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232)

매화검법

***

지금까지는 상승 무공이 없어 적당한 수준에 이르면 수련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편해졌다. 하지만 이십사수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이 돌아왔으니, 농땡이는 꿈도 꿀 수 없을 터였다.

“큭큭. 멍청한 놈. 그걸 이제야 깨달았구나?”

“···없는 것보다는 낫지.”

매화가 없는 화산보다는 매화가 있는 화산이 나았다. 고된 수련이야 버티면 될 일이다.

“매화가 바로 화산이니까.”

호충이 가져온 매화검법은 화산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호충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화산의 제자가 있으니 화산이다. 매화는 그저 매화일 뿐. 넌 삼대 제자들의 맏형이니 이걸 잊지 말아야 해.”

“······.”

백준은 호충의 현기 가득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선 기억하기로 했다.

“썩을···. 머리만 좋은 녀석.”

“머리까지 좋은 녀석이라고 해주면 안 될까? 나 검법도 잘 배워. 방금 보고 잊었어? 또 보여주랴?”

개화검결을 한 번 보고 펼친 것도 대단했지만, 아까 두 번째 펼칠 때는 처음과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애초에 싹이 달라.’

“···젠장 말로도 못 이기겠네.”

이번에 매화검결을 또 펼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큭. 얼른 밥이나 내와. 배고파서 죽겠다.”

식당에 호충을 앉힌 백준은 얼른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 시간이 끝나버렸기에 주방에서 한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백준이 대사형의 신분이라 가능했다.

“능력 좋은 대사형이 있으니 편하네! 잘 먹을 게!”

“네가 부르고 싶을 때만 대사형이야?”

호충이 놀릴 때만 대사형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호충은 백준이 챙겨준 밥을 먹으며 말했다.

“큭. 난 화산의 객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백준 도우.”

“한 마디를 안 져! 너 아픈 거 맞아?”

“너도 오늘 식사를 거르지 않았어? 얼른 먹지?”

“······.”

백준은 자신의 끼니까지 챙기는 호충이 밉지가 않았다.

“다 먹지 마! 내 것도 남겨!”

“큭큭. 대사형은 숙수님께 더 달라고 하셔.”

***

호충은 든든하게 챙겨먹고 또 골골 거리며 의약당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푹 쉬어. 오늘은 내려가지 말고.”

“에효. 그래야할지도 모르겠어.”

오늘은 그간 고생의 결실을 이루는 중요한 날이라 집에 돌아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영감에게 말해 두었다.

‘힘든 수련을 끝내도 기어코 하산하던 놈이···. 아프긴 한 모양이네.’

“가라. 내 옆에 있어봤자 시간만 버리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

“나 잘 거야.”

“···푹 쉬어라.”

백준이 자리를 비운 다음 호충은 자신이 펼친 개화검결을 떠올렸다.

‘확실히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익히기 위해 먼저 익혀야 하는 검이야.’

완전하게 개화검결을 수련해야 매화검법에 입문할 수 있을 터였다. 매화검법은 여러 단계의 수련을 통해 익혀야할 만큼 난해하기 그지없는 상승 무공이었다. 진가장에서도 이를 위해 진강십이검을 먼저 익히게 하는 것이다.

‘매화검법이 대단하긴 하네.’

오늘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개화검결을 직접 펼치며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호충은 심상 속에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시연하기 시작했다.

[설풍심총(雪風枔憁)]

‘눈바람에 휘날리는 매화 잎은 정녕 분주하구나.’

눈바람에 휘날리는 매화의 잎사귀는 매화검법을 펼치는 검객의 검기가 환검의 묘리를 통해 변화한 것이었다. 심상 속의 호충은 가득히 매화 잎사귀를 뿌리며 매화검법의 첫 초식인 설풍심총(雪風枔憁)을 선보였다.

[광운쾌검(光雲快劍)]

‘구름을 가른 쾌검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구름을 가르며 나타난 검기가 빛살과 같은 속도로 찔러 들어갔다. 상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구름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기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유하범화(流河汎花)]

‘매화는 흐르는 강물처럼 범람할 지니···.’

사방이 온통 매화 꽃잎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사방에 가득했던 붉은 빛이 한 곳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검기는 마치 범람하는 강물과 같아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후 호충의 검은 매화검법의 검식을 자유로이 펼치며 매화를 피워내고 또 흘려보냈다. 매화는 호충의 의지대로 모였다 흩어졌고, 또 자유로이 허공을 맴돌았다. 전부 펼치는 것도 아니었다. 매화검법에서 가장 강력한 검식만을 따로 펼치고 있었다. 매화검법을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시도할 수도 없는 수련이다.

[매화명천(梅花明天)]

‘높은 하늘엔 매화만이 선명하게 피어난다.’

호충은 매화창천에 이르러 검강을 사용했다. 하늘에 선명한 매화를 피워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검강을 사용해야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매화를 피워냈지만, 이번엔 단 한 송이의 매화였다. 그 한 송이의 매화는 꽃잎을 하나씩 떨구기 시작했다. 곧 모든 꽃잎을 떨구고 비워야 했으나, 매화는 계속해서 꽃잎을 생성하고 있었다.

‘영원한 매화여.’

끝도 없이 생성되는 매화 꽃잎처럼 내공의 소모 또한 엄청났다.

“!”

하지만 호충은 검식을 끝까지 펼치지 않고 얼른 심상에서 빠져나오며 신음을 흘렸다.

“끄읍.”

“괜찮으냐!”

누군가 옆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번 검식만 끝내고 쉬려 했더니···.’

사실 신음을 흘릴 것도 없었지만, 자신은 무리한 내공의 운용으로 기절했던 병자였기에 연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예는 됐다. 어서 다시 침상에 앉아라.”

호충은 파리한 안색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제가 어찌···.”

청진을 따라온 무자 배의 원로들이 거들었다.

“화산의 은인이 아닌가. 게다가 내상이 심하니 지금은 예를 따지지 말게.”

“그럼···.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자. 이제 정산할 시간인가.’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에 방점을 찍을 때가 왔다.

“진 공자의 개화검결은 실로 대단하였어. 지금까지 그와 같은 검은 처음 보았네.”

“나 또한 원로들과 같다. 화산의 제자들 중에 진 공자와 같이 검을 쓰는 제자는 보지 못했지.”

“부족한 저를 이리 인정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 공자가 직접 비급을 구입했다 들었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어찌 그런 큰 전표를 품에 가지고 다녔는지···.”

호충은 이미 예상한 질문이라 막힘없이 답했다.

“···상승 무공을 어디서 어떤 식으로 만날지 몰라 항상 품에 넣고 다녔습니다. 물론 제가 어디서 그런 큰돈을 벌었겠습니까. 가주께서 내리신 명으로 가지고 다녔을 뿐이지요.”

“진 가주의 생각이 실로 깊구나.”

호충은 화산에 비급을 준 연유를 덧붙였다.

“오늘 저의 결정은 지금까지 화산에서 받은 마음을 보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 입은 굳게 다물어 질 것이니, 부디 화산에서도 진가장에 비밀을 지켜 주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 화산은 장문인의 명으로 각별하게 비밀을 유지할 것이네.”

‘자아 그럼 어서 꺼내 보아라. 얼마나 줄 것이냐.’

일부러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저들의 입에서 직접 들어야 연기를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산의 결정을 알리기 위해 왔다네. 자네가 내상을 입었다는 것은 알지만···.”

호충은 얼굴을 굳히고 포권하며 말을 끊었다.

“저는 화산의 결정에 아무런 이의도 없습니다. 무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들어보지도 않고 말인가?”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마음에 드리는 보답일 뿐이었으니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설마 내가 산 금액보다 적지는 않겠지.’

금 십만 냥을 준 것으로 만들었으니 최소한 그 금액만 받아도 만족이었다. 애초에 십만 냥을 쓴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받으면 그것이 모두 이익이었다.

“어허. 화산의 결정이 무안해지는 구나.”

“장문인. 진 공자가 이리 답하니 조금 줄여도···.”

“갈! 원로는 이미 화산 대회합에서 합의한 일을 다시 돌리고 싶은 것인가!”

“···아, 아니옵니다.”

“그럼 어찌 화산의 은인 앞에서 망령되이 입을 연단 말인가!”

“제가 욕심에 눈이 어두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옵소서.”

호충은 속으로 청진을 응원하고 있었다.

‘얼쑤! 잘 한다 장문인! 더 힘을 내시오! 다 돌려달란 말이오!’

청진은 온화한 얼굴로 호충을 돌아보며 말했다.

“화산은 은인을 대우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을 것이네.”

“저는 그저 장문인의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

“허허허. 진 가주가 자식농사를 정말 잘 지었어.”

“허나······.”

호충은 화산에 마지막을 고해야 했다.

“화산에 정화가 돌아왔으니 객은 자리를 피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래야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 말할 수 있습니다. 화산을 주시하는 세작들이 있을 터, 이미 장문인과 화산의 원로들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부디 이를 고려하여 주십시오.”

“······진 공자의 말이 옳다.”

앞으로 화산은 이십사수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을 익히느라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분주함을 외부에 알릴 수 없으니 각별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진가장의 아들인 호충이 함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조만간 하산하여 외유를 떠날까 합니다. 급히 진가장으로 돌아가 봤자 못난 아들만 되겠지요.”

“···허락하겠다. 그럼 진가장엔 외부의 일을 맡겼다 전하지.”

“그럼 마지막으로 여쭙습니다. 제가 익힌 검은 어찌 하올 지요.”

“······.”

호충이 모두의 앞에서 보여준 개화검결이 남았다. 화산의 직전제자가 아님에도 본산의 절기를 익혔음이다.

“단전을 폐(廢)하고 사지근맥을 단(斷)하면 되올 지요. 그래야 확실할 것이옵니다.”

호충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공 자체를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

“자, 장문인. 진 공자가 화산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리 지극할 줄은 몰랐습니다.”

청진은 호충의 말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화산을 위한 것보다 가문을 생각하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진 공자는 가문을 버리지 못하는 구나.’

가문을 버리고 화산에 들지 못하니 화산에서 익힌 무공을 폐하겠다는 말이었다. 원로의 생각처럼 화산을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화산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현진의 말이 사실이었어.’

청진도 다른 무자 배 원로들처럼 호충을 화산의 제자로 받아들일 마음이 들었지만, 호충의 말 덕분에 미련을 떨칠 수 있었다.

“화산의 정화를 돌려준 은인에게 어찌 무공을 폐하라 하겠는가.”

“그렇지요! 옳습니다. 장문인.”

“게다가 화산이 진 공자에게 비급을 돌려받기 전에 일어난 일. 화산의 전대 조사님들도 저승에서 그대를 탓하지 않을 것이네.”

“···자비하신 결정에 깊이 감읍하옵니다. 장문인.”

“진 공자는 하산하기 전까지 편히 쉬시게. 비급의 대금은 조만간 마련하여 돌려주겠네.”

“······마음 같아선 사양하고 싶으나, 가문에 공을 세워야 하는지라···. 장문인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왜 얼마인지는 안 알려주시냐고요!’

도대체 얼마를 준다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

호충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하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쉬이 떠날 수는 없었다.

“내려가도 되는 것이냐? 힘에 부처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각주님. 매일 오르내린 산입니다. 게다가 이제 다 나았습니다.”

호충이 하산한다는 말에 현인이 의약당으로 달려온 것이다.

“같이 가주랴?”

“연무장에서 삼대 제자들이 기다립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에잉. 그 멍청한 놈들이야 알아서 작대기나 휘두를 것인데···.”

호충을 본 이후 삼대 제자들이 들고 있는 목검이 작대기로 보이기 시작했고, 검법을 익히는 모습은 어설픈 춤사위로 보였다. 눈이 너무 높아진 것이다.

“···누구나 시작이 있고 또한 발전이 있습니다. 삼대 제자는 시간이 흐르면 이대 제자가 될 것이고 이후 각주와 당주가 되어 화산은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들은 화산의 정화를 배워야할 동량들입니다. 그러니···. 각주께서 그리 만드셔야지요.”

“너는 항상 옳은 말만 하는구나···.”

“푹 쉬고 다시 입산하겠습니다. 그동안 강녕하십시오. 각주님.”

“조심히···. 조심히 하산 하여라.”

“예. 또 뵙지요.”

호충은 허리를 곧게 펴고 걸음을 옮겼다.

“녀석···.”

엄청난 일을 해냈으면서도 단 한 번의 내세움이 없었다. 내세움 뿐이랴. 거액을 쓰고도 돌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인은 호충이 어제 펼친 개화검결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삼켰다.

‘실로 엄청났지.’

개화검과 설화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짧은 시간 검을 수련한 이의 검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 호충이 펼쳤던 개화검결은 실로 화려했고, 화산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화산의 매화는 영원하리니···.’

그런 호충이 곧 떠나야한다고 했다.

‘······화산은 천고의 기재를 잃었도다.’

현인은 호충의 신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정문에서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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