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232)

입식면면(入息綿綿) 출식미미(出息微微)

***

“일부는 전장에 넣었다 치자.”

“!”

“나머지는 어쨌냐?”

“나, 나머지라뇨.”

호충은 녀석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박자가 빨라진 심박 소리를 듣고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을···. 얘들아 얼른 재갈 물려. 쉽게 입을 열 생각이 없다시잖냐.”

“옙. 대형.”

“저, 정말이온데···.”

“양소.”

“예.”

“너는 내가 저 말을 믿을 것 같냐?”

“···저라도 안 믿습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그러면-”

“나도 안 믿는다니까?”

“······.”

“뻗대지 말고 그냥 빨리 불고 다 갖고 와 새끼야. 아니면 손발 잘리고 흑패를 떠나시던가.”

“크흥. 그간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데···.”

“하여간 다람쥐 같은 새끼들. 모으긴 맨날 모아요?”

결국 위지승은 금자를 숨겨둔 곳을 불었고, 그 위치는 이곳의 대들보 위였다.

“이 새끼도 나름 참신하네. 그런데 도둑이 기와를 열고 숨어들었으면 그냥 훔쳐갔겠다?”

“아. 그 생각은 못했···.”

흑패의 본거지에 도둑이 들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둑맞았다 여기고 잊어라.”

호충은 양소를 불러 일렀다.

“양소! 이거 가져가서 흑패 운영자금에 더해라. 어제 고생한 녀석들 상급도 주고 이번에 합류한 허창흑패 녀석들도 위로금을 책정해서 줘. 저녁엔 거창한 술자리를 만들어서 녀석들 마음도 풀어주고.”

“옙! 패주!”

녀석은 지금까지 모은 것이 아까운지 양소의 손에 들린 주머니만 보고 있었다.

“내 돈···. 내 돈!”

“이제 네 돈 아니라니까 그러네.”

“크흑.”

“질질 짜지마! 대신 전장에 넣은 건 놔두마.”

“전장은 얼마 안 되는데···.”

호충은 대충 전장에 얼마가 들었을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따로 빼둔 자금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네 목숨 값 치고는 싸지 않느냐.”

“······.”

위지승은 순간 어제 허두진의 목이 잘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태사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이마에 비도를 맞고 죽지 않았던가.

“아까워하지 마라. 네가 헌납한 자금은 앞으로 커나갈 우리 흑패 연합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나마 초기에 합류하였으니, 앞으로 네가 올라갈 위치를 생각하면 손해가 아닐 것이야.”

“···패주만 믿겠습니다.”

“안 믿으면 네가 어쩔 건데?”

“······.”

호충은 마지막으로 새로운 흑패의 이름을 정했다.

“연수흑패와 허창흑패가 하나로 더해졌다. 새로운 흑패이니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지. 위지승이 연수흑패를 이끌어 왔고 또한 살아남았으니 연위 흑패로 명하겠다.”

이후 호충은 사중환과 옥비연을 데리고 나가며 말했다.

“저녁에 기루 하나 비우고 애들 싹 모아.”

“예! 패주.”

***

호충이 사중환과 옥비연을 데리고 간 곳은 호충이 무공을 수련하던 산중의 구릉이었다.

“아까 위지승과 양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만, 너희가 우선이다. 너희가 내게 배우고 밑으로 전파해야 한다. 이미 왕호가 자장 흑패에서 조직원들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너희도 그리해야 한다.”

“예. 대형.”

“알겠습니다. 대형.”

“시일이 촉박하니 신체 단련과 더불어 너희에게 내린 무공을 함께 수련하겠다. 하지만 언제나 명심해야한다. 아무리 고절한 무공이 있어도 기초가 부실하면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하는 법이다. 또한 기초가 부족하면 고절한 무공이 오히려 신체를 좀먹게 된다.”

이후 호충은 지금까지 자신이 스승들의 무공서를 익히며 배웠던 금과옥조와 같은 조언을 곁들이며 사중환과 옥비연의 수련을 시작했다.

시작은 내공심법이었다. 각자의 무공서에 내공심법이 들어있었기에 다른 내공심법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정기신(精氣神)의 삼보(三寶)는 내공심법의 필수적인 가르침이다. 내공심법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정(精)이 배꼽 아래 하단전을 의미하고 기(氣)는 가슴의 중단전, 신(神)은 상단전을 의미한다. 하지만 너희 몸이 그와 같이 분리되어 있느냐?”

둘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셋을 분리하여 생각하면 훗날 너희가 대성을 이룰 때에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애초부터 이 셋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라고 여기거라. 그래야 너희가 하단전의 작은 그릇에서 벗어나 중단전과 상단전의 공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예. 대형.”

“우선 사중환 너부터 화가창법(樺家槍法)에 기록된 내공심법을 시작해라. 진기도인을 도울 터이니 네 몸의 기운이 어디를 향하는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사중환이 정좌하자 호충이 장심에 손바닥을 붙였다.

“내공심법은 입식면면(入息綿綿)에 출식미미(出息微微)를 기본으로 한다.”

“옙.”

“내가 입을 연다고 너까지 입을 열지 마라. 나야 내공을 일으키며 입을 열 수 있지만, 너희는 이제 시작이다.”

“······.”

아직 제대로 된 내공을 쌓아본 적이 없었던 사중환은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기이한 기운이 들어옴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내공심법의 혈도를 돌다가 하단전에 안착하였고, 자신의 숨결이 입출(入出)하는 것에 맞춰 다시 혈도를 순회하였다. 미세하게 내공이 불어나고 있었지만, 아직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네 내공심법은 화가창법(樺家槍法)을 발휘하는데 특화된 것이다. 나의 내공으로 시작하였지만, 소주천을 통해 너의 것으로 화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전하는 내기를 받아들여라.”

호충은 자신의 내공을 전하고 있었다.

‘이것은 씨앗이다. 내공의 씨앗을 심어 커다란 결실을 이루리라.’

이후 사중환이 혼자서 소주천을 돌릴 수 있게 되자 호충은 옥비연을 앉히고 반복했다.

“황룡살도(黃龍殺刀)의 내공심법은 무공이 보이는 모습처럼 폭력적이지 않다. 부드러우면서도 면면히 흐르는 내공이 특징이다. 내공이 꾸준히 소모되기에 그만큼 내공을 쌓는데 특화되어 있다. 너는 평소에도 자주 명상하며 내공을 쌓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둘은 처음 접한 내공심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호충은 그런 둘의 호법을 맡았다.

‘무럭무럭 자라라. 녀석들아.’

사실 둘은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기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무림의 누가 자신의 내공을 전할 것이며, 단번에 소주천을 성공하게 만들 정도로 정순하고 고절한 내공을 갖췄을 것인가. 호충이 아니라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었다.

둘은 한참이나 정좌해 있다가 눈을 떴다.

옥비연이 먼저 눈을 떴고, 호충의 입에 손가락이 올라와 있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

옥비연은 조용히 사중환이 심법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사중환이 눈을 뜨자 호충의 입이 열렸다.

“오늘은 내가 있었기에 이렇게 밖에서 심법을 연마한 것이다. 앞으로 너희가 내공심법을 연마할 때는 절대로 방해받지 않을 공간에서 해야 한다. 자칫 방해를 받으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해야 한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호법을 서주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대형.””

“자. 그럼 이번엔 잠룡진이다.”

내공을 익혔으니 이를 감출 잠룡진을 연마할 차례였다.

셋은 끼니도 거르고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저녁에 흑패가 모인 기루에 도착해서 둘은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호충만 부어라 마셔라 술을 들이켰다.

“모두 잔을 들어라! 연위 흑패를 위하여!”

““위하여!””

***

산서(山西)는 요즘 진가장으로 인해서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진가장의 무관이 들어서는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무력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부총관 염태중이 있는 장치(長治)가 심각했고 진호현이 나가있는 분양(汾陽)과 둘째 진호중이 준비 중인 홍동(哄洞)도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총관이 오기로 했던 양천(陽泉)과 가주가 오기로 했던 태원(太原)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가주와 총관은 진가장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느라 분주했기 때문이다.

쾅!

“감히 진가장의 행사에 반하다니!”

가주 진원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하는 서신에 질릴 지경이었다. 무관을 설립하는데 고용한 인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상하는 일은 부지기수로 벌어졌고, 그 중에 몇은 죽기까지 했다. 또한 진가장에서 파견한 무사들도 자주 발생하는 무력시위에 지쳐가고 있었다.

“가주. 저희 무사들이 분산되어 대응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본장에 남은 무사들은 몇이나 되는가.”

“가주전을 지키는 진천(眞天)대와 가주님의 직계가족을 호위하는 무사들, 본장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이 전부입니다.”

“진천대와 호위 무사를 전부 파견하겠다.”

“···그럼 본장에 남는 무사들이 얼마 없게 됩니다.”

“상관없다. 지금은 한 시가 급하다. 언제 정무맹에서 상황을 종료시킬지 몰라. 빨리 자리를 잡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 추가로 진가표국의 표두와 표사를 차출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가주의 호위는 남기셔야 합니다.”

“···표국의 인원을 끌어온다는 발상은 훌륭하다. 하지만 내 호위는 남기지 않을 것이다.”

각 지역의 표국에 이를 알리고 인원을 차출하는 것도 일이었고, 어디로 얼마나 많은 숫자를 보낼지도 결정해야 했다. 인원이 추가되었으니 비용도 추가되었다. 확장을 위한 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들어가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가장에서 무사들이 출발했고,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표국의 표두와 표사들이 합류해 산서의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호충이 화음(華陰)에 당도했을 때의 일이었다.

***

“휴우. 이제야 화음(華陰)에 도착했네.”

“화음은 그나마 크지 않아서 흑패도 하나만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긴 저희 둘이서 정리해도 되겠습니다. 형님과 제가 나서면 충분하지요.”

화음(華陰)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모든 성읍의 흑패를 접수한 호충이다. 연안(延安)을 지나 감천(甘泉)과 부현(富縣), 낙천(洛川), 동천(銅川), 서안(西安), 여산(廬山)에서 접수한 흑패만 열두 개에 이르렀다. 특히 섬서의 중심인 서안(西安)에는 거대한 성세를 이룬 세 개의 흑패가 영역을 다투고 있었기에 접수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사중환과 옥비연은 일당백의 무인으로 성장했고, 이젠 호충이 없어도 흑패 하나쯤은 요리할 수 있었다. 그간 호충으로부터 착실하게 무공을 수련한 탓이 더욱 컸다.

“어허. 자만은 금물이야.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화음(華陰)은 화산(華山)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었다.

“화산파(華山派)가 바로 옆이다. 서당 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을 것인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느냐.”

“에이. 무공과 글월이 같겠습니까?”

“맞습니다. 무공은 어깨너머로 본다고 배워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익혀왔기 때문에 잘 알았다. 호충에게 밤낮으로 시달려가며 배웠기에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었지 그저 남이 하는 것을 보기만 했다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무공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으이그. 화산에서 배운 놈이 없겠느냐는 뜻이다. 화산의 속가제자가 흑패로 들어왔다면 어찌하겠느냐.”

자신 같으면 화산 밑에 위치한 화음을 아무나 차지하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되고 있지만, 예전엔 사파나 마교의 공격까지 대비해야 했다. 지금은 마교가 흔적을 감췄고, 사파도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지만, 다른 무림 방파의 견제는 지금도 여전했다. 이들을 미연에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화산과 끈이 닿은 인물을 화음에 정보원으로 둬야 했다. 그리고 화음에서 정보원 노릇을 하자면 흑패만큼 좋은 단체가 없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과거의 상승 무공을 소실한 화산이라도 흑패의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르다. 속가제제가 마음먹고 노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물론 아직까지는 예상일뿐이지만···.’

자장만 같아도 진가장의 본장이 있었던 곳이지만, 흑패는 그와 무관했다. 만약 화산에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없다면 화음도 전혀 관련 없는 자가 흑패를 맡고 있을 수 있었다.

“너희는 경거망동을 금한다. 이곳의 패주가 누구인지 보고 결정하겠다.”

호충은 객잔을 잡아 놓고 사중환과 옥비연을 대동하고 화음의 도박장을 물색했다.

“화음엔 도박장이 없소만.”

“도박장이 없습니까?”

옥비연은 중원인 누구나 좋아하는 도박장이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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