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32)

기마도계제(騎馬到堦除)

***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아냐고!’

백두(白頭)라는 산이 문제였다.

봄에 눈으로 덮인 봉우리를 가진 산이 한둘이던가. 북조선에 있는 백두산은 분명히 아니었다.

‘분명히 아니지.’

거긴 사시사철 백두였고, 그 주변에서 산하를 내려다봐도 족자의 그림과 같은 산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원에 있는 산 중에 하나라는 뜻인데, 중원에는 무수히 많은 높은 산들이 있었다. 거기서도 북동의 역인 남서에 보이는 호혈을 어찌 찾을 것인가.

“에효. 좋다 말았네.”

“뭐가 이상합니까?”

호충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이쪽 근방에 유명한 산이 있냐?”

주변의 산이라도 뒤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악의 하나인 섬서의 서악 화산(華山)이 있고, 산서로 넘어가면 북악 항산(恒山)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화산만 해도 자장에서 천리길이다. 안 그래도 화산파에 가는 것 때문에 급하게 흑패를 정비하고 있었던 터라 괜히 짜증이 일었다.

“야! 거기 말고 봄에 봉우리 눈이 녹지 않는 산으로 주변에서 찾아보라고.”

“아~. 그 족자에 그려진 산에 가려고 그러십니까?”

“······그냥 물어보는 거야. 찾기는 뭘 찾아?”

정말 뭔가를 숨겨놨다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비밀은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아는 즉시 비밀이 아니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자신의 부하가 되었다지만, 이런 비밀은 가족에게도 알릴 일이 아니었다.

“흠. 공자님 말씀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자장(子張) 근처에 있는 산이지 싶기는 한데···. 그 산에서 북동을 보면 딱 그 모습일 것 같습니다.”

“그 산?”

‘어디지?’

호충은 얼른 기억을 더듬었다.

“!!”

그리고 자장에서 보이는 커다란 산을 기억해냈다. 그 산이라면 겨울과 봄에 백두가 될 것이다.

‘자장(子張)에서 보이는 가장 높은 호산(護山). 호산(護山)에서 북동의 반대인 남서쪽이라면···.’

남서쪽은 이곳 진가장 근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족자의 그림도 좀 이상합니다. 눈 덮인 산 정상에 올랐으면 응당 발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습니다. 이 족자는 확실히 가짜 같습니다. 실력 없는 화가가 그린 모양입니다. 공자님 방에 걸어 놓기도 좀 그렇겠습니다.”

“······.”

호충은 사중환의 말에 그림 속 외팔이 주인공이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고 추측했다.

‘못해도 중박이다. 대박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호충은 내일부터 근방의 산의 뒤져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화산에 가기 전에 찾고야 만다.’

“사중환.”

“예. 공자님.”

“내일은 근방의 지도를 마련해 놔라. 자장을 효율적으로 먹을 계획을 세워야겠다.”

보물을 찾기 위함이었지만,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예! 공자님. 대신 조금 늦게 와주십시오. 오늘 거하게 한잔하면 내일 좀···. 헤헤.”

“···가려거든 화용루로 가지 말고 홍루로 가라.”

“헙! 홍루에 가서 먹어도 됩니까?”

이들은 청루보다 홍루가 더 좋았다. 다(?) 주는 기녀들 때문이다. 물론 직접 운영하는 홍루라 기녀들과 붙어먹는 흑패 녀석들도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공짜는 없었다. 예전 흑부가 돈에 민감했기 때문이었다.

“부족하진 않지?”

“물론입니다.”

금자 하나면 충분했다. 금자 하나가 평범한 일꾼 두 사람 분의 월봉이었다.

“편히 먹고 내일 정오 이후에 보자. 지도만 받아서 가겠다.”

“예. 공자님.”

“아! 그리고 밖에서 조직원들이 날 보면 인사하지 말라고 해.”

“네?”

흑패의 우두머리로 올라섰으니 응당 아는 척하며 인사해야 할 것이 아닌가.

“또한 누가 흑패의 장을 묻거든 네가 흑패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지도록 해라. 나의 존재는 어디에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진가장 때문에 그러십니까?”

“진가장도 진가장이지만, 앞으로 우리 흑패가 섬서를 넘어 더욱 크게 성장하려면 철저하게 지도부를 감춰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내가 너희 뒤로 숨지만, 나중에 다른 성읍이나 성도에 진출하면 너희도 나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알겠느냐?”

“공자님이 거대한 계획을 가지셨을 줄 제가 다 알았습니다. 흐헤헤.”

사중환은 진호충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방금의 말로 그 기대를 모두 충족시켰다.

다른 성도까지 진출할 정도라면 뒷골목 주먹패에게 엄청난 출세라고 할 수 있었다.

“알긴 뭘 알아. 됐고! 가서 술이나 퍼마셔.”

“하하. 옙! 공자님.”

***

다음날 호충은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사중환에게 어설픈 지도를 받아들었다.

“상세한 지도는 나라에서 통제하는 통에 어렵게 구했습니다.”

“이정도만 해도 나쁘지 않다. 우리 조직원 교육이나 확실히 해.”

“예. 공자님. 어제 살살 녹아서 공자님의 지시면 뭐든 하겠다는 녀석들이 태반입니다.”

“···이걸로 우선 월봉을 지급해.”

호충은 금원보를 금자와 은자로 바꿔둔 주머니에서 월봉으로 지급할 금액을 꺼내줬다.

“어이쿠.”

“내부 결속을 확실하게 다져야 외부로 진출할 수 있는 법이야.”

“예. 공자님. 맡겨주십시오.”

호충은 지도를 들고 흑패의 재물을 보관하던 집으로 갔다.

이미 재물을 빼낸 그곳을 호충이 사용하기로 했기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곳이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보물은 누구도 모르게 감춰야 해.’

지도를 펴 놓고 호산(護山)의 위치를 본 다음 태양이 뜨고 지는 동쪽과 서쪽을 표시했다.

그 다음은 쉬웠다. 호산에 오르지 않고도 남서가 가리키는 방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이 이쪽. 그렇다면 북동의 역인 남서는 이쪽 방향이야.”

예상했던 것처럼 확실히 족자에서 일러주는 부근은 자신이 있는 곳이었다.

“산 근방에서 호혈만 찾으면 되겠네.”

호충은 내일부터는 근방의 산을 뒤져봐야겠다고 여기며 족자를 방에 걸었다.

그리고 재물이 보관되어 있던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쪽 방향에서 찬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다가오긴 했어. 굴에서 찬바람이······. 얼라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었다. 호충은 벌컥 문을 열고 나가서 호산(護山)의 위치를 확인했다.

“!”

북동 방향에 호산이 보였다.

자신이 있는 이곳에서 호산(護山)의 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서 보면 분명히 여기가 보일 것이다. 북동에서 반대를 보면 남서가 아니던가.

“여기도 호혈이라고 할 수 있잖아! 그것도 북동의 역인 남서!”

지금은 오두막집으로 막아두었다지만, 분명 호혈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굴이 있지 않았던가.

“설마!”

호충은 후다닥 망치를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은 물건을 다 빼서 텅텅 비어 있었고, 단단한 암석만 반겨주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있는 거야!”

호충은 동굴의 암석 여기저기를 만지고 두드리며 신비 고수가 숨겨 놓은 안배를 찾기 시작했다.

“뭐지? 어디지?”

한참이나 동굴을 뒤지고 망치로 암석을 두드리며 찾았지만, 도무지 숨겨진 안배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여기야. 여기에 있어야 해.”

호충은 눈에 불을 켜고 계속해서 망치로 암석을 두드렸다.

하지만 확신과 달리 암석으로 가득한 동굴에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은 인위적인 흔적이라곤 없었다. 그저 동굴이었다.

호충의 주변엔 괜한 망치질로 인해 동굴의 바위만 잔뜩 떨어져 있었다.

“······.”

어둠에 익숙해진 호충의 눈은 원망스럽게 동굴을 노려봤다.

‘있었어야지! 여기 있었어야지!’

생각해보면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게 여기라 확신했다.

‘내가 착각했을까?’

중원에 높은 산은 한 둘이 아니었고, 산에서 호굴이 보이는 곳도 한 둘이 아닐 터였다.

꼭 호굴이 아니라도 비슷한 굴은 한참 더 있을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했을 지도 몰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호충은 미련이 가득 남은 얼굴로 동굴에서 나와 방에 주저앉았다.

털썩.

“에효. 여기가 아닌가벼···.”

방에 걸어둔 족자를 살피는 호충의 눈은 흐릿했다. 이미 마음이 실망감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호충은 족자를 멍하니 읽다가 아무것도 수정하지 않은 마지막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相邀愧小穴濘(상요괴소혈녕) : 맞아 모시자니 작은 굴이 부끄러우니

騎馬到堦除(기마도계제) : 말을 타신 채로 섬돌까지 닿아오세요.

“기마도계제.”

마지막 구절을 읊은 호충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마도계제···. 기마······. 기마? 기마??”

기마(騎馬)는 말에 오르라는 뜻이 아니던가.

외팔이 검객이 괜히 이 시를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헙!”

새로운 단서라고 할 수 있었다.

“말을 타고 가야 한다고?”

얼른 다시 동굴과 집을 이어주는 곳으로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개를 쳐들고 동굴의 윗부분을 올려다봤다. 호충의 눈은 기이한 열기로 다시 차올랐다.

“말에 오르면 낮은 동굴의 윗부분에 걸려서 들어갈 수가 없어. 말에 오르면 분명 여기가 보일 거야.”

망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호충은 집과 동굴 사이가 좁아 겨우 몸을 비집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지붕으로 가려진 아래 동굴의 윗부분에 도착한 호충은 이끼와 잡초로 가득한 흙을 망치로 긁어냈다.

텅.

망치에 뭔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

흙을 걷어내는 손이 빨라졌다. 대부분의 흙을 걷어내자 지붕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있어! 그것도 철궤다.”

한참이나 녹이 슬어있었지만, 철로 만든 상자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호충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철궤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살살 긁어내 길쭉한 철궤를 확인한 호충은 망치를 놓고 철궤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으라차차.”

길쭉한 철궤를 다 꺼냈는데, 그 무게 때문에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지붕과 동굴 사이의 암석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

우당탕.

철궤를 품에 앉고 바닥에 추락했지만, 호충의 입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헤헤. 찾았다. 찾았어.”

흙으로 옷이 더렵혀진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푸헤헤. 으헤헤헤.”

호충은 흙투성이 철궤를 품에 끌어 앉고 미친놈처럼 웃고 있었다.

추락으로 인한 고통은 한참 뒤에 찾아왔다.

“아이고고. 등이야.”

호충은 철궤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녹슨 자물쇠를 망치로 깨부쉈다. 안에 든 것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호충은 손을 비비며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중박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나와 다오. 제발. 제발. 제발.”

흙 묻은 손을 옷에 대강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철궤를 열었다.

끼이이익.

“오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황금 덩어리였다.

황금 덩어리가 있으니 이미 중박은 넘어선 셈이다.

“우하하하.”

호충은 크게 웃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없다지만 이런 일은 최대한 숨겨야 하지 않겠는가.

“큭큭. 크크크.”

그래도 웃음이 터지는 것은 숨기기 힘들었다. 흙투성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얼른 철궤 안의 다른 것들을 살폈다.

안에 남은 것은 책자만 다섯 권이었다. 흙 속에 오래 있었지만, 밀봉이 확실했는지 젖어있지 않았고 보관 상태도 양호했다. 게다가 종이의 질도 상당히 좋아서 만져도 바스라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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