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 탈출
***
“···진가장에 마교가 침입했었다.”
“!!”
“!!”
“마교라니···.”
“마교는 이번 일을 통해 진가장을 꿀꺽하려 했지.”
“···막아내긴 한 것입니까? 진가장의 경계가 삼엄해서 아무런 정보도 들어오질 않습니다.”
“마침 내가 자장에 돌아왔다가 진가장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내 얼굴을 드러내진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호충의 입에서 당시의 일들이 차근차근 풀려나왔다. 마교가 진가장을 습격한 순간부터 첫째와 둘째를 구원하고 돌아온 여정이었다.
“···그 며칠 사이에 산서(山西)의 분양(汾陽)과 홍동(哄洞)까지 다녀오셨단 말입니까.”
“아니면 첫째와 둘째가 죽을 판이었다. 셋째가 가주가 되면 진가장은 필시 중부전장이 차지할 것이니 어쩌겠느냐. 나야 진가장엔 관심도 없으니 누가 가주가 되어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럼 일이 벌써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옥비연은 이후의 일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며칠 전에서야 떠올렸다. 마교의 등장이 아니냐. 정무맹과 협의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장은 곧 무림인들로 가득해질 것이다.”
“아!”
자장에 정파 무림인이 많아지면 흑패는 동네북이 되고도 남았다.
“오는 길에 보니 벌써 무림인들이 몇몇 보이고 있었다. 자장 흑패는 한동안 자장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도박장과 홍루는 아예 문을 닫고, 화용루는 적당한 녀석에게 운영을 맡겨. 모두 자리를 피하자.”
“예. 대형.”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저도 얼른 따라나서겠어요.”
한번 멀리 떠나본 경험이 있어 준비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차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기에 금방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다만 자장 흑패의 조직원들까지 함께 갈 수는 없었다. 이들은 이후 인원을 나눠 출발하기로 하고 먼저 마차를 출발시켰다.
호충은 마차 안에서 밖을 살피며 언제든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가장 무사들이 안을 뒤질 수도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예. 대형.”
옥비연이 끄는 마차가 자장 밖으로 나서려 할 때 우려했던 상황을 마주했다.
“마차를 멈춰라!”
“워. 워.”
“······.”
옥비연은 자신을 노려보는 무사에게 얼른 입을 열었다.
“저는 자장의 토박이 옵니다. 거기서 자주 뵈었지요?”
“···흠흠.”
옥비연이 도박장에서 때때로 마주한 얼굴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안에 누가 있느냐.”
“안에는···.”
옥비연이 변명을 이어가기 전에 호충이 문을 열고 나섰다. 마차를 막아선 이가 호충이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황 대주.”
“헙! 파 대협!”
그 사이 파진후의 얼굴로 바꾼 호충이다. 호충의 머리가 급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황 대주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해야겠군.’
“이제와 여길 뒤진들 무엇 하겠소.”
“돌아오셨군요!”
“내 조용히 살피고 돌아가려 했건만 이렇게 또 마주치는군. 황 대주와 내 인연이 얕지 않은 모양이오.”
“하하하.”
“이리 오시오. 중요하게 전할 말이 있었소.”
“예.”
호충은 황종현과 마차에서 멀어졌다. 황종현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파 대협은 일 공자와 이 공자를 찾으러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혹시···.”
황종현은 두 공자의 시신을 찾았나 싶어 얼굴을 굳혔다.
“기쁜 소식과 걱정되는 소식이 하나씩 있소.”
“말씀하십시오.”
“내가 급하게 경공을 펼쳐 달려갔기에 첫째와 둘째를 모두 살릴 수 있었소. 이것이 기쁜 소식이오.”
“헙! 진정 이시옵니까!”
“조용히 하시오. 누가 들을지 모르오.”
“좋은 소식이지 않습니까. 누가 들어도···.”
“지금 진가장엔 삼 공자가 가주로 올라섰을 것이오. 만약 삼 공자가 이 소식을 알면 어찌하겠소.”
“!”
‘맞다. 삼 공자는 두 형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진가장에 이 소식을 전할 수 없었소.”
“이해합니다. 현명하신 처사이십니다.”
“하지만 내가 믿는 황 대주에겐 전할 수 있지.”
“허허.”
“그리고 걱정되는 소식은 따로 있소. 둘은 지금 마교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주를 감행했소. 일 공자 호현은 분양에서 마교도를 따돌리며 급하게 길을 떠났을 것이고, 이 공자 호중 또한 홍동을 벗어나 분양으로 향했을 것이오. 내가 그쪽으로 가서 일 공자와 합류하라고 했기 때문이오. 그간 나는······.”
호충은 산서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자신이 얼마나 이번 일에 노력했는지를 구구절절 설파했다.
“파 대협께서 큰일을 하시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는 알지 못하오. 지금 그들이 어떤 곤경에 처해있을지 무척 심란한 참이오.”
“그런!”
“당장이라도 이들을 도울 무사를 파견해야 할 것이오. 허나 진가장에선 무리가 아닐까 싶소만···.”
“······.”
진가장에서 무사를 빼려면 새로 가주위에 오른 삼 공자의 재가가 필요했다.
“당장 모용 세가와 서문 세가에 연통하여 둘을 구해야 할 것이오. 진가주의 부인들을 찾아가시는 편이 빠르겠군.”
첫째 호현의 어미가 모용 세가의 여식이고 둘째 호중의 어미가 서문 세가의 여식이었다. 진가장 대신 이들의 힘을 활용할 수 있음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어서 움직이시오. 마교도들이 쫓고 있으니, 다른 무림 방파도 온 힘을 다해 도울 것이오. 또한 이들의 힘을 적절히 이용해야 가주 자리를 바꿀 수 있을 것이오.”
“···거기까지 내다보신단 말씀입니까. 제가 파 대협을 만난 것은 천운입니다.”
“가주가 바뀐 진가장이 무척 걱정이었소.”
“그동안 보여주신 호의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파 대협.”
“다만 누구에게도 나를 봤다 말하지 말아주시오. 나는 무림에서 숨겨진 존재이니···.”
황종현은 상대의 무위가 절정의 끝자락이라 짐작하고 있었기에 황궁의 행사를 걱정하고 있다 여겼다.
“물론입니다. 어서 자장을 빠져나가십시오. 정무맹과 협의맹에서 무림인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황 대주가 할 일이 무척 많겠소. 수고하시오.”
황종현의 어깨를 툭툭 친 호충은 얼른 마차 안으로 들어갔고, 옥비연은 황종현이 터준 길을 따라 마차를 몰았다.
‘진가장은 개판이 되겠구나.’
중부전장을 등에 업은 호성이 호락호락하게 가주 자리를 내주진 않을 것이나, 모용 세가의 힘과 사문 세가의 힘이 더해지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둘이 힘을 더할지 말지도 확신할 수 없었는데, 힘을 더해 호성을 몰아냈다 해도 싸움은 끝이 아니었다.
‘산 중에 호랑이는 한 마리. 둘은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여기에 마교를 이유로 정무맹과 협의맹이 끼어들면 진가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은 명약관화였다.
지금까지 진가장은 가주를 중심으로 발전을 이룩해왔다. 특히 가주의 세 부인의 처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성세를 이어왔으나, 가주는 이미 원로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앞으로 세 부인이 각기 찢어지면서 발생할 혼란은 둘째 치고라도 진가장의 기본 저력이 급감하게 되는 것이다.
호충이 혼자 생각에 미소 짓고 있으니 화진이 물어왔다.
“가가. 무엇이 그리 재미있으셔요.”
“푸흐흐. 앞으로 진가장에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서.”
호충에겐 남의 집 불구경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아직 자장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았어. 지금은 조용히 가자.”
“예. 가가.”
***
황종현은 바로 진가장으로 돌아가 대부인의 처소로 걸음 했다.
“가서 진천대주가 뵙기를 원한다고 전하거라.”
“마님께서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화급한 일이다. 어서!”
“···하지만.”
“되었다. 후환은 내가 감당하마.”
황종현은 여종을 밀치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끄으응. 황 대주. 무례하구나.”
진가장의 안주인인 모용소군은 아직도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으니 어찌 입에 음식을 댈 수 있겠는가.
“대부인 마님. 주위를 물러 주십시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허어. 내 자식을 잃었다고 벌써 나를 이리 무시하는가.”
아무리 내부인 이라도 가주의 부인을 만나면서 주위를 무르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황종현이 건넨 작은 말에 모용소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 소식입니다.”
“!!”
“어서 주변을 무르십시오.”
“모, 모두 밖으로 나가라! 나가!”
시종이 모두 자리를 피하자 황종현이 얼른 다가와 입을 열었다.
“대부인 마님. 호현 도련님이 살아계십니다.”
“어디! 내 아들은 어디에 있는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있다니 어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랴.
“방금 산서 분양에 계시던 일 공자께서 마교도의 손아귀를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
“하지만 마교도가 쫓고 있을 것이기에 모용 세가의 무인이 파견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진가장은 이미 삼 공자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호성이 녀석은 무사를 파견하지 않겠지! 황 대주가 그래서 나를 보러 왔구려.”
모용소군은 어찌하여 주변을 무르라 했는지까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부디 일 공자께서 무사히 돌아오시어 가주의 위를 되찾으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오늘 일을 잊지 않겠어요. 황 대주.”
“예. 대부인 마님.”
황종현은 이후 서문희의 처소에서도 같은 말을 전하고 든든한 뒷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진가장에서 나의 위치는 굳건할 것이다.’
아들을 살릴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니 두 공자가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세상이었다.
“큭큭. 파 대협 덕분에 이제 나는 출세할 일만 남았구나.”
최근 가주에 오른 삼 공자는 외부에서 무사들을 데려와 배치하고 있었다. 가주 직속인 진천대의 위치까지 위태위태할 지경이었기에 무척 심란한 차였는데, 마침 오늘의 일로 그 걱정을 모두 날릴 수 있었다.
‘호성이 네 녀석이 가주 자리에 앉는 것도 오래가 아닐 것이다.’
“흐흐흐흐.”
***
호충 일행은 자장에서 한참 벗어나고서야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긴장을 풀어도 될 것이다.”
먼저 사중환이 입을 열었다.
“대형. 그 얼굴은 좀처럼 적응이···.”
“크흐흐. 이 얼굴은 정말 잘 써먹었는데 말이야.”
“가가. 그래도 좀···.”
“알았어. 나도 원래 얼굴이 좋거든.”
우드득. 우득.
호충이 내기를 지정된 혈도로 돌리자 파진후의 얼굴이 다시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어휴. 이제야 내 얼굴을 찾았네.”
“저도 가가의 원래 모습이 좋아요.”
호충은 안겨오는 화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이제 위험할 일은 없어.”
“가가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저희가 빠져나오긴 쉽지 않았을 거예요.”
호충은 빠져나왔다는 말에 다른 지역의 흑패주들을 떠올렸다.
“사중환. 밖으로 빼낸 녀석들은 어디로 집결 시켰지?”
“모두 연안의 연위 흑패로 가라 했습니다. 다들 방향을 달리해 빠져나갔기에 모이는데 시일이 소요될 것입니다.”
흑패의 주요인원을 끌고 올라오며 마지막에 방문한 곳이기에 집결지를 연안으로 잡은 것이다.
“그럼 여기서 금방이군.”
“하지만 대형의 말씀대로라면 연안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남부 쪽 무림인들이 이쪽을 지날 확률이 상당하긴 하지.”
“무려 마교의 재등장입니다. 무림에서 마교는···.”
마교는 피와 살육에 미친놈들이 모여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가만 두면 그리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그저 저들이 모시는 교주가 신의 화신이라 여기고 교주의 말을 신의 말처럼 떠받드는 종교단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주가 명령하면 언제든 피와 살육에 미친놈들로 변하지.’
힘을 숭상하는 사이비 종교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비 종교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