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32)

입문(入門) 검법(劍法)

***

백준은 호충과 동갑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친숙하게 말을 걸었다.

“편히 하라했으니 이제 말을 놔도 되겠지?”

“물론.”

백준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왔다.

“그런데 진가장의 아들이 어째서 여기까지 온 거야? 거기서도 얼마든지 무공을 익힐 수 있잖아.”

“난들 어찌 알겠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거지.”

“화산은 정말 힘들거든. 아마 며칠만 지내도 집이 그리워질 걸?”

“푸흐. 그럴 일은 없어.”

“자신만만하네? 집에서 뭐라도 익힌 거야?”

진가장이라면 얼마든지 가전무공을 익히고 들어왔으리라 여기고 물었다.

삼대 제자들 중에 가전 무공을 익히고 들어오는 이들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난 아무것도 익히지 않았어. 도망은 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집이 그리울 일이 없다는 말이야. 아무리 화산의 생활이 힘들어도 집이 더 싫거든”

“뭐야? 하하하.”

연무장 근처에 다다르자 우렁찬 기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압!”

“다시 일 식부터 시작한다. 더욱 힘차게 검을 뻗어라.”

“워. 다들 열심인가본데···. 너는 왜 빠진 거야?”

“나는 오늘 접객당 담당이라서 빠졌지.”

“아. 이해했어.”

“내일부턴 나도 저기 들어가야 해. 에효. 접객당 당번이 자주 돌아오면 좋겠어.”

“그럼 난 어쩌라고. 난 그런 당번도 없을 거 아냐.”

“큭. 그렇네. 어서 들어가자.”

“수련 중인데 방해해도 괜찮아?”

“오늘은 현인 사숙조께서 지도하시는 날이라 괜찮아. 현진 사숙조라면 힘들었을 거야. 현진 사숙조는 조금 무섭거든.”

호충은 백준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백준은 쪼르르 달려가 연무장 앞에 서서 지도하는 도장에게 다가가 호충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호충에게 들었던 말을 전하고 있으리라.

“모두 멈춰.”

그의 말에 연무장에서 목검을 휘두르던 제자들이 펼치던 검식을 거뒀다.

“이쪽으로 오시게.”

“예. 도장.”

호충은 빠른 걸음으로 현인 도인 곁으로 갔다.

“진가장의 호충입니다. 현인 도장.”

과묵한 인상이었는데, 인상과 달리 상당히 온화한 사람이었다.

“오느라 수고 많았네. 소개는 내가 대신해도 되겠는가?”

“부탁드립니다.”

“이쪽은 진가장에서 너희와 함께 수련하게 될 호충이다. 나이는 열일곱이니 너희와 비슷할 것이다.”

나이가 열일곱이라는 말에 몇몇이 의아한 얼굴을 했고, 현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약을 잘못 먹어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구나. 너희가 앞으로 잘 대해주어야 할 것이다.”

““예! 사숙조님!””

백준이 잠깐 사이에 약을 잘못 먹었다는 말까지 전한 모양이다.

호충은 앞으로 나서서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화산의 제자들께 인사하겠습니다. 진호충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자아. 인사는 그만하면 됐고···. 이제 실력을 봐야겠지?”

“예?”

인사만 하면 끝인 줄 알았다. 실력까지 보여야 할 줄은 몰랐다.

현인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목검을 내밀었다.

“우리 화산의 제자들은 진가의 검을 무척 궁금해 할 것이야.”

삼대 제자들은 현인과 호충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현인도 호충이 진가의 가전 검법을 익혔으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너희도 보고 싶지 않느냐!”

““예! 보고 싶습니다!””

호충은 남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진가의 검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진가의 검뿐이 아니라 애초에 검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내 눈은 못 속여. 자네의 몸은 진실을 말하고 있네. 검술을 익히기에 최적화된 몸이야.”

“!”

경혼무흔(驚魂無痕)이 내공과 무공을 익힌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주지만, 수련을 통해 만들어진 근육까지 가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공청석유를 통해 환골탈태를 이룬 몸이니 얼마나 골격이 좋아 보일 것인가. 천상 무골로 보일 것이다.

‘눈썰미가 좋은 무인은 체형만으로 무공을 알아보는구나.’

“배우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네. 그 몸으로 검을 들면 어떤 검형을 그릴지 무척 궁금하거든.”

‘보이더라도 오늘 보일 생각은 없었는데···.’

화산에서 검을 익히며 두각을 드러내고 점진적으로 신뢰를 얻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저는 검을 들어도 아무런 검식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현인 도장께서 일부라도 보여주신다면 그를 따라하겠습니다.”

“허허. 정말로 익히지 않았다니···.”

아쉬운 눈을 하던 현인은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했다.

“내게 팔을 내줄 수 있겠는가. 잠시만 살피겠네.”

“그러시지요.”

호충의 완맥을 잡은 현인은 내공이 한 줌도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서야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정녕 아무것도 익히지 않았구나. 내공조차 없다니···.”

“그래도 몸을 쓰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

“···그럼 개화검(開花劍)을 보여줄 터이니 한번 따라해 보겠느냐?”

“꽃을 피우는 검이라···. 화산의 기본검법이로군요. 좋습니다.”

개화검(開花劍)은 화산파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매화검법(梅花劍法)을 배우기 위해 기본으로 익혀야 하는 검법 중 기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산파는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은 고사하고 중간에 이어지는 다른 검식조차 없으니 이후에 엉뚱한 검법을 다시 배우는 실정이었다.

‘기본검법이라면 수월하겠지.’

이미 황궁 비고에서 진본 이십사수매화검법까지 살펴본 호충이다. 그 하위에 존재하는 검법이라면 대충 살펴도 따라할 수 있을 터였다.

호충은 현인이 취하는 개화검의 기수식부터 눈에 담기 시작했다.

‘호오. 정말 오랜 시간 검술을 연마한 검수로구나.’

단단한 자세는 틈이 없었다. 기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검술을 시연하면서 정성을 다하는 자세부터가 진정한 무인의 자세였다. 호충도 가벼운 마음을 버리고 현인의 시연에 집중했다.

스르륵.

현인은 지금 삼대 제자들이 배우고 있는 기본 검법을 천천히 풀어냈다. 삼대 제자들 모두가 사숙의 시연을 눈에 담고 있었지만, 곧 관심을 잃어갔다. 그들이 매일 같이 연마하는 검식이었기 때문이다.

“······.”

삼대 제자들은 자신들이 배우는 개화검을 편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호충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중이었다.

‘기본! 기본이 전부였어.’

개화검은 찌르고 베고 휘두르는 아주 간단한 검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안에는 매화를 피워내기 위한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현인이 밟고 있는 보법의 작은 움직임과 기본적인 검식의 흐름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매화검!’

화산의 정수는 아직 그대로 화산에 남아 있었다.

“후우. 잘 보았나.”

“···정말 대단한 검을 보았습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만개한 매화라고 한다면 개화검은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라고 할 수 있었다.

“······자네가 지금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 같아 더욱 아쉽군.”

현인은 호충이 놀라서 하는 말에 정말 검식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호충이 실제로 놀랐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목검을 잡아보게.”

호충은 현인이 내미는 목검을 가벼이 잡을 수 없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부족한 제가 개화검을 어지럽힐까 걱정입니다.”

“······.”

현인은 개화검을 이렇게 높이 평가했던 제자가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없군.’

누구도 화산의 개화검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삼대 제자 중에서 이 개화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제자도 없었다. 너무나 쉬운 검법이었기 때문이다. 익히기 쉬운 만큼 검식의 위력 또한 상당히 떨어지는 검법이었고, 이는 낮은 평가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개화검을 줄여 개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개도 익힐 정도로 쉽다는 뜻이었다.

“자네가 무슨 수로 개화검을 어지럽히겠는가.”

개화검은 개검보다 내려갈 곳이 없었다.

‘개똥이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걱정 말고 따라해 보게.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검을 내려도 좋네.”

“예. 도장.”

검을 잡은 호충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너무 높은 수준의 검법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호충의 몸이 개화검의 기수식을 따르고 있었다.

‘의제들에게 기초를 그리 강조하였으면서···.’

스르륵.

호충의 검이 개화검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정작 내가 기초를 등한시 하였구나.’

스르륵. 탓. 스르륵. 탓.

호충의 검은 현인의 검식과 같은 검로를 그려냈고, 같은 보법을 밟아 나갔다.

현인은 호충의 검이 그리는 개화검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

‘정성을 다한 개화검이로다! 지금 진가의 공자가 그려내는 검식은 그의 마음이 녹아들어갔구나!’

검식에 담은 마음이 절로 느껴지고 있었다.

‘처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찌 저리 아름답단 말인가···.’

개화검은 말 그대로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호충은 개화검의 마지막 검식인 개화만개(開化滿開)를 그리며 다시 기수식과 같은 모습의 종결식으로 돌아왔다.

현인은 자신이 받은 감격을 쏟아내려 입을 열 참이었다.

스르륵. 탓.

“!”

하지만 호충의 검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개화검의 일식을 그리고 있었다. 호충은 진양의를 총 동원하여 기본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삼대 제자들이 웅성거릴 찰라 현인이 손을 흔들어 주의를 집중시키고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

고요한 연무장엔 호충의 개화검이 홀로 펼쳐지고 있었다.

호충은 이후 연달아 다섯 번의 개화검을 더 펼치고서야 검을 내렸다.

짧은 검식이라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삼대 제자 대부분은 지루한 얼굴이었다. 매번 연습하는 검식을 반복해서 봐야했기 때문이다.

현인은 그런 삼대 제자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검을 보고도 아무도 깨닫지 못했구나.’

현인이 호충에게 다가왔다.

이제 감격이고 뭐고 짧은 소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잘 보았네.”

“도장의 말씀대로였습니다. 검을 잡으니···. 이제야 제 짝을 만난 기분입니다.”

호충은 기본을 통해 상승 무공에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는 것보다 이렇게 특출한 모습을 갑자기 보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방금···. 하아.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제가 보여드린 개화검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내공은 드러내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였지?’

특출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긴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검식에 빠져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자네가 펼친 여섯 번의 개화검은 하나 같이···.”

“제가 여섯 번이나 개화검을 펼쳤단 말입니까? 딱 한번만 더 하려고 했는데···.”

현인은 호충의 말을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검식에 빠져 몇 번을 펼쳤는지도 잊었구나! 처음 검을 잡자마자 깨달음의 영역으로 곧장 진입하다니!’

호충도 현인의 말을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검식에 빠졌었구나.’

현인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네는 이리 오게. 나랑 갈 곳이 있네.”

“자, 잠시만. 지금 어딜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가보면 알게 되어 있네!!”

호충은 현인의 손에 잡혀 연무장을 나서야 했다.

““······.””

연무장에 남은 삼대 제자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백준은 곁에 있었기에 현인의 얼굴 변화를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현인 사숙조께서 화가 많이 나셨네···.”

평소 큰 소리도 내지 않는 사숙조였는데, 오늘은 얼굴까지 붉히며 호충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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