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232)

오악(五惡)

***

다음날 호충이 영감과 객잔에 내려와 앉아 있자, 점소이가 주문을 받으려 다가왔다.

“나리 주문하시겠습니까?”

“일행이 오면 주문하지. 곧 올 것이다.”

“예.”

점소이가 멀어지고 영감이 입을 열었다.

“그들이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리십니까.”

“거의 다 왔어. 아까 잠깐 보고 왔거든.”

호충은 화진을 마중 나갔다가 마차가 오는 것을 보고 돌아와 영감과 객잔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럼 제가 나가서 마중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영감 내키는 대로 해.”

“예. 도련님.”

송 영감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 밖으로 나섰다.

***

화진은 막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양허객잔이라 적힌 객잔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오셨습니까.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화진은 송 영감이 마중 나오자 얼른 인사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어이쿠. 천것에게 그리 인사하시면···.”

“가가께서 어르신께 어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간 소홀함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그런 실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

황망한 송 영감에게 인사하는 인물이 또 있었다. 사중환과 옥비연이다.

“어르신 저희도 왔습니다.”

“옥비연입니다. 어르신.”

“아이구. 제가 뭐라고···.”

화진은 송 영감의 팔에 달라붙었다.

“들어가시지요. 어르신.”

“흠흠. 이 팔은 좀 놓으시고···.”

“어서요. 가가의 할아버님이신데 뭐 어때요.”

“그, 그건···.”

호충은 화진에게 붙들려 들어오는 송 영감을 보며 피식 웃음을 보였다.

“풉. 여기야.”

“가가.”

“대형.”

“저희도 왔습니다. 대형.”

“다들 앉아.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 내가 맛난 요리를 시켜주지. 이곳이 연안에서 제일 맛있는 객잔이야.”

일행은 객잔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오리구이와 돼지고기 볶음을 포함해 맛난 요리를 잔뜩 시켰다. 즐거운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기에 향긋한 술도 시켰다.

호충은 술병을 받아 화진의 잔에 따라주고 영감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잔도 채웠다.

“다들 들자.”

“예. 대형.”

“가가도 드셔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호충의 말대로 요리는 상당한 맛을 자랑했고, 향긋한 술은 먼 길을 건너온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흐헤헤. 여기 좋은 자리가 있었네?”

이들이 다가오기 전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거기 자리 좀 있소? 없어도 만드는 편이 좋겠소만.”

“······.”

“······.”

“······.”

“······.”

모두의 눈이 호충을 향했다. 화진과 영감은 아직 무공을 배우지 못했으니 당연했고, 사중환과 옥비연은 자신이 나서도 되는지를 묻고 있었다.

“먹고 있어. 내가 후다닥 정리하고 돌아올게.”

“대형. 제가 나서는 편이···.”

“아닙니다. 제가···.”

“너희가 나서면 음식 다 식어.”

호충은 안 그래도 너무 평온한 여정이 계속되었기에 불안한 참이었다. 차라리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액땜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다섯이네? 밖으로 나와라.”

저마다 무시무시한 도(刀)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칼 밥을 먹은 놈들이었다.

“어이쿠. 샌님이 나설 줄은 몰랐네.”

“큭큭.”

“저 놈들만 상대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대형이란다. 애들아.”

“푸흐흐흐.”

이들은 연안에서 나름 유명한 칼잡이들이었다.

녀석들은 사중환과 옥비연을 염두에 두었지만, 한참 예상을 벗어나 호충이 나선 것이다.

“···그냥 입 다물고 나와. 지금 나오면 적당히 할게.”

호충은 괜히 객잔에 피해를 줄까싶어서 얼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거 도망가는 거 아니오?”

“정리하고 바로 돌아오면 되겠지. 가자.”

다섯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객잔의 손님들이 수근 거렸다.

“연안의 오악(五惡)이 또 먹잇감을 물었어.”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큰일이군.”

주변에서 걱정스러운 말들이 흘러나왔지만, 자리에 앉은 넷은 평온했다.

“우리 가가가 언제 돌아오시는지 내기 할까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형수님.”

“저는 일다경에 걸지요. 이래 뵈도 제가 도박장을 운영하지 않겠습니까. 도박은 제가 제일이지요.”

“너는 도박장 운영하는 놈이 그렇게 감이 없느냐.”

“그럼 형님은 어찌 생각하시오.”

“이 각에 걸겠다.”

“저는 일 각으로 하지요. 어르신은요?”

송 영감은 고개를 저으며 문을 보고 말했다.

“···걸긴 뭘 걸겠습니까. 저기 오시는데요.”

“!!”

“!!”

“!!”

호충은 손을 털며 들어오고 있었다.

탁탁.

“내가 조금 늦게 들어올걸 그랬지? 잘 하면 우리 화진이가 이겼을 텐데 말이야.”

밖에서 들어오며 대화를 들었던 것이다.

“···가가. 나가자마자 들어오시네요.”

“도병을 제대로 쥐지도 못하는 놈들이야. 저들이 무슨 오악(五惡)이라고···. 웃기는 놈들.”

“저희가 나설 걸 그랬습니다.”

“너희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내게 쉽다고 너희에게도 쉽겠느냐. 너희는 아직 멀었다.”

오악이라고 불린 칼잡이 다섯은 서로 몸을 포개고 쌓여 있었다.

객잔의 손님 중 하나가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오악이 당했다!”

안에 있던 손님 둘이 그 소리를 듣고 미소 지었다.

“허허. 녀석들이 임자를 만났어.”

“내가 기분이 좋아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어. 이 봐 점소이!”

“예. 뭘 드릴깝쇼.”

“저쪽에 맛 좋은 술 한 병 보내주게.”

호충은 그 말을 듣고 포권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르신.”

“허허허. 예의바른 젊은이로구먼. 그대의 사문이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이보게 검의 수실을 보니···.”

검엔 붉은 수실과 푸른 수실이 반반 들어가 있었는데, 이는 진가장의 표식이었다.

호충은 괜히 검을 차고 나왔구나 싶었다. 이러면 떠돌이 무사라고 둘러댈 수 없었다.

“······.”

호충은 어쩔 수 없이 대고 싶지 않은 이름을 입에 올려야 했다.

“진씨 세가의 막내 호충입니다.”

“아! 진가장이었구나. 허허허. 섬서에서 진가장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자네가 몰랐지 않은가. 검의 수실만 보고 알았어야지 이 사람아.”

객잔의 손님들은 진가장이 거론되자 서로 진가장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역시 진가장은···.”

“진가장의 무공이 대단하다 하더니···.”

“실로 명불허전 일세. 순식간에 오악을 정리하다니 말이야.”

호충은 씁쓸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진가장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얼른 먹고 떠나자. 괜히 구설에 오르겠다.”

“예. 가가.”

“예. 대형.”

“어차피 거의 다 먹었습니다.”

호충 일행은 얼른 식사를 마치고 나왔고, 오악이라고 불린 녀석들은 그제야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끄으으.”

“아이고. 머리야.”

일행이 마차에 오르고 준비하는 동안 호충은 녀석들 곁으로 갔다.

툭. 툭.

호충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놈을 발로 차서 깨웠다. 이 녀석이 일행의 맏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컥. 억!”

“일어나.”

정신이 든 녀석은 후다닥 뒤로 물러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녀석들도 녀석의 뒤로 가서 섰다.

“너, 너 이놈.”

“지금 칼 빼들면 자살하고 싶다는 뜻으로 알아도 되겠지?”

막 도병에 손을 가져가던 녀석이 멈칫했다.

“왜 그랬냐?”

“뭐, 뭘 말이냐.”

따악.

“끄헙.”

어느새 다가온 호충이 녀석의 머리를 찰지 게 때렸기 때문이다.

녀석의 머리는 휘청 아래로 꺾였다가 올라왔다. 녀석은 그 한 방으로 무공의 고하를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무림인!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다.’

“어르신이 말씀하시는데 대답이 짧다?”

빠악.

“으악.”

호충의 다리가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소리였다. 기껏 일어섰던 녀석이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멀쩡히 식사 중인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느냐.”

“여, 여인의 아름다운 미모에 혹하여 그만···.”

마차 안에서 밖을 살피던 화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저러다 다 죽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 흑부가 호충의 손에 어찌 되었는지 지켜보지 않았던가.

‘가가···.’

“이 녀석들···.”

호충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좋은 눈을 가진 녀석들이잖아? 야. 괜찮아? 많이 안 다쳤지?”

“······.”

호충은 쓰러진 녀석을 일으켜 세우고 옷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줬다.

“너희가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예쁜 건 알아가지고 말이야.”

“······.”

안에서 그 말을 듣는 화진은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앞으론 조심하자. 응? 아무리 여자가 예뻐도 그렇지 함부로 나서면 큰일 나는 법이야.”

“······.”

호충은 일으켜 세운 녀석의 귀에 조그맣게 말했다.

“···너희 목숨이 걸렸잖냐.”

“예, 예. 조심하겠습니다.”

“다음엔 좋게 보자. 엉?”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호충은 녀석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차로 왔다.

“도련님···.”

“원래 좋은 녀석들이었어.”

“···뭐. 도련님이 그렇다면 그렇겠지요.”

“철필.”

“예. 대형.”

“여기 흑패는 몇 개나 되는지 알아?”

“듣기로 아마 두 개 쯤 될 겁니다. 자장보다 큰 성읍이라 그렇습니다.”

“그래?”

호충은 잠시 턱을 잡고 고민했다. 본래 자신이 세운 계획은 사중환과 옥비연, 왕호를 키워 세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아직 무공을 익히려면 멀었어. 녀석들이 무공을 익히려면 한 세월이 걸릴 것이고···.’

애초에 화산으로 가는 길에 흑패를 흡수할 계획도 있지 않았는가.

호충은 우락부락한 놈들에게 돌아가서 물었다.

“야. 너희는 어디 흑패에 속해있냐?”

이런 녀석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소속이 있으니 객잔에 와서도 마음 놓고 소란을 피운 것이다. 이들이 흑패 소속이 아니라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희는 연수흑패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흑패 인원은 오십이 넘으니···. 당신이 이대로 떠난다고 무사하지는···.”

빡.

“조용히 새끼야.”

협박성 발언에 다섯의 맏이로 보이는 녀석이 말렸지만, 이미 호충의 귀에 들어간 다음이었다.

“철필.”

“예. 대형.”

“아무래도 조금 귀찮은 일을 끝내고 연안을 떠나야 할 것 같은데?”

“비연과 제가 합을 맞춰볼 기회가 되겠습니다.”

“너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무공을 배웠으면 모르되 아직 기초 체력을 기르는 수준이었다. 둘이 오십이 넘는 흑패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가서 인사라도 하자. 운이 좋으면···.”

또 다른 흑패를 접수할 수 있을 터였다. 호충은 일행의 맏이를 보고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황왕입니다.”

“이름 한 번 거창하네. 가자. 너희가 그리 대단하다는 흑패의 위용을 보여 다오.”

“······.”

황왕은 눈앞의 샌님이 연수흑패의 흑패주보다 강할지 가늠해봤지만, 짐작할 수 없었다.

‘패주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인원이 몇 인데···. 숫자로 덤비면 제깟 것이 어쩌겠는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가시지요.”

“오오. 역시 사내야. 사내라면 그런 패기가 있어야지.”

“······.”

“너희 둘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

“예. 대형.”

“예. 대형.”

사중환과 옥비연은 호충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호충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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