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232)

마교(魔教)

***

“···명(明). 복(服).”

보통 교(敎)라 함은 세간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宗敎)를 통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명령할 명(命)이 아닌 밝을 명(明)과 복(服)이라는 답이 붙었다면, 단 하나의 종교를 특정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일월신교(日月神敎) 혹은 천마신교(天魔神敎)라고 부르는 종교단체였고, 무림에선 흔히 마교(魔教)로 통칭하는 집단이었다. 오백 년 전에는 암흑마교(暗黑魔敎)라고 불리기도 했던 마교(魔教)는 과거 두 번이나 황제를 옹립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모두 토사구팽(兔死狗烹) 당하여 뿔뿔이 흩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가서 동지들에게 공사를 충실히 하라고 전하게.”

“예. 장 교사(敎師)님.”

마교(魔教)는 무림 방파가 없어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산서(山西)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가장의 홍동(哄洞) 지부를 설립하는 인부들을 비롯해 호중의 곁에서 도움을 주는 장 씨까지 대부분의 인물이 마교(魔教)의 인사였다.

“어허. 항상 입을 조심하라지 않았는가. 목소리를 줄이게.”

“헙. 죄송합니다.”

“밖에선 내 이름을 그대로 부르도록 하게.”

“예. 장문소님.”

“가보게.”

“예.”

일꾼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일터를 향했고, 장문소라 불린 이는 목재를 수급할 상회로 향했다.

목재가 가득 쌓인 상회에 도착한 장문소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장부를 보던 인물이 장문소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장 교사(敎師)님.”

목재 상회의 주인 또한 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진가장 무관 공사에 납품할 목재는 앞으로 여기서 담당하게 될 것이네. 윤 지부장은 준비토록하게.”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이문을 조금 더 남겨도 되겠군요.”

“이 할을 추가하게. 좋은 목재라서 가격이 비싸다고 하면 될 일이네.”

“예. 그리하겠습니다.”

“본점에서 내려온 명은 없었는가?”

“있었습니다. 진가장이 홍동(哄洞)을 포함한 태원(太原), 장치(長治), 분양(汾陽), 양천(陽泉)에 동시다발적으로 무관을 설립하며 진출하고 있기에 서로 간에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진가장이 산서(山西)에 진출할 모든 도시가 거론되었다.

‘최대한 밖으로 힘을 빼놓으라는 말이군.’

진가장의 장원이 존재하는 섬서(陝西)를 비우게 하여 공격을 용이하게 만들라는 명이었다.

‘진가장은 모든 자금을 확장에 쏟아 붇고 있다. 이제 병력까지 모두 밖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명을 따르는 무관을 동원해야겠다.”

“홍동(哄洞)에는 패도문과 대천문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세력은 아니라도 산서(山西)에 존재하는 무림 방파가 있었다.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진 못해도 나름의 영향력을 갖고 성세를 키워나가는 군소방파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마교(魔教)는 이들까지 포섭해 놓고 산서(山西)를 집어 삼키는 중이었다.

“대천문은 정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으니, 사파 성향에 가까운 패도문을 중심으로 동원하는 편이 좋겠다. 패도문 문주에게 내가 오늘 저녁에 보잔다고 전하게. 대천문은 패도문을 뒤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할 것이네.”

“예. 장 교사(敎師)님.”

***

“장 사부님. 그간 격조했습니다.”

“허허허. 무소식이 희소식인 법이오. 사 문주님은 신수가 훤해지셨소.”

“다 장 사부님 덕분이지요. 장 사부님이 아니셨으면 저희 패도문은 진즉에 무너졌을 것입니다.”

패도문의 문주 사국도는 과거 패도문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장문소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의 위기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패도문은 밀려오는 자금 회수 압박과 문도들의 이탈을 겪고 있는 와중이었다. 당시 패도문의 자금을 맡았던 총관까지 패도문의 모든 자금을 횡령하여 도주하는 바람에 사국도는 자진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때 나타난 장문소는 패도문에 자금을 회수하려드는 전장의 지부장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패도문을 보증하겠다고 나섰고, 전장의 지부장들은 장문소를 믿고 자금 회수를 미뤘다. 또한 장문소는 홍동(哄洞)의 인맥을 동원하여 많은 문도들이 돌아오게 하였고, 이후 패도문은 오히려 전보다 많은 문도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도 뒤로 도움을 주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목재상 윤 씨에게 들었습니다. 장 사부님께서 홍동(哄洞)의 상회를 도시며 저희에게 조금 더 저렴하게 물건을 넘기라 하셨다고······.”

“어허. 윤 가 그 사람 입이 무겁질 않구먼. 앞으로 상종하지 못 하겠어.”

“아, 아닙니다. 목재상은 제가 하도 구슬려서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흠흠. 그런 얘긴 그만하세.”

“예. 장 사부님.”

사국도는 자신을 높이는 말조차 꺼려하는 장 사부를 크게 존경했고, 부모보다 더 믿고 있었다.

“이미 들었겠지만 진가장이 홍동(哄洞)에 무관을 건설 중이네.”

“아···.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사 문주는 어찌할 생각인가?”

“에효. 저희가 뭘 어쩌겠습니까. 진가장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세가가 아닙니까. 들어보니 정무맹에서도 함부로 이들의 행사를 막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무맹이 힘을 못 쓸 정도이니 저희는 그저 숨이 조여 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이름 높은 진씨 세가의 무관이 설립되면 너도 나도 진가장의 문도가 되고자 할 것이다. 이렇다 할 좋은 무공도 없고, 자금 사정도 넉넉지 않은 군소방파는 눈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진가장으로 들어갔네.”

“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홍동(哄洞)에서 무관을 설립하는 공사도 내가 담당하고 있다네.”

“어, 어찌하여!”

홍동(哄洞)에서 존경 받는 장 사부가 할 일이 아니었다. 또한 자신이 존경하는 장 사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또한 진씨 세가의 둘째 곁에서 지장(智將) 노릇을 하고 있지.”

“···장 사부님.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는가.”

“장 사부님은 홍동(哄洞)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외부의 평판은 어찌되든 상관없네.”

“···장 사부님.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옵니다. 당장 거기서 나오셔야 합니다. 아무리 진가장이 돈을 많이 주어도···.”

“허! 사 문주가 날 어찌 생각했는지 알겠네. 사 문주 눈에 내가 그리 보였다면 더 할 말이 없네. 그만 일어나 보겠네.”

“!!”

사국도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 장 사부님.”

사국도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문소의 팔소매를 붙들었다.

“제가 어리석어 장 사부님의 깊은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흠.”

“장 사부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면 저 또한 돕겠습니다.”

“······내가 사 문주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장문소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적을 알려면 적의 소굴로 들어가라지 않은가.”

“아! 장 사부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네. 나만큼 홍동(哄洞)을 아는 이가 없으니 지기(知己)를 이뤘고, 남은 것은 지피(知彼). 적을 아는 것이었네. 그래서 진가장이 홍동(哄洞)에 진출한다는 말에 곧장 달려갔지. 진가장의 상황을 알면 홍동(哄洞)의 무관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역시!”

장문소는 사국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역시는 무슨 역시인가? 방금까지 자네가 나를 돈이나 밝히는 놈이라고 했던 것 같네만?”

“아이고. 죄송합니다. 장 사부님. 제가 이렇게 머리가 부족합니다.”

장문소는 한 번 더 일갈하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내가 지금까지 홍동(哄洞)을 위해 한 일이 적지 않거늘 어찌 날 그리 봤는가!”

“······정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장 사부님.”

“에잉.”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자네가 그리 생각했으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어. 내 평소 외부의 평판을 신경 쓰지 않지만, 실로 씁쓸한 일이네.”

“염려치 마십시오. 제가 다 알리겠습니다. 장 사부님은 큰 뜻이 있다고 말입니다.”

“···자네. 입을 조심해야겠어.”

“예?”

“내가 기껏 진가장으로 들어갔는데, 계획을 다 망칠 셈인가? 홍동(哄洞)에 내 소문이 퍼지면 진가장의 귀엔 들어가지 않겠는가?”

“아!”

“내가 자네를 믿고 어찌 일을 하겠는가.”

“······쩝. 이놈에 머리는 당췌 잘 돌아가질 않습니다요.”

“으휴.”

“장 사부께서 일러주십시오. 저는 장 사부님이 시키는 일이면 뭐든 하겠습니다.”

‘이제 쌀이 익어 밥이 되었구나.’

장문소는 이제 말을 꺼내도 될 분위기가 되었음을 알고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말하기에도 쉽지 않아.”

“명예가 더럽혀질 것을 아시면서 진가장으로 들어가신 장 사부님께 비할 수 있겠습니까.”

“···인명이 상할 수 있는 일이네. 피를 흘릴 각오가 있어야할 것이야.”

“홍동(哄洞)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저는 이미 예전에 죽은 목숨입니다. 그 목숨을 장 사부께서 구하셨지요. 이제야 목숨 빚을 갚을 기회가 왔다 여기겠습니다.”

“자네···.”

“그런 표정하지 마십시오. 장 사부님. 받은 은혜를 잊으면 그것이 금수(禽獸)지 사람이겠습니까?”

“내 그간 자네를 가벼이 본 모양이네.”

“부끄럽습니다. 장 사부님.”

“이제 더 내밀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겠어. 오직 사 문주를 믿고 말하겠네.”

“···입을 무겁게 하겠습니다.”

누가 넘어오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의 고난이 닥쳤을 때 손을 내밀어주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바치는 중인데 어찌 감히 거절 할 수 있겠는가.

온화하게 웃는 장문소의 머리는 사국도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런 일에 써먹으려고 준비했으니 써먹어줘야겠지.’

과거 패도문이 겪었던 어려움은 모두 마교(魔教)에서 기획한 일이었다. 패도문의 자금을 들고 도주한 총관은 마교의 인물이었고, 패도문의 사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전장에 알린 것도 마교의 수작이었다. 전장에서 빚을 독촉하는 문파에 아이를 맡길 사람은 없었다. 문도의 감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주도적으로 패도문에서 나가자고 이끈 인물 또한 마교의 교인이었다. 성세를 이어가던 패도문의 위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마교의 입김이 닿아있었다.

‘패도문은 이번에 쓰고 버려야겠군. 어차피 마교가 이곳을 차지하자면 군소방파는 미리 정리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버려지기 전에 패도문의 문주부터 명을 달리할 것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가장은 전격적으로 산서(山西)에 진출했다 하더군. 홍동(哄洞) 외에도 여러 지역에 무관을 설립하고 있어.”

“홍동(哄洞)이 전부가 아니란 말입니까?”

“추가로 진가장의 무관이 들어서는 곳은 분양(汾陽), 장치(長治), 양천(陽泉) 그리고 산서(山西)의 중심인 태원(太原)이라고 했네.”

“태원까지!”

“진가장의 세가 크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네.”

“진가장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만···.”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지 않은가.”

“신경 쓸 일이 많기는 하겠습니다.”

“일을 크게 벌여놨으니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사 문주는 인력이 얼마나 필요할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쉬이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상은 어렵지만, 섬서(陝西)에 머물던 세가의 모든 인력이 동원되었음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렇겠지요. 다섯 곳이나 되는 지부를 설립하자면 모든 인력을 동원···.”

사국도는 장문소의 말에 답하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인원이 분산되는 군요!”

“그렇지!”

‘그걸 이제야 깨닫는단 말이냐!’

대견한 듯이 호응해주고 있었지만, 말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국도가 무척이나 답답한 장문소였다. 장문소의 답답함은 끝이 없었다. 사국도가 인원이 분산되었다는 말에 오히려 아미를 찌푸리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진씨 세가의 인원이 분산되었다는데 어찌 사 문주는 고심이 더해진 얼굴인가.”

“진가장은 본디 협의맹에서도 상당한 위명을 알리는 세가입니다. 인원이 다섯으로 쪼개졌어도 저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장 사부님을 위해서이니 이 사국도가 기꺼이 나설 것입니다.”

“······.”

‘대체 이 멍청한 녀석을 어찌 써먹어야 좋단 말인가.’

“설마 내가 승산도 없는 일에 사 문주의 도움을 바랐겠는가. 홍동(哄洞에 진가장이 진출할 때 위기를 느끼는 문파는 패도문이 전부가 아닐세. 대천문이 있지 않은가!”

“대천문과 함께라면···. 승산이 있겠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홍동(哄洞)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유지(有志)들도 저마다 일부의 무사들을 내어줄 것이네. 자네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게. 내가 누구인가.”

“허허허. 장 사부님의 영향력을 제가 깜빡했습니다.”

‘깜빡할 것이 따로 있지···. 목숨을 걸겠다는 녀석이 이리 생각이 없어서야···.’

이후 장문소는 떠먹여주다시피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진가장을 향한 공격을 준비했다.

‘공격도 뭣도 아닌 위협일 뿐.’

패도문을 앞세워 진행하는 무력시위는 진가장의 무인들을 외부로 빼내기 위함일 뿐이다. 진가장은 각 지역에 큰돈을 들여 무관을 지어야 했고, 해당 무관을 모두 마교의 품에 가져와야 했다. 그러자면 지금 진가장이 짓는 무관은 절대로 상해서는 안 된다.

‘이 새끼가 괜히 목숨 걸고 덤비면 큰일이야.’

“사 문주는 천천히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네. 무리하지 말게.”

“아닙니다. 장 사부님. 기필코 진가장의 확장을 막아 내고야 말 것입니다. 저를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요.”

“하아.”

장문소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지금 녀석과 마주하면 자신의 살기 넘치는 눈을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룡진(潛龍陣)이 눈 안의 살기까지 가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교(魔教)엔 잠룡진(潛龍陣)이 남아있었다.

장문소가 마교의 마공을 익혔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잠룡진을 연마하였기 때문이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홍동에서만 진가장의 무관 설립이 심각한 난항을 겪으면 무슨 일이 생기겠소!”

장문소는 여전히 생각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국도의 눈을 파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야 했다.

“진가장은 여유로운 다른 지역을 놔두고 병력을 이리로 집중할 것이 아니오! 그땐 군소방파가 연합해도 아무런 효과도 없소!”

“그, 그렇습니까?”

“또한 나머지 지역은 무슨 꼴을 당하겠소? 홍동을 끝장낸 진가장은 다른 지역에 가서도 패악을 부릴 것이오! 이미 홍동에서 학습하였으니 당연히 그리 하겠지.”

“···제가 생각이 짧아서.”

“내가 진가장의 둘째 공자 옆에 붙어 있는 것은 다른 지역의 상황을 봐가며 견제하기 위함이오.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일을 겪는다면 그 때가 바로 진가장을 칠 때요. 병력을 집중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말이오.”

물론 이 때는 영영 오지 않는다. 패도문과 군소방파는 변죽만 울리다가 패퇴할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귀찮은 무력시위를 하며 진가장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야 한단 말이오. 그래서 사 문주가 일을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말하였소!”

그래야 진가장의 무사들이 외부로 향할 것이고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진가장의 장원이 비게 된다.

“역시 장 사부님의 지혜는 감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실로 고단하구려.”

장문소는 지혜로운 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멍청한 자를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 문주는 열심히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좋겠소. 무력시위를 하자면 문주의 무공이 고강하여야 할 것이오.”

“하하하. 패도문은 강력한 도법을 갖고 있습니다. 진가장 녀석들은 제 칼 아래 모두 무릎 꿇을 것입니다!”

“지금 이 젓가락···.”

지금 이 젓가락 하나로도 당장 네 놈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할 뻔 했다. 실제로 장문소는 젓가락을 검처럼 잡고 사국도를 겨누고 있었다.

‘이 놈이 내 평정심까지 무너트렸구나.’

“···이 젓가락을 들고 사 문주에게 덤비는 꼴이 되겠지요.”

“하하하. 장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니 더욱 기운이 납니다요.”

장문소는 더 이상 사국도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너무 많이 하여 이만 쉬어야겠소. 대천문의 문주와는 내가 따로 만나 설명할 것이니, 두 분은 이후에 어찌 진가장을 귀찮게 할 것인지 상의해보시오.”

“예. 장 사부님.”

“나오지 마시오. 괜히 우리가 함께하는 모습이 진가장 무사들의 눈에 들면 큰일이 아니겠소.”

“아! 그렇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지. 멍청아.’

장문소는 기운이 쭉 빠져서 문을 나섰고, 사국도는 그런 장문소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감격하고 있었다.

“장 사부는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홍동(哄洞)을 위해 뛰고 있구나. 나도 무공을 더욱 강력하게 다듬어 진가장에 대항하리라!”

사국도는 자신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