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련(苦練)
***
옥비연과 사중환은 어제 하루 화진과 함께하며 서로 많이 친밀해진 다음이었기에 쉬이 입을 열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중환은 그간 있었던 일들 중에 그리 대단치 않은 일들을 화진에게 보고하듯이 털어놨고, 이번엔 옥비연이 마차 안에서 호충과 처음 만난 날에 들었던 말을 화진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호호호. 공자께서 그리 말씀하셨다고요?”
“예. 그래도 그 말씀에 더욱 신뢰가 생겼습니다. 만약 절대로 너희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오히려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옥비연은 마차 안에서 호충과 처음 만난 날에 들었던 말을 화진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날 호충은 불리하면 내치겠다고 말하고 이익이 된다면 챙기겠다고 하였다. 비연은 호충의 그 말에 크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도 이익이 된다면 끝까지 챙긴다고는 하셨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흑패를 접수하셨지요.”
옥비연이 이후의 일은 사중환이 설명하라는 듯이 돌아봤다. 하지만 사중환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 사람아. 그날 일은 나보다 형수님이 더 잘 아셔.”
“맞아요. 흑부가 다리를 잃은 그날 제가 공자님 곁에서 다 지켜보았지요.”
“아. 그러셨군요.”
화진은 그날 지켜봤던 일을 기억하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은 화용루 금실에 호기롭게 등장하셨어요. 제가 흑부의 강압에 술잔을 입으로 가져갈 때였지요. 공자님이 때마침 등장하시어 저는 잔을 내렸어요.”
“!”
사중환은 흑부가 왜 잔을 권했는지 알고 있었다.
“다행입니다. 형수님. 아마 흑부는 술잔에 미약을 탔을 것입니다.”
“···뭐라고요?”
미약은 화진이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흑부 마한로가 제게 미약을 준비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날 화용루를 접수하겠다며 가져갔기에 어지 사용될지를 알고 있었지요.”
“······.”
화진은 그제야 그날 자신의 이상했던 몸 상태를 이해했다. 그날 호충과 단 둘이 남았을 때에 그 잔을 마시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공자님께······.’
평소와 달리 기이한 욕정이 들끓어 올랐던 이유였다.
“그 잔을 입에 대지 않으셨기에 무사하셨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철필께서 그 미약을 준비하셨다고요?”
“···예.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고맙군요.”
“예?”
그 미약 덕분에 호충과 인연이 닿았다. 만약 평소와 같이 술을 따라주고 웃음을 흘리는 정도였다면 호충은 자신과 밤을 지새우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미약을 준비해준 사중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연인과 인연을 만들어준 고마운 미약이었다.
“공자님을 따르기로 한 결정이 고맙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사실을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 분이 있어 공자님은 마음이 편하실 것입니다. 앞으로도 공자님을 도와주세요.”
“물론입니다. 형수님.”
“예!”
이들의 마차는 잠시 뒤에 급히 멈춰야 했다.
“밖에 무슨 일이죠?”
“앞에 누군가가 길을 막았습니다. 무기를 들고 있어서 저희는···.”
“누가 감히 형수님의 마차를 막는단 말인가.”
“나갑시다. 형님.”
옥비연은 사중환이 자신보다 연배가 높음을 알고 형님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그래. 나가지.”
사중환은 자신의 별호를 있게 한 철필을 들고 나섰고, 옥비연은 앞으로 자신이 도법을 배운다하여 새로이 마련한 도를 들고 마차를 나섰다.
“누구냐!”
“누가 감히 마차를 막아서는가!”
둘은 앞으로 뛰어 나갔고, 곧 마차 앞으로 가로막은 인물을 볼 수 있었다.
“!”
“!”
호충은 검갑을 어깨에 걸치고 느긋하게 마차 앞에 서 있었다.
“어라? 너희가 왜 거기서 나와?”
“공자님!”
“나 잡으러 나왔어?”
둘이 무기를 들고 나섰기에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다. 사중환과 옥비연은 얼른 무기를 뒤로 감추며 말했다.
“하하하. 누가 누굴 잡겠습니까.”
“공자님과 칼을 맞대는 날은 저희 제삿날이겠지요.”
“오다가 만난 모양이지?”
“예. 형수님께서 먼저 알아봐주셨습니다.”
“큭.”
호충은 두 사람이 붙임성 좋게 화진을 형수라고 불러주는 말이 듣기 좋았다.
“한꺼번에 찾아서 다행이다. 마차는 찾았는데, 너희는 어떻게 찾을지 고민이었거든.”
“다행입니다. 하하하.”
“자장에서 나오는 길에 별 일은 없었어?”
“진가장이 부산해 보이긴 했습니다. 진가장 무사들이 자장에 흩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다 사라지더군요.”
“도박장에서 일하는 녀석들은 무사들이 진가장 장원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인데, 왜 무사들을 불러들였는지 알 수 없었다. 도둑을 잡으려면 자장을 이 잡듯이 뒤져야 했다.
‘엄한 놈이 도둑으로 몰린 건 아닌가 모르겠네.’
이유는 모르지만 덕분에 자신과 일행이 자장을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좋은 일이었다.
“마차로 오르시지요.”
“저희는 밖에서 마차를 끌겠습니다.”
“인사만 하고 나올 거야.”
호충은 성큼 걸음을 옮겨 마차의 문을 열었다.
안에서 밖의 대화를 들은 화진은 면경을 보다가 얼른 집어넣었다.
“오시었어요.”
“마차를 마련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야.”
“급히 준비하느라 변변치 못한 마차를 마련했습니다.”
“연안(延安)에서 더 좋은 마차로 바꿔주지.”
“호호호. 헌데 공자님의 종복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진은 가는 길에 호충과 마주했다고 생각했다.
“송 영감은 연안에 두고 왔어.”
“그럼···. 그 먼 길을 되짚어 오셨단 말씀이세요? 아직 연안까지 가려면 한참은 더 가야 하는데···.”
“화진이 걱정 되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
“···공자님.”
‘어쩜 말씀도 저리 예쁘게 하실까.’
콩깍지가 씌인 여인에겐 뭐든 좋아 보이는 법인데, 걱정 가득한 말을 들어 더욱 기쁨이 차올랐다.
“녀석들이 귀찮게 굴진 않았어? 보아하니 형수라고 부르며 잘 따른 것 같은데 말이야.”
“저 방금 재미있는 얘길 들었어요. 들어보실래요?”
“응? 뭔데?”
호충은 화진의 입을 통해 그날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사중환이 준비한 미약과 이를 잔에 넣은 마한로에 관한 일이었다. 호충도 청루의 기녀인 화진이 어째서 자신에게 그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지 알게 되었다.
“···미약? 허! 마한로 그 똥물에 튀겨죽일 새끼가···.”
“화내지 마세요. 덕분에 공자님과 저의 인연이 닿았잖아요.”
“흠흠.”
“제가 그리하지 않았으면 공자님은 술만 드시고 가셨을 걸요?”
“시간은 걸렸겠지만 우린 결국 인연이 되었을 거야. 내가 화진을 처음보고 한 눈에 알아봤으니까.”
이젠 입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사탕발린 말이다.
“소첩도 그렇사와요. 공자님···.”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던 남녀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달달한 분위기를 더 오래 그리고 깊이(?) 이어가고 싶었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말이 너무 느리네. 내가 말 대신 마차를 끌까?”
“허리라도 다치면 어쩌시려고.”
“아. 화진이 생각해서라도 조심해야겠네. 허리가 다치면 큰일이지.”
“아잉. 공자님.”
가슴팍을 치며 아양을 떠는 화진을 보면서도 호충은 욕정을 눌렀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마차를 멈추고 인부들을 쉬라고 해야겠어.”
“설마 밖에서? 밖은 아직 추운데···.”
“······.”
호충이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다.
“···사중환이랑 옥비연은 지금부터 기본 무공을 단련해야 해. 날이 조금 추워도 괜찮아. 움직이다 보면 오히려 더워질 테니까.”
“항. 힝. 흣.”
호충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화진을 두고 마차를 세웠다.
“철필. 마차 세워라!”
“예! 공자님.”
마차가 멈추고 아직 부끄러움을 이겨내지 못한 화진의 머리를 쓰다듬은 호충이 마차에서 내렸다.
화진은 호충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붉게 변한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밖에서라니! 나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니?’
***
“사중환. 옥비연.”
““예!””
“따라와라.”
둘을 이끌고 산중으로 들어간 호충은 오는 길에 보아둔 공터에 도착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기초 무공을 다지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호충은 주변을 둘러보며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았고, 제 자리에서 날듯이 뛰어올라 검을 빼들었다.
샤각. 샥.
“오오.”
“역시 공자님의 무위는···.”
둘이 놀라건 말건 호충은 자른 나뭇가지를 둘에게 던졌다.
“받아라.”
타닥. 탁.
사중환은 검보다 약간 긴 길이의 나뭇가지 두 개를 받았고, 옥비연은 그보다 조금 두꺼운 나뭇가지 하나를 받았다.
“앞으로 너희가 배울 무공이 단창과 도라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기본 무공을 수련하면서도 항상 그 나뭇가지를 들어라. 그래야 무기의 길이와 무게에 적응하여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힐 때 수월할 것이다.”
사중환이 익힐 무공은 두 개의 단창을 활용하는 화가창법(樺家槍法)이었고, 옥비연이 익힐 무공은 묵직한 도를 활용하는 황룡살도(黃龍殺刀)였다. 이에 맞춰 적당한 나뭇가지를 자른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이군요!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열심히 익히겠습니다.”
“크크. 그 마음을 잊지 마라. 수련을 하다보면 초심을 잃기 쉬우니 말이다.”
이후 왕호가 겪었던 단련이 시작되었다.
무공의 시작은 언제나 마보(馬步)였다.
사중환은 두 개의 나뭇가지를 앞으로 뻗고 마보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옥비연도 같은 마보에 두 손으로 두꺼운 나뭇가지를 뻗고 있었다.
둘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 끝은 처음 시작과 달리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고작 반시진도 되지 않았거늘···.”
“끄읍.”
“윽.”
“굳은 의지가 없이는 무공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절한 절학이 담긴 무공서가 있다한들 고련(苦練)하여 익히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지. 마보는 무공의 근간이 되는 하체를 단련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무공을 익힐 의지를 굳세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너희는 마보를 통하여 너희가 얼마나 무공에 매진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판단해야 한다. 만약 의지(意志)가 박약(薄弱)하여 익힐 수 없겠다 싶으면 지금 얘기해라. 자장으로 돌려보내주마.”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너희 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자면···.”
호충의 이어진 말은 정말로 둘에게 도움이 되었다.
“왕호는 두 시진을 버텼다.”
“!!”
“!!”
사중환과 옥비연은 의욕을 불태웠다.
‘왕호 녀석에게 질 수 없다!’
‘세 시진을 버티고야 말 것이다!’
“녀석의 굳은 의지는 확실하게 내게 전해졌다. 녀석은 무공을 익힐 강한 의지로 가득했다.”
호충은 계속해서 힘을 불어넣었다.
“나는 내 형제가 약한 꼴은 못 본다. 안 되면 멱살을 잡아끌어서라도 강하게 만들어주겠다.”
“!”
“!”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와라.”
““옙!””
첫날 훈련이 끝나고 호충은 옆구리에 옥비연을 끼고 어깨에 사중환을 둘러매고 산을 내려가야 했다.
‘잘 했다. 이놈들아.’
사중환과 옥비연은 두 시진이 넘어서야 다리가 굳어 주저앉았다. 사실 왕호는 두 시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었다.
“저희가 못난 꼴을 보여서···.”
“···송구합니다.”
둘은 다리가 굳었을 뿐 정신은 말짱했다.
“왕호 녀석도 첫날 다리를 못 써서 내 등에 업혀 산을 내려갔다.”
“그렇습니까?”
“휴우.”
자신들만 못난 꼴을 보였나 싶었던 모양이다.
호충은 왕호와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부끄러움을 덜어줬다.
“게다가 녀석은 적수공권(赤手空拳)이었지만, 너희는 무거운 나뭇가지까지 들고 마보를 버텼다. 너희가 더 낫다.”
“히힛.”
“크흠.”
“이제 다 왔다.”
둘은 내려서 일어서고 싶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주저앉아야 했다.
“아이고고.”
“끄윽. 여전히 다리가 굳어서···.”
마차 곁에 있던 화진이 바닥에 앉은 둘에게 다가왔다.
“어머. 수련이 얼마나 고됐으면···.”
“곧 괜찮아 질 거야.”
호충은 바닥에 앉아있는 사중환의 허벅다리와 종아리에 손을 가져갔다.
“조금 아플 거다.”
호충은 뭉친 근육을 주무르며 풀어내기 시작했다.
“허읍. 끅!”
“엄살은.”
호충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더욱 세게 주물렀다.
꾸욱.
“지, 진짜 아픕! 꺼윽.”
아픔은 잠시였다. 잠시 뒤엔 굳었던 다리가 풀리며 감각이 돌아왔다.
“오오. 이제 좀 낫습니다.”
사중환의 다리가 나아졌음을 보고 호충은 옥비연을 향해 돌아섰다.
“참을 수 있지?”
“넵.”
옥비연은 재미있는 소리를 냈다.
꾸욱.
“꺄울!”
“넌 뭐냐?”
꾸욱. 꾹.
“꺄윽. 아악.”
“엄살은 얘가 더하네.”
곧 비명을 지르는 옥비연의 다리도 정상 비슷하게 돌아왔다.
둘은 굳은 다리가 풀렸음에도 어기적거리며 걸어야 했다.
“어디가? 아직 수련 안 끝났는데?”
“!”
“!”
두 사람의 고개가 삐걱 거리며 돌아섰다.
“너희 그대로 쉬면 또 굳어.”
“그,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호충은 둘을 마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와 말했다.
“앉아.”
“네.”
둘이 쪼그려 앉자마자 호충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일어서.”
“···네.”
“반복.”
“!”
“!”
놀라서 호충을 보는 두 사람에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 잡는다. 실시.”
“시, 실시!”
“하나하면 앉고 둘하면 일어선다. 하나. 둘. 하나. 둘.”
둘이 잘 따라오자 추가 구호가 붙었다.
“하나하면 정신. 둘하면 통일이다. 하나.”
“정신.”
“둘.”
“통일.”
둘의 앉았다 일어서기는 이마에 땀이 맺힐 때까지 이어졌다.
“그쳐.”
“허억.”
“헉.”
“근처에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해라. 마보는 매일 빼먹지 말고 꾸준히 해. 내가 준 나뭇가지는 손에서 떼지 말고 계속 가지고 다니고. 우선 이따 내가 없을 때는 천천히 구보하면서 다리를 먼저 풀어줘라.”
“예.”
“예.”
“그리고 앞으로 호칭은 대형으로 통일하자. 언제까지 공자님이야?”
아직까지 왕호만 대형으로 부르고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왕호 앞에서도 이들을 의제로 여긴다고 하였고, 이미 진가장을 나온 다음이라 공자라 불리고 싶지 않았다.
“···흐흐. 예. 대형.”
“감사합니다. 대형!”
호충은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 둘을 두고 마차안의 화진에게 갔다.
“두 사람에게 식사를 준비해 줄 수 있겠어?”
“물론이죠. 일꾼들이 있어서 어렵지 않아요.”
“난 영감을 혼자 객잔에 두고 와서 가봐야겠어.”
“가만 보면 공자님은 종복까지 살뜰하게 챙기시는 것 같아요.”
화진은 종복까지 챙기는 호충의 마음이 넓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호충은 송 영감이 종복으로 불리는 것이 싫었다.
“···전에 내가 말 안했던가?”
“무엇을요?”
“내가 송 영감을 피붙이보다 아낀다고.”
“···전혀 몰랐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화진은 영감을 내 할아버지로 여겨줬으면 좋겠어.”
“···예. 그리하겠어요.”
“고마워.”
“공자님이 그리 생각하신다면 저는 따라야지요.”
“훗. 조금 더 앞으로가면 작은 마을이 있어. 거기서 오늘밤을 보내고 출발하면 내일은 연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마차의 속도를 감안하면 정오에나 도착할 것이다.
“연안에서 양허객잔을 찾아. 거기서 영감과 머물고 있으니까.”
“예. 그럼 연안에서 뵈어요.”
호충은 작은 목소리로 화진의 귀에 속삭였다.
“거기선 우리 둘의 방으로 따로 잡도록 하지.”
“···모, 몰라요.”
아까의 부끄러웠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버렸다.
“그리고···.”
호충은 다른 호칭도 바로잡기를 원했다.
“언제까지 나를 손님 대하듯 공자라고 부를 텐가.”
“그건···.”
항상 공자라고 불러왔기에 다른 말을 찾을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내 의제들이 화진을 형수라고 부르니 화진은 나를 가가(哥哥)라고 불러야 맞지.”
“흐흣.”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아니면 나도 이리 불러줄까? 황 매. 오늘은 밤이 아름다우니 나와 한적한 길을 거닐며 별을 보는 것은 어떠오?”
“푸흐흣.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진 가가.”
“나는 내일 황 매가 오기만을 기다릴 테요.”
“저도 내일을 기다리겠사와요. 가가.”
호충은 짧은 입맞춤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길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