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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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충은 마교도의 관심이 자신의 입에 쏠렸음을 알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가장의 가주님이 원로원에 드시고 셋째 아드님이 가주의 자리를 맡으셨다고 하더이다. 첫째와 둘째는 명을 달리해서 그랬다고 하지요.”
“······.”
마 장로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는 호충에게 관심이 멀어졌다. 첫째와 둘째는 명을 달리한 것이 아니라 멀쩡히 살아 도주하는 중이었기에 정보의 진위부터 틀렸다.
하지만 호충은 마교도의 눈빛을 읽으며 새로운 소식을 입에 올렸다.
“헌데 기이한 일이지요? 첫째와 둘째 아드님이 멀쩡히 살아서 진가장에 돌아오고 있다니 말입니다.”
“!”
마 장로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진가장의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던가?’
“애초에 첫째와 둘째 공자님 중에 가주직을 물려줄 것이 당연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셋째를 선택한 것도 기이한 일이었지요. 어찌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둘은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호충은 마교도의 말에 아직도 마교에서 둘을 찾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야 저도 모르지요. 진가장 무사들이 하는 말을 곁에서 들었을 뿐입니다. 서안에도 진가 표국이 있고 진가의 상회들이 많지 않습니까.”
“······.”
“최근 무림인들이 진가장으로 몰려갔다고 하더이다. 저희 같은 양민들이야 무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니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까. 미리 조심하자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
“나름 의미 있는 소식이었습니다.”
호충은 왕 씨라는 마교도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진휘평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마교와 관계가 없을 수 있겠다. 같은 노선을 탄 사람이 아니야.’
“제가 요즘 차에 관심이 많아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즐겨 드시는 차가 있습니까? 이제 막 시작한 참이라 무슨 차가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차가 좋아서 먹기보다 그저 그 시간을 즐기면 그만입니다.”
차를 마시는 순간에는 자신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차의 종류보다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어휴. 진 형의 다도가 그리 깊은 줄이야···.”
“허허허. 그 정도는 아니오. 나는 철관음과 용정을 주로 즐긴다오.”
‘가장 비싼 차를 즐기며 마신다?’
호충은 상대가 고관대작이거나 상당한 부를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마교도를 통해 상당한 부를 쌓았다는 예측은 지웠다.
‘고관대작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관직에 앉아 있는 사람치고는 거침이 없구나.’
관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몸가짐을 조심하고 상대를 대함에 있어 상급자를 대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했다. 하지만 눈앞의 중년인은 모두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황제는 분명 아닐 것인데···.’
호충은 황제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위치를 떠올렸다.
“!”
‘황제의 인척. 진 씨!’
황제도 진 씨였으니, 눈앞의 인물도 황제와 핏줄이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 황태자도 결국 이 자와 핏줄이 닿아 있기에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좋은 말씀 참고하겠습니다. 조만간 차 무역을 해볼까 생각중이라 고견을 여쭈었습니다.”
“차 무역이라···. 부디 성공하길 바라겠소.”
“화적들만 없으면 무역이 더 쉬울 것인데, 산마다 산적들이 즐비하고 뱃길에 수적이 가득하니 실로 걱정만 많습니다.”
“···산적과 수적?”
진휘평은 산적과 수적이라는 말에 관심을 주었다.
‘···확실하군. 화적은 백성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지.’
일부러 산적과 수적을 입에 올린 호충이다. 만약 황실의 인물이라면 백성들의 고뇌를 지나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해보시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요. 산적들이 횡행해도 관부에선 그리 관여치 않는답니다. 수적들도 마찬가지지요.”
“분명 토벌대가 있을 것이오. 어찌 관에서 백성의 삶을 좀먹는 이들을 그대로 두겠소.”
“관부에서 토벌대를 운용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토벌대가 어찌 움직이는지는 산적과 수적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일전에 들어보니···. 산적과 수적들이 관부와 결탁하고 있었다 하더이다.”
“!!”
“토벌대가 온다는 소식을 관부를 통해 먼저 듣는 게지요. 하지만 관부의 토벌대는 산적이나 수적들을 잡아 성과를 냈다고 자랑합니다. 그 성과가 무슨 성과일 것 같습니까? 바로 선적패와 수적패에서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놈들을 정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결과입니다.”
“어, 어찌 그런 일이···.”
마교도는 호충의 말이 이어질수록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진휘평이 듣기를 원한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소식이었습니다. 왜 중원에 산적과 수적이 사라지지 않는지 알 수 있었소.”
“차 무역을 준비하며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니 크게 관심을 두진 마십시오. 왕 형도 상인이시니 아셨을 것이 아닙니까.”
“하하. 그렇지요.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일이지요.”
“혹여 제 입에서 이런 말이 나갔다는 것은 전하지 말아주십시오. 녀석들이 괘씸히 여기고 찾아오면 저는 죽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
진휘평은 아찔한 심정이었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산적, 수적과 결탁하고 백성들을 위험에 놔둘 수 있는가!’
아무런 힘도 낼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심정을 복잡하게 했다.
“그만큼 관부가 썩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들었습니다.”
“?”
마교도는 이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무엇이오?”
진휘평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에 되물었다. 자신이 아니라도 해결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바로 무림입니다.”
“무림?”
“무림이 원인이란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황궁에서 국법으로 제한하는 무림의 상승 절학이 이유라고 하지요.”
“!”
마 장로는 정곡을 찌르는 호충의 말에 크게 감복하고 있었다.
‘고작 상인이 여기까지 생각했단 말인가.’
“무림의 상승 절학은 지금도 확실히 제한되고 있을 터인데···. 일부가 풀리기라도 하였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호충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드러난 무림의 방파는 국법을 두려워하여 상승 절학을 철저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법을 어기는 이들이 같겠습니까? 어차피 토벌대에 걸리면 목이 잘릴 놈들이 그런 법을 따를 이유가 없지요. 이들은 어쩌다가 입수한 상승 절학을 익히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당연히 무공은 높아지고 상대할 이가 마땅치 않게 되지요.”
“···그럴 수가.”
“하지만 이미 관부가 결탁하고 있으니 토벌도 쉽지 않습니다. 중원의 성을 오가는 표국이나 상인들은 산을 지나고 강을 지날 때마다 일정한 금액을 상납하고, 무지렁이들은 수시로 목숨을 잃습니다.”
“······실로 안일한 처사가 아닐 수 없소.”
“자. 여기에 이들을 제외한 무림에 상승 절학이 풀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도 문제일 것인데, 무림까지 상승 절학을 풀어버리면 나라는 난장판이 되지 않겠소?”
“중원 무림엔 영웅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웅행?”
“이는 무림에 출도 하는 첫걸음인 셈이지요. 각 무림 방파에서 무공을 연마한 이들은 세상에 나가 영웅의 풍모에 맞는 의로운 일을 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허허. 의(義)를 따르는 무림이라.”
“국법이 상승 절학을 제한하기 이전의 영웅행은 산채의 산적들을 토벌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일이었습니다. 수로채의 수적들도 벗어날 수 없었지요. 영웅행은 무림 초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림 방파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위해서라도 산적과 수적을 수시로 토벌합니다. 관부와 같은 결탁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들은 바로 의(義)를 숭상하는 무림인이기 때문입니다.”
“!!”
“바로 이 때문에 무림은 산적과 수적의 횡포를 두고 볼 수밖에 없음입니다. 국법은 무림 방파에 제한을 가하지만, 산적과 수적은 피해가는 요상한 상황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지요.”
“······.”
그제야 진휘평도 무림이 문제라는 말이 무엇인지 의미를 깨달았다.
‘중원인 스스로 해결해왔던 문제를 국법이 막아버렸어.’
상승 절학 규제 철폐는 마교에서도 바라는 일이었다.
지금 상승 무공이 전해지지 않은 무림에 규제의 철폐가 시행되면 마교천하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터였다.
“실로 지혜로운 말씀이오. 무림인도 아닐 진데 어찌 그리 현명한 말씀을 하신단 말이오.”
“상인이니 이런 일에 더욱 민감하지요.”
“실로 고견을 들었습니다.”
“별말씀을···.”
호충은 당장 무림의 규제 철폐가 시행되지 않더라도 좋았다.
‘하지만 실마리라도 생긴다면 좋을 일이지.’
화산파 이외에도 많은 무림 방파에 무공서를 팔아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무림의 상승 절학 규제가 철폐되면 무림은 곧장 예전의 성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마교의 문제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교는 절정 무사를 보유한 위험한 집단이었다.
‘마교는 방심하다가 하오문에 얻어맞을 것이고···.’
마교는 하오문을 모르지만 하오문은 마교를 알고 있었다. 무림의 힘이 융성해진 상태에서 마교를 드러내면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정리할 수 있을 터였다.
“내 얘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진 형의 얘기도 들어봅시다.”
“나는 별로 할 얘기가 없소.”
이십년 가까이 마교에 붙잡혀 있었기에 진정 할 말이 없었다.
“에이. 내가 이곳 서안을 어려서부터 꽉 잡고 있었소. 서안에서 내가 모르는 것은 거의 없다오.”
호충의 나이 십칠 세. 어려서부터 잡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그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 호충의 겉모습은 사십대에 가까웠다.
“아까 보니 누굴 찾는 모양이던데···. 찾는 이라도 있으면 말씀해보시오. 혹시 아오? 내가 아는 인물일지.”
“······.”
진휘평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이미 마 장로도 호충이 하는 말에 호감을 가진 덕에 말리지 않았다.
“그저 한 여인을 찾고 있었소. 이미 늦었을 것이나···. 그녀와 여기서 보기로 하였기에 와봤을 뿐이오.”
“허어. 인연이 닿지 않았구려. 실로 안타까운 일이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않소?”
“···그녀와 약조한 날짜에서 이미 십칠 년이 흘렀소.”
“······.”
호충은 십칠 년이라는 말에 문득 가슴이 아려옴을 느꼈다.
“나는 혼란한 와중에 부인과 떨어져야 했고···. 이곳 서안의 다루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하였지요.”
“십칠 년이라···. 그분의 방명은 어찌되오.”
“···초연. 북궁초연이라 하오.”
“!!”
호충은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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