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천(逆天)-유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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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휘평과 마 장로가 잡은 객잔은 멀지 않았다. 방에 도착해 진휘평과 마주한 마 장로는 여전히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진휘평을 왕야라고 부르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진 대협. 오늘 즐겁지 않았소?”
“···내가 모르던 세상이 어찌 흘러가는지 알았으나 기쁘지만은 않구려.”
황제가 된 형님이 나라를 평안히 다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산적한 문제가 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고달픈 법이다. 언제는 이러지 않았겠느냐. 너희 같은 황가의 식솔이 알 턱이 있을까.’
마 장로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오늘은 푹 쉬시오. 내일은 서안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니···.”
“알겠네. 나도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피곤한 참이네.”
진휘평의 처소는 곧 적막해졌고, 문밖에 지키는 인물을 둔 마 장로는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어차피 진휘평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에 무인 둘을 따돌리고 빠져나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밖에서 들어올 불청객을 생각해야 했다.
호충은 복면을 쓰고 창문에 거꾸로 매달려 안을 탐색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방비가 허술하구나.’
둘이 지키고 있으나, 호충에겐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곧 작은 창이 소리 없이 열렸고, 은형술을 극도로 펼친 호충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
침상에서 고른 숨을 내뱉는 인물을 지켜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 사람이 이 몸의 진실한 아비라···.’
호충의 손이 조용히 이불을 걷고 중년인의 아혈을 짚었다. 혹시 비명을 지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흔들어 깨웠다.
“!!”
그는 깨자마자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충은 얼른 자신이 가져온 것을 달빛에 비춰 보였다. 그것은 글이 적힌 책자였다.
[조용히 하시오. 당신과 대화를 위해 왔소. 당신의 아혈을 점했으나 이후 당신이 협조한다면 풀어드리겠소.]
책자를 한 장 더 넘기자 다른 글이 드러났다.
[당신이 마교도에게 붙잡힌 것 같아 마차 뒤를 쫓았소. 구함이 필요하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기에 쓰시오.]
호충이 먹과 붓을 건네자 그는 거침없이 책자에 글을 써 내려갔다.
[나는 진휘평. 십칠 년 전 마교에 붙잡혔고, 지금까지 감금되어 있었소.]
“······.”
예상대로 마교와 결탁한 것은 아니었다. 호충은 아비의 이름이 진휘평이라는 것과 마교에 붙잡혀 있음을 알았다. 십칠 년 전에 붙잡혔다면,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자신의 나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교도는 아닌 모양이군.’
[마교는 나를 통해 큰일을 행하려 하고 있소. 나는 마교의 뜻에 반하고 있기에 감금된 것이오.]
호충은 복면을 벗고 송재호의 얼굴을 보였다. 이번엔 진휘평이 놀랄 차례였다.
“!”
오늘 함께 차를 마시고 술을 즐긴 인물이라고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마차를 쫓아온 무림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직이라오.’
아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아니었다.
호충은 전음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붓을 들고 글을 적었다.
[오늘 나는 당신과 다루에 도착한 시점부터 함께 있는 인물이 마교의 마공을 익혔음을 알아보았소. 나는 무림의 인물이오.]
진휘평은 자신과 함께했던 마교의 인물이 누구인지 얼른 적었다.
[나와 함께 있던 이는 마교의 장로인 마화평이라는 인물이오. 나는 마교의 교주를 만나진 못했으나 그와 가까이 있었소.]
교주라는 글을 본 호충이 급하게 붓을 놀렸다.
[거기가 어디요?]
숨겨진 마교의 본부를 알아낸다면 앞으로 마교를 상대하는데 엄청난 이점이 될 수 있었다.
[나올 때는 안대를 했기에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오. 밖에 나온 것도 십칠 년 만에 처음이오.]
호충은 마교의 행사가 상당히 치밀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덕분에 지금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소. 그들이 숨겨둔 내 아들 또한 마찬가지요. 내 아내와 아들이 저들의 손에 붙잡혀 있소.]
호충은 진휘평의 손에 들려있던 붓을 빼앗아 내려놓고 전음으로 말했다.
아내와 아들이 붙잡혔다는 말에 놀랐기 때문이다.
[나 말고 아들이 또 있었소? 부인도 있었고?]
“?”
엉뚱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바라보는 진휘평에 호충이 얼굴을 문지르며 본래 얼굴을 드러냈다.
우드득. 드득.
진호충 본연의 얼굴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나이든 얼굴이 아닌 젊은 얼굴. 누가 봐도 진휘평과 닮았다고 할 만한 얼굴이었다.
[내가 북궁초연의 하나뿐인 아들. 진호충이오.]
“!!!”
진휘평은 호충의 바뀐 모습을 보자마자 뒷걸음질 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호충은 진휘평의 얼굴에 드러난 짙은 의심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천운이오. 아마도 저승에 가신 어머니께서 우리를 만나게 해준 모양이오. 어머니의 한이 이렇게 깊었나 보오.]
“!”
뒷걸음질 치던 진휘평의 몸이 얼음이 된 듯이 멈춰버렸다. 자신의 연인이 죽었다는 말 때문이다.
[어머니는 십이 년 전에 돌아가셨소.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오. 이후 나는 무공을 익혀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고, 얼굴을 다른 이의 모습을 바꿀 수 있었소.]
“······.”
[다시 묻겠소. 나 말고 아들이 또 있소? 아니면 마교가 어머니와 나를 숨겼다고 생각한 것이오?]
“······.”
진휘평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황망한 표정을 한 진휘평은 호충의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솔직히 오늘 처음 본 당신에게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도 않소. 그저 당신을 통해 어머니 뱃속에서 내가 나왔을 뿐이오. 이게 무슨 대단한 의미라고···.]
스륵.
진휘평의 손이 호충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울기는. 아들 앞에서 울지 마시오.]
진휘평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혈이 막혀 있어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통곡을 할 기세였다.
[앉으시오. 할 말이 많을 터이니···.]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진휘평은 호충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비가 아들을 볼 때는 이런 눈빛이구나.’
진원우에게는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진휘평의 눈은 깊은 정으로 가득했고 아들을 기억에 담으려 눈을 떼지도 않았다.
호충은 부담스러운 눈이라 아까 마교도와 있을 때 전하지 못한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이 황가의 인물이라 추측하고 있소만. 사실이오?]
“!”
진휘평은 얼른 붓을 들었다.
[어찌 알았느냐!]
[···나와 닮은 녀석을 본 적이 있다 하지 않았소. 그는 황가의 인물이었기에 당신도 황가의 인물이라 생각했소. 아까는 마교인이 곁에 있어 말하지 않았소.]
[황가? 황가의 인물을 어디서 보았는가!]
호충은 글을 보고 전음으로 답했다.
[황실의 인물이니 나와 닮을 수도 있는 법이지 않소?]
“!!”
호충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황제의 아들인 태자의 신분이었소.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했소. 태자는 태자비로 예정된 여인과 강산을 돌아보고 있더군.]
“!!”
진휘평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현 황제는 내 형님이 되나, 나와 어미가 다르다!]
“······.”
‘젠장. 황제의 동생이었어? 그럼 왕야?’
호충은 자신의 아비가 생각보다 더 지고한 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전 황후가 서거하고 새로이 황후에 오르신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황실에 그와 같은 얼굴은 있을 수 없다! 형님은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타고나셨단 말이다! 그런데 어찌 태자가 나와 닮을 수 있겠는가.]
“······.”
호충은 혼란했다.
‘그럼 어째서 그 녀석이 나와 닮았지?’
[조그만 의심이 들긴 했었소. 그의 얼굴이 나와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이오.]
호충은 의아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더 많은 정보가 있어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마교의 붙잡혀 있다는 당신의 아들은 뭐요? 이후에 재가하였소?]
진휘평은 자신이 겪어온 일을 줄줄 적어 내렸다.
[처음 마교는 호의로 나를 대했고, 황궁의 형님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초연과 헤어진 것도 형님의 마수를 피해 도주하느라 그리된 것이지. 마교는 황궁의 금의위에 쫓기는 나를 구해주었다. 이후 나는 마교에 숨어 지내며 마교에서 주선한 여인과 혼인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초연과 참 많이 닮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아내와 아들을 떼어놓았고, 그 이후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와 닮은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이라 나와 더 닮았던 모양이군.’
책자 가득히 쓰인 글을 보고도 호충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세상에 많고 많은 비극 중 하나일 뿐이었다. 사람 목숨을 개똥으로 여기는 중원엔 이보다 더한 비극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도주 중에 아내를 잃었지만, 아내와 본인이 둘 다 살아 있었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오히려 좋은 결말이 아닌가. 물론 그로 인해 아비와 어미가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지만, 자신은 과거의 호충과 다른 인물이었다.
‘시간도 오래 지났고···.’
호충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전음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그 아이가 몇 살이나 됐겠소.]
[열다섯.]
[그럼 대충 그 녀석과 나이가 같군. 황태자 말이오.]
“!”
호충은 진양의로 마교의 수작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로 단련된 호충에겐 너무 쉬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마교에서 황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낸 모양이오. 어렸을 때 황제의 아들과 바꿔치기 했다면 용모가 크게 다르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렇다면 황실의 내부에도 마교와 결탁한 인물이 상당하겠군. 당신이 마교의 주선으로 맞이한 둘째 부인도 마찬가지요. 아마도 마교도 중에 하나였겠지.]
호충에겐 아무것도 아닌 추측이었지만, 진휘평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내 배다른 동생은 잘 살고 있다니 내버려 둡시다. 가만 두면 다음 대 황제가 되지 않겠소.]
무려 황제의 아들인 황태자 신분이다. 따로 관여할 필요도 없지만, 관여하기도 쉽지 않았다.
문제는 마교에 붙잡힌 진휘평이었다.
[그나저나 어찌하시겠소? 지금 당신을 빼 드리오리까?]
“······.”
마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일을 마치 뒷간에 가듯이 편히 말하고 있었다.
[내 나이가 올해 열일곱이나 내 무위는 마교의 장로에 뒤지지 않소. 지금 당장이라도 마화평이라는 놈의 목을 베어 이 탁자에 올려놓을 수 있소.]
“······.”
호충은 자신의 무위를 보여주기 위해 진휘평이 내려놓은 붓을 허공섭물의 기예로 띄워 올렸다. 이를 보고 가부를 쉽게 결정하라는 뜻이었지만, 진휘평은 허공에 떠오른 붓을 들어 다른 글을 적었다.
[마교가 나를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일은 바로 역천(逆天)이었다.]
“······.”
‘황제의 동생을 빼돌렸다면 당연히 그런 각오를 하고 있었을 터.’
[뭐. 황제의 동생을 감금하고 그 자식을 태자로 보냈으니···. 황궁의 전복까지는 생각했겠지요. 마교가 이유 없이 당신을 빼돌렸겠소.]
“······.”
역모라는 말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아들이 놀라웠지만, 계속 적어 내려갔다.
[만약 나의 둘째 아들을 태자와 바꿔치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더욱 마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아니라도 마교는 새로운 황제를 얻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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