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232)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

***

“송 영감 지키는 건 잘 했지?”

“헙!”

송 영감에 대해 거론하자 그제야 녀석이 호충을 알아봤다. 이를 알고 있는 것은 흑패의 인물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대, 대형.”

“큭. 수고했다. 얼른 가서 왕호나 찾아와라. 천천히 오라고 해.”

“예, 옙!”

호충은 녀석을 뛰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송 영감이 머물던 별채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호충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영감. 나 왔어.”

“!”

마치 방금 외출하고 돌아와 하는 인사 같았다.

“별일 없었지?”

“아아. 천지신명께서 제 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 크셨단 말입니까.”

송 영감은 호충을 한 눈에 알아보고 또 성장한 것을 알아차렸다.

“미친놈처럼 설산을 뛰어다녔더니 쑥 크더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다친 곳은 없는지 몸을 더듬거리며 물기어린 눈을 하고 있는 송 영감이다. 호충은 송 영감을 보며 제 시간에 돌아오길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선물도 있지.’

“영감. 내가 영감 주려고 오는 길에 몸에 좋은 약초를 캐왔어.”

“도련님은 약초를 알아볼 줄도 모르시온데···.”

“영감은 잘 아니까 봐주면 되겠네. 흐흐흐.”

호충은 나무토막을 꺼내 안에 들어 있는 산삼을 보였다.

송 영감은 삼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가렸다.

“읍!”

“왜? 좋은 거야?”

“천종산삼이옵니다! 수령이 족히 오백년은 될 법합니다.”

“오오오! 내가 이렇게 운이 좋다니까.”

“흙내가 진동하는 것이 약성이 대단하겠습니다.”

“푸히히히.”

“가져가서 가주님께 드리면 앞으로 도련님도 가주님께 관심을···.”

“뭐가 예쁘다고 그 인간에게 삼을 가져다 줘?”

“도련님.”

“영감. 이건 상의가 필요 없는 일이야. 난 영감에게 먹이려고 삼을 캤고, 오직 영감만 먹었으면 좋겠어.”

송 영감은 호충의 단호한 얼굴에서 꺾을 수 없는 고집을 느꼈다.

“······.”

“영감 안 먹으면 갈아서 개나 줘버릴 거야.”

“이 귀한 걸 왜 개한테 줍니까!”

“그러니까 영감이 지금 먹어.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천천히 씹어 먹으면 된다고 하더라. 괜히 다른 약재랑 섞어서 끓이다가 약성 날려먹지 말고 생으로 잡숴봐.”

“지, 지금 말입니까?”

“내가 물 받아서 바로 씻어줄게.”

호충은 정말 대야에 물을 받아와서 흙이 묻은 산삼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송 영감이 먹기를 기다렸다.

“이런 좋은 약제는 도련님이 드셔야 할 터인데···.”

“난 더 좋은 거 많이 먹고 왔어. 내가 좋은 약초 잘못 먹었다가 갑자기 겉늙었잖아. 여기서 더 먹으면 폭삭 늙을 수도 있어.”

공청석유를 취해 환골탈태를 이룬 것이 약초 오남용의 증거가 되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제가 먹겠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물처럼 만들어서 삼켜. 처음엔 좀 쓰다고 하더라.”

호충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산삼을 씹어 삼키는 송 영감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대형! 오셨소?”

“천천히 오라니까 일찍도 왔네.”

왕호의 목소리였다.

“들어와!”

“예!”

왕호는 들어오자마자 넙죽 인사하며 환히 웃었다.

“대형을 뵈오! 하하하. 그런데 형님은 언제 그리 나이를 드셨소? 그 놈이 형님을 못 알아볼만 했습니다. 하하하.”

호충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에 눈이 옹이구멍이냐며 타박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오. 넌 그 사이 단련 좀 했다?”

왕호가 호충의 성장을 알아본 것처럼 호충도 한 눈에 왕호가 전과 달라졌음을 알아봤다. 전에도 나름 단련한 것으로 보였던 왕호가 지금은 마치 차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대형께서 몸을 준비하라 하셨잖습니까.”

“잘 했다. 영감이 산삼 먹는 것만 보고 같이 나가자.”

“산삼이요? 쩝.”

왕호는 입맛을 다시며 송 영감이 산삼을 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욕심 부리지 마라. 넌 약초보다 더 좋은 거 있으니까.”

“크흐흐. 대형 정말입니까?”

“대신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거다. 조용히 기다려.”

“옙.”

호충의 명대로 송 영감은 정말 천천히 산삼을 씹어 넘겼고, 마지막 뿌리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까지 무려 한시진이나 걸렸다.

“아아함.”

왕호가 하품을 할 만 한 시간이었다.

“나가서 기다려. 영감 뉘이고 나갈 터이니.”

“예. 대형.”

송 영감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잘 했어. 약성이 흡수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방에서 한숨자고 있어. 나는 왕호 녀석이랑 회포를 풀고 올 테니까.”

“···예. 도련님.”

“죄 지었어? 고개 들어. 영감이랑 오래 보고 싶은 내 욕심에 먹으라고 한 거야. 그러니까 영감은 잘못한 거 없어.”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도련님이 성혼하시어 낳으실 손까지 보고 싶은 욕심이었지요.”

“······자리 펼 테니까 얼른 와서 누워. 다녀와서 약성이 잘 퍼지게 주물러줄게.”

“먼 길 다녀오시느라 여독이 쌓이셨을 터이니 일찍 들어오십시오.”

“난 젊잖아. 아직 생생하니까 영감 몸이나 걱정해.”

“···아. 동생으로 삼으신 왕호는 나름 건실해 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예의를 다하려고 노력 했고요.”

“그래? 다행이네. 녀석들이 영감한테 제대로 못할까봐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험한 곳은 따라가지 마십시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면 검은 물이 드는 법입니다.”

“······.”

호충은 백로가 아니라 대장까마귀였다.

“별 걱정을 다 하네! 어서 쉬어.”

호충은 송 영감을 얼른 누이고 얼른 별채를 나섰다.

“가자. 왕호.”

“예! 대형!”

호충은 왕호와 함께 객잔을 나서서 천수 흑패의 도박장으로 향했고, 왕호와 걷는 길에 하나씩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흑패가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에 시전의 상인들은 곁눈질로 살피며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했다.

‘내가 이번 달 세를 냈던가.’

‘오늘 누구하나 작살나겠군.’

‘다른 건달패가 쳐들어 왔나?’

호충은 상석에 앉아 천수 흑패의 조직원을 내려다보며 계획했던 일을 떠올렸다.

‘자장 흑패와 천수 흑패를 단련시켜야 해.’

“왕호.”

“예. 대형.”

“흑패 수뇌부와 앞으로 서라.”

“옙!”

왕호는 맨 앞으로 나섰고, 이어서 거한과 말라깽이가 뒤에 섰다.

“이쪽은 거력패도 류창이옵고, 이쪽은 섬전비도 나준입니다.”

호충은 왕호의 말을 듣고 봇짐에서 서책을 두 권 꺼내들었다.

하나는 흑패 조직원에 주려고 했던 도법이 담긴 무공서였고, 다른 하나는 도박장에서 일하는 조직원을 위해 준비한 비도술이 담긴 무공서였다. 일반 조직원을 위한 적당한 무공서로 골랐지만, 지금은 무림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절한 수준의 무공서였다. 둘 중에 하나만 제대로 익히고 무림에 나서도 능히 절대 고수의 반열에 들 정도였다.

“마침 잘 되었다. 류창은 도법이 필요할 것이고 나준은 비도술이 필요하겠구나.”

“헙! 그게 무공서란 말입니까?”

호충은 무공서에 관심을 빼앗긴 왕호가 아니라 뒤의 둘을 보고 있었다. 왕호는 분명 준비를 한 것 같은데, 둘은 아니었다. 애초에 왕호의 밑에 있는 녀석들을 신경 쓰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저들은 단련이 덜 된 것 같다? 너만 굴렀냐?”

“···다 단련하면 영업은 누가 하겠습니까.”

“으이그. 어쩔 수 없지. 다들 나가봐라. 왕호와 논의하며 너희들을 어찌 단련시킬지 궁리해보마.”

어차피 당장 강해질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대장간의 병장기와 마찬가지로 두드리고 담금질을 해야 강해지는 법이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모두가 나가고 나서 호충은 봇짐 깊숙한 곳에서 서책을 두 개 더 꺼냈다.

“이 비급은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이라고 한다. 오직 너를 위해 마련한 무공서다.”

“오옷!”

“그리고 이것은 내공과 무공을 익힌 흔적을 지워주는 잠룡진(潛龍陣)이라는 무공이다.”

“우아.”

“잠룡진은 앞으로 흑패에 소속된 모든 영업장의 조직원이 익혀야 할 것이다. 나는 내 조직원을 모두 고수로 만들 작정이거든.”

“흐흐. 저는 대형만큼만 하면 좋겠습니다.”

“겨우 내가 보여준 정도에 만족하느냐?”

왕호는 호충의 말에 목소리를 줄이며 답했다.

“······너무 고절한 무공은 무림에 통용되지 않는 줄로 압니다. 대형. 여차하면 황군이 출동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공과 무공의 흔적을 지워주는 잠룡진을 가져오지 않았겠느냐.”

“······.”

왕호는 호충이 가져온 무공서를 보며 그렇게 대단한 무공서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무공서 이겠거니 여긴 것이다.

호충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무림에서 상승 무공을 찾기는 쉽지 않지.”

“···저는 적당한 무공서라도 좋습니다. 대형.”

“네 기대를 저버려서 미안하다만, 저건 적당한 무공서가 아니다.”

“아.”

왕호에게서 작은 실망감이 느껴졌다. 호충은 장난기어린 눈으로 왕호에게 말했다.

“절대로 적당하지 않지. 과거에 존재하던 그저 그런 상승 무공과는 결이 다른 무공서다. 절세 신공이라 불려도 과하지 않은 무공이야.”

“···그런 무공서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을까요? 어디 책방에서 사신 건 아니죠? 요즘 가품이 너무 많아서···.”

왕호는 전혀 믿지 않는 모양이다.

‘믿기 힘들겠지.’

호충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상석에서 천천히 발을 내밀어 경신비천(輕身飛天)의 경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슈앙.

호충의 신형은 어느새 왕호의 뒤를 점하고 있었다.

“!!!!”

왕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고수인 내가 거짓을 말하겠느냐?”

“저, 전보다 더 빨라지셨습니다.”

호충은 서책이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펄럭.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이 담긴 비급이 스스로 날아와 호충의 손에 안착했다.

허공섭물의 기예였다.

“헙! 허공섭물까지!”

“상승 무공과 비교하는 것은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에게 수치나 다름없다. 진짜 용을 보고 창안한 이 무공은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되었고, 고절한 수법이 가득하다. 네가 비급을 익혀 대성한다면 감히 너와 겨룰 이가 없을 것이다.”

“지, 진정이시옵니까?”

“진정이다.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은 고대 무림의 최상급 무공서다.”

“대형. 어찌하여 비급을 이리로 가져오셨습니까?”

“엉?”

사실을 알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우는 소리부터 나왔다.

“이러다가 우리 다 죽습니다.”

호충은 왕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황궁이 걱정이냐?”

“이를 말씀이십니까. 대형의 무공이야 저희가 입을 다물면 숨길 수 있지만, 저런 비급은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 익히다가 탄로라도 나면 당장 황궁의 군대가 출동해 천수 흑패의 씨를 말릴 겁니다.”

“나를 믿으려거든 다 믿어라. 내가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한다. 내공과 무공을 익힌 흔적을 지워주는 잠룡진(潛龍陣)은 우리를 감춰줄 것이다.”

“그럼 잠룡진 또한 신공의 부류이옵니까?”

신공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나 엄밀히 따지면 신공은 아니었다.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 정도는 되어야 신공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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