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의 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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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숭상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비 종교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마교는 자신보다 약한 무림 방파를 두고 보지 않아.’
마교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마교는 교묘하게 무림 방파를 흔들어 놓고 약점을 공격해 무너트린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차지한 무림 방파는 거대한 연합을 이루고 무림맹과 대치를 시작했었다. 마교의 본산은 그 사이 포교를 이어간다. 말이 포교지 강제성을 띈 협박이었다. 차지한 지역에서 마교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마교는 사파 연합의 우두머리인 경우가 많았지. 지리멸렬했던 사파까지 이미 규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마교에 의해 거대한 연합을 이뤘던 단체는 바로 사파 연합이었다.
물론 사파 연합이 언제나 마교의 휘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뛰어난 사파의 종주가 등장했을 때 사파는 마교의 힘에서 벗어나 무림을 종횡무진 질주하기도 했다.
“현 사파의 세가 약하니 마교는 얼마든지 이들을 규합할 수 있겠지요.”
“······.”
호충은 홍동에서 만났던 패도문의 사국도를 떠올렸다. 녀석도 사파의 인물이 분명했으니, 홍동뿐 아니라 산서의 모든 사파가 마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봐야 했다.
‘무림은 자신의 주변을 철저하게 탐색하겠지.’
진가장에 마교도가 침입하기 전까지는 그저 작은 꼬리를 발견한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대대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절정급 마인이 다섯이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숨겨진 더 많은 절정급 마인이 존재한다는 방증이었다.
“게다가 현 무림맹은 정무맹과 협의맹으로 나뉘어 있으니 서로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일 것이다. 흑패 연합이 잘못 걸렸다가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공격할 수도 있어.”
“장소를 옮기는 편이 낫겠지요?”
호충은 마땅한 장소를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연안은 너무 좁다. 서안이 좋겠어. 서안에는 비어있는 흑패의 거점이 둘이나 있지 않느냐.”
서안에 존재하던 세 개의 흑패 중에 하나만 남았다. 최종적으로 남은 서안 흑패는 기존 전각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흡수한 두 개의 흑패가 사용하던 거점이 비어있었다.
“아! 그렇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남은 하나는 나와 너희들이 사용하자. 앞으로 중원 흑패 연합의 거점으로 삼을 것이다.”
흑패 연합의 거점으로 활용하기에 자장은 너무 좁았고 교통도 불편했다. 섬서의 중심인 서안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천수의 왕호에게도 전서를 보내라. 녀석도 흑패 연합의 거점이 어디인지는 알아야지.”
“예. 대형. 그럼 저는 먼저 연안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다시 서안으로 모이자면 도착한 이들부터 출발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어차피 한꺼번에 갈 수 없으니 도착한 이들부터 다시 서안으로 집결시키겠다는 말이었다.
“좋다. 나는 마차를 타고 곧장 서안으로 가마. 마침 송 영감을 그곳에 맡겨 두고 왔는데, 이러려고 일이 그리된 모양이다.”
호충은 서안 흑패에 송 영감을 맡겨두고 자장으로 왔었다. 흑패주가 자리를 비웠지만, 송재호로 분한 호충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영감을 맡기긴 않았다.
“비연과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마차를 모는 비연을 데려가면 호충이 마차를 몰아야 할 터였다.
“비연과 함께 가야 통솔이 쉽겠지. 너는 염려 말고 비연과 함께 출발해.”
“예. 대형.”
사중환과 옥비연은 자신들의 짐을 챙기고 경공을 펼쳐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타닥. 탁.
관도가 아니라 산으로 향하는 둘이다. 무공을 함부로 내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의 신형은 나무들 사이에서 금방 모습을 감췄다.
‘녀석들. 그간 더 발전했군.’
호충은 둘의 경신 공부가 깊어졌음이 기꺼웠다.
“저희도 연안에서 마차를 처분하고 갈까요?”
“······.”
사중환과 옥비연뿐 아니라 화진도 상당한 수준의 무림인이었다. 경공을 펼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 화진의 미모에 달라붙을 불나방들을 처리하자면 서안까지 가는데 십 년은 걸릴 것이야. 마차에 꼭꼭 숨어 있어.”
“호호호. 가가도 참.”
호충은 마부석에 올라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관도에 시시때때로 무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호충은 길가에서 마차를 비켜주는 식으로 충돌을 피했다. 괜히 시비가 붙으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마주친 무림인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검은 도관(道冠)을 정제한 도인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화산파!’
청진 장문인에게 받은 의뢰가 있었다. 화산파의 무자 배 원로들을 찾아 화산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자신이 만났던 무자 배의 원로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저들이 바로 외부로 나간 무자 배 원로들이다!’
호충은 얼른 마차를 세우고 내려섰다.
“무림말학 진호충이 화산파의 원로들을 뵈옵니다.”
“허허. 무림인이었던가? 어찌 우리를 알아보는가.”
그저 화산파의 도인이 아닌 원로라는 것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저는 진씨 가문의 막내입니다.”
“!”
자신들이 지금 향하는 곳이 바로 자장의 진씨 세가였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진가장의 막내라면 자장에서 일어난 일도 알고 있는가.”
“예. 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호충은 가장 많은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거 잘 됐군.”
호충은 화산의 도인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설명했다. 그래야 자신을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저는 화산에서 삼대 제자들과 함께 수련했습니다.”
“오. 화산의 무학을 배운 세가의 아이라.”
“흔치 않은 일이긴 하나 없는 일도 아니지.”
“예. 진가장은 화산과 같이 섬서에서 활동하는 무림 세가가 아니옵니까. 가주께서 화산파와 친분을 위해 저를 화산으로 보내셨지요.”
“장문인께서는 여전하시더냐?”
“못 뵌 지도 한참입니다.”
“화산의 겨울을 보지 못해 얼마나 아쉬운지···.”
“제 예상대로 아직 화산에 오르지 않으셨군요.”
이들이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을 보고 이미 짐작한 바였다. 화산의 일을 알았다면 자장으로 갈 것이 아니라 화산에 틀어박혀야 했다. 이들은 화산에서 내려온 인물과 길이 어긋났을 것이 분명했다. 넓은 중원 땅에서 어찌 쉽게 마주칠 수 있겠는가.
“···화산에 문제가 생겼느냐?”
“장문인께서 제게 화산파의 원로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대가 장문인의 전언을 가져왔단 말인가?”
“···이거 황망한 일이군.”
“기이한 일이야···.”
화산파 도인들의 눈에 작은 의심이 일었다. 관도에서 만난 인물이 자신들을 찾고 있었다니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마교의 소식을 접했던 터라 더욱 의심이 더해졌다.
“예. 관도에서 화산파의 원로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입니다.”
“우선 들어보겠네.”
호충은 청진 장문인이 의뢰했던 일을 입에 올렸다.
“장문인께선 무성(武成) 원로님을 포함한 다섯 분의 무자 배 원로님들께 화산으로의 복귀를 명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중차대한 일을 하고 있거늘···.”
“갑자기 귀환하는 명이라···. 믿기 어렵군.”
“어찌 제가 거짓을 입에 올리겠습니까. 바로 화산으로 가시면 제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대가 진가장의 막내라는 것부터 믿기 힘드네.”
“서찰도 아니고 그저 입으로 전하는 말을 어찌 믿고 우리가 움직이겠는가.”
“우리를 따돌리려는 수작이 아니냐!”
호충은 청진이 자신에게 내준 화산의 보은패가 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보은패가 이렇게도 쓰이는 구나.’
호충은 얼른 품에서 옥패를 꺼내 보였다.
“장문인께서 제게 보은 패를 내려주셨습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
하지만 보은 패는 오히려 이들에게 더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챙. 챙.
검까지 빼드는 화산의 원로들을 보며 호충은 선후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그간의 일을 설명하지도 않고 보은 패를 먼저 들이밀었으니···.’
어찌하여 보은 패를 받았는지 모르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삼대 제자와 수련한 화산의 객이라 했으면서 어찌 화산의 보은 패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 패는 어디서 났느냐.”
“당장 패를 내려놓고 이실직고하라!”
“분명 저 패는 가품일 것입니다.”
“훔친 것이냐!”
호충은 보은 패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후우. 보은 패는 여기 내려놓겠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무성(武成)은 호충을 경계하며 패를 집어 들었다.
“!”
원로 하나가 호충에게 겨눈 검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사형. 가품이지요?”
하지만 무성은 화산보은이라 새겨진 옥패가 진품임을 알아보고 있었다.
“···장문인의 옥패가 맞다. 분명 화산의 것이야.”
“!”
“!”
“다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작은 거짓이라도 있다면 네 목이 달아날 것이다.”
“후우.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호충은 자신이 화산에 오른 날부터의 일을 차근차근 입에 올렸다. 꼽추 고수의 만남과 비급의 구입, 화산으로 비급을 전한 일과 자신이 화산 대회합에서 개화검결을 펼친 일로 이어진 호충의 말은 마지막으로 장문인과 만난 일까지 모두 전했다.
“······하여 화산의 정화가 돌아왔고, 저는 그 공로로 장문인께 옥패를 받았습니다.”
“매화검법!!”
매화검법을 화산에 돌려준 공로라면 화산의 객이라도 충분히 화산의 보은 패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혹여 이 일이 외부로 유출되면 큰일이라 서찰로 남길 수 없었습니다.”
무성이 아닌 다른 무자 배 원로가 입을 열었다.
“겨우 화산의 객인 네가 개화검결을 펼쳤다고? 우리에게도 보여줄 수 있겠느냐?”
아직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부족한 공부이오나 존경하올 화산의 원로들께서 원하시니 보여드리겠습니다.”
호충은 가볍게 개화검결의 검로를 밟았다. 이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검법이었다.
“허어. 엄청난 수련이 있었겠구나.”
“이렇게 깊이 검을 깨달을 정도라니···.”
호충이 초반부에 보인 검식의 흐름만으로 검의 깊이를 알아본 것이다. 이들이 화산에서 가장 고수에 속하는 원로들이기 때문이다.
“하앗!”
호충은 금방 마지막 검식에 이르렀다.
흐릿한 매화 봉오리가 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
“!”
“매, 매화가···.”
마지막 검식은 예전의 화려한 열두 송이를 피워내지 않았지만, 화산의 도인들이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힘 조절을 잘 해야 해.’
예전 화산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당시엔 비급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일부러 강한 자극을 주었지만, 이들에겐 자신이 개화검결을 익히고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새로 들어온 삼대 제자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이번 삼대 제자들은 실로 대단하구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화산에 가서 크게 실망만 안겨줄 추측일 것이다.
“휴우.”
호충은 창백한 안색으로 검을 내렸다.
“아직 내력이 부족하여 개화검결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화산파 대회합에서 제가 개화검결을 익혀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덕분에 외부인인 저도 개화검결을 익히고 있지요.”
“정녕 화산에 매화가 돌아왔는가.”
“아아. 드디어 화산의 오랜 숙원이···.”
“이를 이유로 장문인께서 원로님들을 화산으로 돌아오라 명하셨습니다. 마인의 실체를 밝히고 마교의 본거지를 찾는 것보다 이것이 우선이라 하셨습니다.”
“허. 진 공자는 우리가 장문인에게 받은 명까지 알고 있구나.”
이제야 호충에 대한 의심이 거두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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