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외유
***
천마신교의 교주는 고요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
“······.”
또한 높이 위치한 교주의 자리 아래 청석 바닥에 꿇어 앉아있는 인물도 모든 보고를 마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시립한 마 장로였다.
“장 교사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교주님.”
“······.”
교주의 입은 그래도 열리지 않았다.
“저 또한 이번 대계의 실패에 책임이 있나이다.”
툭.
장 교사가 꿇은 자리 옆으로 마 장로가 함께 꿇어앉았다.
“저희는 이렇게 마신의 곁으로 가오나, 교주께서는 대계를 이루시고 찬란한 어둠 속에 승천하실 것이옵니다.”
마 장로는 손을 높이 들어 올렸고, 곧 자신의 천령개(天靈蓋)로 떨어져 내렸다.
피잇. 우뚝.
바늘 같은 기운이 마 장로의 혈도를 찍는 바람에 마 장로의 손은 천령개 바로 위에서 멈춰있었다.
“···같잖은 수작이로구나. 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군.”
“······.”
“너희를 잃으면 어리석은 신교의 중생들을 어찌하겠는가.”
“······.”
“장 교사는 고개를 들어라.”
“···끄흡.”
장문소는 얼굴 가득히 눈물로 범벅이었다.
“그리 억울하더냐.”
“······교주님. 너무 억울합니다. 다 이룬 대계를 단 한 놈 때문에 그르쳤습니다. 게다가 놈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커흑.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습니다. 고작 그 딴 놈 하나로 신교의 대계를 그르친 저 또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아직 녀석을 찾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장 교사는 끝까지 녀석을 추적하고 찾아내라.”
“교주님의 명을 따르옵니다! 녀석을 찾아내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입니다.”
장문소는 가감이 자신의 내공을 드러내며 살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마 장로는 진휘평을 외부로 내보내도 좋다.”
“!”
이번 대계를 실패하였으니, 다음 대계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녀석도 바깥바람을 맞아봐야 생각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 어차피 녀석이 황궁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예. 외부로 보내되 곁에서 각별히 감시하겠습니다.”
“그래도 안 되거든 미혼약을 써서라도 자식을 낳게 만들겠다고 해보아라.”
“!”
“녀석의 핏줄이 둘이나 우리 손에 들어오면 제 놈이 어쩌겠느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다면 조금 더 고분고분해지겠지.”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렇게 진휘평의 외유가 허락되었다.
***
마 장로는 교주를 알현하고 바로 진휘평의 방으로 향했다.
“자아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왕야.”
“오늘은 좋은 꿈을 꾸어 기분이 좋으니 그냥 나가시게.”
“허허. 내가 가져온 소식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던 모양이오.”
“······.”
그럼에도 돌아앉은 진휘평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교주께서 왕야의 외유를 허락하셨소.”
“!”
진휘평의 고개가 획하니 돌아갔다.
“그간 밖으로 나가지 못해 답답하지 않았소. 우리가 곁을 지키긴 하겠으나, 밖에서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조금은 가실 것이오.”
“···그런다고 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은가?”
“어렵게 받아온 허락인데, 나가지 않으실 생각이오?”
“······.”
“허락으로 알고 준비하겠소. 조금 멀리 나가 봅시다. 이 기회에 나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소.”
“허. 나 때문이 아니었군.”
“덕분에 오늘 내 명이 이승과 저승을 오갔소. 좀 쉬어도 되오.”
“······.”
진휘평은 자신의 외유를 위해 그랬나 싶었지만, 이는 마 장로의 말장난일 뿐이었다.
“···고생 많았군.”
“알아주니 고맙소. 왕야.”
진휘평은 밖으로 나간다는 말에 이미 가슴이 들뜨고 있었다.
“···혹시 섬서의 서안으로 갈 수 있겠는가.”
“오오. 거기까지 가실 생각이오? 여정이 상당히 길어지겠군.”
‘초연이 거기서 날 기다리겠다고 했었지···.’
자신의 부인은 그곳에 가지도 못했겠지만, 그녀와 약속했던 장소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었다.
‘초연. 늦게라도 내가 그곳에서 기다릴 것이야.’
“서안은 추억이 서린 곳이라 가고 싶었네. 그대가 이유를 물을 것이니 미리 말하는 것일세.”
“왕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솔직히 말씀 드리겠소.”
마 장로는 생글생글 웃던 표정을 굳히고 살기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행여 허튼 생각은 하지 말아주시오. 본인은 교주의 명이라면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도 들어갈 수 있음이오.”
“허. 나를 이토록 오래 가둬두고 뭐가 걱정인가. 내가 밖에 연통을 주고받는 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나를 알아보는 이라도 있을까? 죽기 전에 서안을 보고 싶을 뿐. 다른 의도는 없네.”
무려 이십년 가까이 마교의 심지에서 지내온 진휘평이다. 그의 말대로 외부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마 장로는 얼른 표정을 풀고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그럼 준비하겠소. 왕야.”
“그날을 고대하지.”
진휘평은 서안으로 향할 것이다.
진호충도 서안으로 향할 것이다.
***
호충은 하오문(下汚門)의 개파를 선언하고 다시 서안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이 홀로 떠난 길이다.
사중환과 옥비연은 서안 흑패의 임씨 형제와 함께 미리 서안으로 출발하였고, 화진은 각 기루의 대표 기녀들을 통솔하며 서안으로 향한다 했기 때문이다.
파박. 파앙.
호충은 홀로 떠난 길이라 마음 편히 산길을 경공으로 달리고 있었다. 호충 곁으로 높이 자란 나무들이 휙휙 지나쳐간다. 누군가의 곁을 지나가도 그저 바람이 스쳐지나갔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영감이 잘 지내고 있으려나?’
서안에 홀로 남겨둔 송 영감을 걱정했기 때문에 급하게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사실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서안 흑패의 누구도 송 영감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교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중원 어디도 안심할 수 없어.’
황실에 제한을 받고 있는 무림은 솔직히 큰 걱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봐온 무림인 대부분이 절정에 달하지 못한 무공 수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숫자만 많으면 충분히 상대할 정도였고, 정파 무림인이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핍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교는 달랐다.
‘고운 할매가 부른다고 따라갔다간 큰일이라고.’
시답지도 않은 걱정이었다.
***
서안 시전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흑패의 전각에 머무르는 인물이 있었다.
멋들어진 검을 들고 부드러운 검식을 연이어 펼치는 그는 호충이 그토록 걱정하는 송 영감이었다.
스윽. 슥. 탓.
산들거리는 바람이 영감의 잿빛 머리칼을 하늘로 날리고 있었고, 영감의 손에 들린 검은 바람과 함께 허공을 가르며 유려한 검식을 뿌리고 있었다.
‘여전히 검식이 세상에 녹아들지 않는구나.’
지금도 충분히 부드럽고 아무런 소음조차 내지 않는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었지만, 송 영감은 만족하지 않았다.
‘도련님이 보여주신 검은 이렇지 않았는데···.’
호충이 때때로 보여줬던 검식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허공을 노닐었고, 마치 자연의 한 부분처럼 세상에 녹아든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우웅.
검식을 펼치던 송 영감의 검이 문득 검명을 토해냈다.
“이 녀석! 조용히 해야지.”
검명은 곧 검기를 뿜어내기 위한 전조였으나, 송 영감은 자연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이 검명으로 드러난다고 여기고 있었다.
다시 송 영감의 검식이 흘러갔다.
검명은 시시때때로 울렸고 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송 영감의 찌푸린 아미는 펴질 줄을 몰랐다.
***
“이렇게 가는 것이라면 내가 어찌 중원을 구경하겠는가.”
진휘평은 마교에서 나온 다음부터 마차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었고, 출발한 며칠 동안은 안대까지 쓰고 있어야 했다. 그나마 시일이 흘러 안대를 벗었지만, 지금도 마차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어딘가에 머물렀을 때에만 밖으로 나가 생리적 현상을 해소하며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 전부였다.
“미안하게 됐소. 진 대협. 그대가 어디에 있었는지 숨기자면 어쩔 수 없지 않겠소.”
마 장로는 꼬박꼬박 왕야라고 부르던 호칭을 버리고 대협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밖으로 나왔기에 혹시나 진휘평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마교의 교주가 머무는 심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여정을 숨겨야 했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되면 마교의 심지가 어디인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휘평에게 마교의 본부위치는 관심도 없는 일이었다.
“서안까지는 아직 멀었소? 벌써 이주야가 흘렀소.”
오직 자신이 가야할 서안만이 중요했다.
“···곧 도착할 것이오. 그간 실례가 많았으니, 서안에선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해드리리다.”
“그래봤자 그대의 수하들이 항상 함께하겠지.”
“호오. 벌써 알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진 대협.”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 말하니 오히려 당혹스럽군.”
“그래도 사정을 많이 봐드린 것이오. 우리 단체에서 그대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 아니겠소.”
“······.”
진휘평이 마교의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 없는 것은 여전했다.
‘행여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마교는 자신을 통해 역천(逆天)을 꿈꾸고 있었다. 현 황제를 꺼꾸러뜨리고 자신을 황제로 세우려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형님이 부족해도···.’
사실 진휘평이 황궁에서 머무르는 시절에 받았던 기대는 상당했다. 그의 형이 태자로 임명되기 전이었을 때 자신을 태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청을 올리던 대신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장자가 보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대신들의 요청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었다.
‘만약 내가 태자로 선택되었다면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현 황제인 자신의 형을 따르던 파벌과 자신을 옹립하려는 파벌은 비등하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는 파벌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덕분에 황제는 진휘평을 지지하는 파벌을 쉬이 정리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보위에 올랐다면, 형님을 따르던 파벌의 대신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후 상당히 오랜 시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사라진 이 황자를 그리워하는 대신들이 상당했다.
‘안정적인 제국에 혼란을 일으키면 백성들만 고달프겠지.’
“허튼소리는 그만하게. 나는 어서 서안에 가서 백성들을 보고 싶을 뿐.”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오.”
이후 마차 안에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서로 대화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다리는 것이다.
***
“좋아! 계속 그렇게!”
호충은 어느새 서안에 도착해 송 영감의 수련을 봐주고 있었다.
송 영감은 검명을 토해내는 검이 여전히 불만스러웠지만, 발전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호충의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야. 확실히 내공이 받쳐주니 다르네.”
호충은 며칠 안 본 사이 발전한 송 영감의 검식이 기꺼웠다.
“후우.”
일련의 검식을 끝낸 송 영감이 검을 검갑에 수납하고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기분이 어때?”
“매일이 새롭습니다.”
무공을 익히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송 영감은 늦은 나이에 열정을 되찾고 있었다.
“아직도 검명이 불편해?”
“···약간 그렇습니다.”
“사실 검명은 제대로 검로를 따르지 못해 생기는 불협화음이야.”
“아···. 괜히 검명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아니군요. 그간 검로를 정확하게 그리지도 못했다니···.”
“하지만! 송 영감의 경우는 조금 달라.”
“···다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