아이를 지우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을 것이나, 녀석처럼 고난을 이겨내고 태어나는 녀석도 종종 있었다. 녀석의 얼굴이 반반한 것은 친모를 닮아서 그런 모양이다.

“너희 패는 모두 몇이냐.”

“···저를 포함해 모두 여섯입니다.”

“말똥이도 포함해서?”

“···말똥이를 넣으면 일곱입니다.”

“에라이.”

퍽.

“아이구구.”

끝까지 말동을 자기 패에 넣지 않으려는 녀석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발이 먼저 나갔다.

“들어가자. 얘기가 길어질 듯싶으니.”

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향하는 호충의 뒤로 옥비연이 절룩거리며 따랐다.

“송 영감은 밖에 있어.”

“공자님. 험한 자들 이온데···.”

“괜찮아. 내가 진씨 세가의 막내아들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몸은 좀 쓴다고.’

호충은 진가장의 이름이 아니라도 겁나지 않았다. 본인이 더 험하게 살아왔다.

***

밖이 허름한 만큼 내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 주워온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집기들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호충은 개의치 않고 아무거나 끌고 와 엉덩이를 붙였다.

“앉아.”

“옙.”

옥비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호충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희 패가 시전에서 활동한 것은 얼마나 됐지?”

“···족히 다섯 해는 됐나이다.”

“그럼 얼마 전에 있었던 습격사건도 알겠네?”

“!!”

이것이 호충의 목적이었다.

아무리 이름 없는 배수패라고 해도 뒷골목의 일은 이들이 더 잘 알기 마련이었다. 이들을 통해 자신을 해한 흉수의 꼬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 무슨 말씀이시 온지···.”

“에이. 다 알면서 그러지 말자. 네가 살려면 부는 수밖에 없어.”

“······.”

옥비연은 눈을 굴리며 살아날 궁리를 해봤지만, 눈앞의 진가장 공자에게서 살아날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흉수가 속한 패를 부는 것도 결국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올 일이라 내키지 않았다.

“녀석들의 보복이 걱정인가? 하지만 진가장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내게 칼침을 놓은 놈들은 정체가 밝혀지는 즉시 녀석들은 진가장 무사들과 대면해야 할 거야.”

“······.”

진가장 내에서는 무시 받지만, 밖에선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든 지체 높은 위치였다.

“이후 녀석들은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마주할 것이다. 녀석들을 이승에서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아니면 너도 녀석들 곁에 서서 염라대왕을 마주하고 싶으냐? 아니지, 네가 말하지 않아도 녀석들은 결국 잡힐 테니, 네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구나.”

호충의 협박이 녀석에게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한참 고민하던 녀석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전에 자리한 흑패가 하나 있사옵니다. 돈이면 뭐든 하는데, 당시 저희 패 중에 하나가 녀석을 봤습니다. 손을 감췄지만 소매에 피를 묻히고 흑패의 본거지로 뛰어갔다고 합니다.”

“큭. 이렇게 쉽게 나오는 걸 왜 지금까지 못 잡았을까.”

아예 잡을 생각이 없었으니 이리 되었을 것이다.

“하오나···.”

“뭔데?”

“전부터 흑패의 뒤를 봐주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

진가장의 영역에서 뒷배를 자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진가장과 비등하거나 더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진가장의 공자인 자신 앞에서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존재는 자신의 윗선과 무림 방파를 떠올리게 했다.

“진가장의 둘째 공자님께서···.”

“!”

무림방파가 아니라 자신의 윗선이었다.

진가장의 둘째인 호중이 바로 칼침을 사주한 원흉이었다.

“···괜히 다른 놈들을 의심했어.”

호성과 호란을 의심했는데, 흉수를 사주한 놈은 둘째 어미의 자식인 호중이었다.

‘녀석은 자신이 외가에 가서 자리를 비운 틈에 나를 정리하려 한 거야.’

의심을 피하기에 좋은 기회가 아니던가. 자신이 피를 두려워한다는 정보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자신이 아닌 다른 형제가 용의 선상에 오르리라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호란에게 뒤집어씌울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을지도···.’

호충의 추측이 이어지기 전에 옥비연의 입이 계속 열렸다.

“다만 흑패와 둘째 공자님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사옵니다. 가끔 더러운 일을 맡기는 정도라고 하옵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어.”

호성과 호란이 자신을 괴롭히긴 했지만, 죽일 정도로 미워하진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길에 약한 존재가 눈에 보이니 가끔 밟아주며 자신의 우월함을 즐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둘째 호중은 변수를 두고 볼 놈이 아니었다. 진가장 내에 세력도 없고 무공도 보잘 것 없지만, 학문을 통해 관직에 나아가려 하고 있으니 향후 자신이 하는 일에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고 판단했으리라.

‘녀석은 의심과 시기심이 극에 달한 놈이지.’

진가장에서 무시당하는 호충이 관인(官人)이 되어 나타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

호충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옥비연을 다시 노려봤다.

“너. 배수 말고 다른 일은 할 줄 아느냐?”

“뒷바닥의 일은 잘 압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기루에 빌붙어 살았기에 기루 돌아가는 것도 조금 압니다. 주먹도 조금 쓰고요···.”

삼류에 겨우 발을 걸쳤지만, 옥비연도 무인은 무인이었다. 기루에서 돈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손놈 품에서 나온 비급을 죽도록 익혀 이룬 결과였다. 비급이라고 해봐야 정말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익힌 것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오늘 호되게 당하며 자신의 수준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는 실전을 쌓아온 상대와의 차이일 뿐이었다.

“나쁘지 않아.”

녀석이 흑패를 이용하면서도 경원시한 것은 진가장이라는 번듯한 기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없었다. 건달패는 자신이 기반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다. 본래 자신이 하던 일이니 시전의 뒷골목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살아갈 생각이었다.

무림의 방파도 어차피 뒷골목과 다르지 않은 폭력집단이 아니던가. 무슨 옷을 입었는가의 차이일 뿐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뒷골목을 전전하면 흑패이고, 비단 옷을 입고 높은 전각에 들어가면 무림 방파인 것이다. 겉이 아니는 본질을 들여다보면 둘은 같은 폭력집단이었다.

둘은 상회에 보호세를 거두고, 폭력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이며, 힘의 우열에 따라 상하를 나누고 있었다. 무력이 곧 법이라는 것은 무림과 흑패에 모두 통용되는 말이었다.

“너는 자리를 옮기지 말고 여기서 평소와 같이 지내라. 조만간 내가 다시 찾아올 터이니 너희 패의 수를 늘리는 것도 좋겠다.”

“···저희를 거두려 하십니까.”

“왜. 싫으냐?”

“···쉬이 버리실 생각이시라면 거두지 않으시는 편이 낫습니다.”

“아직 거두지도 않았는데, 버려질 걱정부터 하는구나. 네가 살아온 길이 그러하니 그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말동을 모른다고 했던 것처럼 자신도 진가장의 공자에게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부처 눈에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 돼지가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큭.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나도 네놈 부류다. 내게 불리하면 너희를 내칠 것이다.”

“으···.”

끝까지 지켜준다고 해도 넘어갈지 말지 생각해야 할 판에 버린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이익이 된다면 끝까지 챙긴다. 너희하기 나름이지.”

“······.”

다만 거둔다는 공자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비연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최소한 자신들에게 거짓을 말하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시전의 흑패를 어찌할지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할 일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셈이야. 그저 너는 너대로 살아가면 된다. 선택은 그때 다시하면 될 일.”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쉬운 대답이 그리 어렵더냐? 큭큭.”

호충의 발에 옥비연은 발끈하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일이 잘못되어도 공자님은 그저 한순간의 치기어린 추억으로 남기실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허나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

“제가 공자님을 따르면 저를 믿고 따르는 의동생들의 목숨까지 모조리 도박판에 걸리는 셈입니다. 저 하나면 모르겠으나, 저를 따르는 식솔이 있어 두려울 뿐입니다.”

“말동을 모른다고 한 일도 같은 이유렸다.”

“···그러하옵니다.”

말동이 하나를 버리고 다른 동생들을 살린다는 선택지였던 모양이다.

“너의 행동은 합리였구나. 주먹도 쓸 줄 알고 머리도 쓸 줄 아는 놈이라면 더욱 쓸모가 많지.”

“공자께서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이옵니다.”

“흑패가 주로 머무는 곳이나 일러 주거라. 나중에 내가 찾아가 확인할 것이다. 흑패와 진가장에 너희 얘기는 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 말거라.”

“···예. 공자님.”

이후 옥비연의 입에서 흑패의 주 활동 영역과 패거리가 주로 가는 장소들이 술술 나왔고, 볼일을 다 본 호충은 개운한 얼굴로 허름한 가옥의 방문을 나섰다.

“이제야 나오십니까.”

송 영감은 근심어린 얼굴로 기다리다가 호충이 무사히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보였다.

“영감. 은자 절반만 꺼내봐.”

“···예.”

본래 무기에 쓰려고 했던 은자보다 저렴하게 무기를 사게 되었기에 남은 돈은 어디에 써도 좋았다. 호충은 송 영감에게 받은 은자를 뒤 따르던 옥비연의 손에 쥐어줬다.

“애들 챙겨. 동생들 밥 좀 먹이고.”

“···공자님.”

“나도 집안 천덕꾸러기라 여유가 많지 않아. 네가 여기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처럼 나도 곧 그리 될 거라는 뜻이야. 너희가 어린 날의 추억으로 남는 일은 없어.”

“······.”

“또 보자. 비연.”

“···예. 공자님.”

호충은 송 영감과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나올 때는 어린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은 걱정으로 한 가득이었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장성한 도련님을 본 것으로 인해 마음이 든든했다.

‘이제 저 없이도 사시겠습니다. 그려.’

“영감.”

“예. 도련님.”

“앞으로 나도 무공을 좀 익힐까 해.”

“···이미 익히시지 않았습니까.”

진가장의 가전 무공이 허락된 자손이기에 일부를 익히긴 했다.

“가르쳐줄 스승도 없이 혼자서 책만 읽고 아는 무공이잖아.”

문제는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책만 보고 배웠다는 데 있었다. 다른 자식들은 고수급 무사의 지도아래 착실하게 무공을 익혔지만, 호충은 어깨너머로 보고 책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호충이 필사적으로 익힌 것은 무(武)가 아니라 문(文)이었다. 애초에 마음이 없었으니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다.

“지도 무사를 데려와야겠군요.”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딨어?”

진가장에 소속된 무사를 쓰더라도 공짜는 아니다. 예의상 교습비 정도는 챙겨줘야 하는 법이었다. 아직 셋째 어미에 받은 돈이 남아 있지만, 여기에 쓸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내가 부탁하는 것만 가져다 줘. 그 정도는 진가장에서 내주겠지.”

“또 혼자 배우시려고요?”

“전과 같진 않을 거야.”

진가장의 가전 무공보다 우선 자신이 배웠던 무술을 몸에 익혀야 했다. 이는 훈련을 도와줄 무사가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도련님이 마음을 단단히 먹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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