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아악. 촤아악.
“어푸.”
기절했던 위지승은 물벼락을 맞고 정신을 차렸다.
“끄으읍.”
기절에서 깨어난 녀석을 반기는 것은 지금까지 맞은 곳에서 올라오는 고통이었다.
호충은 위지승이 앉아 있었을 흑패주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으으···.”
사중환이 녀석에게 말했다.
“···꿇어라. 패주께서 기다리신다.”
“······.”
위지승은 죽은 눈빛으로 조심히 꿇었다. 이미 자신의 곁으로 양소와 부하들이 꿇어 앉아 있었다. 몇 명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엎어져 있었다.
“혼자 당하면 억울하지 않냐?”
“···무슨 말씀이시 온지.”
“연안에 너희 말고 다른 흑패가 있다고 들었다.”
“!”
“안내해라.”
호충은 적당히 끝내는 법이 없었다.
“난 내 영역에 거추장스러운 놈들이 있는 걸 싫어하거든.”
“···양소.”
“예. 형님.”
“번권 패주님을 허천흑패까지 안내해라.”
“···예.”
하지만 호충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에헤이. 혼자가면 무슨 재미가 있어. 너희도 다 가야지.”
“···저희는 번권님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호충의 무위는 충분히 견식했다.
“누가 도움이 되라든? 구경꾼이 없으면 흥이 나질 않으니 그러지. 양소라고 했나?”
“예. 번권 패주.”
“걸을 수 있는 놈들만 추려서 지금 가자.”
“···예.”
올 때는 셋이었지만, 나설 때는 수십이었다.
호충은 밖으로 나와 마차로 먼저 다가왔다. 영감과 화진이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출발해서 감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객잔으로 가. 아무래도 오늘 하루 더 걸리겠어.”
“···조심하십시오.”
“다녀오셔요. 가가.”
호충은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일행에 합류했다. 연수흑패와 허천흑패는 연안을 양분하는 흑패이니만큼 서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허천흑패의 영역에 연수흑패의 조직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몇이 분주하게 자리를 뜨는 것이 보였다.
양소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호충의 곁에서 걷다가 입을 열었다.
“허천흑패는 허두진이라는 놈이 흑패주로 앉아 있고 태사원이라는 놈은 그 밑에 있습니다.”
“인원은 몇이나 되지?”
“정확하진 않지만, 육십 이상입니다.”
흑패에 가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개나 소나 다 받아주면 조직의 기강에 문제가 생기고 관부 몰래 운영하는 도박장을 숨기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지켜보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을 가려 받아 조직을 꾸려나가는데, 육십이나 되는 인원을 모았다면 그 아래 조직원이 되고자 붙어 있는 놈들은 더욱 많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성읍이 크니 돈이 되는 모양이군. 좋구나.”
또한 조직원이 많다는 의미는 그만큼 돈이 된다는 의미였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이었다.
“방금 허천흑패의 인물들이 움직였습니다. 저희의 움직임을 계속 살필 것입니다.”
“큭. 양소.”
“예.”
“살핀다고 달라질까?”
“······.”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들도 단 한 명에게 모조리 꿇어앉지 않았는가.
“···없지요.”
***
다 내 꺼!
***
곁에서 발을 절룩거리며 걷던 위지승이 다가왔다.
“허두진 그 새끼는 꼭 족쳐주십시오.”
“그간 좀 당했어?”
으드득.
위지승이 이를 갈았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다.
“그 새끼가 저희 애들 잡아 죽인 것만 몇인지 모릅니다.”
“···그래?”
흑패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해도 병신으로 만들고 끝이었다. 남을 상하게 하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다시 흑패로 복귀할 수 있었고, 한번 상처를 입은 조직원은 더욱 단단하게 정신을 단련하고 조직 생활을 이어갔다.
“그 새끼 얘기 좀 더 해봐.”
“서로 영역이 맞닿은 곳이 있었습니다. 저희 보호를 받는 기루가 있었는데, 녀석들이 와서 행패를 부렸고, 결국 싸움이 벌어졌지요. 시시때때로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호충도 조직 간의 견제가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미래에나 지금이나 뒷골목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너희가 운영하는 기루에서 술에 물을 탔다고 행패를 부렸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짜 탔냐?”
“화조주(花雕酒)에 조금···.”
“에라이.”
“그래도 물이 아니라 백주를 섞었습니다.”
가장 저렴한 백주를 비싼 술에 더하는 방식이라도 속인 것은 속인 것이다.
“잘났다.”
“어쨌든···. 간헐적으로 녀석들과 싸움이 생기곤 했는데, 녀석들은 꼭 저희 애들의 배만큼 투입해서 다치거나 죽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호충은 두 개의 흑패를 접수하는 것보다 이들을 하나로 합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허천흑패의 녀석들은 패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원한을 한 놈에게 미뤄야 했다.
“너희 연수흑패도 마찬가지이지 않느냐. 위지승 네가 명령하면 무엇이든 따를 조직원이지 않느냐.”
“···그렇지요.”
“태사원이라는 놈은 어떤 놈이냐.”
“허천흑패의 성장은 모두 녀석의 머리에서 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잔인한 놈입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놈이지요.”
호충은 두 흑패를 더할 생각을 접었다.
“두 놈은 오늘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만날 것이다.”
“!”
“두 패를 하나로 더하려면 한 쪽은 사라져야 맞겠지. 위지승 너는 나를 먼저 만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황왕 그 녀석이 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다.”
꿀꺽.
자신이 두 번째였다면 염라대왕을 만나는 것은 허두진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네가 나를 패주로 대하지 않았다면, 네가 먼저 염라대왕과 대면했겠지만 말이다. 네가 하는 말을 듣고 목을 딸지 말지 선택하려 했거든.”
“······.”
“······.”
위지승과 양소는 부르르 떨리는 손을 소매로 넣어 숨겼다.
“다 와 가는 모양이군. 저 쪽 전각 안이 부산하게 움직이는구나.”
“그렇습니다. 저기가 허천흑패의 본거지 이옵니다.”
“사중환. 옥비연.”
““예. 대형.””
“잘 봐라.”
““예. 대형.””
호충은 활짝 열린 문으로 성큼 들어갔고, 날아오는 비도를 마주해야 했다.
피잉. 텁.
“처음부터 장난질이네?”
호충은 공중에서 낚아챈 비도를 주인에게 돌려줬다.
피잇.
호충에게 날아온 것보다 더욱 빠르게 비도가 날아들었고, 비도의 주인은 손이 아닌 이마로 자신의 비도를 받아야 했다.
쿵.
호충의 눈에 전각 안에 가득 모여 있던 놈들의 고개가 그리로 돌아가며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양소는 얼른 곁으로 다가와 방금 죽은 놈에 대해 말했다.
“바, 방금 잡으신 놈이 태사원입니다.”
“아이고. 괜히 먼저 죽였네. 천천히 잡아야 했는데···.”
호충이 노닥거리는 동안 죽은 태사원을 살핀 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녀석을 잡아라!!”
양소가 또 입을 열었다.
“방금 명령한 녀석이 허천흑패의 허두진입니다.”
“참 말 안 듣게 생겼다. 어려서 어른들에게 많이 맞았겠어.”
양소가 뒤로 물러섰고 호충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왼쪽 무릎을 조금 구부리고 오른쪽 발을 내밀었다. 두 손은 편안하게 펼쳐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내민 손바닥을 위로 뒤집어 까딱였다.
“와라.”
“죽어라!!”
“와아악!!”
호충은 고요한 눈으로 밀려오는 인의 파도를 보고 있었다.
‘예전엔 몸을 써도 얻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다.’
인의 파도와 호충의 신형이 포개졌다.
빠박. 파파박.
호충은 날아오는 주먹과 다리, 검과 도를 피해 팔다리를 놀렸다. 모든 이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오로지 호충만이 정상적인 속도로 인의 파도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조직 간의 다툼도 마찬가지였다.’
뻥. 뻐버벅.
호충의 장에 맞은 이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주먹에 맞은 놈들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아무리 상대 조직을 꿇어 앉혀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돈 몇 푼이 다였지.’
두두두. 빠박.
털썩. 털썩.
날아올라 각법을 펼치자 몰려들었던 녀석들이 뒤로 훅 밀려나갔다. 남아 있던 두 놈은 호충의 주먹을 맞고 그 자리에 기절하며 주저앉았다.
‘이젠 다르다.’
타닥.
인의 파도를 밀어낸 호충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싸워 이기면 모두 내 거다!’
“전부 이리와! 개X끼들아!”
어린 양 무리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뛰어들었다.
호랑이는 어린 양들을 가지고 놀며 대열을 흐트러트렸고, 먹지도 않을 사냥감을 잡아 물며 희열을 느꼈다.
“아자자자!”
“······.”
“······.”
사중환과 옥비연이 멍하니 호충의 신위를 눈에 담고 있었다.
그러다 옥비연이 사중환을 향해 말했다.
“형님. 오늘 우리 대형이 날을 잡으셨네요.”
“···우리가 뭘 잘못한 건 없지?”
“···아직까지는?”
“조심하자.”
“예. 형님.”
호충의 신위를 지켜보는 눈은 둘 곁에 또 있었다.
“···하아. 애초에 대적 불가인 존재였어. 다시 도전했다간 순식간에 끝장났겠군.”
“또 덤비려고 하셨습니까?”
위지승과 양소였다.
“그래도 나중에 어찌어찌 비벼볼 수 있을까 싶었지.”
“백년이 지나도 어림없겠습니다.”
“백년이 뭐냐. 천년이 지나도 어림없겠다. 대체 뭘 먹어야 저렇게 세지는 거냐?”
“···어려서 밥 먹듯이 영약을 먹고 자라면 저리 되지 않을까요?”
“돈이 썩어나? 번권 패주님이 진가장의 공자라도 된다든?”
“!”
“!”
그 말에 사중환과 옥비연이 움찔했다.
“·········.”
양소는 둘이 움찔한 것을 기이하게 여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진가장.”
다시 둘이 움찔했다. 이번엔 눈동자까지 지진이 난 듯이 흔들렸다.
“공자?”
둘은 아예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이런 썅.”
거의 확답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양소의 말과 둘의 반응을 본 위지승이 물어왔다.
“거 얘기 좀 해보슈. 진짜···. 맞소?”
“···대형께 직접 물어라. 우린 모른다.”
“그러고 보니···. 자장은 진가장이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형님.”
“······맞네. 진씨 세가가 자장에 자리 잡고 있었어. 자장 흑패가 진가장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
“······.”
이들이 대화하는 사이 호충은 잡스러운 녀석들을 치우고 패주인 허두진을 맞이하고 있었다.
“허 패주. 어디 실력 좀 봅시다.”
“어디서 온 누구냐.”
“자장의 흑패주 번권이오.”
“어린놈이 잘도 자장 흑패를 차지했구나.”
“보고도 모르시오? 이정도면 차지해도 충분하잖소.”
호충의 뒤로 쓰러진 허천흑패의 조직원이 가득이었다.
허두진은 들었던 검갑을 바닥에 던지고 손을 비우며 다가왔다.
텅.
“같은 흑패주끼리 이렇게 다투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대는 어떤가.”
“맞소. 이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오.”
호충은 양손으로 팔짱을 끼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매번 이런 일을 겪어야 하기에 심히 공감하는 바였다.
“이러다간 흑패만 죽어나갈 뿐이야.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 우리의 주적은 관인이지 같은 흑패가 아닐세.”
“그것도 옳은 말이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소.”
허두진은 팔만 뻗으면 옷깃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내가 성의를 먼저 보이겠네. 은자 만 냥짜리 전표를 줄 터이니···.”
허두진이 품에 넣은 손에서 딸려 나온 것은 은자 전표가 아니라 은빛으로 빛나는 단검이었다.
허두진은 번개 같은 속도로 단검을 찔러왔다.
샤악! 탁.
호충은 녀석의 단검을 손가락 사이에 단단히 끼우고 물었다.
“이게 은자로 만 냥이나 하는 전표였는가?”
“끄응.”
단검은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충의 나머지 손이 품에 들어갔다가 번들거리는 회칼과 함께 나왔다.
“그리고 칼은 이렇게 써야 한다네. 자네는 너무 느려.”
“자, 잠깐.”
“사양하지 말게. 나는 자네와 달리 약속을 지키는 사내거든.”
호충의 회칼이 번개처럼 허두진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피잇. 푸학.
허두진의 목에서 뿜어 나온 피가 호충의 머리부터 다리까지 뜨겁게 흘러내렸다.
호충은 충실하게 약속을 이행했다. 허두진을 죽여 달라고 했던 위지승과의 약속이다.
“위지승. 양소.”
“예, 옙!”
“여, 여기 있습니다.”
“장내를 정리하고 허천흑패를 접수해라. 영업장은 물론이고 세를 걷는 기루나 객잔도 빼먹지 말고 전부.”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의지승의 말에 양소는 뒤를 보고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패주의 명이 들리지 않느냐! 움직여 새끼들아!”
“예엡!”
이들의 뒤를 따라온 연수흑패의 조직원들이 후다닥 움직였다.
호충은 허두진이 바닥에 던져놓은 검갑을 들었다. 그리고 검갑에서 검을 빼어 확인했다.
스르릉.
장인이 만든 것이 분명한 질 좋은 검이었다.
“얼씨구. 꼴에 이렇게 좋은 검을 들고 다녔네?”
진가장의 검을 들고 다닐 수 없었기에 다른 검을 찾아야 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이번엔 이마에 단검을 박고 쓰러진 태사원의 시신으로 가서 품을 열었다.
“이것도 같은 장인 작품이야.”
중심이 잘 잡힌 비도는 특별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바람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 적중하도록 만들어진 특수 비도였다.
“수지맞았군.”
호충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비도를 뽑아내어 피를 털고 태사원의 품에 있던 비도까지 통째로 챙겼다.
저벅저벅.
붉은 피를 뒤집어 쓴 호충이 사중환과 옥비연 곁으로 다가왔다.
“갈아입을 옷을 찾아봐. 이대로 네 형수에게 갈 순 없잖냐.”
“아! 예. 대형.”
옥비연은 호충이 갈아입을 옷을 찾으려 허천흑패의 전각 안으로 달려갔다.
“······.”
사중환은 예전 낭인 파월랑의 목을 잘랐던 당시의 호충이 떠올렸다.
피를 뒤집어쓰고 갈아입을 요구하던 모습이 당시와 똑같았다.
“대형. 오늘 손속이 조금 과하셨습니다.”
흑패를 접수하는 것과 낭인을 처리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큭. 품에 거둘 놈이 있고 아닌 놈이 있다. 나는 그런 놈들을 한 눈에 알 수 있지. 허두진은 남의 밑으로 들어갈 놈이 아니었다. 밑에 넣어도 언제고 턱밑에 칼을 들이밀 놈이지.”
허두진은 상대를 속이는 것에 거리낌을 느낄 수 없었고, 태사원이 죽고 보인 눈빛에도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잃었다는 느낌이었다. 호충이 만났던 25c파 부회장이 그런 놈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숨죽이고 있다가 결정적인 때에 갈아둔 칼을 꺼내는 놈이 바로 이런 놈이다.
“너도 알 거야. 흑패의 조직원들도 저마다 기질 차이가 있다. 고르고 골라도 가끔 이상한 놈들이 흑패에 들어오지.”
“······.”
사중환은 호충의 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아무리 잘해줘도 선을 지키고, 어떤 놈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기어오르려고 하지.”
“맞습니다. 그런 놈들은 매가 약이지요.”
“또한 어떤 놈은 자신의 속을 다 드러내고 다니지만, 어떤 놈은 의뭉스럽기가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와 같은 놈이 있다. 패주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놈들이 있는 반면,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바라고 붙어 있는 놈도 있지. 이런 놈들은 언제든 흑패를 배신하고 관에 모든 사실을 토설한다. 당연히 이런 놈을 받아들인 흑패는 존속이 쉽지 않다. 결국 고생스럽게 일군 흑패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어버리지.”
“······.”
“앞으로 우리가 세울 흑패는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사중환 너는 사람 보는 눈을 길러야 할 것이다.”
호충은 마지막 말을 전음으로 덧붙였다.
[특히 무공을 전할 놈들은 각별하게 선별해야 한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대형.”
옥비연이 오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대형. 안에서 환복하시지요.”
“내게 맞는 옷가지가 있었나?”
“······.”
옥비연은 누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입을 열지 않고 눈짓으로만 말했다.
옥비연의 눈이 안을 가리키고 있었다.
“?”
호충과 사중환은 의문을 뒤로하고 옥비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소란한 밖과 달리 안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옥비연은 목소리를 죽여 호충에게 말했다.
“대형. 환복하실 옷은 여기 준비되어 있고···. 제가 녀석의 금고를 찾았습니다. 상당한 양입니다.”
많은 옷이 걸린 곳 뒤편 벽에 작은 손잡이가 있었고, 이를 옆으로 밀자 녀석의 보물창고가 드러났다.
드르륵.
보물창고에는 금원보가 나란히 줄을 맞춰 서있었고, 금자와 은자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또한 족자가 돌돌 말려 가득 채워져 있었고, 옥으로 조각한 불상과 금두꺼비와 금송아지도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