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궁초연
***
“황태자 전하와 곧 전하의 배필이 되실 마마를 뵙고 오는 길이라오.”
“!!”
“가서 첫째 형님께 전해주시면 될 거요.”
“···태, 태자 전하를 뵈었단 말이오?”
사마 총관은 첫째 호현을 통해 황궁과의 일을 알고 있었다.
“이제야 관심이 생기시오? 내가 이 일을 전하라고 종복을 보냈는데, 총관의 무사 덕분에 가주님께는 직접 보고할 생각이오.”
“마마를 뵈었다면 그 분의 성도 알고 있소?”
“내가 왜 첫째 형님께 전하라 했겠는가. 대부인 마님의 사가에 경사가 있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모용희를 봤구나.’
“그 일을 자세히···.”
“나머지는 가주님께 들으시오. 나는 지금 가주전에 들 생각이니.”
“자, 잠시만.”
“가주님께 내가 당한 일을 다 설명하리다. 그리고 가주님께서 내게 어찌하는지 듣고 총관과 무사에게 사과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사 공자!”
“바쁜 총관은 할 일이나 하시오.”
“······.”
멍하니 서 있던 사마 총관은 곧 호충의 뒤를 따랐다.
“뭐요?”
“나도 가주전에 볼 일이 있소.”
“풋. 그러시던가.”
총관 덕분에 호충은 다음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주전에 들 수 있었다.
“불초소생 짧은 시간 세상을 돌아보고 돌아왔습니다.”
“벌써?”
두 달이나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여전히 가주는 호충에게 관심도 없었다.
“알았으니 가 보아라.”
총관이 함께 들어와 호충을 내보내는 것이다.
총관은 호충이 그냥 나가지 않도록 방금 들었던 소식을 돌려 말했다.
“가주님. 사 공자님이 여행 중에 귀인을 만났다 합니다.”
“귀인?”
“······.”
호충은 입을 열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태자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설명했다.
“천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리하여 모용 세가에 큰 경사가 있음을 알았나이다.”
“정녕 태자 전하를 만났단 말이냐!”
“여기 전하께 받은 황궁의 금자가 있습니다.”
황궁에서 사용하는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주머니와 그 안에 들어 있는 금자는 호충의 말을 증거 했다.
“오호.”
“이를 총관에게 보고하려 하였으나, 총관의 무사가 제 종복에게 손찌검을 하고 돌려보내 직접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
사마 총관은 호충이 마지막에야 이 말을 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지.’
“뭣이?”
“또한 사과를 원하는 제게 검을 뽑아들어 지금까지 연마한 부족한 무공으로 녀석을 혼내줬습니다. 제게 죄가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진원우의 고개가 총관을 향해 돌아갔다.
“이게 무슨 말인가 총관.”
“···연유를 파악해보겠습니다.”
“사마 총관은 무사가 쓰러진 것을 보고 연유를 따지지도 않고 저를 핍박하였습니다.”
“핍박까지는 아니었···.”
“분명 핍박이었습니다. 무사가 가주님의 직계인 내게 검을 들었음에도 무사가 검을 뽑은 연유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가주님의 자식인 내가 어찌 함부로 진가장의 무사를 상하게 하겠습니까. 무사에게 합당한 연유가 있다면 내게도 합당한 연유가 있으리라 여겨야 맞지 않습니까!”
“조용! 네 말이 거짓이 없다면 그 무사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겠다.”
“저는 이미 총관에게 활동비를 삭감 당했고, 앞으로의 끼니를 직접 해결할 것이며, 종복의 봉급도 알아서 지급하라는 명을 들었습니다. 제가 이만한 벌을 받았으니, 해당 무사에게도 합당한 벌이 내리길 바라옵니다.”
“···총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들은 것이 핍박이 아니라하시면 아니라 여기겠습니다. 가주님.”
“·········너는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지 마라.”
“······.”
호충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아니다. 분명 아니야. 나는 가주의 친자식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일부러 가주에게 와서 오늘의 일을 말했지만, 가주는 자신을 향해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무사의 검에 베인 귓불에서 떨어진 피가 어깨에 묻었지만, 그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도대체 난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가.’
“또한 태자 전하와 마마님의 일은 밖에 나가서 입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또한 태자 전하의 명에 따라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
“···예.”
“너는 곧 화산에 가야할 터. 다른 일에 관여하지 말고 길을 떠날 준비나 하여라.”
“그리하지요.”
호충은 바로 짐을 싸서 나갈 생각이었다.
“오늘 일은 연유를 파악하고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
“······가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진원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호충을 노려봤다. 한 번쯤 화를 낼 법도 한데 그저 따르기만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공사다망하신 가주님의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게 했나이다.”
“···흠.”
호충이 가주전에서 나가고 남은 가주와 총관의 대화가 시작 되었다.
“녀석의 무공이 동급 무사를 상대할 정도였는가.”
“아마도 무사가 공자를 경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런. 정말 징계가 필요하겠군.”
본래 징계할 생각도 없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징계를 생각하는 이유도 상대를 경시했기 때문이지, 진가장의 직계자손에게 검을 들이밀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사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녀석이 화산에 가지 않는다고 하진 않겠지?”
“공자에게 처음 맡겨진 일이니 쉬이 여기지 않을 것이옵니다. 제게도 간다 하였고, 방금 가주전에서도 가주님의 말씀을 따른다 하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갈 것이옵니다.”
“밖에 내보냈더니, 녀석이 담이 커졌어. 괜히 내보낸 모양이야.”
“그 사이 성장하기도 하셨습니다.”
“총관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크긴 컸군.”
호충에게 관심도 없었던 탓이다.
“녀석이 무례했다면 마음 풀게 총관.”
진원우는 오히려 총관의 마음이 상하진 않았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가주님.”
“무사의 징계는 알아서 하고 녀석에게도 징계했다고만 알려주게. 따로 보고할 필요는 없네.”
“예. 가주님.”
***
호충은 멀리서 안의 대화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가 친자식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진원우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은 호충에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어차피 자신도 가주와 형제들을 가족이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왜 진원우는 이 몸의 어미를 진가장에 받아들였을까.’
친자식이 아니라 확신한다면 자신은 분명 어미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일 것이다.
호충은 기억을 뒤져 이 몸의 어미를 기억해 냈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 진양의를 동원해야 했다.
‘···겁나게 예쁘구나. 그래. 예쁘면 다 용서가 되지.’
젊은 날에 명을 달리한 이 몸의 어미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미모의 소유자였다. 모용희가 경국지색이라는 평을 듣는다지만, 어머니에 비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이었다.
‘북궁초연이라···. 이름도 예쁘네. 진원우 저 새끼가 혹할 만 해.’
호충은 어미인 북궁초연과의 기억을 머리에서 되새기다가 또 흐릿한 기억과 마주했다.
‘어라? 진양의가 십성에 올랐는데도 막혀있어?’
호충은 여전히 접근을 불허하는 기억에 불만이었지만, 아직 진양의가 부족하다 여겼다.
‘에효. 진양의의 오의까지 돌파하면 흐릿한 기억이 드러나겠지.’
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호충은 옆에서 걷고 있는 송 영감에게 말을 걸었다.
“영감.”
“예. 도련님.”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
“아무래도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한동안 묻지 않으셨는데···.”
“병으로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고. 아닌 거 다 알아.”
“······.”
영감은 예전부터 어머니가 병약하여 젊은 나이가 죽었다고 전했지만, 이는 분명 사실이 아니었다. 기억 속 북궁초연은 얼굴이 발그레했고 지극히 건강해보였다.
“이제 아셔야 할 때가 되었지요.”
영감은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거처로 향했다.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얘기가 길어지나?’
호충은 조용히 송 영감의 뒤를 따랐다.
***
“······.”
송 영감은 호충의 갈라진 귓불에 고약(膏藥)을 꺼내 바르며 입을 열었다.
“저는 항상 그날을 후회합니다.”
호충은 송 영감의 손에서 고약(膏藥)을 가져와 송 영감의 얼굴에 발랐다.
“···그 새끼는 아무래도 그냥 못 넘어가겠다.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야겠어.”
호충은 송 영감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을 만든 그 녀석을 너무 쉽게 기절시켰다고 후회했다.
“어차피 떠날 곳에 미련 두지 마십시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일을 키워봐야 도련님께 득이 될 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이득만 갖고 움직이지 않아. 나는 마음 가는대로 살기 위해 무공을 연마했어.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맞았는데, 가만히 있는 건 내 마음이 아냐. 하지만···. 영감의 부탁이라면 가만히 있을게.”
“···고맙습니다. 도련님.”
“그날을 왜 후회하는 지나 얘기해.”
호충은 고약을 집어넣고 팔짱을 꼈다.
“그날은 제가 외부로 심부름을 나간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고 일주일이나 지나서 진가장에 돌아왔지요. 제가 곁에 있었더라면 몸으로라도 막을 수 있었을 터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 송 영감은 심부름을 나갔다?”
항상 자신과 함께했기에 송 영감이 오랜 시간 외부 심부름을 나간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누가 시켰지?”
“당시 총관의 수하 중 하나가 시킨 일이었으나, 총관이 시켰는지 가주님이 시켰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좋아. 계속해.”
“돌아와서 할멈에게 들어보니, 할멈 또한 그날 외부에 일을 하러 나갔다고 했습니다.”
하나 같이 이상한 일이지만, 호충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할멈과 저는 진가장의 무사를 통해 마님께서 무슨 일을 당하셨는지 들었습니다.”
“······.”
송 영감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마님께서···. 크흡. 마님께서 도련님과 외출을 하셨다가 봉변을 당하셨다 했습니다.”
‘···종복이 하나도 없는데 혼자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것도 이상하군.’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도련님을 보호하려다가 칼을 맞았고, 저는 정신을 놓아버리신 도련님을 진가장에 돌아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전부?”
“예.”
“영감에게 그 얘길 전해준 무사의 이름은 알아?”
“···이름이 간단해서 지금도 기억합니다. 이삼이라 했습니다.”
“······.”
지금도 가주의 호위를 맡고 있는 일류무사의 이름이었다.
“정리하면 어머니는 진가장 밖으로 나갔다가 흉수의 칼에 명을 달리하였는데, 마침 영감과 할멈은 자리를 비웠다는 얘기네. 어머니의 시신은 보았어?”
“···종복이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진가장은 마님을 바로 화장하고 진가장 뒷산 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내일 떠나기 전에 어머니 묘소에 다녀와야겠네.”
“···괜찮으십니까?”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나질 않아.”
그저 붉은 피만 떠오를 뿐이다.
“···도련님은 당시 다섯 살에 불과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요.”
호충은 또 눈물바람을 보이려는 영감의 관심을 돌리려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보다 송 영감은 어머니와 함께 진가장에 왔다고 했잖아. 언제부터 어머니와 함께했지?”
“사실 마님과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
호충은 이어진 송 영감의 말로 어머니의 심성을 알 수 있었다.
“할멈과 저는 수도 근처의 관인 집안에서 종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인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오갈 곳이 없어졌지요. 관인이 다른 젊은 종복들은 챙겼지만, 저희는 필요 없다고 느낀 모양이었습니다.”
“···거 상당히 고마운 사람이네.”
“예?”
“덕분에 내가 영감과 할멈을 만났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