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232)

패도문 사국도

***

장문소는 진가장에서 대차게 패배하고 돌아온 마혈단주를 앞에 두고 있었다.

“놈의 얼굴이 그리 잘생겼다고?”

“예. 장 교사님. 제가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래서 녀석의 용모파기까지 그려드리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자네 그림은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

장문소는 마혈단주가 용모파기랍시고 그려놓은 기괴한 그림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눈코입만 달렸다 뿐이지, 도무지 잘생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애가 그려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인데···. 손가락 하나 쯤 자르면 나아질 까?’

장문소의 눈에 언뜻 살기가 어렸다. 대계가 틀어진 다음부터 부쩍 심기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쪽으로는 소질이 없다보니···.”

“직접 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예. 파진후라는 이름의 그자는 실로 고강한 무위를 자랑했습니다. 분명 당시에도 힘을 다 드러내지 않은 것이 분명···.”

“변명은 적당히 하시게. 도대체 몇 번째 같은 소리인가!”

진가장에서 대계를 말아먹은 마혈단주는 마교의 본거지에서 목이 잘릴 가능성이 구 할이었다. 교주까지 관심을 가졌던 대계였으니, 십 할이라 봐도 무방했다.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었다.

“장 교사님께서 윗선에 말을 좀 잘 해주십사하고···.”

“내가 말해서 될 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혈단주만 목이 잘리겠는가. 장문소 본인도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만회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번엔 실패가 없어야 할 것이야. 분양에서 첫째를 죽이고, 여기 홍동에서 둘째를 죽이면 진가장엔 셋째만 남는다.”

이미 진가주가 절정에 들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에 가주의 위가 자식에게로 넘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틀어진 일을 다시 바로세우면 될 일이었다.

‘이번 일은 무조건 성공해야 해!’

“어차피 우리가 세우려 했던 모자란 놈이니 녀석을 우리 품에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아.”

신교의 꼬리가 드러난 바람에 잠시 진가장을 그대로 둬야 했지만, 잠잠해지면 다시 진가장을 도모할 계획이었다.

“꼭! 성공하겠습니다. 장 교사님.”

“···우선 놈의 얼굴부터 확인하게. 내가 가면 이상할 터이니 식사를 넣는 척하며 문을 열어보면 될 것이야.”

“녀석이 저를 알아보면 어찌합니까.”

“···머리에 뭐라도 쓰고 가면 되지 않겠나! 내가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장문소의 몸에서 일어난 기운이 마혈단주를 압박했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

.

깊은 밤이 오기 전 저녁시간.

쟁반을 든 마혈단주가 호중의 거처 앞에 도달했다. 마혈단주는 장문소의 말대로 머리에 천을 둘러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

탁.

쟁반을 문 앞에 내려놓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공자님. 야참을 가져왔사온데···.”

그의 손은 이미 문을 조금 열고 있었다.

끼이익. 벌컥.

조금만 열려던 문이 안에서 미는 바람에 활짝 열리고 말았다.

“천지신명께 치성을 드리는 중이니 들어오지 말라 했건만.”

“아. 죄송합니다.”

호충은 문 앞에 놓인 쟁반을 들춰보고 말했다.

“떡을 가져왔는가? 알겠네. 가보게.”

“···그럼 이만.”

몸을 돌린 마혈단주는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아니다. 녀석이 아니야.’

진가장에서 봤던 파진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호충은 녀석의 뒤통수를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네가 화산의 도인을 어찌 알아보겠느냐.’

호충은 그나마 화산에서 봐줄만한 인물을 갖췄던 현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떡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 호충은 아무렇지도 않게 떡을 먹으며 다시 역용술을 사용했다.

우드득.

“이러다 내 잘난 얼굴 다 망치겠네.”

이번엔 낮에 도주한 호중의 얼굴이었다. 내일부터는 호중으로 변해 활동해야 했다.

***

이른 아침 호중의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서자 장문소가 의아한 얼굴로 뒤를 힐끗거렸다.

“왜 내 뒤를 힐끔거리는 가.”

“···어제 옥 대협과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까. 어찌 나오지 않으시는지 싶어서···.”

“아무래도 대협께서 걱정이 된다며 먼저 출발하셨네. 일행은 다시 자네가 맡아야 할 것이야.”

“······.”

‘어찌 우리의 감시를 뚫고 밖으로 나갔단 말인가!’

“옥 대협께서 천기를 읽는다 하셨는데, 진가장에 변고가 생겼다 하시더군. 또한 자신이 먼저 출발해야 다가오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하셨어.”

“···대단한 분이셨군요.”

‘꼭 녀석을 찾아내 죽여야겠구나. 어찌 천기를 읽는단 말인가.’

진가장에 변고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고, 그가 도주한 덕분에 그 자신은 위기를 벗어나지 않았는가. 정말로 천기를 읽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도 어서 출발하세.”

“저희는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시지요.”

‘이 녀석을 정리하고 바로 녀석을 추적해야겠다.’

일행에 진가장의 무사들이 몇 포함되어 있었지만, 일꾼과 짐꾼은 대부분 마교의 인물들이었다.

호충은 언제쯤 마교인들이 마각을 드러낼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 홍동을 벗어났으니 곧 시작하겠군.’

예상대로 일행이 완전히 홍동을 벗어났을 때 멀리서 인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들은 누구인가!”

“헛! 저들은···.”

장문소는 정확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저희를 괴롭혔던 패도문의 인물들입니다. 패도문의 문주 사국도까지 보이옵니다! 큰일입니다!”

‘다행히 시간을 맞췄구나. 아니면 네 놈의 목을 잡아 뽑았을 것이다.’

“사국도!”

‘패도문의 문주? 저 녀석도 마교의 끄나풀이던가?’

그간의 일을 모르니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공자님! 저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인부들은 제가 맡을 터이니 어서 무사들과 자리를 피하십시오!”

“······.”

‘오호라. 여기서 따로 가겠다고?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 어찌 진가장의 인부들을 내팽개치고 도주할 수 있겠는가!”

“공자! 시간이 없습니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래!’

지금까지 겪어온 진가장 둘째의 성정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도주해야 옳았다.

“마차를 버리고 말에 오르소서! 여긴 인부들과 제가 막겠습니다!”

호충은 장문소의 말을 무시하고 무사들에게 명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적이 나타났다!”

“······.”

‘이 X새끼가!!’

살기가 충천한 장문소의 눈을 보며 호충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큭큭. 네 녀석은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호충은 대형을 갖춘 무사들의 중간에 서서 달려오는 인마를 맞이했다.

“네 이놈! 이제야 밖으로 나왔구나! 오늘을 기다렸노라. 하하하하하!!!”

호충은 검을 겨누며 상대의 말에 호응했다.

“사국도! 네 놈이 감히!”

“하하하하! 오늘 네 놈은 염라대왕을 만날 것이니라!”

‘녀석이 도주할 수 있도록 더 천천히 달려 왔어야지!’

장문소는 조금씩 어그러지는 계획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충은 사국도의 무위와 성정을 단숨에 읽었다.

‘호방하고 거칠다. 하지만 마공은 연성하지 않았어. 마교에 쉬이 이용당할 놈이다.’

“사내답게 나서라! 내가 너를 상대할 것이다!”

“푸하하하. 감히 내게 맞서는가! 좋다! 아무도 나서지 마라! 오늘 내가 저 녀석을 도륙 내고 홍동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사국도는 호기롭게 말에서 내려 거대한 도를 들어올렸다.

“네 녀석에겐 검도 아깝다. 비도로 상대해주마.”

비도라는 말에 장문소가 의문어린 눈길을 보냈다.

‘이 녀석이 비도술을 익히고 있었던가? 하지만 제대로 익히지 않았으면 사국도 녀석에게 단칼에 죽을 터! 달라질 것은 없다.’

지금까지 검술을 익히는 것은 종종 보았지만, 비도술은 한 번도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국도와 호충이 서로를 마주한 주변으로 둥글게 방진이 생겨났다.

한쪽은 패도문의 세력이었고, 나머지는 진가장의 인물들이었다.

‘그래. 너희도 궁금하겠지.’

인부로 위장한 마교의 인물들도 방진에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도? 크하하. 네 녀석과 잘 어울리는 작은 칼이겠구나.”

“···그 웃음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자!”

호충은 품에 손을 가져갔고, 사국도는 호기롭게 뱉은 말과 달리 살풋 긴장한 모습이었다.

파앗.

비도가 둘 사이의 공간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하지만 누구나 비도의 궤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려터진 비도였다.

탱.

사국도는 느리게 날아오는 비도를 손쉽게 밖으로 쳐냈다.

“하! 겨우 이따위 비도술로 날 위협하는가!”

한껏 긴장한 자신이 우스울 지경이다.

“바, 방금 것은 그저 인사일 뿐이었어!”

호충은 당황한 척 다시 비도를 뿌렸다.

팅.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도는 허망하게 도에 맞아 튕겨나갔고, 사국도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단 한 수에 끝내주마!”

사국도가 앞으로 달려 나왔고, 호충은 사국도의 도를 이리저리 피하며 비도를 날릴 순간을 노렸다.

슈각. 부웅.

“쥐새끼 같은 놈! 내 도를 받아라!”

둘의 신형이 엇갈려 자리를 바꾼 시점에 호충의 눈이 빛났다.

사국도의 뒤편으로 진가장의 인부들이 들어왔다. 모두 마공의 흔적이 보이던 놈들이었다.

‘지금이다!’

호충의 손을 떠나간 비도가 아까와 다른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

사국도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도를 뻔히 보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어, 엄청난 비도술!’

무려 일곱 개의 비도가 뱀처럼 꼬리를 뒤틀며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슈슈슉.

하지만 모든 비도는 사국도의 몸을 교묘하게 피해 뒤로 날아갔다.

“대단하구나! 내 비도를 모두 피하다니!”

“큭. 어설픈 네 비도술을 어찌 피하지 못하겠는가!”

다시 대결에 열을 올리는 둘이지만, 진가장의 인부들은 비도에 맞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저마다 허벅다리 부근에 비도를 맞은 상태였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

장문소는 인부들이 비도에 맞은 다음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혈단주까지?’

절정급 마인인 마혈단주는 방금 날아든 비도에 심장을 꿰뚫리고 말았다. 다른 인부들은 죽지 않았기에 그 이상을 짐작할 수 없었다.

‘저 따위 눈먼 비도에 맞아 죽다니!’

아직까지 호충의 무위를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사국도의 도를 가까스로 피하며 대결을 이어가던 호충은 남은 장문소를 어찌할지 고민 중이었다.

‘저 녀석까지 처리하면 마교의 행사가 지금보다 본격적일 수 있어.’

마교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할 것이 분명했기에 녀석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대대적으로 마교가 무림에 등장할 수도 있는 일이다.

‘슬슬 이 녀석을 처리해야겠군.’

호충은 검병에 손을 가져갔다.

“사국도 문주의 도법이 실로 훌륭하다! 결국 내가 검을 뽑게 하는구나!”

“큭. 달라질 것은 없다!”

챙챙.

호충은 사국도의 도를 쳐내며 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가장의 검이다! 받아라!”

호충의 검은 단순한 검로를 밟아 나갔지만, 사국도의 도는 금세 손이 어지러워졌다.

막는 것만으로 힘에 부쳤고, 곧 상대의 검이 자신의 도와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채쟁!

“이익!”

“하압!”

따앙! 착!

호충의 검이 사국도의 검에 찰싹 달라붙었고, 사국도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자신의 도를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도가 하늘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터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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