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혼돈
***
빛살 같은 검기가 진원우의 칼끝에서 솟아났다.
‘오오. 광운쾌검(光雲快劍)이던가. 상승 무공을 드러냈으니 네 가주직은 끝장이다.’
호충은 진원우의 검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검식을 따르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보고 있었다.
“검기다!”
“상승 무공이다!”
“피해라!”
이들은 서로 같은 절정급이지만, 화산의 매화검법은 고절한 수법의 하나였기에 쉬이 상대할 수 없었다.
샤악.
“커흑.”
진원우의 광운쾌검(光雲快劍)은 마교인 하나를 가르고 지나갔다.
“감히! 진원우를 척살하라. 진가장의 진원우는 상승 무공을 익히고 절정에 올랐다!”
“···크흑.”
이젠 되돌릴 수 없었다. 이들이 황궁의 금의위가 아니라도 해도 자신은 뒷방으로 물러나야 할 터였다.
“가주!”
“너희는 관부로 가서 이들이 진정 황궁에서 온 사자인지 확인하라!”
진원우의 외침에 마교인도 급하게 지시했다.
“아무도 밖으로 내보내지 마라!”
“예! 위사님!”
이미 답이 나온 것과 같았다. 이들이 황궁의 금의위라면 관부에 가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너희는 황궁에서 온 것이 아니구나.”
“······큭. 달라질 것은 없다. 너는 오늘 죽을 것이고, 네 첫째와 둘째는 타지에서 객사할 팔자로다.”
“!!”
“네가 상승 무공을 드러낸 이상 네가 죽지 않아도 진씨 세가는 무너질 것이니···.”
‘끝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진원우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장 저 놈들을 쳐라!”
얼마 남지 않은 진천대의 무사들과 황종현이 앞으로 나섰다.
“가자!”
황종현은 죽음을 불사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겨우 일류에 발을 걸친 황종현이 상대할 마인이 아니었다.
챙.
기껏 힘주어 펼쳤던 검식은 가볍게 위로 튕겨 올라갔고, 크게 빈틈을 드러내고 말았다.
“!”
황종현은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온 검을 보고 질끈 눈을 감았다.
따앙!
갑자기 날아든 검이 묵직하게 마교인의 검을 막고 날아갔다.
“컥. 누구냐!”
호충이 굴러다니던 검을 발로 차 마인의 행사를 막은 것이다.
“누구긴 지나가는 과객이지.”
파진후의 얼굴을 한 호충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파 대협!”
황종현은 파진후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쉬이 잊힐 얼굴이 아니었다.
호충은 진원우가 절정의 무위와 상승 무공을 드러냈음을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이제 진원우는 가주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진가장을 살리자면 바로 원로원으로 가야할 터.’
“황 대주. 진가장 앞을 지나다가 무사가 죽은 것을 보고 들어왔소. 내가 도와도 되겠소?”
“물론이옵니다! 저들은 황궁의 금의위를 사칭한 무도한 자들이니 처리하셔도 됩니다!”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지는 구려.”
호충은 굴러다니던 검을 집어 들었다.
후다닥 뒤로 물러선 황종현에게 진원우가 물었다.
“황 대주. 저자가 누구냐.”
“일전에 인연을 맺은 고수입니다. 따로 적을 두진 않고 있다 하였으나 절정급 무인입니다.”
“!”
호충은 마교의 인물들을 앞에 두고 호기롭게 검을 들었다.
“감히 황궁을 사칭하다니 배짱이 두둑한 자들이로구나.”
“알량한 무위로 죽을 자리를 찾아오다니···.”
“너희는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
문답이 무용한 순간이었다.
호충은 달려 나오는 마교인의 검을 맞이하여 크게 몸을 젖히고 다시 튕겨져 올라갔다.
챙챙.
‘다 드러낼 필요도 없는 일.’
본신의 무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아도 절정급 마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앗!”
호충이 크게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검을 휘둘렀다.
따앙. 촤악!
호충의 검은 상대의 검식을 튕기고 빈 곳을 치고 지나갔다. 실로 강력한 힘이었다.
“황궁의 금의위가 참으로 약하구나!”
호충의 신형은 검 사이를 누비며 착실하게 적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절정급 마교인들의 검은 슬쩍 흘려버리고 일류급 마인들만 확실하게 끝을 보는 중이었다.
“합!”
따당. 챙.
퍼억.
“커흑”
종잡을 수 없는 무공이었다. 검을 휘두르는가 싶다가도 손과 발이 상대의 몸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많아 금방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내가 다 해결하면 재미없지.’
뒤에서 지켜보는 진가장의 인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곤란한 모습을 보였다.
“뭣들 하시오! 나 혼자 전부 상대하란 말이오!”
호충이 뒤를 돌아 소리치자 그제야 진원우와 진가의 무사들이 나섰다.
“녀석들을 죽여라!”
“죽여라!”
호충은 적들의 중심인 절정급 무사들을 상대했고, 나머지는 진가의 무사들이 상대했다.
진원우도 마교의 절정급 무사 하나를 맡아 상대했기에 호충은 금방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주 확실하게 드러내시는 군.’
이미 자신의 무공을 드러냈기 때문인지 진원우는 매화검법을 여실히 사용하며 마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압!”
“꺼흑.”
자신들의 숫자가 줄기 시작하니 마혈단의 단장은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 임무는 실패다. 이러다 나까지 당할 수 있어.’
방금 마지막 절정급 마혈단원이 모두 죽었고, 남은 것은 일류급 마혈단 단원들이다. 자신만으론 두 명의 절정 무인을 상대할 수 없었다.
“모두 진가장을 빠져나가라! 후퇴하라!”
마교인들은 그 말에 급히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고, 바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진원우는 적이 도주하는 모습에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쫓아라!”
하지만 호충은 지금 마교인들을 쫓을 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만 두시오. 진 가주.”
“지금 진가장의 행사에 관여하시는 게요!”
“쫓을 여력도 없어 보이거늘···. 그러다 저들이 무사들을 따돌리고 돌아오면 당신은 죽소.”
“!”
“지금은 이 상황부터 수습하셔야 할 것이오.”
“······.”
“저들이 당신의 무위를 봤으니, 관부에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요.”
“크윽.”
“진짜 황궁의 금의위가 오기 전에 얼른 가주 위를 물려주셔야 할 것이오.”
“하지만 내 자식들이 멀리 나가있는데···.”
“저들이 뒤에서 하는 말을 나도 들었소. 첫째와 둘째에게 이미 손을 썼다지 않소. 남은 자식은 없는 것이오?”
“하지만 이들이 거짓을 말할 수도 있는 일이오!”
“그럼 진가주는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소?”
“···전혀 짐작하기 어렵소.”
“그렇다면 이걸 보시오.”
호충은 쭈그려 앉아 마교인의 검에 맞아 죽은 무사의 옷을 들췄다. 검상을 입은 주변으로 검은 물감을 흘린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검상은 마인의 마공에 당한 흔적이오. 저들은 마교의 절정급 무사들이었소.”
“!!!”
진원우는 마교라는 말에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마교의 종자들이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다니, 실로 우려되는 일이오.”
“하남에서 발견되었다던 마인들이 어찌 섬서에···.”
호충은 모른 척 되물으며 확정지어 말했다.
“하남에서 이미 마인의 흔적을 찾았소? 그럼 녀석들의 활동 무대가 넓다는 의미로군. 무림의 대적이 중원에 등장했소이다.”
“······.”
진원우는 어찌 진가장에 마교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른 문파로 갈 것이지 왜 진가장이란 말인가!’
“남은 자식이 있다면 얼른 확인해보시오.”
“무사들은 가서 셋째를 지켜라! 호성이까지 잘못되면 진가장은 끝장이다!”
이제 남은 것은 셋째 진호성 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썅. 넷째도 있잖아! 새끼야.’
여전히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진원우였다.
“여력이 있으면 첫째와 둘째의 생사를 확인해보리다. 마교라면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니···. 시체라도 온전히 남길지···. 그들은 어디에 있었소.”
“분양(汾陽)에 첫째가 있고, 홍동(哄洞)에 둘째가···.”
“진가장의 일에 마음대로 끼어든 것도 민망한 일이니, 조언은 여기까지만 하겠소.”
호충은 가볍게 몸을 돌려 검병을 황종현에게 내밀었다.
“황 대주. 무사들이 많이 상하였소. 실로 슬픈 일이오.”
“오늘 파 대협이 아니었다면···.”
“내 공은 잊으시오. 나 또한 황궁의 금의위를 피해야 할 몸. 내 행적이 드러나서 좋을 것이 없소.”
“대협···.”
“파 대협. 대협을 이리 보낼 수는 없소. 부디 진가장에서 은혜를 보답할 기회를 주시오!”
호충은 진원우의 말에 돌아보며 차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세상을 떠도는 이 몸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오. 진 가주의 마음만 받겠소.”
“그럼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이삼. 가서······.”
호충은 진원우가 이삼에게 뭘 시켰는지 듣고 속으로만 혀를 찼다.
‘쯧쯧.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 드는 구나.’
이삼은 금방 가주전에 들어갔다가 작은 주머니를 챙겨 나왔다.
“최근 가문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성의가 부족할 것입니다. 부디 훗날 다시 진가장에 와주십시오.”
“······황 대주와의 인연이 진 가주와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구려. 또 볼일이 있을 것이오.”
호충은 진원우가 내미는 주머니를 챙겨 진가장을 나섰다.
‘이제 시간 싸움이로구나.’
호충은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첫째와 둘째를 살려야 진가장이 혼란할 것이다.’
마교에서 둘을 죽이려 함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
호충이 길을 떠난 동안 진원우는 급하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황 대주! 어서 관부로 가서 내가 절정에 들어 가주 위를 내려놨음을 알리시오!”
“가주!”
“녀석들이 먼저 알리면 가문에 실로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오!”
“크윽. 예. 알겠습니다.”
황종현은 눈물을 보이며 관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삼! 호성이는 무사한 것이냐!”
“예. 삼 공자 처소의 무사들이 몇 상했지만, 삼 공자는 무탈하옵니다.”
“호성이가 내 뒤를 이어 가주가 될 것이다!”
“!”
“첫째와 둘째는···.”
‘파 대협의 말이 옳다. 마교의 행사이니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원우는 이미 죽었음이 확실한 두 아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시신이라도 온전하길 바라는 수밖에···.”
“당장 전서를 보내겠습니다.”
“이미 늦었을 것이다. 마교 녀석들이 전격적으로 움직였으니···.”
“무사라도 보충해야 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다시 마교에서 삼 공자를 도모하러 올지도 모릅니다.”
“···이삼. 너의 말이 옳다. 내 마음이 급해 선후를 잊었구나. 진가장의 무사들을 보충해라. 또한 협의맹과 정무맹에 마교의 마인을 찾았다고 보고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맹의 무사들이 진가장으로 모여들 터. 마교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당장 전서를 띄워라!”
.
.
.
그날 소가주가 되지도 못한 호성이 가주 자리를 차지했다.
“제, 제가 가주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나는 바로 원로원으로 자리를 옮겨 무림의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되었다.”
“!”
‘아버지가 절정에 오르셨구나! 하지만 두 형들은 어쩌고···.’
“네 위의 형제들은···. 아무래도 명을 달리했지 싶다.”
“!!”
‘호현과 호중이 죽어?’
“이,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자님.”
이삼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호성에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호성은 자신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둘이 죽어버렸으니 나밖에 남지 않았구나! 어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내 호위인 미(嵋)와 이삼이 너를 지킬 것이다. 또한 진가장의 무사들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
“···아버님. 소인 아버님의 명을 따를 것이옵니다.”
“너만 믿겠다. 너는 진가장을 공격한 마교에 형제의 복수를 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고마운 이들에게 복수라니요. 흐흐흐.’
호성은 자신에게 가주직을 선물한 마교가 얼마나 고마운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