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232)

산서(山西) 홍동(哄洞)

***

화진은 옥비연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혹시. 옥 언니의···.”

“예. 오래 전에 잠시 뵌 적이 있지요.”

이미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화진이 막 기녀에 적을 올렸을 때였고, 주변의 기녀들에 대해서 많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홍루의 기녀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때도 그때였다. 이후 화진은 기녀들과 홍루 근처를 지나다가 문 앞을 지키는 또래를 봤던 기억이 있었다.

[쟤가 옥 언니 자식이라고 하던데?]

[맞아. 예전에 옥 언니가 왜 갑자기 홍루로 갔나하고 알아봤더니 자식을 낳았더랬지.]

[어쩜 저렇게 고울까. 이름은 뭐야?]

[옥 언니 성을 따랐고 이름은 비연이라 했어.]

[비연? 이름도 멋있다. 나중에 말 걸어봐야지.]

[나이는 네가 한참 더 많을 걸?]

[뭐 어떠니? 얼굴만 잘 생기면 그만이지.]

[아서라. 옥 언니가 주변에 발이 좀 넓니? 아들은 제대로 된 여자와 만나길 원할 거야.]

[그래봤자 이젠 홍루의 기녀잖아.]

[얼굴 뜯어 먹고 사냐? 쟤 아무것도 없는 개털이야.]

[어머. 고마워. 큰일 날 뻔 했네?]

[뭐? 가자. 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

화진은 막내 기녀라 말을 섞을 수 없었지만, 그의 이름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기억납니다. 언니는 어찌 살고 계신가요.”

“기루를 그만 두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하셨습니다.”

“아!”

“마지막엔 편히 가셨으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루주.”

화진은 옥비연과 그의 어미에 관해 들었던 기녀들의 뒷담화가 더 있었다. 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할 말도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대신 호충과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를 물었다.

“공자님과 인연이 닿으신 모양이죠?”

“저 같은 것까지 품으실 정도로 품이 넓은 분이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이제 공자님의 의제가 되셨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형수님.”

“어서 마차로 오르세요. 두 분이 계셔서 가는 길이 심심치 않겠어요.”

덕분에 사중환과 옥비연은 마차를 타고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화진은 흘낏 비연을 보며 과거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옥 언니가 낳은 자식이 누구의 자식이라고 소문이 돌았더라···.’

“!”

잠시 멈칫 했던 화진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

진원우는 어제 저녁에 총관의 거처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보고 받고 다음날 아침에 자신의 휑한 서랍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없군.”

총관의 자금뿐이 아니라 자신의 거처에도 도둑이 든 것이다.

“이삼.”

탁.

천장 들보에 숨어 있다가 바닥으로 내려선 이삼이 부복하며 답했다.

“옙. 가주님.”

“여기까지 도둑이 다녀갈 수 있을까?”

“!!”

“나를 제외해도 너와 다른 두 명의 호위가 있는데, 모두의 눈을 피해 내 서랍을 열어 도둑질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 가능하옵니다. 저희는 언제나 가주님과 함께하고 있으니, 저희가 가주님과 자리를 비웠다면···.”

“나는 항상 여기에 있었는데?”

“어제 잠시 셋째 공자의 처소로 가셨지요.”

“······.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시종들은 항상 이곳을 지키고 있지요.”

이삼은 시종을 의심하며 한 말이었지만, 진원우는 총관과 마찬가지로 시종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시종들 사이에도 나의 호위가 있지 않은가.”

가주의 호위 무사 중에 여성도 있었는데, 항상 시종의 복장을 하고 가주전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호충도 알아봤던 여인이다.

“미(嵋)를 불러오겠습니다.”

“······.”

손짓으로 이삼을 내보낸 진원우는 고심에 빠졌다.

‘미(嵋)가 봤다면 바로 보고했을 것이다. 보지 못했기에 말하지 않은 것이지.’

그 사이 밖에 있던 미(嵋)가 이삼과 함께 들어와 부복했다.

“가주님을 뵈옵니다.”

“···어제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가주전에 들어온 인물이 있더냐?”

“···시종들 전부가 제 시야에 있었습니다. 벗어난 인물은 없사옵니다.”

“무사들은?”

“셋째 공자의 처소로 가실 때 무사들은 전부 가주님을 따라 갔습니다. 이후 가주전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미(嵋)의 보고를 들은 진원우는 이삼을 향해 물었다.

“···이삼. 너는 미(嵋)의 눈을 피해 가주전에 들어올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호위들은 서로가 비슷한 무위를 갖추고 있었고, 이삼은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무공도 없었다. 미(嵋)의 눈을 피해 가주전에 들어오는 것은 이삼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신투(神偸)가 다녀간 모양이군.”

신투(神偸)는 절정 이상의 신법을 자랑하며 도둑질을 일삼는 이의 별호였다. 도둑인 신투 또한 녹림의 사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관(官)과 섞일 수 없는 도둑이다. 도둑으로 쫓기나 절정의 무공을 익혀 쫓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신투(神偸)는 일인전승으로 전해지는 문파의 절정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무림에서 신투(神偸)에 관해서 밝혀진 바는 절정의 신법 외엔 아무것도 없었고, 가끔 고관대작의 집에 신투(神偸)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돌곤 했었다.

진원우는 이번에 진가장이 목표였다고 짐작했다.

“!!”

“!!”

“신투가 다녀갔다면 총관이 보관하던 진가장의 운영 자금 또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 가져가지 않은 것은 진가장에 예의를 지켜준 것이겠지.”

“신투(神偸)가 어찌 진가장에···.”

진원우는 신투가 범인이라 확정짓고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투가 정무맹의 인물이었던가?’

협의맹의 주요세력인 진가장에서 확장을 꾀하고 있을 때 훼방을 놓고 있었기에 드는 의심이었다. 정무맹에서 사주한 것이라면 말이 되기 때문이다.

‘정무맹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모르지 않을 터. 일이 급하니 신투까지 불렀구나.’

“도둑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다. 부족한 자금은 중부전장에서 다시 융통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시간 싸움이다. 가서 총관을 데려오게.”

“예. 가주님.”

이삼이 나가고 미(嵋)는 크게 자책하며 진원우 앞에 꿇어앉았다.

“제가 안일하여 도둑에게 당했습니다. 벌하여주십시오.”

“미(嵋)는 일어나라. 네가 아니라 누가 있었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됐다. 앞으로 너는 시종의 옷을 벗고 호위들과 같이 내 곁에 있어라.”

“아!”

“앞으로는 신투가 다시 와도 지켜야 할 것이다. 너는 목숨을 바쳐서 가주전을 지켜라.”

“예! 가주님. 명에 따릅니다!”

진원우는 총관을 기다리며 비어있는 서랍에 다시 눈길을 줬다.

‘금잠(金簪)까지 가져갔군.’

진원우는 호충이 가져간 금비녀와 얽힌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인에게 선물하려고 사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맡아둔 것이었다. 이 금비녀를 빌미로 그녀와의 인연을 만들 수 있지 않았는가.

‘어차피 그 년은 한참 전에 죽었지.’

금잠(金簪)은 호충의 어미인 북궁초연의 유품이었다.

***

신투 덕분에 용의선상에 오르지도 않은 호충은 열심히 산을 내달리는 중이었다.

“진가장도 별거 아니네. 아무도 없어.”

“허허허. 정말 빠르십니다. 말보다 빠르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경신법을 익혔는데!”

“허허허.”

“더 빨리 갈까?”

“가능하십니까?”

“그럼!”

파앗!

안 그래도 빠른 호충의 신형이 다시 속도를 붙이며 쏘아져나갔다.

“허허허.”

송 영감은 호충의 등에 업혀서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볼을 간질이는 호충의 머리칼도 좋았고, 입만 벌리면 차가운 바람이 가슴 가득 들어오는 경험도 신선했다.

“허허허허.”

***

산서(山西)는 태원(太原)을 중심으로 관도가 뻗어있었는데, 섬서(陝西)에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분양(汾陽)과 홍동(哄洞)은 두 지역을 오가는 상인들로 성세를 이루고 있었다.

진가장은 분양(汾陽)과 홍동(哄洞)에 지부를 설립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분양(汾陽)에는 첫째 진호현이 홍동(哄洞)에는 둘째 진호중이 나가 있었으며, 하남과 태원을 잊는 길목인 장치(長治)는 염태중이 파견되어 있었고, 하북과 태원의 길목인 양천(陽泉)엔 총관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중심인 태원(太原)에는 조만간 가주 진원우가 오기로 예정되어있었다.

이 중 홍동(哄洞)에 나와 무관을 설립하던 둘째 호중은 자꾸만 불편한 일을 겪고 있었다.

“공자님. 일꾼들이 말썽입니다.”

“또?”

넉넉한 자금을 투입해 무관을 짓고 있었기에 인부들에게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삯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한 삯을 주어도 인부들은 항상 말썽을 일으켰다.

처음 인부들이 말썽을 일으킨 것은 아주 소소한 일이었다. 공사하느라 고생한다며 식사를 대접했더니 배탈이 났다며 단체로 공사를 멈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을 쉬고 싶어 인부들이 입을 맞춘 것이었다.

다음엔 공사 중에 사고가 있었다며 몇 명이 빠져나갔고, 다시 인부를 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인부가 모자라니 당연히 공사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다친 인부의 치료비용까지 요구했는데, 홍동(哄洞)의 이방인으로 시작하는 진가장으로선 인망을 잃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했다.

어떤 날은 목공 하나가 도박판에서 가진 돈을 전부 잃었다며 가불금을 요청했었다. 당연히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는데, 다음 날엔 인부 다섯이 가불금을 요청했다. 결국 해당 인부들을 자르고 다른 인부를 구해야 했다.

최근엔 일이 힘들다며 그만두는 인부들이 상당했다. 하는 일에 비해 삯이 너무 적다는 말도 들려왔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자신들이 요구한 목재가 도착하지 않았다며···.”

“목재는 다 거기서 거기이질 않소! 게다가 인부들이 요청한 나무가 특별하지도 않았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목재였거늘.”

“사실 인부들이 원하는 상회가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서 자재를 수급하고 싶어서 이러지 않나···.”

“하! 이젠 하다하다 목재를 사오는 상회까지 저들이 참견한단 말이오?”

“홍동(哄洞)의 토박이들이라 저들끼리 주고받는 것이 있겠지요.”

으득.

호중은 화를 참아내기 쉽지 않았지만, 의자에 등을 기대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후.”

“별일 아니니 들어주는 것이 어떨까요?”

“목재뿐이겠소? 오늘 목재를 허락하면 내일은 주춧돌과 기와까지 바꾸자고 요구할 것이오. 이후 작은 것 하나까지 참견하려 들겠지.”

“···하지만 홍동(哄洞)에서 진가장이 자리 잡자면 토박이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들의 자식들이 진가장의 무관에서 기합 소리를 내지 않겠습니까.”

“······.”

무관을 세워도 사람이 찾아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어린 아이들을 시작으로 무관에서 무공을 가르치며 진가장의 이름을 알려야 했고, 진가장의 표국과 상회도 무관의 힘을 등에 업고 장사해야 했다. 인부들을 무시하면 이들을 통해 진가장에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음이다.

“홍동(哄洞)은 그대가 확실하게 잡고 있다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매번 저런 인부들만 데려오는 것이오!”

호중 옆에서 인부들의 일을 전하는 사람은 진가장에서부터 함께한 사람이 아니었다. 홍동(哄洞)에서 지역의 촌장들과 인맥을 유지하고 지역에서 나름 알아주는 인사라서 채용한 사람이었다.

“홍동(哄洞)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이들로 엄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공사가 이어왔겠지요. 만약 아무나 데려다 일을 시켰다면 공사 자재를 빼먹는 놈들이 넘쳐났을 것이옵니다.”

“···이미 자네 입으로 얘기하지 않았는가. 홍동(哄洞)의 토박이들이 저들끼리 주고받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이오. 이것이 어찌 공사 자재를 빼먹는 것과 다를 것인가.”

“자재를 훔치는 놈들은 진가장에 피해를 줄 것이오나, 같은 가격의 자재를 아는 곳에 수급하는 것은 거래하는 상회만 달라질 뿐이옵니다. 그러니 진가장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일입지요.”

“······후우. 알겠소. 이번만 허락하겠소. 목재 수급은 인부들이 아는 곳으로 하겠지만, 이번 목재로 끝이라는 것을 인부들에게 확실하게 주지시켜 주시오. 다음은 없소. 만약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인부들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다시 뽑는 한이 있어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오.”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제가 인부들이 추천하는 상회 중에서도 가장 좋은 목재를 취급하는 상회를 엄선하겠습니다.”

“나가보시오.”

“예. 공자님.”

길게 읍하고 밖으로 나온 남자는 인부들이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부 하나와 눈을 마주치고 턱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인부가 일손을 놓고 남자를 따라 후미진 곳으로 향했다.

“어찌되시었습니까.”

“제 놈이 어쩌겠느냐.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로운 명령(命令)이 하달되었다.”

“······.”

명령이라는 말에 잠시 몸이 굳었던 남자는 곧 신색을 회복하고 남자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공사 지연은 충분하니 이제 충실하게 공사를 진행하라 하신다.”

“!”

이유가 궁금했지만 명령에 토를 달수는 없었다. 남자는 그런 일꾼의 마음을 읽었는지 자신이 아는 선에서 이유를 설명했다.

“어차피 우리 것이 된다는 구나.”

“아!”

“교(敎)의 행사가 어찌 진행 될지는 나도 모른다. 우리는 내려진 명령만 충실히 하면 될 것이다.”

일꾼은 작은 목소리로 굳게 답했다.

“···명(明). 복(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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