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232)

기이한 만남

***

호충은 겨울 동안 객잔에서 건초를 먹고 살을 찌운 나귀를 끌고 길을 나선 참이다.

나귀 뒤에는 전처럼 수레가 달려 있었고, 수레 위의 천막에는 송 영감이 타고 있었다.

“······.”

“걱정되느냐?”

“두 녀석이 잘 할지 모르겠습니다. 맡겨 본 적이 없어서···.”

호충의 곁에는 왕호가 함께하고 있었다. 왕호는 류창과 나준에게 천수 흑패의 관리를 맡기고 호충을 따라나선 참이었다. 자장 흑패처럼 월봉 체계를 만들고 시전에서 손님을 등치는 놈들을 관리하게 했다.

“믿어라. 이후의 일은 그저 감당하면 된다. 지금 걱정해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무엇보다 녀석들이 몸은 제대로 만들지 모르겠네요.”

호충은 두 사람과 천수 흑패의 조직원들에게 무공을 배우기 전에 몸을 만들 방법을 일러주고 오는 길이었다. 몸을 극한으로 단련하는 비고의 기초 훈련법을 알려줬기에 녀석들은 오늘 둘이 떠나는 길에 마중 나오지도 못했다. 다들 방에 쓰러져서 끙끙거리며 앓고 있었다.

“네 녀석부터 걱정해야하지 않을까?”

둘이 아직 무공을 배울 준비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둘을 가르칠 왕호조차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호충은 왕호와 함께 자장으로 돌아가며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저도 어제 같이 기초를 배웠지만, 이렇게 멀쩡하지 않습니까. 저는 준비된 무림인 입니다.”

“큭. 자신감은 좋구나.”

‘어제는 기초도 아니었다. 이놈아.’

호충은 자장으로 가는 여정 중에 가끔 송 영감에게 나귀를 맡기고 왕호와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왕호는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호충은 상쾌한 얼굴로 다시 나귀를 끌었다.

그래도 첫날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첫날은 아예 호충의 등에 업혀서 산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힘들면 수레에 올라가 누웠거라.”

“···아, 아닙니다. 대형. 대형께서도 걷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쓰러지면 내일 훈련을 두 배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잠시.”

왕호는 송 영감이 들어갔던 천막에 들어가 기절하듯 잠에 빠져버렸다.

“도련님이 열심이신 모습을 뵈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다를 게 뭐있어. 나도 매일 하던 훈련인데.”

“이번엔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렇게 거친 동생을 가벼이 대하시니 도련님이 새롭게 보입니다.”

호충은 자신이 전과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몸은 좀 어때? 아직도 열이 나는 것 같아?”

“허허허. 삼의 기운이 대단하긴 합니다. 지금도 겨울의 추위가 느껴지질 않습니다.”

작은 샛바람만 불어도 몸을 떨던 송 영감은 이제 매서운 겨울바람도 이겨내고 있었다.

“영감은 약발이 잘 받는 모양이야. 다행이다.”

호충과 일행은 그렇게 단출한 숫자로 자장을 향해 갔다. 왕호는 꾸준하게 기초 무공을 배워나갔고, 호충 또한 가상의 대련을 이어가며 실전과 같은 경험을 쌓아갔다. 왕호를 가르치며 얻는 바도 적지 않았다.

***

“어라?”

길을 가던 호충은 산 너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대형.”

“왕호. 나귀를 멈추고 수레를 지켜라.”

“예.”

호충은 신법을 발휘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파앗.

“후우. 형님의 무공은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

“나도 그렇다오. 언제 저런 고강한 무공을 익히셨는지···.”

“어르신도 모르셨습니까?”

“도련님과 태어나서부터 함께였지만, 제게도 감쪽같이 숨기셨지요.”

“허. 대체 심계가 얼마나 깊으신 건지···.”

“아마도 이번에 홀로 강산을 주유하시며 기연을 얻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분명 전엔 고절한 무공을 모르셨습니다. 그저 신체를 단련하는 정도로만 익히셨지요.”

“···어르신. 이번에 홀로 떠나시기 전에도 형님은 고수였습니다. 혼자서 장성 수십을 상대하실 정도로요. 몸은 비호처럼 날래고 비도는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

“정말 아예 모르셨네요.”

“허허.”

호충은 앞쪽 산을 넘지 않고 숨어서 귀에 공력을 집중했다.

“너희는 분명 산적패가 분명 하렸다. 바른대로 고하라!”

“아, 아닙니다요. 저희 마을 형님이 산적에게 당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길입니다요.”

“아직도 거짓을 말하는 게냐. 어찌 산적이 아니라고 하느냐. 게다가 너희는 시체뿐이 아니라 잘린 수급까지 가져가는 중이지 않느냐!”

“마을에 산적 하나가 내려와 형님을 해하였고, 저희는 힘을 합쳐 놈의 목을 잘랐습지요. 형님이 녀석의 거도를 앞에서 막지 않았다면 저희가 전부 죽었을 것이옵니다. 녀석의 목은 형님의 제사상에 올릴 생각입니다요.”

“그 사실을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느냐.”

“···저희 마을을 지나던 분이 증명할 수 있을 것이오나, 그분은 길을 떠나셨습니다.”

“허. 이것보아라. 너희 행색이 말해주지 않느냐. 병장기를 휴대하고 우락부락한 장정들이 이리 모여서 길을 가고 있지 않았느냐.”

“아, 아니옵니다. 저 오춘석 이름 석 자를 걸고 아니옵니다. 나리. 저희가 가진 병장기는 또 산적을 마주할까 싶어 겨우겨우 마련한 것 이옵니다요.”

호충은 오춘석이라는 이름과 나리라는 말을 듣고 천산채 녀석들이 엄청난 숫자의 관인들과 마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귀로 파악되는 말들의 투레질 소리와 사람들의 숨소리를 보아하니 정말 엄청난 숫자였다.

‘어찌 여기서 또 마주하는가.’

녀석들은 녹림으로 가다가 횡액을 당한 것이다.

호충은 얼른 수레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왕호에게 말했다.

“왕호. 우리의 짐을 숨겨라. 멀찌감치 땅을 파고 묻어.”

“예? 알겠습니다.”

호충의 짐에는 여러 병장기와 비급이 들어 있었기에 숨겨야 했다. 관의 인물이 뒤지기라도 하면 외통수였다.

호충은 자신의 품에 있던 유엽비도와 회칼까지 모두 땅에 묻고 천천히 산을 넘었다.

“워워. 거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오. 어찌 산중에 마차가 이리 많소?”

“누구냐!”

“지나가는 객이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오만···.”

“너는 깃발이 보이지 않느냐. 어서 꿇어라.”

호충과 왕호, 송 영감은 얼른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황실의 깃발을 뵈옵니다.”

황실의 깃발이나 황제가 아닌 그 아래였기에 만세가 아니라 천세였다.

“너희는 어디서 오는 길이냐.”

“나리. 저희는 천수에 머물다가 자장의 본가로 가고 있습니다.”

“······.”

호충은 멀리 꿇어앉은 오춘석과 눈을 마주치고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호충은 놀란 듯이 말했다.

“어? 저들은···.”

“너는 저들을 아는가?”

“예. 나리. 지난 번 길을 가다가 마을에 횡액이 생겼음을 들었지요. 저자의 이름이 춘석이라 했습니다.”

“······방금 이름을 말 했으니 멀리서 네가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럼 네게 묻겠다.”

관부의 인물은 오춘석을 향해 물었다.

“마을에 들렀다면 저 자의 이름을 알 터. 네가 모른다면 지금 저자가 거짓을 고한 것이다.”

“저, 저분의 이름은···.”

호충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자장 진가장의 막내 도련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진호충 공자이십니다.”

“진가장?!”

호충은 얼른 말을 받았다. 저들을 살리려면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마을에 산적 하나가 내려와 저들이 마을에서 따르는 큰형님을 해하였다고 합니다. 고향에 고인을 모신다 하였는데, 여기서 다시 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네가 진가장의 막내라고?”

“소인 자장에서 작은 장원을 가진 진씨 가문의 막내 진호충이라 하옵니다.”

“흐음. 너는 저 마차에 누가 탔는지 아느냐?”

“황실의 깃발임은 알아볼 수 있사오나 아직 배움이 부족하여···.”

“태자 전하께서 안에 계시고 태자 전하의 배필이 되실 분도 함께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너를 알아볼 수도 있음이다. 아직도 네가 진가장의 막내라고 주장할 것이냐?”

“!!”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고한다면 죄를 감해주마.”

“진정이옵니다. 저는 진씨 가문의 막내 진호충이옵니다.”

관부의 인물은 곧장 마차로 가서 지금까지 확인한 일을 고하였다.

“·········.”

그러자 문이 열리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호충과 일행은 모두 고개를 숙여 얼굴을 들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옳게 답한다면 네 말이 진실이라 여기겠다.”

“예이.”

그녀는 태자의 배필로 낙점되었다던 모용청의 딸 모용희였다.

“진씨 가문의 장자를 낳은 어미의 이름을 아느냐?”

“대부인 마님은 모용 가의 금지옥엽이시며 소자 군자를 쓰시옵니다.”

모용소군이 바로 호현의 어미였다.

“오호. 그렇다면 진씨 가문 장자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네 형제의 이름을 모두 대보아라.”

“첫째 형님은 호현, 둘째 형님은 호중, 셋째 형님은 호성이며 막내 누이는 호란이라는 이름을 쓰옵니다.”

“고개를 들라.”

호충은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눈은 아래를 보고 있었다. 감히 황실의 인물과 얼굴을 마주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

‘어찌 이리··· 닮았을까.’

모용희는 호충을 처음 보았는데, 누군가와 너무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자신의 사촌 오라비인 진호현은 분명 아니었다.

“나는 네 나이가 열일곱이라 들었거늘 왜 이리 나이가 많아 보이느냐.”

“···이번 외유에서 약초를 잘못 먹어 갑자기 이리 되었습니다요.”

공청석유는 또 약초 오남용의 증거가 되었다.

“저런.”

“제가 아직 소식이 어두워 높으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옵니다. 부디 용서하여주십시오.”

넌 누구냐는 뜻이었다.

“나는 소군 고모님의 조카로 모용가의 희다.”

“아!”

‘모용가를 통하여 상승 무공을 해결한다 하더니 바로 이 때문이었구나!’

“너는 사사로이 나와 사촌지간이 되는 구나.”

“모용가에 큰 경사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늦었지만 감축 드리옵니다. 마마.”

“훗. 전하. 별일 아닌 듯하옵니다. 마침 제 사촌이 지나며 증인이 되었으니 저들을 보내도 될 것 같사옵니다.”

“분명 산적패로 보였거늘.”

호충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두 이 자리에서 목이 잘렸을 것이다. 태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다시 명령했다.

“혹시 모르니 저들의 짐도 확인하라.”

“예. 전하. 합당하신 처사이시옵니다. 여봐라. 저들의 짐을 확인하라.”

“충!”

호충은 느긋하게 짐을 뒤지는 관인들을 기다렸다.

“···여행에 필요한 옷가지와 건량, 식기가 전부입니다.”

“소지품도 확인해야하지 않겠느냐.”

“충!”

관인들이 자신의 품속을 뒤져도 호충은 고분고분 기다렸다.

“···조금의 노자와 옛 성현의 서책이 전부입니다.”

노자는 호충의 품에서 나온 것이고 성현의 책은 송 영감의 품에서 나왔다. 언제 호충이 다시 공부를 할지 몰라 가지고 다닌 것이다.

“허어. 험한 산길을 오가면서 병장기 하나도 없다? 오히려 괴이하다 생각되지 않느냐?”

한쪽은 병장기로 가득하고 한쪽은 아무것도 없었다.

호충은 얼른 변명했다.

“천수로 오는 길에 산적에게 횡액을 당한바 있어 무사를 하나 고용하였습니다. 본인은 무공을 잘 모르는지라 날붙이를 쓰지 못하옵니다.”

“저 자는 무림 세가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무공을 모른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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