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232)

산서(山西) 신강(新絳)

***

진휘평은 근래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마차가 멈추면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이었다.

마화평은 그런 진휘평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찾는 거라도 있으시오?”

진휘평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내가 서안을 보고 싶다고 하긴 하였으나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혹시라도 다른 성읍에 도착했나 싶어 내려 보면 매번 아무것도 없으니 하는 말이네! 서안이 아닌 다른 곳이 결국은 마교의 전각이었는가?”

“사람 구경 좀 했다고 벌써 그리운 게요? 그러게 우리 신교의 대계에 동참한다는 말 한마디면 될 것을···.”

진휘평은 아직 자신이 황제가 될 것을 결정했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는 의심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서안에서 내 생각이 많았네. 도착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답해주겠네.”

“!!”

“뭘 그리 놀라는가. 백성들의 삶이 이토록 피폐함을 알았는데, 어찌 내 생각만 고집할 수 있겠나.”

“아아. 역시 교주님께는 깊은 뜻이 있으셨습니다.”

진휘평은 이번 자신의 외유가 마화평이 아닌 교주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말했다.

“생각을 정리한다 하였네. 아직 확실히 결정한 것은 아니야.”

“이미 왕야께서는 마음이 기울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이제 와서 존칭은 무슨···. 평소대로 하게.”

“하하하. 어서 답을 주세요. 왕야. 이 마화평이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됐네. 다음에도 성읍에도 들르지 않을 거라면 내 대답은 없는 줄 아시게.”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내일 바로 다음 성읍으로 가지요. 하하하.”

마화평이 크게 웃으며 다른 마교도에게 내일의 목적지를 지시하러 간 사이 진휘평은 마차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호충아. 너는 어디 쯤 오고 있는 것이냐.’

***

호충은 다음 날에야 성읍 방향으로 트는 마차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따르지 못했겠구나.’

보통 무인은 견디기 어려운 강행군이었다. 그 와중에 가끔 뒤로 쳐지는 마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수시로 은형술까지 펼쳐야 했다. 뒤로 쳐지는 마인들은 힘에 부쳐서 낙오한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뒤를 따르는 누군가가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일부러 남겨둔 마인이다.

호충은 이들이 다시 일행에 복귀할 때까지 계속 내공을 소모하며 홀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의심도 병이야 새끼들아.’

그런 의심 속에서도 꿋꿋하게 마교를 추적하는 호충이야말로 대단했다. 가끔 마교의 중추인 마화평이 직접 뒤에 남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호충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돌아가곤 했었다.

‘나도 좀 씻자!’

며칠째 추적을 이어왔기에 씻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산서(山西) 신강(新絳)으로 접어들자 마교의 마인들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때 마화평의 전음이 들려왔다.

[급하게 성읍을 찾느라 이곳으로 왔으나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인들을 이끄는 인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마인들이 들뜨지 않도록 조심시켰다.

[잠시 다녀올 것이니 각별히 감시하고 있어라.]

***

호충은 마차가 신강에 올 것을 알고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교의 마차가 신강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웃지 못했다.

‘썅! 여긴 마교도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이냐!!’

지금도 눈을 돌리면 마공을 익힌 놈들이 우르르 눈에 들어온다. 검은 안개 같은 기운이 눈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잠룡진을 극성으로 익힌 마교의 절정급 마인이 시시 때때로 자신의 앞을 지나쳐갔다.

‘오는데 이 주나 걸렸다며!’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마교가 산서(山西)에 자리를 잡았을 거라는 예측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양과 홍동에선 이렇게 많은 마인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여기가 녀석들의 중심지일 가능성이 높아.’

마침 마교의 장로라는 놈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 보였다.

‘녀석이 자리를 비운 틈에 말을 전해야 해.’

아버지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고 알려야 했다.

호충은 마차가 객잔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슬쩍 곁을 지나가며 전음을 날렸다.

[아버지. 아들 여기 있습니다. 마음 놓으세요.]

마차에서 내려 객잔으로 들어가던 진휘평은 전음이 들려오자 걸음을 멈칫했다.

‘···저렇게 어리숙해서야 어디 같이 일 하겠어?’

호충은 한숨을 포옥 내쉬며 다시 전음을 날렸다.

[아들을 마교에 팔아넘길 생각입니까? 여긴 마교도가 잔뜩 있습니다. 표시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번엔 아까와 달랐다.

진휘평은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마교도에게 물었다.

“여긴 사람이 많아서 좋군. 그런데 매번 보이던 인물이 보이질 않아. 그는 어디 있지?”

“상인께선 잠시 중요한 볼일이 있으셔서 출타하셨습니다. 잠시 후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알겠네. 돌아오면 일러주게.”

[들어가 있으세요. 나는 마화평을 따라가 봐야겠습니다.]

호충은 전음만 남기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마화평이 걸어간 방향이었다.

마화평을 따르던 호충은 멀리 보이는 높다란 전각을 두고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이거···. 진짜 마교 소굴인데?’

주변에 보이는 상인들과 길을 오가는 모든 인물의 눈에서 마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일류급 마인이었고, 절정급 마인들도 상당했다.

‘마화평은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지만, 모두의 눈이 그를 확인했어.’

마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을 하는 척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 아닌 외부의 인물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호충도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그들의 눈빛을 몇 번이고 받아야 했다.

‘이곳의 마교의 입구야. ······돌아간다.’

호충은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 걸었고,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골목으로 숨어들어가 은형술을 펼쳤다.

‘돌아서 들어간다!’

후퇴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면 마교의 본거지를 언제 확인하겠는가.

호충의 신형이 어두운 골목의 그림자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

따그닥. 따그닥.

“이랴! 속도를 올려라!”

“예! 공자님!”

수많은 인마가 관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복색은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좌측은 청색 무복에 날렵한 검을 패용하고 있었고, 우측은 고동색 무복에 두터운 도를 패용하고 있었다.

“뒤쳐지지 마라! 모용 세가에 밀리면 너희도 끝장인 줄 알아라!”

“예! 공자님!”

호현과 호중이 외가인 모용 세가와 서문 세가의 무인들을 만나 자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현은 모용 세가 무인들 가장 앞에서 말을 달리다가 옆에 다가온 호중을 크게 불렀다.

“호중!”

“···예. 형님.”

“잠시 멈춰야겠다. 이대로 무작정 들어간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일거에 몰아쳐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호성이 녀석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진가장에 모인 정무맹과 협의맹 인사들을 어찌할 생각이냐! 이들이 강압적으로 가주를 끌어내리는 꼴을 보게 만들 참이냐!”

“······.”

호중은 무림에서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잊고 있었다. 무림의 인사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면 그날로 무림에서의 활동을 끝이었다.

“···모두 멈춰라! 정비하고 다시 출발할 것이다.!”

“모두 정지! 말을 쉬게 하라!”

자장을 코앞에 둔 관도 근처에 작은 천막이 세워졌다.

호현과 호중 곁에는 각자의 외가에서 도착한 무인들의 수장이 함께했다.

호현은 모용 세가의 승천대를 이끄는 인물에게 말했다.

“승천 대주님. 지금 진가장의 상황을 다시 말해주십시오.”

“예. 공자님. 저희가 지금까지 들어 아는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출발하기 전까지 진가장엔 정무맹과 협의맹의 인사들이 상주하여 마공에 당한 이들의 상세를 확인하고 마교의 도주 흔적을 찾기 위해 추적대를 구성하는 중이었습니다.”

호중도 서문 세가의 충호 대주에게 물었다.

“충호 대주. 이 외에 추가로 들은 바가 있소?”

“예. 공자님. 진가장에 도움을 준 신비인에 대한 파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진후라 자신을 소개한 고수는 절정급 고수가 분명하나,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호중은 모용 세가보다 더 나은 정보력을 갖춘 서문 세가에 어깨를 추켜세웠다.

“하여 두 맹은 이 자도 마교의 첩자가 아닐지 의심하여···.”

하지만 이어진 충호 대주의 말에 똥 씹은 얼굴로 변해 일갈했다.

“그만! 파진후 대협은 형님과 나를 구하기 위해 자장에서 달려온 분이다! 어찌 그분을 모함할 수 있단 말인가!”

“파 대협은 실로 의기가 넘치는 무림인이었소! 파 대협을 의심한다면 내가 나서서 증명하리다.”

충호 대주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읍했고 호현과 호중이 다시 대면했다.

“형님은 어찌하실 생각이오.”

“너는 어떠냐하냐. 되도록 네 생각에 따라줄 생각이다.”

호중은 한발 빼는 호현에게 의아한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형님 말씀대로 두 맹 앞에서 강압적으로 가주를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착오로 오른 가주자리라지만, 가주는 가주입니다. 스스로 내려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옳다. 스스로 내려와 가주자리를 바치는 것이 최선이지.”

누구에게 바칠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나, 지금은 가주 자리를 공석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녀석이 가주자리를 쉽게 내려놓지 않을 터이니, 우리는 원로원으로 가야할 것입니다.”

“원로원?”

“관에서 원로원의 출입을 금하고 있으나, 서찰 정도는 오갈 수 있지요. 형님과 제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분명 가주 이양을 취소하고 다시 우리에게···.”

호현은 호중의 말에 승천 대주를 찾았다.

“승천 대주님. 전에 내게 말했던 것을 다시 일러주십시오.”

“예. 공자님. 지금 진가장엔 새로 들인 무사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특히 원로원 근처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습니다. 무림의 인사들은 어차피 근처에도 가지 않기에 불필요한 경계라고 여기고 있었으나, 진가장 내부의 사정을 아는 자들은 이유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

호현은 못마땅한 얼굴로 호중에게 말했다.

“아무리 호성이 녀석이 멍청해도 그것을 몰랐겠느냐. 우리가 살아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먼저 원로원에 계실 아버지께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겠느냐.”

“······.”

‘제기랄. 서문 세가는 왜 이걸 파악하지 못한 거야!’

입을 꾹 닫아버린 호중을 대신해 호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 뜻대로 하는 편이 좋겠다.”

“···말씀하십시오. 형님.”

“우리는 무림의 인사들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명분을 가져와야 가주자리도 가져올 수 있음이다.”

“모용 세가와 서문 세가는 이미 확보했지만, 나머지는 어쩐단 말입니까?”

“호성이 녀석은 중부전장의 힘이 크다고 여길 것이나, 무림에선 무림 방파가 우선이지. 내가 회합에 다녀온 경험이 있으니, 무림 방파의 수뇌부를 만나겠다. 이들을 통해 정당하게 가주 자리를 찾아올 것이다.”

“···반절은 내게 맡겨 주십시오. 혼자서 다 만나시는 건 불공평합니다.”

아직 가주자리가 공석이 되지 않았음에도 둘의 눈은 서로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좋다. 그렇다면 네가 정무맹을 맡을지 협의맹을 맡을지 선택해라.”

호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이 안면을 익힌 이들이었고, 자신은 진가장의 장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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