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兩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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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인이 전해준 무공인 양의(兩意)에 흠뻑 빠져 시간을 보내던 호충은 어느 날 첫째 호현의 호출을 받았다. 호현의 입은 호충이 화산파로 갈 시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다행히 화산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야. 우리가 전해준 자금이 단비와 같았는지 언제든 너를 보내달라고 하더구나. 너는 언제가 좋겠느냐.”
“곧 겨울이니 화산에서의 생활이 고되진 않을지···.”
벌써 날씨가 쌀쌀해졌고, 곧 눈이 올 것처럼 하늘도 우중충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화산으로 가?’
“흐음.”
잠시 고민하던 호현은 대수롭지 않게 허락했다. 어차피 오래 걸릴 일이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하는 무공이니 연말에 시작하는 것보다 연초가 좋겠지.”
“감사합니다. 형님. 겨울 동안 기본 무공을 열심히 연마하여 체력을 길러 놓겠습니다.”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은 어찌하고 있느냐.”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 하셔서 그 뒤로는 한 번도 익히지 않았습니다.”
양의(兩意)를 익히느라 일분일초를 아껴 쓰는 중이다.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은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잘 하였다. 너는 염려 말고 화산파의 인물들과 친밀하게 지낼 생각만 하면 된다. 일이 잘 풀리면 가주님이 익히시는 진강이십사검(眞强二十四劍)을 너도 익히게 해줄 것이다.”
‘진강이십사검? 어디 갖다 붙일게 없어서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을 베낀 검법을 갖다 붙여?’
호충은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무공이다. 양의를 통해 무공을 익힐 기반을 만들고 있었지만, 고작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을 익히려고 만드는 기반이 아니었다. 그리고 호현의 말이 이루어질 것도 아니었다.
‘말로만 해주겠다하고 나중엔 입을 싹 씻겠지. 내가 너를 모르겠느냐.’
가주를 비롯해 진가장의 모든 이가 마찬가지였다. 앞에서는 좋은 말을 하지만 뒤에선 험담을 늘어놓는 작자들이었다.
“예. 형님.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전에도 말 했지만, 외부엔 각별히 입을 조심하여라. 그리고 둘째가 너를 찾았을 때 나를 부른 것도 정말 잘 하였다. 녀석에겐 화산에 너를 보내 정무맹 구성원과 끈을 이어두려 한다고 해두었으니 너도 나중에 녀석이 묻거든 그리 답하면 될 것이다.”
‘대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얼마나 호충을 깔보고 있었으면 당사자의 일을 이제야 알려준단 말인가.
“예. 입을 꾹 다물고 경거망동하지 않겠습니다.”
“가보아라. 해가 바뀌고 날이 풀리면 바로 화산으로 가야할 것이다.”
“예. 형님. 언제나 형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손짓으로 호충을 내보낸 호현은 호충이 나간 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찌해야 확실하게 화산파와 끈을 이을 것인가.’
진가장 가주의 직계를 보내고 화산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 주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새로 시작한 화산의 역사는 짧으나 화산의 도인들은 과거의 위용만 기억하며 사는 족속들이었다. 진가장이 신흥 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도 그들에겐 보잘 것 없이 여겨질 것이다. 그런 화산의 도인들이 진가장을 진심으로 여기게 바꾸고 깊이 신뢰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자면 뭔가 특별한 수가 필요했다.
‘녀석이 거기서 죽는다면?’
진호현는 아무렇지도 않게 형제의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화산에서 진가장의 직계가 죽어 마음의 짐을 지우고 이를 빌미로 화산의 무공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판단으로 넷째를 선택한 것이다.
‘아니지. 그랬다간 오히려 진가장과 거리를 두게 될 것이야. 미안한 일을 만들면 마음만 불편하게 만들지.’
호충의 죽음을 빌미로 화산의 무공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가장이 화산의 무공으로 새로운 상승 무공을 창안했다는 정보를 접한 다음엔 어찌 반응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불편함은 경계심을 낳고 경계심은 반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흐음. 죽이는 것은 배제하기로 하고···.”
자신의 배다른 동생을 죽인다는 선택지를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놈이다.
“병신이 되는 정도라면···. 에이. 이거나 그거나. 어차피 날이 풀리고 나서야 가게 될 터이니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어.”
호충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죽었다가 병신이 됐다가 했다.
***
진호현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호충은 양의(兩意)를 익히며 틈틈이 본연의 무술을 익히느라 바빴다.
‘자리에 앉아서 양의(兩意)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고수가 될 수는 없다. 기초 근력은 언제나 진리다.’
따닥. 딱딱딱.
첫 눈이 쌓인 산중의 공터였다. 새로 설치된 목인장은 오늘도 호충의 손에 수난을 겪고 있었다. 웃옷을 벗고 맨살을 드러낸 호충의 등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또한 올바른 신체에 올바른 정신이 깃드는 것도 진리다.’
이러한 판단도 양의(兩意)로 인해 높아진 사고력이 도움을 줬다.
따닥. 따따닥.
‘양의(兩意)는 곧 오성(五成)에 이른다. 그때부터 무흔(無痕)과 경신(輕身)을 동시에 익힌다.’
엄청난 속도로 목인장을 두드리면서도 호충의 머리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리고 있었다. 호충이 양의(兩意)를 익히는 방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의 모든 일상에서 양의(兩意)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양의(兩意)를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날로 탄탄해지는 호충의 몸처럼 양의(兩意) 또한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따닥. 따따다닥. 딱딱.
‘화산에 가기 전에 무흔(無痕)과 경신(輕身)을 익혀 황궁의 비고에 먼저 다녀온다.’
따따다닥.
‘비고(祕庫)에서 흑패 조직원들을 단련할 무공을 찾아와야 해.’
“후욱.”
입에서 나온 하얀 입김이 겨울날 차가운 대기와 섞여 바람에 흩어진다.
‘주먹을 쓰는 흑패는 강(强)의 무공이 어울릴 것이고···.’
따닥. 딱딱딱.
‘기루에 기녀들은 음공(音功)과 방중술(房中術)을···. 도박장의 배수들은 비도술(飛刀術)과 경공(輕功)이 적합하다.’
따따다닥.
‘옥비연과 사중환처럼 내 문파의 핵심 인물이 익힐 무공까지 찾아야 해.’
호충은 진가장이 아니라 자신만의 문파를 일으킬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황궁의 감시와 무림인들을 대비해 무흔(無痕)을 변형한다.’
자신의 문파에 소속된 인원들은 모두가 무공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무공의 흔적을 숨겨야 했다. 무흔(無痕)은 공력을 숨기는데 특화되어 있으나, 무공을 쌓는 데에도 특화되어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신공을 모두에게 익히라 할 수 없으니, 무흔(無痕)에서 공력을 감추는 부분만을 따로 떼어 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엔 다르겠지.’
아직 무공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훗날 양의(兩意)를 대성하고 무공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가능할 일이었다. 무림의 무공을 입수해 변형한 과거 황궁의 무사들 또한 양의(兩意)를 대성했기에 기존 무공을 조합하고 새로이 창안할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황궁의 무사들이 해냈으니 자신도 가능할 것이다.
“휴우.”
실컷 땀을 뺀 호충은 무명천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양의(兩意)의 구절들을 되새기며 무공(武功)의 오의(奧義)에 깊이 빠져 들었다.
***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호충은 자연스럽게 화용루로 향했다.
그곳은 이제 흑패의 조직원이 상주하며 보호를 맡고 있었다. 오늘은 패조 조장 하건림이 이곳을 맡은 모양이다.
“안내하겠습니다.”
하건림은 인사도 없이 바로 호충을 다른 문으로 안내했다.
일반 손님이 출입하지 않는 다른 문이었다. 문으로 들어서서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자 호충이 입을 열었다.
“하 조장. 별일 없었지?”
“예. 홍루와 달리 이곳 화용루는 크게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없습니다. 보호세를 날로 먹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상주하며 지키는 것과 어쩌다가 방문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건장한 너를 보고 들어간 사람이 어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을 하겠느냐.”
“그렇습죠.”
“또한 화용루의 루주도 너희가 고생하는 것을 매일 지켜보니 보호세를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진가장에선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와서 지켜주지 않겠느냐. 진정한 보호는 이런 것이지.”
아직 이곳에 자리 잡지 않은 영업방식이었다. 덕분에 흑패는 주변 상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경원시하고 두려워하던 인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호의를 보이는 상인들이 상당했다.
“조원들에게도 흑패주께서 하신 말씀을 주지시키겠습니다.”
“어허. 외부에선 함부로 부르지 말라 했거늘···.”
“···죄송합니다.”
“조만간에 모일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 다시 보자. 하 조장.”
“예. 공자님.”
하건림의 어깨를 두드리고 몸을 돌려 들어선 호충은 능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만나려고 했던 여인을 찾았다.
“오늘 한가하네?”
“어머. 오셨어요.”
화용루의 별실 깊은 곳에 마련된 화진의 처소였다.
“거의 매일 오는데 어머는 무슨···. 내가 안 오는 날을 찾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소첩 좀 살려주시어요. 이러다가 피가 말라 죽을 지경이옵니다.”
“동경은 보고 말하는 게냐? 네 얼굴에 빛이 날 지경이니라.”
“흠흠.”
매일 같이 젊은 사내와 사랑을 나누는 여인이 어찌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호충의 말대로 그녀는 활짝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웠고 아침 이슬을 맞은 풀잎처럼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여인이 가장 아름다움을 뽐낸다는 스물다섯이 아니던가.
“아잉. 너무하시어요.”
“어허. 화진이는 분명 항아(嫦娥)의 환생인 것이 분명해. 어찌 이리 내 마음을 진탕시키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요 못된 손이 또 어디로 들어오는 거죠?”
가까이 다가온 호충의 손은 화진의 앞섶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들고 있었다.
“어이쿠. 이 녀석이 내 말을 듣질 않는 군. 다 화진이 때문이야.”
“하응.”
호충은 화진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그녀의 귀에 소곤거렸다.
“올 겨울이 지나면 우리 같이 여행이라도 가자. 이렇게 안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그대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화진은 호충의 말에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상념은 이렇게 몰래 만나야하는 현실을 직시했다.
“···자장(子張)엔 보는 눈이 너무 많지요.”
“여긴 보는 눈이 없어 좋구나.”
“요즘 화용루 근처에 진가장의 무사들이 자주 지나다녀요. 조심하셔야 해요.”
“그래 나도 들었다.”
흑패가 물어오는 모든 정보가 호충의 귀에도 들어온다. 진가장의 무사들도 자신이 매번 이쪽으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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