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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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 말을 똑똑히 듣게.”
“···아까부터 이름도 밝히지 않는 그대의 하대가 몹시 불편하오만.”
호충은 불만 가득한 호중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포옥 내쉬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대할만 하니 하는 것이야!]
“!!”
귓전을 때리는 전음에 깜짝 놀란 호중이지만, 더 놀랄 말은 그 뒤에 이어졌다.
[방금 나간 장문소라는 녀석은 분명 마교의 인물이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를 구원할 나를 언짢게 여기는구나!]
“흡!”
[지금 진가장은 마교의 습격으로 큰 곤경에 빠졌다. 이미 장문소라는 녀석이 이 사실을 가공하여 너에게 전했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길을 떠난다고 했겠지.]
“······.”
호중은 금방 신색을 회복했지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전음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입을 열지 않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밖에서 안의 대화를 모조리 듣고 있을 테니까. ]
“차라도 한 잔 드려야 하는데, 손님 맞을 준비가 미흡했습니다. 우선 앉으시겠습니까?”
호충은 호중의 처세가 상당히 능숙함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는 길이 조금 힘들긴 했지. 진가주가 아들 교육을 잘 했군. 나는 진가주와 오래전 친분을 맺었지. 그가 잘 있는지 모르겠군.”
그 와중에도 전음은 이어졌다.
[나는 파진후라 한다. 허나 내 이름은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고개를 끄덕인 호중에게 계속 전음을 날렸다.
[나는 황 대주와의 작은 인연으로 얼마전 진가장에 들렀다가 마교의 습격을 보고 진 가주와 함께 싸웠다. 진가장과 오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지. 내 덕분에 마교의 습격을 물리쳤으나, 그 와중에 진 가주는 상승 무공을 드러냈다.]
“!”
[진가주는 바로 원로원으로 향했을 것이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셋째를 가주로 세울 계획이라는 말만 듣고 달려 나온 참이다. 너와 첫째 호현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여전히 부족할 뿐입니다. 아버님의 친우께도 제가 크게 실례를 범하지 않았습니까.”
“부족하면 더 배워야겠구나.”
[이미 분양(汾陽)에 있던 첫째 호현에게도 같은 말을 전하고 이곳으로 왔다. 너는 저들을 따돌리고 생로(生路)를 찾아야 할 것이다. 장문소라는 녀석과 함께하면 너는 사지(死地)를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야.]
“어찌하면 더 배울 수 있겠습니까.”
[믿을만한 세가의 무사들이 있느냐. 있다면 그들을 네 주변으로 불러 모아라. 그리고······.]
호충은 둘째 호중이 살아날 길을 일러주었지만, 호중은 자신 앞의 인물이 더욱 믿음직했다. 요즘 세상에 전음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무인은 흔치 않았다.
“아버님과 인연이 있으신 대협께서 저를 가르치신다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진정으로 자신이 마교의 첩자를 곁에 두고 있었다면, 지금 자신은 사지에 들어와 있는 꼴이었다. 여기서 살아 나가려면 고수가 하나라도 더 필요했다.
‘이걸 죽여, 살려?’
호충은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호중을 두고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허. 가르침을 구하는데 어찌 그리 몸이 뻣뻣한가.”
[마교는 실로 두려운 집단이다. 이들의 손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진가장의 진호중. 대협께 가르침을 청하나이다.”
호중은 벌떡 일어나 바닥에 머리를 대고 절을 올렸다.
“······.”
‘네 녀석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건만, 오늘은 네 놈이 내게 절을 올리는 구나.’
그만큼 자신의 힘이 커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네 놈은 명줄도 질기구나.’
첫째 호현을 살린 것처럼 호중도 진가장으로 보내야 했다.
“길을 떠난다고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고하라.”
“···본장에 아버님께서 위독하시는 전갈을 들었습니다. 하여 오늘 급하게 자장으로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허허. 진 가주 그 사람이 위독하다니 네가 아들 된 도리로서 가지 않을 수 없겠다.”
[실로 간악한 놈들이다. 분명 네 놈을 중간에 도륙하려 계획하고 있겠지.]
“···그러하옵니다. 대협.”
[또한 네가 죽는다면 이곳 홍동에 마련한 무관은 녀석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너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곳을 잘 아는 이가 장문소라 했더냐? 그를 불러와라.”
[녀석을 속여야만 네가 살 수 있다.]
호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문소를 다시 불러들였다.
“······.”
장문소는 미심쩍은 눈으로 호충을 보고 있었다.
“그대가 장문소라는 인물이오?”
“그렇습니다.”
‘이 녀석이 마교 무사들을 통솔하는 놈일 가능성이 크다.’
호충은 장문소의 숨겨진 무위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눈에 이글거리는 마공의 기운이 선명했다.
“그간 호중이를 곁에서 보좌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들었소. 실로 고마운 일이오.”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친우가 병이 깊다니 나 또한 깊이 근심하는 바이오. 하여 나도 일행에 함께하고자 하니 그리 아시오.”
“일행에 합류하는 정도야···.”
‘아무리 녀석이 고수라 해도 마교의 무사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터.’
“합류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가 일행을 통솔하겠다는 뜻이오. 함께할 인원들을 모두 불러오시오. 내가 인원을 조정하여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겠소.”
“!”
‘아예 나를 밀어내고 내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뜻이지 않은가!’
장문소는 얼른 호중을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호중은 상대에게 넘어가 있었다.
“대협의 말대로 하십시오. 대협은 아버지의 오랜 친우이시니 응당 그래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친 인원을 밖에 모으지요.”
장문소가 나가고 다시 호중에게 전음을 보냈다.
[너는 어서 떠날 준비를 해라. 몰래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복색도 평범하게 바꾸고 얼굴에 검댕 칠을 해야 할 것이다.]
“!”
[홍동에서 빠져나간 이후 너는 자장이 아닌 분양으로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녀석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
“?”
왜 분양인지 의문을 보이는 호중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형제가 힘을 합해야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겠느냐. 너는 호현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마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그럼 대협께서는···.”
[나는 여기서 마교의 무리를 붙잡아 둘 것이다. 나는 환술을 통해 누구로든 변장할 수 있다.]
“!”
[그러니 너는 이곳을 염려하지 말고 조용히 빠져나가라.]
“그럼 저는 이후 대협의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다.”
호중은 얼른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당장 짐을 챙겨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녀석들이 고생깨나 하겠군.’
아무도 없이 자장으로 향할 것이니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다.
‘허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을 것이다.’
호충은 밖에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모인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
‘저 놈이!’
호충은 진가장에서 가장 앞서 있던 마교의 무사를 볼 수 있었다.
‘마교인들에게 위사라고 불린 놈이다!’
녀석은 짐꾼으로 위장하고 수레 곁에 서 있었다.
‘절정급 마인이 장문소의 지시를 따르는 구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장문소가 파진후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당장 마교의 마인들을 대동하고 자신을 잡으러 왔을 것이다.
“······.”
호충은 조용히 문을 닫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장문소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대협. 밖에 인원이 거의 모였소.”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게. 아직 빠르게 자장으로 갈 계획을 가다듬지 못하였네.”
“···그 전에 귀하의 존성대명을 여쭈어도 되겠소?”
“······.”
‘이 얼굴이 좀 잘났어야지.’
분명 진가장에 다녀온 마교의 인물로부터 파진후의 이름을 들었을 것이다.
“옥연비라 하네. 내 이름이 자랑할 바가 아니라 그대에게 밝히지 않았네. 전처럼 대협이라 부르게.”
옥비연의 이름을 바꿔 알려준 것이다.
“······알겠소. 옥 대협.”
‘스스로를 대협이라 부르라 하다니···. 체면은 대체 어디다 팔아먹었단 말인가.’
자신을 스스로 대협이라 부르라는 놈이 어디 있나 싶었다.
보통 대협이라는 호칭은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 인물들이 대인의 풍모를 보이는 인물에게 존경을 표하려고 붙이는 호칭이었다.
‘하여간 정파 물을 먹은 놈들은 당최 마음에 들질 않아! 언제나 남의 위에 올라서서 우러러 봐주기만을 바라지!’
호충은 아직 나가지 않고 기다리는 장문소의 눈빛에 일렁이는 기운을 보고 녀석의 평정심이 생각보다 깊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일에 살기를 드러낼 정도였어?’
잠시간에 흩어질 정도로 옅은 기운이었지만, 이미 장문소가 마교의 인물임을 확신하는 호충의 눈엔 선명하게 살기가 잡혔다.
“나는 호중의 말을 듣고 그대가 얼마나 진가장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오. 갑자기 무관에 방문한 이상한 놈이 일행을 통솔하겠다하니 얼마나 황망하였겠소.”
“···아닙니다. 진가장 가주의 친우시라면 얼마든지···.”
‘아직은 때가 아니니 너를 대우해주마.’
‘아직은 때가 아니니 너를 대우해주마.’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홍동 지역에서 사부라 불리신다고 들었소. 저도 그리 칭하지요. 장 사부. 미안 하외다. 이번 일에만 끼어들고 앞으로는 장 사부님의 일에 관여치 않을 것이오.”
“흠흠.”
“그리고···. 아무리 천지의 운행을 보고 계산해도 오늘은 길일(吉日)이 아닌 듯하오.”
“기, 길일(吉日)이 어인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자장까지 가려면 며칠은 가야 할 터. 하루 쯤 늦어진들 어떻겠소. 안 그래도 호중이 녀석에게 치성이라도 드리라고 명한 참이오. 아비가 치유될 수 있도록 정성껏 치성을 드리라 하였으니, 자장은 내일 출발하도록 합시다.”
“하, 하지만 벌써 다 준비가 되었는데···.”
오늘이 아니면 세운 계획이 어그러지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오. 장 사부. 나 또한 녀석 곁에서 천지신명에게 치성을 드릴 터이니 식사는 밖에 놔두시오.”
“나와서 인부들에게 얼굴이라도 비추셔야···.”
호충의 얼굴을 확인시키기 위함이었으나, 이에 넘어갈 호충이 아니다.
“어차피 날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아니오. 오늘 보나 내일 보나 달라질 것은 없소.”
“······.”
“내일 새벽에 바로 출발할 터이니 그렇게 준비만 해두시오.”
“···알겠습니다.”
호충은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호중이 머물던 방으로 들어가 비어있는 방을 확인했다.
‘그 사이에 도주했구나.’
호충은 외부로 통하는 통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분명 외부로 나가는 출구가 있기에 도주가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중이 남긴 흔적들을 살피던 호충의 손이 침상을 잡아 번쩍 들었다.
‘여기로군.’
침상 밑으로 비어있는 공간이 길게 늘어져 있음이다.
‘역시. 여우는 항상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두지.’
호충은 도망칠 일이 없었기에 도로 침상을 내려놓고 침상에 누워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으차.”
쉬지도 않고 먼 길을 오가느라 무척 피곤한 참이었다.
“휴식 끝.”
누운 것이 방금이었는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휴식은 누워서 잠드는 것이 아니었다. 심법을 운용해야 피로를 풀어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쏟은 내력을 생각하면 더욱 내공심법을 운용해야 할 때였다.
호충은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진양의를 통해 내공을 운용하지만, 이렇게 고요히 앉아 심법을 운용하는 좌공(坐空)과 움직이며 심법을 운용하는 동공(動空)은 천양지차였다.
‘녀석들이 밤을 기다릴 리가 없어.’
파진후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찾아올 녀석들이다.
마교의 인물들이 오기 전에 몸 상태를 빨리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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