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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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 흑패 왕호

***

“가서 도박장 주인 좀 보잔다 해라. 불러와.”

“허허허. 재미있는 공자님이네. 우리 두목이 당신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이오?”

“······.”

어차피 말로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슈욱. 파박.

거리낌 없이 나가는 발이 녀석의 정강이와 허리를 툭툭 걷어찼고,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고고. 나 죽네.”

“뭐야?”

“누구야!”

입구에서 일어난 소란에 뒤에서 둘이 더 나왔지만, 둘이 더 나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호충의 손과 발이 출수되었고 녀석들은 목과 옆구리를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퍼벅. 퍽.

녀석들을 한 번 더 밟아준 호충은 도박장 내를 둘러보고 지도부가 있을 계단으로 향했다.

“멈추시오. 여긴 손님이 올라오는 곳이 아니···.”

퍽.

녀석은 호충의 낮은 발차기에 맞아 중심을 잃으며 옆으로 넘어지는 와중에 시야 가득 들어오는 주먹을 볼 수 있었다.

뻐억.

녀석이 공격을 인지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호충은 기절한 녀석을 넘어 더 위로 올라갔다.

이 층의 문에도 지키는 녀석이 둘 있었다. 녀석들은 방금 아래에서 당하는 것을 지켜봤기에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피를 보고 싶다면 말리지 않으마.”

호충도 품에서 회칼을 꺼냈다. 막 호충이 달려들려던 차에 문이 열리며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들 놀라지 않게 조용히 들여보내라.”

“······.”

호충은 회칼을 품에 다시 넣고 노려보는 두 녀석을 지나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쾅.

호충이 들어서자마자 문 안쪽에 있던 두 놈이 문을 닫고 그 앞을 지켰다.

“훗.”

문을 막고 싶은 건 자신이었는데, 알아서 막아주니 고마울 뿐이다. 문에 둘 문 밖에 둘 그리고 안에는 십여 명의 인물들이 한 사람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었다.

“젊은 공자께서 뭐가 불만이라 이리 행차하셨소. 우리 도박장에서 좀 잃으셨나?”

호충은 상석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상파 두목을 유심히 관찰했다.

짧은 머리칼 속에 드러난 긴 자상은 녀석이 적지 않은 풍파를 거치고 저 자리에 올랐음을 짐작케 했다.

“그대가 이곳 천수(天水)의 흑패주인가?”

“큭. 맞으면 어쩌려고?”

“잘 찾아왔나 확인하려 함이네.”

“내가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왔어? 큭큭.”

호충은 녀석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집스러운 녀석의 성정을 알아봤다.

‘쉽게 굽힐 녀석이 아니다.’

그렇다고 못할 것도 없었다. 나름의 해법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말로 할 일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와라.”

호충은 팔을 벌리고 호기롭게 녀석들을 불러들였다.

“푸흐흐. 웃기는 종자로다. 얘들아. 가서 젊은 공자의 버릇 좀 고쳐주려무나. 아무래도 몸이 근질근질 한 모양이다. 시원하게 밟아드려.”

녀석들은 지금까지 호충이 칼이 아닌 몸을 썼음을 알고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너희도 낭만이 있구나. 하하.”

‘소룡이 형님. 여기 굴다리로 집합할 놈들이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호충이 바라마지않을 상황이다.

십여 명이 호충을 향해 걸어 나오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익힌 무흔(無痕)과 경신(輕身) 보다 다른 이유 때문이다. 무흔과 경신은 지금까지 꾸준히 연마한 절권도에 날개를 달아줬고···.

퍼벅.

지금과 같이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의 권각(拳脚)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두 놈이 바닥과 하나가 되자 흑패주 녀석은 눈을 크게 뜨며 경고했다.

“조심해라. 권각(拳脚)을 극성으로 익힌 놈이다.”

“이미 늦었다 이놈들아.”

호충은 양 떼 사이를 누비는 이리처럼 흑패 사이를 누볐다.

뻐벅. 뻑. 뚜각.

녀석이 내뻗는 권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팔꿈치를 찔렀고, 퇴(腿)가 날아오면 경신(輕身)을 통해 옆으로 돌아가며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적이 강한 모습을 보이자 녀석들은 몸이 굼떠지기 시작했고, 호충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손발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호충의 권각(拳脚)이 녀석들의 몸에 고스란히 작렬하고 있었다.

뻐억. 빡.

“으악.”

녀석들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고 호충은 앞으로 나아갔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제 자리에서 날아올라 한 놈의 면상을 밟았고, 녀석을 발판삼아 양쪽 놈의 머리에 갈라 차기를 먹여줬다.

빠악. 빡.

얼굴을 밟힌 녀석의 느려터진 공격은 짧은 권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자리에 서 있는 놈들은 셋. 그제야 상석에 앉은 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긴? 흑패가 운영하는 도박장이지.”

“네 놈은 오늘 여기서 걸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살려줄 생각도 있으셨어? 볼수록 맘에 드는 놈이네.”

“하아!”

녀석은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호충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단검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호충은 품에서 유엽비도(柳葉飛刀)를 잡아 아직 멀쩡한 세 녀석의 발아래에 던졌다.

파바박.

녀석들은 언제라도 나설 준비를 하다가 뒤로 훌쩍 뛰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모습에 흑패주 녀석까지 대경해서 뒤로 물러섰다.

“원래 권각술보다 칼을 좋아하는데 말이야···.”

호충의 손에 추가로 회칼이 들려 나오자 녀석은 침음을 삼키며 더욱 긴장했다.

하지만 회칼을 곧 바닥에 던져 꼽는 모습에 녀석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팍.

“우리 오늘 재미있게 어울려보자고.”

“젠장.”

쨍강.

녀석도 단검을 옆으로 던져 몸으로 싸울 것임을 알렸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타닥. 탁.

녀석의 권이 호충을 향할 때마다 호충은 목인장을 대하듯이 공격을 막아갔다. 날아오는 권을 피하며 팔을 밀쳐냈고, 중심이 보인다 싶으면 몸통을 손바닥으로 가격했다. 충분히 공격할 수 있음에도 대결 자체를 즐기는 중이었다.

“좋아. 계속해.”

“이익!”

권각을 섞어가며 호충을 계속 압박했지만, 유효한 타격은 하나도 없었다.

공방의 교환이라도 있으면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겠으나, 공격을 계속할수록 수준차이만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악과 깡으로 상대하는 것도 상대가 비등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허억. 허억.”

“이제 내 차례인가?”

녀석이 두 팔을 들어 올려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때 호충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는 진호충이다. 네 이름이 무어냐.”

“왕호(王號)다.”

“좋은 이름이구나. 오늘 호랑이 가죽을 얻겠어.”

“쉽지 않을 것이다.”

호충은 경신(輕身)을 극성을 발휘했다.

텁.

호충의 신형은 어느새 왕호의 옆으로 돌아가 팔을 어깨에 올리고 있었다.

“쉽다.”

“!!”

대경한 왕호가 물러서기도 전에 호충의 권이 파고들었다.

뻐억.

“커흡.”

왕호의 옆구리에 주먹이 깊이 들어갔고 한걸음 물러선 호충은 자신에게 번권(繁拳)이라는 별호를 만들어준 자세를 잡고 있었다.

파바바박.

예전보다 더욱 빨라진 권(拳)이 눈부신 속도로 왕호의 몸을 두드렸다.

두두두두.

녀석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온몸으로 권을 받아냈고, 호충이 손을 거둠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호충은 아직 남아 있는 셋을 향해 말했다.

“나는 자장(子張) 흑패의 패주 번권(繁拳)이다.”

“!!”

“!!”

“!!”

“오늘부로 천수(天水) 흑패는 자장(子張) 흑패와 하나가 되었다.”

호충은 왕호가 앉아 있던 상석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고, 쓰러진 녀석들과 기절한 녀석들이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에 돌아오길 기다렸다.

가장 마지막에 정신을 차린 왕호는 여전히 반항심 가득한 눈빛으로 호충을 쏘아보고 있었다. 이미 옆에 있는 놈에게 호충이 자장(子張) 흑패의 패주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음에도 녀석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이 자장(子張) 흑패주라 하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 천수(天水) 흑패는 누구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네가 그럴 줄 알았지.’

녀석의 눈을 보고 쉽게 굴복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전에도 조폭들 사이에 저런 눈빛을 가진 놈이 있었는데, 녀석의 고집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했기 때문이다. 저런 눈빛을 가진 놈들은 대부분 황소고집을 자랑했다.

호충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에 있던 몽둥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를 때려 죽여도 네가 천수(天水) 흑패를 차지할 일은···.”

빠악.

“아악!”

호충은 무심하게 몽둥이를 휘둘러 녀석의 정수리를 찍어버렸고, 웅크린 녀석의 곳곳을 다지기 시작했다.

퍽. 퍼벅. 뻑.

“크흡. 윽! 악!”

“입 다물어라. 기(氣) 빠진다.”

“크흡.”

왕호는 몽둥이에 맞으면서 기이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라? 어째서 맞은 곳이 시원하지?’

빠악.

“윽!”

맞을 때는 이런 고통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금방 시원한 감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기(氣) 빠진다니까.”

뻐억. 뻑.

“읍. 읍!”

왕호는 영문도 모르고 입을 다물었고,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 호충의 몽둥이가 멈출 때까지 입을 다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왕호가 고통과 시원함을 오가는 동안 호충은 무릎을 꿇고 앉은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참으로 대단한 패주를 모시고 있었다.”

툭.

호충은 몽둥이를 옆으로 던지고 다시 상석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일찍이 이런 기재(奇才)를 본 적이 없다. 왕호는 의리가 있어 누구든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고, 작은 종자돈이라도 있었다면 수 배로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 패주에게 인의(人義)와 상재(商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린 왕호는 갑자기 자신의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한 호충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의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지금까지 흑패를 이끌어오며 돈을 불린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한 지역의 흑패주를 차지한 녀석이라면 대부분 같은 기질을 갖고 있었다. 인망을 얻지 못한 마한로가 기이한 경우였다.

“문(文)을 익혔다면 희대의 문장가가 되었을 것이고, 무(武)를 익혔다면 역전의 장군이 되었겠지.”

왕호의 눈빛이 지진이 일어날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일찍이 여읜 자신의 부모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다. 나이가 들어서야 겨우 천자문을 떼었고, 무공은 삼류 무공이나 겨우 찾아보던 자신이었다.

“또한 무공을 익혔다면 무슨 무공이든 대성(大成)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눈을 보자마자 알았다.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너희 패주의 눈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단단한 내면을 보여줬다. 그는 중원 천지에서 상대를 찾아보기 힘든 기재(奇才)다. 어찌하여 이런 기재(奇才)를 이제야 만났단 말인가.”

“그, 그건···.”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가 어디서 이런 칭찬을 들어봤을까. 엉덩이가 주체되질 않는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절을 해야 할 것 같은 칭찬이었다.

“하여 내가 작은 호의를 보였다. 왕호. 너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지 않으냐.”

“······.”

왕호는 호의를 보였다는 말에 자신의 몸을 살폈다. 뭔가 달라진 것도 같았다. 맞고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이한 시원함이 있질 않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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