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232)

개화(開花)

***

“바로바로~~~. 짜잔! 바로 화산의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과 이를 익히기 위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개화검결(開花劍結)이올시다!”

““!””

““!””

화산의 도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와중에도 왕호의 입은 쉬지 않고 나불거렸다.

“캬아. 이 얼마나 대단한 기회란 말입니까. 화산파에서 실전한 지고한 검법을 이 몸이 들고 왔습지요. 그렇다고 공짜로 드릴 수는 없는 법! 단 돈 금 칠만 냥에 모시겠습니다. 아차. 개화검결은 추가로 금 삼만 냥이니 도합 금 십만 냥이올시다. 싸다 싸! 후딱 사 가십시오.”

현자 배 도인들은 차게 식은 눈으로 현인을 보며 말했다.

“잡상인은 빨리 쫓아냈어야지 이 사람아.”

“내가 보내려고 했는데 그대들이 붙잡지 않았는가!!”

왕호의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서 귀를 씻어야겠군.”

“여기까지 올라온 노력이 가상하긴 하다만···.”

이 정도 반응은 상당히 기이하다 할 것이다.

“저거 잡아서 버릇을 고쳐야 하지 않나?”

“······.”

“······.”

“······.”

“······.”

“당장 잡게!”

이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호는 얼른 보자기를 챙겨서 뒤로 물러섰다.

“훠이! 훠이! 어디 돈도 내놓지 않고 내 물건을 빼앗으려 한단 말이오! 내가 힘들게 입수한 물건이란 말이오!”

“저 놈 잡아라!”

“잡아?”

“잡아야지! 괜히 사기를 당하는 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맞아. 저 녀석이 어디 가서 또 사기를 칠 수도 있음이야!”

현자 배 도인들의 눈이 반짝 빛나자 왕호는 걸음이 날 살려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화산엔 무뢰배가 가득했구나! 앞으론 화산파에서 아무리 비급을 팔아달라고 해도 팔지 않을 것이다!”

“잡아라!”

“쫓아!”

왕호와 현자 배 도인들의 긴 줄이 화산으로 아래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왕호는 적당하게 달리다가 모퉁이의 커다란 바위를 넘어가자마자 굽혔던 허리를 펴고 급히 속도를 올렸다.

파앙.

왕호의 뒤를 쫓던 현자 배 도인들은 왕호가 돌았던 모퉁이를 돌아서고 나서야 쫓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왕호의 뒤통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참 앞의 언덕에서 모습을 감추니 쫓아봐야 잡지도 못할 것이다.

“헥. 헥. 엄청나게 빨라.”

“헤엑. 잡상인이 아니었나?”

왕호의 높은 경공으로 인해 가짜로 생각했던 비급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진짜였으면 어쩌지?”

“······설마.”

“······아니겠지.”

뒤이어 도착한 현인이 현자 배의 말을 받았다.

“사기꾼이 분명해. 분명 화산에 가짜 비급을 팔아먹고 날랜 경공으로 도망칠 생각이었을 것이야.”

“그렇군!”

“말이 되는구먼!”

“허허. 어쩌자고 세상에 저런 놈까지 나온단 말인가.”

“대 화산에 사기를 치려는 놈이라니···.”

“녀석의 용모파기를 그려 찾도록 하겠네. 꼽추이니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 거야. 화음에 나가있는 속가제자들에게 맡기면 될 걸세.”

“그러세!”

현자 배 도인들은 잡상인의 문제가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고 여기며 화산으로 돌아갔다.

***

왕호는 아래로 내려가 지정된 장소에서 백준과 호충을 만났다. 잠시 호충과 눈을 마주친 왕호는 다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자아.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오늘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연! 오늘 여러분은 봉 잡았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단돈 십만 냥이면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과 개화검결(開花劍結)이 그대 품에 들어갑니다.”

“···저어기. 저희는 그만한 돈이 없으니 그만하시지요.”

백준은 왕호를 맞이하여 난감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십만 냥이라니요. 그런 돈도 없거니와 화산의 비급이 함부로 돌아다닐 일도 없습니다. 게다가 실전된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과 개화검결(開花劍結)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시면 경을 칠 것입니다.”

“···에잉. 돈 없어?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던 호충이 나섰다.

“확인을 해봐도 되겠소?”

“돈도 없다면서 확인은 무슨 확인이오?”

“있소. 금 십만 냥.”

호충이 품에서 천금장의 전표를 꺼냈다가 얼른 집어넣었다. 금 십만 냥이 적힌 전표였다.

‘물론 이건 가짜지.’

이미 왕호와 얘기된 대로 연기를 펼치고 있을 뿐이다.

휘익!

백준의 고개가 번쩍 돌아갔다.

이만한 전표를 품에 넣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다 여길 수 있었지만, 진가장의 아들이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친우가 사기꾼에게 돈을 빼앗기게 놔둘 수 없었다.

“이, 이봐. 호충! 이건 진짜가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 알지. 진본이라면 화산에 더 없는 기회가 아닐까?”

“그건 그렇지만, 그럴 일은 만에 하나도 없단 말이네! 누가 화산까지 와서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을 넘길 것인가! 적당한 무림 방파로 가서 팔면 금 이십만 냥도 우습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야! 그러니 사기가 분명해!”

왕호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너무 싸게 판다고 말했나?”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지 마시오. 그대는 사내 아니오.”

“···에잉. 어차피 이 무공은 화산의 것. 다른 문파에 전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그대의 호의는 화산에서 충분히 고마워 할 것이오. 그러니 잠시 비급을 보여주시오.”

“만약 비급을 들고서 튀면 내 경공이 얼마나 빠른지 보게 될 것이다. 애송아.”

“염려 마시오. 그대가 사내대장부인 것처럼 나도 사내대장부요.”

“앞에 세 장만 보아라.”

“뒤가 가짜이면 어쩌려고? 다 보게 해주지 않는다면 사지 않을 것이오.”

“···한 번 보고 다 외울 정도로 머리가 좋진 않겠지?”

‘호충은 단번에 다 외울 수 있을 것이다.’

백준은 기이한 습득력을 가진 호충이 비급을 통째로 외울 수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혹여 내가 외운다 하여도 이 비급이 진짜라면 돈을 지불할 것이오.”

“그럼 보여주지 않을 수 없지. 내 앞에서 보아라.”

호충은 왕호의 앞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보자기 안의 책자를 집어 들었다.

바로 서책을 넘기지 않고 제목과 외부를 먼저 살피며 말했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서책은 상당히 오래되었군.”

“당연하지. 인적이 없는 절벽의 비동에서 내가 직접 발견한 것이다. 진본이다. 사본은 없어.”

호충은 화산으로 오는 길에 오래된 서책을 찾아 먹을 지우고 진본과 유사한 사본을 제작해두었다. 한참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백준은 왕호의 말을 들을수록 진본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짓이 아니야? 정말 비급을 찾았나?’

“비급 근처에 유골은 없었소? 만약 있었다면 위치를 알려주시오.”

“이유는?”

“이것이 진본이라면 화산의 조사께서 남기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오. 화산파에 조사의 유해를 수습할 기회를 주시오.”

“미안하지만 유골은 흔적도 없었다. 오직 이 두 권의 책자만 남아 있었지.”

“살펴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묻겠소. 그대는 이 비급을 살펴보았소?”

“당연히 봤다.”

“이는 화산의 정수가 담긴 비급이오. 만약 진본이라면 그대는 화산의 추적을 받을 수도 있음이오.”

“허허. 네 녀석은 진짜 사내로구나. 하하하. 거기까지 날 생각해줬단 말이냐? 어차피 쫓기는 몸이 관에 신고할 일도 없거니와 비급을 팔아치우면 곧장 세외로 빠져나갈 것이다. 거기서 금 십만 냥으로 떵떵거리며 살 생각이니 염려 말아라. 또한 내 머리가 좋지 않아 비급을 외우지도 못하였고, 사본을 남기지도 않았다는 말도 사실이다. 네가 사내이니 나도 진실을 말한 것이다.”

‘비급은 진짜였어!’

백준은 대화를 들으며 비급이 진짜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흠. 알겠소. 그럼 지금부터 살펴보리다.”

호충은 적막한 산길에 앉아 비급을 보는데 전심을 다했고, 백준은 뒤에서 노심초사 결과를 기다렸다.

“흐음.”

호충은 한참이나 비급을 보고 다시 다른 비급에 손을 가져갔다. 이번엔 개화검결(開花劍結)이었다. 이후 개화검결까지 모두 본 호충은 잠시 눈을 감고 좌정했다.

“거 오래도 걸리는 군.”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은 내게 무리이나, 개화검결(開花劍結)은 펼칠 수 있을 것 같소. 한번 해봐도 되겠소? 제 위력이 나오는지 봐야하지 않겠소.”

“허허. 단 한 번 읽어놓고 말이냐? 어디 해보아라.”

호충은 항상 허리춤에 패용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백준은 눈을 크게 뜨고 호충의 신형을 눈에 담았다.

호충의 검의 호쾌하게 대기를 가르며 개화검결의 검식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휘리릭.

‘진정이었구나!’

삼대 제자들이 배우는 개화검법와 닮아 있으면서도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검법이었다. 백준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타핫!”

개화검결의 마지막 검식이 선명한 꽃봉오리를 그려냈다.

“매화!!”

활짝 피어난 매화가 아니라 꽃봉오리에 불과했지만 분명 매화였다. 심상이 아니라 실제로 검 끝에서 피어난 매화였기에 백준은 커다란 희열에 휩싸였다.

‘매화가 화산에 돌아왔다!’

호충은 마지막 검식을 펼치고 창백한 안색으로 피를 토했다.

쿨럭.

“호충!”

“으으. 백준. 내공이 검식을 따라주지 않아 속이 뒤집힌 모양이야.”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왕호는 자신이 나설 때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빼어난 인재가 화산에 있었구나. 어찌 단번에 비급을 익혔단 말인가.”

“끄으. 당신의 비급은 진실하오. 내 금 십만 냥을 드리리다.”

왕호는 호충이 내미는 전표를 휙 챙겨 품에 넣었다. 백준이 전표를 확인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이다.

“네가 있으니 화산은 곧 정기를 되찾겠구나. 다시는 이리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덕분에 화산은···.”

“됐다! 더 이상 말을 삼가고 내기를 다스려라.”

“끄윽.”

“손이 많이 가는 놈이로구나. 이걸 먹어라.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호충은 왕호가 내미는 작은 단환을 받자마자 입으로 가져갔다.

“허! 독약이면 어쩌려고?”

“그대는 사내 아니오.”

“큭큭. 또 보고 싶은 녀석이로다. 하지만 영영 보기 힘들겠지. 이만 가겠다. 화산과 화산의 제자에게 무운을 비노라.”

호충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왕호의 뒤에서 포권했다.

“허허허.”

왕호의 신형이 극성으로 경공을 전개했고, 백준은 빠르게 사라지는 왕호의 신형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고, 고수였어.”

“크흑.”

“호충! 괜찮은가!”

“단약을 먹었더니 조금 나아지고 있어. 그보다 비급을 챙겨! 화산의 보물이야.”

“아!”

백준은 얼른 비급을 보자기에 싸서 품에 넣었다.

“오늘 본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당장 화산으로 가서 장문인께만 보여야 해.”

“이봐 호충···.”

“그리고 내가 화산의 비급을 사서 화산에 전했다는 소식이 진가장에 전해져도 안 되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화산과의 친분을 다져야 한다지 않았어? 이번 일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정도껏이지···. 비급을 찾았으면 당연히 진가장으로 들고 가야 맞아.”

“!”

“하지만 난 나를 인정해준 화산에 비급을 돌려주고 싶어. 끄윽. 어서 가세.”

“······너란 놈은 정말···.”

호충은 백준의 부축을 받으며 화산에 올랐고 한참 뒤에야 화산의 정문에 도착했다.

다른 현자 배가 모두 돌아갔지만, 현인은 계속 호충을 기다렸다.

“각주님!”

“무슨 일이냐! 진 공자가... 호충아!”

현인은 백준의 부축을 받고 화산에 오르는 호충에게 달려갔다.

“현인···. 각···. 주님···.”

풀썩.

호충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현인의 품에 쓰러졌다.

“대체 무슨 일이! 백준! 어찌 된 일이냐! 호충이 어째서!”

“어서 장문인께 가야 합니다.”

“무어라! 호충이 이 모양이 되었는데 어찌 장문인을 먼저 뵌단 말이냐!”

“호충은 내기가 엉켜 그리 된 것이니 요상하면 나을 것입니다. 이미 요상단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내가가 엉켜? 이제 겨우 기본 심법을 익히는 녀석이?”

“나머지는 장문인께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호충은 자연스럽게 내기를 운용하여 가사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설명하렴. 친구야.’

호충은 편히 낮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이것도 계획의 일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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