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파(華山派)
***
“화음엔 도박장이 없소만.”
“도박장이 없습니까?”
옥비연은 중원인 누구나 좋아하는 도박장이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생기는 족족 관에서 털어버리니 생길 수가 있겠소.”
“아무리 관가에서 나섰다고 해도···.”
“아무리 숨겨도 귀신같이 찾아냅디다.”
“허허. 고맙습니다. 노인장.”
“젊은이는 도박장에 얼씬도 하지 마시오.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오.”
“···예. 그리하지요.”
호충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도박장의 위치를 묻고 돌아온 옥비연에게 들을 수 있었다.
“화음의 사람들은 도박장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화산에서 관여했다는 의심이 더욱 커졌다. 도문인 화산에서 도박장을 운영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루는?”
“홍루는 하나 있고, 청루가 대부분입니다.”
“홍루로 가자.”
“예.”
홍루에 도착한 호충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놈이 출입문을 지켜?’
홍루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은 홍루를 지키지 않는 것처럼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눈은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들어갈 것도 없구나. 돌아가자.”
“예. 대형.”
화음의 흑패를 접수하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였다.
‘화산의 속가제자들이 조직적으로 흑패를 맡고 있음이다.’
호충은 객잔으로 돌아가며 지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화음에 설립한 화음무관은 화산의 속가제자가 세운 무관이었고, 상회나 표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도 화산에서 수학하고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무공이 여실히 느껴졌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이들을 생각하면 상당한 숫자라고 추측됐다.
‘화음은 화산파가 확실하게 잡고 있구나.’
무공이 높진 않아도 충성심은 확실할 것이다.
“대형. 화음은 그럼 어찌하는 겁니까?”
“내버려 둬야지. 화음엔 화산의 인물이 가득하다. 내가 화산으로 가야할 것인데, 여기서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지.”
문제는 자장에서 일으킨 것으로 충분했다. 진가장을 뺀 나머지 무림 방파와 척을 지고 살 이유가 없었다.
“한 방에서 같이 만나자. 앞으로 일을 의논할 것이다.”
***
호충은 화진과 송 영감까지 불러 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알렸다.
“우선 내가 화산에 들기로 한 것은 가문의 뜻이라 지켜져야 한다.”
진가장의 무사들과 셋째를 때린 것은 무마할 수 있는 일이나, 진가장의 무공을 위한 이번 일은 결이 달랐다. 호충이 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대계를 이루기도 전에 진가장을 적으로 돌릴 수 있었다.
“본래라면 몇 년이고 여기서 머물러야 할 것이나,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책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몇 달은 걸릴 것이다.”
가주와 첫째가 화산과 신뢰를 쌓아 무공을 얻어 내려는 것처럼 호충의 방책도 신뢰를 쌓아야 실현 가능한 방책을 갖고 있었다.
“사중환과 옥비연은 이미 배울 것을 다 배웠다. 나머지는 너희가 수련하기 나름이니, 돌아가서 고련을 이어가라.”
“대형. 저희는 대형의 가르침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너무나 부족하지 않습니까.”
이제 사중환과 옥비연은 배우면 배울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호충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연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자신들의 무공이 그 증거였다.
“연안에서부터 우리가 접수한 흑패만 열둘이다. 통합해서 줄인 숫자도 일곱. 여기에 자장과 천수를 더하면 모두 아홉이지. 우리 연합의 패주와 수뇌부의 숫자가 이십이 훌쩍 넘는다. 이들에게도 무공을 가르쳐야 한다. 너희는 자장으로 돌아가며 흑패의 수뇌부에게 류상비도(柳狀飛刀)와 파산도법(破散刀法)을 전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아직 제대로 무공을 시작하지 못한 왕호를 가르쳐야 한다. 할 일이 태산인데 어찌 너희만 생각할 수 있겠느냐.”
“죄송합니다. 대형. 접수한 흑패를 돌며 무공을 하사하겠습니다.”
“저희는 스스로 더욱 단련하겠습니다.”
둘이 호충의 말을 받아들이자 화진을 돌아봤다.
“그대도 의제들과 같이 가야 할 것이다.”
“!”
“각 흑패에 소속된 기녀들을 교육해야 하지 않겠느냐.”
기녀들에게 가르칠 방중술과 음공은 그간 호충에게 충실히 배웠다. 특히 방중술의 경우 실전(?)을 겸하여 익혔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사중환과 옥비연은 그대의 일을 뒤에서 지원할 것이다. 그대의 명이 곧 내 명과 같다.”
“예. 저희가 형수님을 뒤에서 보좌하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따르겠습니다. 가가.”
“오늘은 쉬고 내일 떠나기로 하자.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는데, 하루는 쉬어야지.”
“저희는 매번 대형의 시간을 빼앗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스스로 해보겠습니다.”
흑패를 접수하는 시간과 둘의 무공을 봐주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둘에게 쏟아 부었다. 그 와중에 화진의 무공을 봐주며 자신의 무공까지 수련해야 했기에 호충은 밤낮없이 바쁜 시간이었다.
“흑패에 가르칠 류상비도(柳狀飛刀)와 파산도법(破散刀法)을 완벽하게 익혀야 하니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해야지요.”
둘이 익히고 있는 화가창법(樺家槍法)과 황룡살도(黃龍殺刀)는 류상비도(柳狀飛刀)와 파산도법(破散刀法)에 비견할 수 없는 고절한 무공이었다. 그만큼 난해하고 익히기 쉽지 않았기에 그 아래 단계에 위치한 무공을 익히는 것은 오히려 수월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미 호충의 가르침을 통해 일정 이상의 경지를 맛보았기에 가르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쉴 시간이 마땅치 않아 미안한 마음이다. 너희의 시간은 우리 흑패 연합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항상 기쁜 마음입니다. 대형.”
호충은 송 영감을 대동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곳에 있는 진가표국 지점에 들르겠다. 화음에 도착했다고 알려야 하거든.”
“다녀오십시오. 저희는 밖에 수련할 공간을······.”
“여긴 화산이 지척이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안에서 수련해라.”
혹여 무공을 익히는 것이 화산파 도인들의 눈에 발각될 수도 있었다. 무공을 익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지만, 그 무공이 상승 무공을 뛰어넘는 고대의 무공이기에 문제였다.
“아. 그럼 객잔 내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다녀오마.”
호충은 오랜만에 진가장의 검갑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도련님.”
“영감도 마찬가지잖아.”
호충이 흑패를 접수하고 일행이 무공을 수련하는 동안 송 영감은 내공심법과 잠룡진에 매진했다. 덕분에 몸속에 녹아있던 설삼의 모든 기운을 내공으로 바꿀 수 있었고, 잠룡진은 대성한 상태였다. 지금 호충을 제외하고 일행 중에 가장 많은 내공을 보유한 사람이 바로 송 영감이었다.
그 다음으로 내공을 쌓은 이는 사중환과 옥비연이 아니라 화진이었다. 화진은 호충에게 배운 환희공(歡喜功)을 통해 방중술(房中術)의 오의를 깊이 깨닫고 있었고, 음양의 기운을 활용해 내공을 쌓는 비법을 배웠다. 여기에 호충의 방대한 내공이 호응하여 기운을 더하니 많은 내공이 쌓이는 것은 필연이었다. 사중환과 옥비연이 기연을 맞이한 것처럼 화진도 호충을 통해 기연을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 셋을 보내면서도 걱정이 없었다.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셋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다른 것도 익혀야지?”
“뼈마디가 삐걱거려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고희(古稀)도 되지 않았으면서 앓는 소리하지 마. 게다가 요즘은 반 백 살 아래로 보여.”
“허허허. 젊어 보인다니 듣기 좋습니다.”
“앞으로 영감과 나만 남을 것이니 가르칠 시간은 많아. 무공은 뭐가 좋겠어? 뭐든 원하는 대로 알려주지.”
“제가 무슨 무공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어찌 고르겠습니까.”
“······.”
호충은 송 영감이 고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알맞은 무공을 고르기 시작했다.
‘검법이 좋기는 한데···.’
항상 검을 패용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종복이 무기를 들게 하는 것은 나라의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종복이 아니게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호충은 송 영감의 면천(免賤)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관부에 가서 돈을 주면 면천이 가능하다고 했으렸다.’
종복. 즉 노비인 이들은 돈을 모아 면천이 가능했다. 하지만 많은 노비들이 이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살아온 생이 노비였기 때문이다. 노비에서 벗어나면 누가 먹여주고 재워줄 것인가. 또한 양인이 되면 세금을 내야 했기에 돈을 벌어야 했다. 노비는 소유의 개념이기에 세금과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재주가 없는 이상 양인이 되어도 먹고살 방법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노비들은 군역과 노역에 동원되고 세금까지 내야하는 면천을 두려워했다.
‘내가 일가를 이루면 당장 송 영감부터 면천시킬 것이다.’
지금은 진가장 가주의 아들신분이기에 함부로 면천을 논할 수 없었다. 최소한 일가를 이루고 확실한 기반이 있을 때에나 관부에 면천을 허락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나마 송 영감이 내 밑에 적을 올렸으니 다행이군.’
노비는 소유의 개념이었고, 어미에게 속해있던 노비 문서의 소유주가 호충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가장에서 나올 때에도 잊지 않고 영감의 노비 문서를 챙겨 나왔다.
“도련님도 찾기 어려우신가 봅니다.”
호충은 송 영감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냐. 찾았어.”
“허허. 무엇이옵니까.”
“영감에게 잘 어울리는 검법이 있어.”
“검법은 무리가 아닐지···.”
송 영감도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내가 곧 영감을 자유롭게 해줄 생각이야.”
“···도련님.”
“그래도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물론이지요. 도련님의 손주는 제가 꼭 보고 말 것입니다.”
“흐흐흐. 당연히 봐야지.”
호충과 송 영감은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진가표국의 화음지부로 향했다.
***
호충은 진가표국의 화음지부를 들어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렇게 한가해?’
보통 때라면 쟁자수와 표사들로 북적여야 했다.
‘아무리 지부라지만 이건 좀···.’
호충과 송 영감이 들어서자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흘낏 보고 말했다.
“표물 이송이 어려우니 다른 표국을 이용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진가표국에서 표물을 마다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표두도 없고 표사도 없는데 어찌 표물을 운반하겠습니까.”
“······.”
“그러니 다른 표국으로 알아보시······.”
고개를 돌린 남자의 눈이 호충이 들고 있는 검의 수실로 향했다. 붉고 푸른 수실이다.
“헛! 진가장의 무사님이십니까?”
“급하게 진가장에서 출발해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진가장에 서찰을 보내려 했더니···.”
“어허. 무사님들은 전부 진가장에 차출되었는데, 아직 명을 받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내가 받은 명은 화산으로 가라는 명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가주님의 명으로 화음에 온 진호충입니다. 가주님이 내 아버님 되시오.”
“본장의 공자님이셨습니까? 아이쿠. 제가 진가장의 공자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차출되었다는 얘기나 해보시오. 왜 진가장에서 무사들을 차출했단 말입니까?”
“소상히 고하겠습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하면······.”
호충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산서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세력 확장이 쉽지 않은 모양이구나.’
산서에서 필요한 무사들의 수가 늘어나 진가표국의 표두와 표사들까지 모조리 끌고 갔다고 한다. 덕분에 진가표국은 낭인를 고용해 표물을 운반하는 실정이었다.
“낭인들에게 삯을 지불하면 남는 것도 없습니다. 고객을 잃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지요.”
“알겠소. 소상히 알려주어 고맙습니다. 서찰은 다른 표국을 통해 전달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아닙니다. 맡겨주십시오. 공자님의 서찰을 그리할 수는 없지요.”
“···급하지 않으니 자장으로 향하는 표물이 있을 때 같이 보내시면 될 것이오.”
호충은 서찰을 전하고 나오며 지금 흑패 연합에 부족한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진 정보가 너무 부실하다. 진가장이 산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진가장이 산서로 진출한다는 사실도 자장의 흑패를 통해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어째서 진가장이 확장을 꾀할 수 있는지도 정무맹과 협의맹의 회합을 추측한 것이지 정확하지 않았다.
“아직 멀었군.”
흑패 천하를 이루는 날이 언제 오려나 싶었다.
***
다음날 호충은 사중환과 옥비연을 떠나보냈다.
“대형. 다시 뵐 날까지 무탈하십시오.”
“저희는 명하신 바를 충실히 완수하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너희의 안전을 가장 앞에 두어야 할 것이다. 너희를 잃으면 나는 다 잃는 것이다.”
“···대형.”
“와. 대형은 어쩜 그렇게 멋있는 말씀만 하신 답니까.”
“왕호가 출발했을 것이다. 왕호와 화음의 도박장에서 보기로 하였으나, 여기에 도박장이 없으니 만날 방법이 난감해졌다. 가는 길에 왕호를 만나거든 화산파에 오르는 근처에서 기다리라고 하여라. 그 근방에 집을 마련하겠다.”
“예. 대형. 그리 전하겠습니다.”
화진도 마차에 오르기 전에 호충과 인사했다.
“가가···.”
“그대와 재미난 여행을 즐기고 싶었으나,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산천을 즐기지 못하였다.”
“아니어요. 충분히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그대에게 너무 많은 일을 맡겼다. 힘에 부치거든 나를 원망해도 좋아.”
“가가를 항상 떠올리며 이겨낼 것이옵니다.”
“나 또한 그리할 것이다.”
마차를 보내고 호충은 영감과 둘만 남았다.
“화산 아래에 거처를 마련하셔도 되겠습니까? 화산에 오르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나는 화산의 직전제자도 아니잖아. 거기다 속가제자도 될 수 없는 손님에 불과해. 거처를 따로 마련해도 상관없어. 진가장에 변고가 생겼으니 서찰이 쉬이 오가지도 못할 거야.”
“화산파에서 도련님의 의중을 따라줄지···.”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걸?”
호충의 머리엔 화산파 도인들을 요리할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