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232)

작은 복수

***

“그런데 방에 똥 냄새가···. 방귀 뀌셨습니까? 어휴. 지독하네. 차라리 똥을 싸시는 편이 좋지 않을지···.”

“그런 거 아니야!!”

장위는 버럭 소리 지르는 옥비연을 보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형.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너는 알 것 없다.”

“아까 공자님과 가신 일이 잘 안되셨습니까?”

“우리 패는 오늘부로 흑패와 하나가 되었다.”

“흐, 흑패!”

“흑패는···.”

비연은 진 공자님이 흑패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했던 것이 떠올랐다.

“흑패는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 번권 대협이 흑패의 주인이며, 나는 번권 대협의 명를 받아 흑패의 도박장을 맡게 되었다.”

“대, 대형!! 감축 드립니다!”

“흠흠.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동생들을 도박장에서 일하게 해준다 하셨으니 너는 우선 밖에서 애들을 모아서 집을 지키고 있어라. 진 공자님이 보이면 얼른 모셔오고.”

“예! 대형.”

그날 배수패는 제일 큰 방을 차지한 옥비연으로 인해서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해야 했다. 밤이 늦도록 호충이 오지 않은 것이다.

***

옥비연이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것을 모르는 호충은 책 한권을 품에 넣고 진가장 문을 지나 자신의 거처로 걷고 있었다.

흑패는 어제 깔끔하게 접수했고, 금원보와 값나가는 재물은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화용루 술은 향긋했고 루주 화진은······.

“고것이 자꾸 생각나네. 흐흐흐.”

어제부터 하나 같이 좋은 일만 가득했기에 호충의 입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 다가와 뒤통수를 치는 그 순간까지 방심한 것이다.

따악!

“컥.”

호충은 얼른 몸을 숙이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품으로 손을 가져갔다. 회칼을 꺼내기 위함이었지만, 고개를 돌려 확인한 상대는 함부로 무기를 보일 상대가 아니었다.

“너 이 새끼.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녀? 통 얼굴보기 힘들다?”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다.

“···어. 호성이?”

최근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험악한 표정에 곰보가 가득 핀 얼굴이었다.

“호성이? 누가 함부로 형님 이름을 부르라고 가르치던?”

녀석은 거리낌 없이 다시 손을 올렸고, 호충을 향해 뻗어왔다.

“애미 없는 새끼라 이거냐? 오늘은 형님의 예절 교육이나 받아라.”

‘너 잘 걸렸다.’

안 그래도 어떻게 보복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알아서 찾아와주니 고마울 뿐이다.

정직하게 안면으로 날아오는 주먹이라 고개를 슬쩍 비트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었다. 녀석의 품으로 슬쩍 걸음을 내딛어 녀석의 발을 밟은 호충은 녀석의 가슴팍을 쑤욱 밀었다.

“어이쿠야.”

“어어.”

녀석은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다가 뒤로 넘어갔다.

“공자님!”

녀석은 무사들까지 대동하고 있었기에 근처에 있던 무사가 얼른 달려와 부축했다.

“이거 놔! 실수로 넘어진 거야!”

자신을 일으키는 무사를 오히려 밀어서 넘어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녀석이다.

호충은 녀석이 하는 짓을 보자마자 알았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이기적인 녀석.’

저런 부류의 녀석들은 숱하게 많이 봤다. 자신이 상대하던 많은 의뢰인들이 이와 같은 부류였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들은 작은 원한도 잊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며 두고두고 복수를 다짐하는 성격이다.

“너 이 새끼. 감히 날 밀어?”

“아휴.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바닥에 돌부리가 있었는지···. 제가 글월이나 알지 무공은 전혀 모르지 않습니까.”

“이리와! 내가 오늘 너를 제대로 교육해주마.”

“지도요? 그럼 형님이 검을 가르쳐주십니까?”

겁먹을 줄 알았던 호충이 검을 가르쳐 주냐고 물으니 호성은 입에 호선을 그렸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옳거니. 무공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혼쭐을 내줘야겠구나.’

“검은 다칠 수 있으니 우선 체술을 일러주마.”

“이야.”

호충은 기대된다는 눈빛을 보이며 탄성을 질렀다. 그 기대는 대련으로 뭔가를 배운다는 기대가 아니었다.

‘이야. 어쩜 이렇게 끌고 오는 대로 끌려 오냐.’

지도 대련을 핑계로 녀석을 밟아줄 생각이었는데, 말 한마디에 홀랑 넘어왔기 때문이다.

녀석은 허리에 찬 검을 풀어 호위 무사에게 던져주고 목을 풀며 앞으로 나왔다.

우드득.

“내 지도가 과하다고 원망하진 말거라. 아! 중간에 그만두는 것도 불가(不可).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이니라.”

“어휴. 형님. 무공을 모르는 동생이니 손속에 사정을 둬주십시오.”

“동생은 개뿔···.”

녀석은 제 마음대로 지도대련을 시작했다. 녀석이 보법을 밟으며 다가가는데도 호위무사들은 재미있는 구경이라는 듯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오늘은 내가 아닌 너희 공자가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호충은 호성의 보법을 유심히 살피며 뒤로 한걸음씩 물러섰다.

파박.

정직한 호성의 주먹이 날아오면 손등과 팔을 이용해 밖으로 내쳤고, 앓는 소리를 하며 물러서는 중이다.

“아야야. 아픕니다. 형님. 살살해주세요. 아야!”

머리를 보호한답시고 웅크린 호충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는 녀석은 큰 한 방을 준비했다.

“이것도 받아봐라!”

허리를 잔뜩 숙인 호충의 얼굴을 때리기 위해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주먹이다.

“히익!”

호충은 얼른 허리를 펴고 주먹을 피한다음 호성을 껴 앉을 듯이 다가갔다.

그리고 아래로 미끄러지며 팔꿈치로 녀석의 갈빗대를 쓸고 지나갔다.

드드드득.

호충은 다시 웅크린 자세로 뒤로 물러섰지만, 호성은 갈빗대에서 전해지는 쩌릿한 고통에 몸을 굳히고 있었다.

“······.”

녀석은 입은 쩍 벌리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비명 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프다는 소리는 호충의 입에서 나왔다.

“아야야. 아파죽겠습니다.”

“흐흡.”

“역시 호성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저는 형님 주먹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직···. 멀었다.”

호충의 엄살에 녀석은 겨우겨우 고통을 참아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래. 기운 내라. 나도 아직 멀었다.’

지금까지 이 몸이 받은 고통을 돌려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니던가.

녀석이 그만 둔다고 말하기 전에 얼른 더 많은 고통을 줘야 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실수들이 이어졌고, 웃으며 대련을 지켜보던 무사들의 얼굴은 점점 썩어 들어갔다.

“···공자님이 아무래도 수련을 너무 쉬신 모양인데?”

“그러게. 몸이 굼떠. 권각을 저렇게 쓰면 어린애도 맞아주지 않을 거야.”

갈빗대를 쓸린 다음부터 몸이 굳기 시작한 호성은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호충의 팔에 허벅다리를 맞으며 기동력까지 잃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실수(?)로 몸에 유효타를 허락한 다음부터는 처음과 같은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호충의 입 때문이다.

“형님이 저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니 저도 기운 내겠습니다. 아자!”

호충은 일부러 몇 대 맞아주기까지 했다. 호충은 주먹에 맞아 바닥을 뒹굴었지만, 힘이 빠진 호성의 주먹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아이고고. 나 죽네. 형님. 동생 죽습니다. 형님의 강력한 권은 정말 일절이십니다!”

“하하하. 당연하지. 끄응.”

이런 추임세 덕분에 호성은 끝까지 주먹을 내리지 않고 호충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충은 마지막 공격을 먹여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자자!”

호성이 내지른 주먹을 어깨로 받아 넘긴 호충은 자세를 잡고 손끝을 부드럽게 호성의 명치에 가져갔다. 일견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손바닥과 손끝이었다.

‘촌경.’

호충의 발끝에서부터 시작한 힘이 발목과 무릎을 거쳐 허리에 도달했고, 허리에서 몸통을 지나 어깨를 타고 팔꿈치, 손목까지 이어졌다. 그때 호충의 손바닥은 주먹으로 변해 둘 사이에 벌어진 손가락 세 마디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퍼엉.

호성의 가슴팍 장삼이 둥글게 눌리며 권의 힘을 밖으로 드러났고, 호성의 몸은 뒤로 훨훨 날아갔다.

“공자님!”

마침 무사들이 대기하던 곳이라 호성은 기절한 채로 무사들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아뵤~~!”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훔치며 내뱉는 추임세가 경박하게 들렸지만, 당사자는 완벽하게 재현한 촌경에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전에도 무수히 촌경을 연습했지만, 이번처럼 사람을 상대로 완벽하게 재현한 적은 처음이었다.

‘아차차. 나도 걱정하는 척은 해야지.’

호충은 얼른 달려가며 물었다.

“형님! 형님! 괜찮으십니까?”

“끄으응.”

평소 무공으로 단련된 놈이라 그런지 회복이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녀석은 다리가 풀려 주변 무사들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치워! 혼자 설 수 있어! 일부러 맞아 준 거야.”

녀석은 부축하는 무사들을 밀치며 기어코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그럼···. 계속할까요? 형님?”

“···오, 오늘은 그만하지. 다음에 다시 지도대련을 해줄 것이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지금은 발도 떼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대련을 해봤자 방금과 같은 꼴을 다할 것이 뻔했다.

“하아. 다행입니다. 제가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이 오락가락 할 지경이었거든요.”

겉으로는 누가 이기고 졌는지 명확했다.

얼굴에 몇 대를 맞고 바닥에서 구른 호충은 누가 봐도 패배자였다. 호성의 경우 겉보기에 멀쩡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호성의 갈비뼈부근은 퉁퉁 부어있었고, 다리와 명치엔 시커멓게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도 옷 속의 타격 부위에서 스멀스멀 고통이 올라오는 중이다.

“형님. 오늘 지도대련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저분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는 호충은 무사들에게 상당한 호감을 줬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무인이 가져야할 자세였다. 자신을 위해 수고해준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선보였던 공격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파괴력을 낼 수 있는지 기이할 지경이었다.

무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공이 아니겠는가.

호충이 무사들의 호감을 얻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뒤에 이어진 말 때문이다.

“무사님들.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공이 높으신 무사님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기운이 났습니다.”

“험험.”

“뭘 그런 걸 갖고 그러십니까.”

“다행이군요. 허허.”

“형님.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호충은 기운이 쭉 빠진 티를 내며 겨우겨우 걸음을 옮겨 거처로 사라졌고, 호성은 호충이 사라진 다음에야 무사들을 닦달했다.

“부축 안 하고 뭐해?!”

“아. 예. 공자님.”

“끄읍.”

마지막에 맞은 권이 결정타였다.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내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가자.”

“예.”

“녀석을 너무 많이 때려서 피곤하구나. 쉬고 싶다.”

“······.”

무사들은 누가 오늘 대련의 승자인지 뻔한 데도 자신이 때렸다고 주장하는 호성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바로잡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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