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232)

첫째 다음 둘째

***

그날 진가장의 가주가 원로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새로운 가주가 진가장에 세워졌다. 급하게 이양한 가주직이라 이렇다 할 행사도 없었다.

“아드님. 어미의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졌어요.”

“···어머니.”

“다른 두 부인들은 식음을 전폐했다 하더이다. 호호호. 자식을 밖으로 내돌리니 그런 꼴이 나는 게지요.”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누가 듣습니다.”

“앞으로 어미는 우리 아들만 믿겠어요.”

“믿어주십시오. 우선···. 중부전장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아시지요?”

중부전장의 여식인 방자연은 이미 자장의 중부전장 지부를 통해 관련된 일을 전했다.

“호호호. 아버님께 연통하였으니 조만간 중부전장에서 보낸 무사들이 진가장을 차지할 것입니다.”

중부전장이 진가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지만, 호성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진호충. 녀석을 죽일 무사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녀석은 고이 죽이지 않을 것이니 아드님은 염려 놓으세요.”

두 사람은 전에 호충에게 당했던 원한을 잊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감히 호란에게도 칼을 들이밀었다고 하니···.”

“무엇보다 싹을 잘라야 합니다.”

가주의 자식 중에 남은 사람은 호충 하나였다.

“아드님은 어쩜 그리 똘똘하신지···.”

“어머님. 이제 저는 진씨 세가의 가주입니다. 외부에선 말씀을 삼가 하셔야 합니다.”

“호호호. 물론이지요.”

***

호충은 진가장 밖으로 빠져나간 마교인들의 행적을 쫓았다.

‘녀석들이 어디로 가는지 파악해야 해.’

멀리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이정표였다.

마혈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는 중이었다.

“하나는 남아서 추적대가 쫓는지 확인하라.”

“예!”

마혈단 단원 하나가 풀숲으로 숨어들었고, 나머지는 다시 말을 달렸다. 호충은 이미 이들과 지근거리에서 따르고 있었기에 은신한 마교인을 피해 계속해서 마교인들을 쫓았다.

‘이들이 가는 방향은 홍동(哄洞)이로구나.’

홍동에 이들을 보낸 인물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분양(汾陽)으로 가야 하는데···.’

호충이 먼저 가려던 곳은 홍동이 아니라 분향이었다. 이대로 마교인들을 쫓다가는 둘째에게 먼저 가야할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홍동은 나중에 다시 간다.’

호충은 마교인들이 가는 방향을 벗어났다. 그리고 극성으로 신법을 발휘해 분양(汾陽)으로 향했다. 홍동(哄洞)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을 죽이려했던 호중보다 호현을 먼저 구하려 함이었다.

‘그러니 나한테 잘하지 그랬어. 새끼야.’

이후 홍동으로 가서 호중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늦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호충이 분양(汾陽)에 도착한 것은 진가장에서 일이 있고 나흘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호충은 분양에 새로 세운 진가장의 무관을 물어물어 찾아갔고, 무관의 정문이 아닌 담을 넘었다.

‘분명 마교인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마교가 산서에 똬리를 틀고 진가장을 맞이했다는 가정을 세우고 움직이고 있었기에 몸을 사리는 것이다.

아직 마교의 일이 틀어졌다는 전서도 도착하지 않은 시점이라 호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무관에 대적하는 자들을 정리하지 못하다니 대체 뭣들 하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공자님.”

“녀석들이 어찌 알았는지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내빼는 통에···.”

“그와 같은 일도 너무 많아! 어찌 저들은 우리의 일을 다 미리 알고 있단 말인가!”

호충은 안의 대화를 들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마교의 세작이 들어와 있으니 그렇지.’

호충은 호현이 모두를 내보낸 다음 혼자가 되었을 때 안으로 파고들었다.

“썩을. 이러다가 아버지께서 내게 실망하실 지도 몰라.”

“···그렇진 않을 것이오.”

휙.

“누구냐!”

“목소리를 죽이시오. 나는 진 가주가 보내서 온 사람이오.”

“!”

“지금 진가장에 엄청난 일이 생겼소.”

“······.”

호충은 주변에 눈을 굴리는 호현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잔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구나.’

“머리 굴리지 마시오. 내 말은 진실하니.”

호충은 호현을 향해 기운을 개방하고 집중했다.

“!!”

커다란 존재감이 호현의 전신을 압박했고, 그제야 호현은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죽이고자 했다면 단 한 수에 죽일 수 있는 고수였다.

“······끄윽. 내, 내게 무엇을 원하시오.”

“아무것도 원하지 않소. 그저 당신의 아비가 당신이 죽었다 여기고 있음을 알리러 왔을 뿐이오.”

“!!”

“나는 진 가주에게 그대의 생사를 확인해주겠다 하였고 당신이 이곳 분양에 있음을 들었소.”

“어찌 아버지께서 나를 죽었다 여기시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장의 진가장은 외부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오.”

“허!”

습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자신이 죽었다고 여길 리가 없었다.

“진가장의 무사들은 이미 이곳 서안으로 다 빠져나갔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였겠소.”

“······.”

진가장의 모든 무사들이 서안으로 온 것은 사실이었다.

“진가장은 마교인들의 습격을 받았소.”

“마, 마교?”

“그렇소. 마교인들은 첫째와 둘째가 진가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말했기에 진가주는 마교의 말을 믿고···.”

“아, 아버님은 어찌 되셨소.”

‘아비에 대한 효성은 있었던가? 아니면 가주직에 대한 욕심이던가?’

무엇이든 호충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내가 진 가주와 함께 마교인들을 물리쳤소. 덕분에 진 가주는 무사하나, 상승 무공을 드러낸 일로 원로원으로 향할 것이오.”

“!!”

“그 뒤를 보지 못하고 왔소. 하지만 그곳에 있던 진 가주의 남은 아들이 가주직을 물려받았을···.”

“제기랄···.”

호현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커다란 분노를 속으로 삼켰다.

“지금부터 내 말을 똑바로 들으시오.”

“······.”

호충은 밖에서 인기척을 느껴졌다.

[마교인들이 당신을 가만히 두진 않을 것 같소.]

호충은 계속 전음으로 뒷말을 이었다.

[내 생각엔 이곳 분양과 당신 주변에도 마교인들이 암약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오. 특히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를 의심하시오.]

“!!”

전음으로 전하는 말이라 놀라기도 했고 그 내용이 놀랍기도 했다.

[당신이 자장으로 떠난다고 한다면 분명 따라붙겠지. 그렇게 되면 마교인들의 말대로 당신은 자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오. 진가장을 습격한 무안들은 절정급 무인만 다섯이었소. 당신은 절정에 달한 것 같지 않으니···.]

“다, 다섯?”

[나는 순전히 호의로 이 일을 그대에게 전하고 있소. 내 할일은 끝이오. 나는 먼 길을 경공으로 달려와 몹시 피곤하오.]

“귀하의 존성대명을 일러주십시오. 후일 크게 갚겠습니다.”

[파진후라 하오.]

“진천대의 황 대주와 인연이 있어 여기까지 왔구려.”

“아! 황 대주.”

[부디 적들의 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바요. 나는 둘째 공자에게 같은 소식을 전하러 갈 생각이오.]

“둘째에게도···.”

[진 가주는 홍동에 있을 둘째도 죽었다 여기고 있소. 두 아들이 모두 살아 돌아온다면 진 가주가 얼마나 기뻐하겠소.]

“······.”

호현은 차마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전할 수 없었다. 상대가 상당히 의로운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부디······. 구해주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노력하겠소.”

[그보단 당신이 먼저 살아남아야 할 것이오. 그대는 진가장의 맏이가 아니오.]

호충은 전음으로 상세한 방법을 일러주었다.

[가장 믿는 무사를 대동하고 길을 떠나시오. 주변엔 다른 지역으로 가겠다고 하시는 편이 나을 것이오.]

호현은 전음에서 느껴지는 호의에 깊이 절하며 포권했다.

“그러고 보니 제게 먼저 와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대협.”

“알아주니 고맙소. 그럼 이만 가보리다.”

호충은 은형술과 경공을 극도로 발휘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

‘신형이 보이지도 않는 구나! 엄청난 고수다.’

호충은 밖으로 나와 다시 홍동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호현이 녀석은 어떻게든 잔머리를 굴려 자장으로 도망갈 것이다. 남은 것은 호중이로군.’

***

자장에서 오는 것보다 멀진 않았으나, 분양에서 홍동도 상당한 거리였다. 호충은 꼬박 하루를 달려서야 홍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썩을 놈들 때문에 대체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진가장을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발품을 파는 못된 인물의 남 탓이었다.

호충은 분양에서 가장 크게 지어진 진가장의 무관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겠어.’

이번엔 숨어들어가지 않았다.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멈추시오. 그대는 누구요.”

“안에 진씨 세가의 둘째 아들인 호중이 있다 들었소.”

호충의 당당한 모습과 말투에 무사는 무시할 수 없었다.

“···안에 기별하겠소. 누구라고 전하면 되리까.”

“아마 호중은 날 모를 것이오. 진가주의 오랜 친우요. 하지만 내가 왔음은 꼭 전해주시오.”

호충은 자신을 만나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네가 나를 보느냐 안 보느냐는 네 선택이다. 네가 나를 거절하면 나는 이대로 갈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지 삶을 선택할지를 호중의 손에 맡긴 것이다.

잠시 밖에서 기다린 호충은 안에 다녀온 무사가 문을 열어주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들어오시오.”

‘아직 네 명(命)이 남은 모양이로구나.’

“공자께서 그대를 만나겠다고 하셨소.”

“···그렇군.”

호충은 안으로 들어와 지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관의 전각을 보며 마교를 떠올렸다.

‘마교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면 진가장의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았을 것이다. 그러니 진가장이 산서 진출에 애를 먹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렇게 멋들어지게 무관을 지어놓은 것을 보니, 진가장에서 벌어진 사건과 연관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만들어진 무관을 마교의 손아귀에 넣을 생각이었겠구나.’

“도착하였소. 이리로 들어가시오.”

“고맙소.”

호충은 내실로 걸음을 옮겼고, 안에서 기다리는 호중과 주변 인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인물이군.”

“그대가 진씨 세가의 둘째 아들 진호중인가?”

“그렇소. 그대는 누구요.”

“이미 무사에게 전해 듣지 않았던가. 나는 네 아비의 오랜 친우다.”

“이보시오. 당신의 정체를 밝히라는 말이오. 이름도 소속도 없이 어찌 가주님의 친우라고만 하시오.”

진가장에서 출발한 마교의 녀석들은 파진후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밝힐 수 없었다.

“···주변을 무른다면 다 설명하겠다. 지금부터 내가 전할 말은 오직 세가의 직계에게만 전할 수 있음이다.”

둘째 호중의 곁에 서 있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 지금은 위험한 때입니다. 외부인과 함부로 마주하시면···.”

“그대의 생각은 옳다. 하지만 날 해할 인물이었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나를 만나러 왔겠는가. 잠시 자리를 피해주시게. 길을 떠나자면 준비할 일도 많지 않은가.”

“······예. 공자님.”

호중의 곁에 있던 인물은 잠시 호충을 보고 눈을 빛냈으나, 주변의 인물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이제 말씀하시오.”

“방금 나간 저자의 이름은 무엇인가.”

“···장문소라 하오.”

“아마도 이곳 홍동에서 새로 진가장에 들인 인물이겠군.”

“장 씨는 홍동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오. 홍동 지방의 유지들도 저자를 사부라 부르며 공경한다오.”

“······.”

‘저 녀석이 마교의 간자였구나. 그것도 상당히 높은 직책일 것이다.’

겉으로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호충의 눈을 속일 수는 없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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