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석유(空靑石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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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들이키며 마음을 다지던 호충은 양의(兩意)를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 공청석유!!”
본래 비고에서 공청석유(空靑石乳)를 찾아 무흔(無痕)과 경신(輕身)을 대성하고 환체(換體)로 환골탈태를 이루고자 하지 않았던가.
‘스승님들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공청석유를 찾아야 해.’
지금도 무흔(無痕)과 경신(輕身)이 육성(六成)으로 넘어가려면 공청석유가 필수였다.
“제발 여기 있어다오.”
호충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좌측의 문으로 가까이 갔다. 각 문에 무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에 적힌 글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正)]
“이 문 뒤에는 정파(正派)의 무공이 들어있겠군.”
정파의 무공들 사이에 공청석유가 들어있을 리 없었다.
다음 문에는 [사(邪)]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사파(邪派)의 무공도 취급했던가.”
[새외(塞外)] 라고 음각된 문은 호충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새외에도 상승 무공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암.”
[간(間)]이라 음각된 문을 본 호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 정사지간의 상승 무공까지? 아주 싹싹 긁어모았구나.”
다음 문으로 넘어간 호충은 멈칫했다.
[마(魔)]
“······.”
마교(魔教)의 무공을 모아두었을 문이었다.
“여긴 들어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
[의(醫)]
“의술(醫術)도 있었구나. 혹시···.”
혹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다음 문에 음각된 글자를 본 호충은 바로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공청석유(空靑石乳)]
“나 지금까지 왜 고민했니?”
오로지 문 하나를 차지한 공청석유를 두고 다른 문을 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호충은 공청석유라 음각된 문 가까이에 다가가며 짙어지는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이 향기는···.”
계단을 내려오며 계속 자신의 코를 자극하던 그 향기였다.
“공청석유의 향기였던가.”
처음 맡은 향기이니 그 향기가 공청석유에서 나는지 향낭에서 나는지 어찌 알았겠는가.
“내실(內室) 하나를 공청석유가 차지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던 호충은 혹시라도 공청석유가 오염되지 않도록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 옷을 벗고 털기 시작했다.
팡.
“저 안에 있을 것이다.”
팡. 팡.
“분명 저 안에서”
팡. 팡. 팡.
“공청석유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호충은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며 옷을 털고 있었다. 옷을 다 털어낸 호충은 다시 벗었던 옷을 갖춰 입고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갔다.
“······.”
하지만 그의 손은 곧 잡힐 것 같았던 문고리 앞에서 멈춰 있었다.
‘···뭐지?’
호충 자신도 왜 손을 멈췄는지 알지 못했다.
‘뭘까. 내 무의식이 왜 여기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걸까.’
호충은 자신이 공청석유가 없다는 것에 실망할까 걱정하는지를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없으면 어떻고 있으면 어떻겠는가. 이곳엔 세상에서 사라진 산더미 같은 무공 비급이 있었다.
호충은 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의(兩意)를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에 해답을 찾는데 가장 도움이 된 방법이었다.
‘공청석유가 스승님들의 무공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 안에 내가 알지 못하던 위험이 있을까? 아냐. 위험 같은 건 없어. 이미 위험은 끝났다.’
‘공청석유를 발견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안에 공청석유가 흐르고 있다고 가정하자. 수 백 년이 흐르며 고인 공청석유는 문을 넘어 공동에까지 기운을 퍼트렸다.’
아직까지 자신의 손이 멈춘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고심은 계속되었다.
‘공청석유. 내가 희대의 영약인 공청석유를 마시면 어찌될까.’
이어진 고민 끝에 왜 자신이 손을 멈추었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
‘나는 준비되어 있는가? 아니다! 나는 공청석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
눈을 번쩍 뜬 호충은 공청석유가 숨겨져 있을 문 앞에서 미련 없이 돌아섰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지독한 향기에 취해 공청석유를 들이켰을 것이다.’
‘또한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을 익히지 못했으니, 지금 공청석유부터 들이킨다면 기존의 환체(換體)를 통해 환골탈태를 진행했을 것이다.’
‘환골탈태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의 무공이 있는데, 어찌 하위 무공인 환체(換體)로 위험을 떠안겠는가.’
‘환체(換體)에 확률이 기록되진 않았으나 환골탈태에 성공할 확률은 절반 이하가 틀림없다.’
봉분 앞으로 돌아간 호충은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이 아니라 진양의(眞兩意)를 꺼냈다.
‘나의 판단력을 나도 믿지 못하겠구나. 지금은 내공의 증진이 아닌 지혜와 판단력을 길러야 할 때다.’
진양의(眞兩意)를 펼치자 초반부에 자신을 향한 당부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나의 무공서를 손에 든 그대의 굳은 의지에 찬사를 보내노라.]
‘마치 보신 듯이 얘기하시네요. 스승님.’
하지만 그 뒤의 글은 정말 자신을 봤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홀로 이곳까지 도달하여 우리 넷에게 예의를 다한 그대는 충분히 우리의 제자가 될 만하다.]
“······.”
호충은 괜히 고개를 주변으로 돌리며 누가 보고 있진 않은지 살폈다. 어찌하여 자신이 예의를 다한 것을 알았단 말인가.
‘수 백 년 전에 어찌 나를 알았을까.’
그에 대한 답은 다음에 나와 있었다.
[진양의(眞兩意)를 극성(極成)으로 익힌 나는 잠시 천기(天機)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하여 수명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훌륭한 자질을 가진 제자가 우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니 후회는 없도다.]
‘···진양의를 극성까지 익히면 미래도 내다볼 수 있단 말인가.’
수명이 줄어든다는 극악한 단점이 있긴 하지만 미래를 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다만 자신을 잠시 보았기 때문인지 자신에게 훌륭한 자질을 가진 제자라고 한 부분이 몹시 부끄러웠다.
‘제자가 못나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자신은 중원에서 흑패천하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흑패는 정파도 아니고 사파도 아닌 정사지간의 단체라 할 수 있었고, 흑패천하를 이룬 이후에도 무림의 흑막에 숨어 살 생각이었다. 또한 재물과 보신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자질이 우수한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이 바라는 일은 누구에도 자랑하지 못할 일이었다.
[제자가 진양의(眞兩意)를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보장한다. 제자는 진양의(眞兩意)를 익히며 우리의 무공을 익혀야 하며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은 오성(五成)까지 익혀야 공청석유(空靑石流)를 취할 수 있음이다.]
“그랬구나!”
호충은 양의(兩意)를 통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늘에 감사했다.
[제자가 이곳 황궁(皇宮) 비고(祕庫)에 도착할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수 백 년 후의 일이니 공동은 공청석유(空靑石流)의 기운으로 가득할 것이다. 제자는 공연히 공청석유(空靑石流)를 탐하지 말고 공동에 퍼진 기운부터 수습하며 우리의 무공을 익혀나가길 바라노라.]
“스승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따르겠습니다.”
호충은 비고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과 공청석유를 무시하고 오로지 네 구의 시신이 남긴 무공에 집중했다. 당연히 진양의(眞兩意)가 가장 우선이었고, 다음은 경혼무흔(驚魂無痕)과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이다. 경신비천(輕身飛天)은 가장 뒤로 미뤘지만, 진양의(眞兩意)를 통해 모든 무공을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
‘역시 진양의(眞兩意)가 정답이다.’
지금까지 양의(兩意)를 익히며 익숙해진 다음이라 진양의(眞兩意)는 시작부터 삼성(三成)이었다. 덕분에 나머지 무공서를 펼쳐놓고 모든 무공을 머리에 담을 수 있었다.
해가 보이지 않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지만, 줄어드는 벽곡단(僻穀丹)과 건량을 통해 대강의 날짜를 세고 있었다.
‘아홉 알의 벽곡단(僻穀丹)이 사라졌다. 최소 삼 일은 흘렀어.’
본래 호충이 비고에 머무르려 했던 기간은 한 달이다. 한 달 내에 비고(祕庫) 탐사를 마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주는 지나야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이 오성(五成)에 도달할 것이다.’
직접 몸으로 익히는 경혼무흔(驚魂無痕), 경신비천(輕身飛天)과 달리 진양의(眞兩意)와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은 이론서라고 할 수 있었다. 진양의(眞兩意)의 수련이 깊어져 머리가 맑아지고 두뇌 회전이 빨라지면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 또한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오성을 높여주는 진양의(眞兩意)에 본래 무공을 익히고자 하는 열의가 더해졌고, 호충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자질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 주 뒤에 공청석유를 취하고 환골탈태를 이룰 것. 남은 이 주는 비고의 무공서들을 살펴 필사할 무공서를 선택한다.’
흑패의 부하들이 익힐 무공과 기루의 기녀들이 익힐 무공, 도박장의 배수들이 익힐 무공을 선택해야 했다. 또한 송 영감을 위한 주안술(朱顔術)이나 무공도 찾아야 했다.
‘또한 무흔(無痕)을 변형하여 내공만 숨기는 공능을 남겨야 할 터인데···.’
이는 자신이 무공을 하사할 모든 부하들에게 공통적으로 배포해야할 무공이었다.
‘저 문들 뒤에 비슷한 무공이 있길 바라야겠군.’
온갖 무공이 망라된 곳이니 내공을 감추는 무공도 존재할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미래를 계획하면서도 호충의 수련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양의(眞兩意)가 언제나 호충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 주가 아니라 십 일 내로 오성(五成)을 달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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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충이 황궁(皇宮) 비고(祕庫)에서 수련해 매진한 동안 진가장의 진원우는 첫째 호현을 대동하고 높은 전각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진 가주를 뵈오. 오랜만에 뵈었는데도 여전히 변함없으시오.”
“허허. 남궁 가주님도 평안하시었소. 당 가주께서도 오시었군요.”
전각 안에는 협의맹 인사들과 정무맹 인사들의 자리가 양쪽에 마련되어 있었고, 먼저 온 몇 사람이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진원우가 다른 가주나 문주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진호현은 가주가 앉아야할 자리 뒤에 시립했다.
‘역시 협의맹과 정무맹은 쉽게 섞이지 못하는 구나.’
자신의 아비인 진원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진 가주는 세가 연합인 협의맹 인사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고 정무맹 인사들과는 눈을 마주하고 인사한 것이 전부였다.
오늘 협의맹과 정무맹은 통합을 위해 회합을 갖고 있었지만, 두 맹의 골은 쉬이 메워질 것 같지 않았다.
잠시 후 협의맹과 정무맹을 대표하는 모두가 자리에 착석했고, 정무맹을 대표해 무당의 송호 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림의 영웅들을 이렇게 모시니 오늘 자리가 더욱 빛나는 듯합니다. 무당의 송호(松護)라 합니다.”
무당파의 장문인 송호는 무당을 상징하는 도관에 흑백 태극을 수놓은 도복을 갖춰 입고 있었고, 길게 기른 검은 수염과 머리칼은 도복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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