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32)

왕호 합류

***

“큭. 이 녀석 턱 빠진 거 봐라.”

“나중에 대형께 다 말씀드려야겠네요.”

“대형은 오히려 칭찬하실 걸?”

“푸하하. 대형은 그러고도 남지요.”

화진도 왕호를 맞이해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뵙네요. 가가의 의제이신 왕호님이시죠?”

“역시 대형은 눈도 엄청나게 높으십니다. 이 부분은 제가 감히 따를 수가 없네요.”

“호호호. 누가 가가의 의제 아니랄까봐 말투도 비슷하세요.”

“감사합니다. 형수님.”

“오는 길이 고단하셨을 텐데, 바로 헤어져야겠어요. 저희는 급하게 길을 가야해서요. 그래도 식사 정도는 같이 할 수 있겠죠?”

사중환고 옥비연도 오랜만에 마주한 왕호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형수님.”

“여산에선 그리 힘을 쓸 것도 없으니까요.”

“저는 형수님을 뵌 것만으로 여독이 싹 가셨습니다. 그런데 급한 일이 있으십니까? 힘쓰는 일이면 제가 돕겠습니다.”

왕호의 말을 사중환이 받았다.

“대형께서 오는 길에 있는 흑패를 전부 접수하셨다. 지금 우리는 여산 흑패로 갔다가 서안 흑패로 가야해.”

“···전부?”

옥비연이 첨언했다.

“오는 길에 접수한 흑패만 열둘이야.”

“헙!”

“비연. 지역마다 통합해서 숫자가 줄었잖아.”

“아! 그럼 천수랑 자장 빼고 일곱이라 하죠.”

천수 흑패와 자장 흑패를 더하면 모두 아홉의 흑패를 거느리고 있었다.

“허! 대형은 역시 대단하시네.”

사중환과 옥비연은 어깨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강력해졌지. 네가 우리 일을 돕지 않아도 상관없어.”

“너는 지금 우리와 상대도 안 될 걸?”

후웅.

둘은 잠룡진을 잠시 풀어놓고 마음껏 기운을 내뿜었다. 왕호에게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

왕호는 두 사람이 내뿜는 기운만으로 충분히 우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덤비면 필패였다.

“썩을···.”

“대형께서 너를 수련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

“나만 빼고 배우다니! 내가 자장 흑패 녀석들을 가르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자장에서 흑패 조직원을 단련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고 해서 이렇게 차이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왕호님은 이미 기초를 배우셨으니 금방 고절한 무공을 익히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예. 형수님. 저도 고수가 되고 말겠습니다.”

“그럼요. 되고말고요. 호호호호.”

우웅. 우웅.

화진의 웃음소리와 호응하여 대기가 떨리고 있었다. 음공을 익혀 목소리에도 기운이 담기기 때문이다.

“!!”

왕호는 화진의 목소리에 담긴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목소리에 기이한 기운이···.’

“···혀, 형수님도 대형께 뭔가 배우셨습니까?”

“어머. 제가 마차 안에만 있다 보니 깜박했네요.”

얼른 잠룡진으로 기운을 수습한 화진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저도 가가의 수족이랍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내가 제일 약하다니!’

왕호는 나약한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바로 떠나겠습니다. 여기서 화산까지는 지척이지 않습니까.”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식사는 같이하시지 않고요.”

“아닙니다. 한 시가 급합니다.”

당장 대형을 만나야 했다.

.

.

.

그렇게 바쁘게 길을 떠나 화산 초입에 도착했건만 대형이 머물고 있다는 가옥은 찾을 길이 없었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 봐야 하나?’

왕호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호충이 마련했다는 가옥을 찾아다녔다.

‘이 집엔 아무도 없나?’

다른 가옥엔 저마다 사람이 출입하고 있어서 호충이 마련한 가옥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집은 인기척이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잠깐 들어가서 확인만하고 나오자.’

왕호는 조심스럽게 담을 넘었고,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살기는 하는 것 같은데···.’

왕호는 기척을 죽이며 어두운 방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스윽.

그 순간 목 밑에 따끔한 뭔가가 닿았다.

“누구냐!”

“꺼흡. 사, 살려주십시오.”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날카로운 검신이 목에 닿아 있었다. 검을 든 상대는 어둠에 숨어서 지금도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척을 죽인 고수! 그것도 검객이라니! 젠장!’

“저,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저 누가 사는지 궁금하여···.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대인.”

“왕호?”

왕호의 이름을 부른 상대가 얼른 검을 내렸다.

“틀림없이 도둑인줄 알았더니···.”

어둠 속에서 주름진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송 영감이었다.

“어, 어르신?”

“허허허. 잘도 찾아왔구려. 안 그래도 도련님이 얼마나 걱정을 하시던지.”

“···어르신도 무공을 배우셨습니까?”

“나이만 먹으면 뭘 하겠습니까. 도련님이 뭐라도 배우라니 배워야지요.”

“······.”

‘분명 사중환이나 옥비연만큼 강한 기운이었어.’

형수가 목소리에 기운을 담을 정도의 고수가 된 것도 경이로울 지경이었는데, 이젠 노복까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럼···. 나만 맹탕이잖아!’

자신이 최약체라는 것만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단번에 목을 자를까 고민하다가 말았더니···. 정말 다행입니다.”

쓰윽.

왕호는 괜히 자신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하마터면 진짜 죽을 뻔했구나.’

왕호는 송 영감이 들고 있는 검에 눈길을 줬다.

“어르신은 검을 익히셨습니까?”

“최근에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도련님이 얼마나 재미있게 가르쳐주시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웠지요.”

“절세 고수를 만난 줄 알았습니다.”

“허허허. 어서 들어오세요. 도련님은 저녁이 되기 전에 화산에서 내려올 겁니다.”

“휴우. 어쨌든 이렇게 만나서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어르신.”

“식사는 하시었소?”

“아직 입니다. 식전이시면 같이 나가시죠.”

“외부에 나가는 것은 조금 미뤄둡시다. 곧 도련님이 오실 터이니.”

***

이후 화산에서 내려온 호충은 왕호를 마주했다.

“왕호! 드디어 네가 왔구나!”

“헤헤헤. 대형!”

둘은 얼싸안고 해후의 기쁨을 표했다.

“이야. 그간 몸이 더 단단해졌네?”

“자장 흑패 놈들을 단련시키는데 제가 소홀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바도 적지 않았지요.”

“하하하. 역시 내 의제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입니다. 얼른 식사부터 하시죠.”

“날 기다리느라 그랬구나. 그래. 얼른 먹자.”

왕호는 송 영감이 차려준 저녁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호충과 다시 마주했다.

“오는 길에 사중환과 옥비연을 만났다고?”

“예. 대형은 녀석들을 만난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실 겁니다.”

“푸흐흐. 녀석들이 무공을 조금 익히긴 했지.”

“조오금? 그게 조금입니까? 기운이 살벌하던데요?”

사중환과 옥비연이 풀어놓은 기운에 오금이 저렸었다.

“형수는 또 어떻고요. 어떻게 목소리에 대기가 울린단 말입니까?”

“크흐흐. 화진이는 진도가 조금 빠르지.”

“그리고 어르신도 검을 쓰시던데요?”

“어이쿠. 영감의 검도 봤어? 내가 함부로 보이지 말라고 했었는데 말이야.”

자신의 목에 닿았던 검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했다.

“···대형이 사는 집을 찾으려고 몰래 들어왔었거든요.”

“네가 뒈지려고 작정을 했구나.”

“진짜 죽을 뻔했지요.”

“큭큭.”

“웃지만 마시고 저도 얼른 가르쳐주십시오. 대형.”

“서두르지 마라. 어차피 네가 배울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은 녀석들의 무공보다 한 단계 위의 무공이다. 조금 늦었다고 해서 네가 약하진 않을 것이다.”

“오옷!”

“하지만 네가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고절한 무공이 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일까.”

“대형. 저 모르십니까? 대형이 직접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저 왕홉니다!”

예전 호충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여전히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왕호였다.

[너희는 참으로 대단한 패주를 모시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했다.

[나는 일찍이 이런 기재(奇才)를 본 적이 없다. 왕호는 의리가 있어 누구든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고, 작은 종자돈이라도 있었다면 수 배로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 패주에게 인의(人義)와 상재(商材)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文)을 익혔다면 희대의 문장가가 되었을 것이고, 무(武)를 익혔다면 역전의 장군이 되었겠지. 무공을 익혔다면 무슨 무공이든 대성(大成)했을 것이다.]

살면서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지극한 칭찬의 말들이었다.

“그렇지! 내 의제 왕호는 뭐든 대성할 기재(奇才)였지!”

“하하하. 그렇습니다. 저 왕홉니다!”

호충은 왕호를 보며 의지를 굳건하게 만들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알아서 몸을 굴릴 놈이다.’

무공을 익힐 의지를 키워주지 않아도 이미 사중환과 옥비연을 만나며 경쟁심을 키우고 있었고, 스스로 익힐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했다.

“너는 누구도 보이지 못한 빠른 성장을 이룰 것이다.”

이와 같은 자신감과 의지라면 무공의 재능보다 피나는 노력이 빛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푸흐흐. 대형의 칭찬은 매번 들어도 적응이 어렵습니다. 크흐흐흐.”

“당장 시작하자!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의 내공 심법부터 시작할 것이다.”

“예! 대형!”

호충은 왕호의 진기도인을 함께하며 내공 심법을 전수했고, 대월천룡권의 식을 풀어 몸에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낮에는 화산에 오르고 일찍 내려와 왕호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너는 운 좋은 줄이나 알아라. 녀석들은 화진과 영감을 가르치고 흑패를 접수하느라 빼앗긴 시간이 많았다.”

“흐헤헤.”

사중환과 옥비연은 호충이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가르쳤기에 항상 시간에 쫓겨 무공을 익혔지만, 지금은 송 영감만 남아 있었다. 화산파에서 할 일이 있기는 했으나, 호충이 자리를 비운 동안엔 스스로 배운 무공을 복습하며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에 왕호는 충실하게 호충의 가르침을 받는 셈이었다.

“잠룡진은 익숙해졌느냐?”

“예. 이제 내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파산도법(破散刀法)과 류상비도(柳狀飛刀)를 함께 익혀야 할 것이다. 천수에서 너를 기다리는 녀석들에게도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니냐.”

“···녀석들이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천수를 떠난 지도 한참인지라···.”

“큭큭. 혹여 다른 놈이 천수를 차지했더라도 걱정할 일이 없지. 너는 고수가 되어 있을 테니까.”

“푸흐흐흐. 그도 그렇습니다. 누가 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면 단번에 때려눕히겠습니다.”

왕호는 천수의 걱정을 뒤로하고 호충이 자신에게 지시한 일을 물었다.

“대형. 그런데 왜 밖에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아. 그건···.”

왕호가 이곳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지시한 일이었다.

[너는 여기서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집에만 머물러라. 외부의 심부름은 송 영감을 통해 부탁하고 식사도 무조건 집 안에서만 해야 한다.]

왕호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지금까지 따라왔지만, 밤이 아니면 밖으로 나가지 못해 조금 답답한 참이었다. 밤에는 호충과 함께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수련을 이어갔으니, 결국 외부에서 만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네가 스스로 무공을 수련할 수 있을 정도로 익히면 나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오! 제가 필요한 일이 있었군요!”

“그렇지. 외부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나쁜 일인가 보죠?”

“나쁜 일은 아니지만, 너와 나의 관계가 드러나면 안 되거든. 분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 저는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일러주마. 아직은 네 무공은 물론이고 경공 수련도 한참 부족하다.”

왕호의 무공이 일정 수준에 올라가야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열심히 수련해서 도움이 되겠습니다. 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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