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32)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

***

외부에서 봤을 때 세가 연합의 협의맹은 무림 방파 연합인 정무맹을 한참이나 뛰어 넘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숨겨둔 저력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황궁의 억압을 받아 상승 무공을 잃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상승 무공을 잃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황궁의 황제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수로 전 중원을 감시할 수 있겠는가. 심산유곡에서 일인 전승으로 이어지는 신비문파가 있다면 이를 어찌 파악 할 수 있을까.

‘가장 경계할 곳은 상승 무공을 숨긴 무림 방파지.’

무림 방파에서 비밀리에 상승 무공을 전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진가장이 섬서에 수많은 상회를 가진 것처럼 무림 방파들은 곳곳에 자신들의 무관을 설립하고 지원한다. 그 사이에 상승 무공을 익힌 제자 하나가 없었을까. 오백 년 전에도 그랬고 삼백 년 전에도 그랬으니,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가정해야 했다. 그들이 상승무공을 숨기고 있다면, 외부에서 보이는 차이는 순식간이 뒤집힐 수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무림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은 무공의 고하였기 때문이다.

“예. 가주님.”

“너의 무공 성취는 어떠하냐.”

진가장에도 숨겨진 상승 무공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무공이 아니라 상회와 표국을 운영하며 입수한 상승 무공이다. 과거 무림의 잔재는 세상 곳곳에 남겨져 있었기에 가끔 상승 무공이 담긴 서책이 무림에 나타나곤 했다. 진가장은 그 중에 하나를 비밀리에 입수해 진가장 전통의 무공인양 익히고 있었다. 지금 이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은 진가장주 진원우와 첫째 진호현이 전부였다. 진원우가 이 무공을 부르는 이름은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이었는데, 가주와 직계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다. 호충이 익히는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 또한 여기서 파생된 무공이었다.

“이제 칠성(七成)에 다다랐나이다.”

“아직 멀었다. 대성(大成)을 이루고 오의(奧義)를 깨달아야 한다.”

“화산에 흔적이 남아있지 않겠지요?”

“화산엔 없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 일이야. 그들에겐 이 검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어.”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의 본래 이름은 화산파(華山派)의 매화검수들이 익히던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이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은 화산파의 정화인 무공이었다. 같은 섬서 땅에 화산파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진호현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화산파는 오백 년 전에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을 실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의 황제가 화산파 전각을 모조리 불사르고 고수들의 씨를 말렸기에 지금 다시 세워진 화산파의 전각과 화산파 무인들은 당시 자질부족으로 직전제자가 되지 못해 도관에 남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갔던 속가제자들이었다. 그마저도 상승 무공을 익혔던 고수급 속가제자들은 황제의 무사들이 몰살시켰기에 어중이떠중이만 남아 있었다. 당연히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과 같은 화산의 정수는 배우지도 못한 속가제자들이다. 그들에게서 이어진 화산파는 상승 무공이 남아있질 않았다.

“검공을 일으키면 자꾸 매화가 피어나려 합니다. 무공이 대성에 다다르면 더욱 표가 날 것이옵니다.”

“···그래서 자장 근처에도 많은 매화를 심지 않았느냐.”

검기를 일으킬 정도의 고수가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을 펼치면 매화가 피어나고 꽃잎이 휘날리며 검기가 발출된다. 화산파에 검식이 전해지지 않아도 과거 자신들의 무공이 어떤 형태였는지는 전해질 것이었다. 화산파가 아니라도 무림에 전해지는 화산 무공의 형태가 바로 그러했기에 누가 봐도 의심할 수 있었다. 진원우는 이를 위해 자장(子張)에 수많은 매화나무를 심었다. 자신들도 매화를 보고 검식을 창안했다고 변명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상승 무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 다른 상승 무공이 나타나면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을 진가장 무사들에게 익히게 하고 우린 다른 무공을 익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고작 두 사람이 익히고 있으니 전통을 주장하기에 부족했다. 하지만 진가장의 무사들 전부가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을 익혀 완숙하게 사용한다면 진가장의 전통 무공이라고 주장해도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화산파(華山派)에 사람을 보내시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이미 세작들을 보내 감시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오라. 화산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잡스러운 무공을 사들이자는 말씀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화산파(華山派)는 우리와 같이 섬서 땅에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종남파(終南派)또한 마찬가지이지요.”

“그들의 무공을 사들이면 우리의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지지 않겠느냐. 우리의 영향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의심은 피할 길이 없다.”

“화산파의 무공을 사들여 진가장의 소유로 하고 화산파의 부족한 금력을 우리가 보완해주면서······.”

“!!”

이어진 진호현의 말은 가주 진원우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금력으로 화산파(華山派)를 진가장의 수족으로 만드는 계획은 진원우가 생각지도 못한 방책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을 익혀 매화가 피어나도 화산파의 무인들은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화산파의 무공을 돈으로 사오는 것으로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은 화산의 잡스러운 무공을 통해 새로이 창안한 것이 될 것이옵니다. 가주님은 무림 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이며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라 주장할 수 있사옵니다.”

“허허허.”

새로운 무공의 창안은 일대종사나 되어야 가능할 일이지만, 기존의 무공을 기반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포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진가장의 가주인 진원우가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을 창안했다는 소문이 돌면 무림에서 그의 위치도 달라질 것이 뻔한 일이다.

“다 좋으나, 황궁이 문제로다.”

상승 무공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면 황궁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어느 날 자다 일어나 황군이 진가장을 둘러싼 모습을 볼 수도 있음이다. 그날로 진가장은 끝장이었다.

“황궁은 모용가에서 무마하겠습니다.”

“모용가에서 무슨 수로 황궁을 움직이겠느냐.”

“모용세가 가주의 손녀인 희가 황태자의 배필로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 합니다. 이미 황태자와 희가 깊은 마음을 주고받았사옵니다.”

모용가엔 최근 큰 경사가 있었다. 올 봄에 산천 유람을 나왔던 태자가 희와 눈이 맞아버린 것이다. 모용가의 금지옥엽인 모용희에게 이렇다 할 결격사유가 없었기에 태자의 부인이 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둘의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황궁에서 외부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기에 이제야 호현의 귀에도 들어온 정보였다.

“허허허! 빙부께서 큰 복을 받으시는 구나.”

진원우의 첫째 아내인 모용소군의 아비인 모용태는 모용가의 가주였다. 또한 오라비인 모용청이 현 모용세가의 소가주였으며, 그의 딸인 모용희는 무림에서 절색으로 알려져 있었다. 모용희가 황태자의 배필로 확정되면 모용세가의 등에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이는 진가장의 진원우에게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희는 고모인 어머니의 청을 황태자에게 전할 것이고, 진가장은 황제의 신뢰를 얻어 공식적으로 상승 무공을 가진 첫 번째 무림세력이 될 것이옵니다. 보령이 어리신 황태자께 마음을 준 희의 말은 절대적이지요.”

“하하하하. 좋구나. 좋아.”

진원우는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머리에 그리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곧 웃음을 멈추고 아들에게 물었다.

“헌데 왜 첫 번째라고 하느냐. 유일한 세력이 되어야 맞지 않느냐?”

“가주께서 무림 방파의 숨겨둔 저력을 경계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무림 방파가 상승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면 두 번째, 세 번째가 나타날 것이옵니다.”

“흐음.”

“이 또한 걱정할 일이 아니옵니다. 우리가 황궁에 상승 무공을 허락 받는다면, 상승 무공을 가진 무림 방파가 우릴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통해서만 상승 무공의 허락이 가능할 테니까···.”

“그렇사옵니다.”

“허나 비등한 세력이 늘어난 다는 것이 달갑지 않구나.”

“어차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첫 번째가 어렵지 다음이 어렵겠사옵니까. 저희를 통하지 않으면 괜히 다른 곳을 통해 허락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우리를 통하여 황궁의 허락을 구하게 하고 진가장은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요. 진가장이 협의맹과 정무맹을 통틀어 첫째 자리로 올라서는 것도 불가능이 아닙니다.”

“진가장이 하늘의 기운을 받고 있구나.”

하나 같이 최상의 상황이었다. 오직 진가장을 통해 상승 무공을 허락받는 상황이 된다면 양대 세력을 통합해 무림 맹주에 올라설 수도 있음이다.

“지금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화산파(華山派)에 사람을 보내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화산파를 장악해 나가겠습니다.”

“협의맹에서 걸고넘어질 일은 없겠지?”

세가 연합인 협의맹에서 정무맹의 하나인 화산파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문제 삼을 수도 있었다. 정무맹의 구성원인 화산파에 진가장이 사람을 보내 연합을 시도한다고 볼 수도 있음이다. 정무맹과 협의맹이 회합을 앞둔 상황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다.

“다른 세가에서는 가문에 영향력이 미미한 손(孫)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제자로 들이는 경우도 많지요. 게다가 저희는 제자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객으로 들이는 일입니다. 다들 하는 일이니 의심 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렇지. 없어도 되는 놈을 보내면 진가장에서 잃을 것이 없지. 가주의 직계라면 작은 끈을 만들어 둘 수도 있을 것이고···.”

남은 것은 누구를 보낼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둘째는 진가장에서 하는 일이 적지 않으니 무리입니다. 남은 것은 셋째입니다.”

“녀석이 가려고 할지 모르겠구나. 특히 중부전장에서 이를 안다면 진가장에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음이다.”

셋째 어미인 방자연은 중부전장의 금지옥엽이었고, 진가장은 중부전장을 통해 자금을 융통해 지금의 거대한 영향력을 갖출 수 있었다. 만약 당장이라도 중부전장이 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서면 모든 사업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셋째 아내인 방자연은 자신의 아들을 화산으로 내친다며 길길이 날뛸 것이다. 진원호는 셋째 아내가 보일 화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호현도 여기까지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마지막 패를 꺼냈다.

“그럼 넷째를 보내는 것은···.”

“넷째는 글월이나 읽는 녀석인데 어찌 화산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 무엇보다 녀석은 무공이 일천하다.”

“진가장의 진신 무공을 무림에 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일에 호란이를 보낼 수는 없지 않겠사옵니까.”

“허어.”

“올해 녀석이 십육 세가 되었으니, 화산의 삼대 제자들과 잘 어울릴 것이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녀석은 가주님의 자식이고 진가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관직에 진출하는 일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차라리 화산으로 보내 활용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식충이로 살아온 녀석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그리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넷째가 가는 편이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화산에서 녀석을 경험하면 우리를 경계하지도 않을 겁니다.”

진원우는 지금까지 옳은 말만 늘어놨던 첫째의 말이라 경시할 수 없었다.

“흠······.”

넷째가 관직에 나가 진가장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관직에 나가기란 실로 요원한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써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좋지 않겠는가.

“네 말이 옳다. 화산에 녀석을 보내 관계를 맺고 너를 통해 화산의 무공을 사들일 것이다.”

“그럼 넷째를 준비시키겠습니다.”

“녀석에게 내린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은 철저하게 숨겨야 할 것이다.”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의 기원이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에 있었고,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은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에서 비롯되었으니 화산에서 무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기우이십니다. 녀석은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습니다. 진가장의 어느 무사도 가르치지 않았지요. 방금 녀석의 무공이 일천하다 하신 것도 가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허헛. 녀석이 무공을 게을리 한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호충이 터럭만큼도 관심 없었던 일이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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