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의 망나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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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렇다면 네가 정무맹을 맡을지 협의맹을 맡을지 선택해라.”
호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이 안면을 익힌 이들이었고, 자신은 진가장의 장자였다.
“제가 협의맹을 맞지요.”
“좋다. 그럼 내가 정무맹을 맡겠다.”
이후 호현은 호중이 해야 할 일들을 일러주고 자신이 할 일도 설명했다.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나 우리의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 전까지 형님과 날을 세우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호성이 녀석이 우리 뜻에 따라줄지 모르겠군. 차라리 일찍 정리하는 편이 나을 터인데···.”
호현은 여전히 얕은 생각으로 가득한 호중을 보고 주변에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둘이서 할 얘기가 있습니다.”
모용 가의 승천 대주는 포권한 다음 바로 자리를 비웠고, 충호 대주는 호중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역시 천막 밖으로 물러갔다. 호현은 호중을 달래듯이 말했다.
“너도 이제 슬슬 결론을 예상할 수 있지 않느냐. 진가장은 내가 필요하다.”
“나도 잘 할 수 있소.”
‘미련을 버려라 호중아. 그래야 네가 산다.’
호현은 경쟁의 끝이 어찌될지 뻔히 그려졌다. 형제의 피를 봐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네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어리석은 것.’
호현은 형제의 피를 보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어설프게 처리할 생각도 없었다. 시작하면 단숨에 목줄을 끊고 후환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 네 계획을 말해보아라.”
“갑자기 무슨 소리요? 계획은 이미 형님이 다 세우지 않았소.”
“이후의 일을 말함이다. 만약 진가장에서 셋째를 쫓아내면 중원전장에 빌린 막대한 자금은 다 어찌할 것이냐? 또한 난항을 겪고 있는 산서 진출은 어찌 해결할 계획이냐?”
“그, 그건······.”
당장 가주자리만 생각했기에 그 이후의 일은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직 먼 일 같으냐? 너와 나 둘 중에 하나가 가주자리에 앉자마자 직면해야 할 문제다.”
“우선 서문 세가에 자금을 융통하여 중부전장에 상환하고 무사들을 증원해 파견하면···.”
“서문 세가에 진가장을 가져다바칠 생각이냐? 네 외가를 믿을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럼 모용 세가는 믿을 수 있습니까?”
“난 모용 가를 믿지 않는다. 오직 나만 믿는다.”
“······.”
“게다가 모용 가는 곧 황실과 혼인으로 맺어질 예정이다. 무림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지겠지.”
“!!”
“이미 아버지와 전부터 얘기한 일이다. 진가장은 황실의 허락을 받아 무림에서 유일하게 절정 무공을 익히는 무림 방파로 성장할 계획이었다. 마교가 침입하는 바람에 일이 어그러졌으나, 달라질 것은 없지.”
“······.”
‘대체 형님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이오!’
호중은 힘이 탁 풀려버렸다.
“하아.”
“또한 화산에 직계 자손을 보내 무공을 사사받으며 서로의 무공을 공유할 생각이었다. 이미 호충이 녀석이 화산에 가 있지.”
“화산?”
호중은 매화라고 적혀있던 종이를 기억해냈다.
“···그 일은 대체 무엇을 계획하고 시작한 것이오?”
“진가장이 황실에 절정 무공을 허락받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진가장에 절정 무공이 있다는 뜻. 이미 아버지가 절정에 이르러 원로원에 가셨다는 얘기는 들었을 것이나, 너는 아버지가 어찌하여 절정에 이르렀는지 모르지 않느냐?”
“호, 혹시···.”
“그래. 우리도 절정 무공을 갖고 있다. 그것도 화산의 매화검법. 그래서 화산에 녀석을 보낸 것이다.”
호중도 그제야 호충이 화산으로 간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 화산과 무공을 교류하며 새롭게 상승 검법을 창안했다고···.”
“그래. 그렇게 일을 진행할 계획이지.”
“이런 일을 나도 모르게 처리한단 말입니까!”
“아는 이가 없을수록 비밀을 지키기 쉬우니까. 아버지께서 절대로 너희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호중은 자신이 어찌 해보기도 전에 결론이 내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형님을 소가주로 내정하고 있었군.”
“···그건 아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너와 나를 경계했으니까.”
호중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왜 경계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너무 뛰어나 보였나보지.”
“허!”
“사실이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가주위에 올라 진가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절정에 올랐음에도 가주직을 놓을 수가 없었어. 아버지는 너무 젊었고 하고 싶은 일은 많았으니까.”
“그렇다고 아들들을 경계했단 말이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매화검법을 입수했음에도 숨기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면 안 되는 일이었어.”
사실 아버지가 얼른 절정에 돌입하게 만들어 원로원으로 보낼 생각이었지만, 일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묘용 세가에서 황가와 혼인의 연을 맺게 될 줄 어찌 짐작했을까. 그로 인해 상승 무공의 허락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되었지만, 덕분에 아버지는 욕심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래도 훗날엔 내가 가주직을 물려받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마교가 진가장에 침입할 거라는 예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고기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것이다.
“······.”
“아버지는 상승 무공을 익혀 높은 무위를 쌓으니 세상이 눈 아래로 보였을 것이다. 무림이 쉬워보였던 게지.”
“나만 같아도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경계하는 건 어찌 알았소?”
“너와 내가 장성해 공을 쌓을 때마다 총관과 부총관은 아버지와 따로 면담을 이어갔다. 그들은 우리 편이 아니었어.”
호현도 총관과 부총관을 떼어놓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던 일이다. 분양에서 홀로 무관을 설립하며 깊이 생각한 결과였다.
“!!”
“몰랐느냐? 너도 아는 줄 알았다만.”
“그, 그럼···.”
자신이 호충을 죽이려 했던 것도 알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너와 내가 얼마나 날을 세우는지도 다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러 싸움을 붙였겠지. 그러는 동안엔 가주 자리를 노리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가주 자리를 어떻게 노린단···.”
‘아버지가 일찍 절정에 올랐다고 했으니, 그 사실이 관에 알려졌다는 소문만 돌아도 아버지는 원로원으로 들어갔을 것이야.’
호중도 머리가 있었다. 호현이 왜 절정 무공을 아버지에게 보였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의뭉스러운 놈. 그걸 다 알고도 아버지께 줘놓고 이제 와서 후회야?’
“······나는 몰라도 형님은 아버지를 원로원으로 보낼 수 있었겠지요.”
“그래. 나는 가능했지. 하지만 너와 셋째가 있었다. 우리 셋의 처가가 진가장의 중추야. 이 기둥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진가장이 위태롭다.”
호현은 호중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가주직을 물려받아도 자신이 차지한 진가장을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그래서 셋째가 가주직을 내려놔도 진가장에 붙여놔야 한다는 말이구려.”
“···그래. 자금을 맡고 있는 녀석이 진가장에서 내쳐지면 지금까지 산서에 확장한 무관을 모두 헐값에 팔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형님도 대단하시오. 어찌 내게 여기까지 설명하시는 거요?”
모용 세가가 황실과 혼인으로 맺어진 다는 것이나 절정 무공에 대한 일까지 모두가 회심의 일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모르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 셋이 전부 있어야 진가장이 무사할 수 있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 머리가 커도 지켜만 보신 게지.”
“돌고 돌아 결국은 가주직이 걸립니다.”
“이번 위기를 어찌 넘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셋째에게 가주직을 내려놓게 만들고, 우리 셋이 진가장을 이끌어야 한다.”
호현은 단 하나의 가주가 아니라 셋이 공동으로 진가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계획을 말해준 참이었다.
“일원화된 명령체계가 없이 진가장이 굴러갈 수 있겠습니까?”
“세 형제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진가장을 이끈다면 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아버지가 계셨을 때도 서로를 경계하던 이들이 어찌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겠는가.
“······.”
“하지만 이러한 명분이 아니면 셋째를 끌어내릴 방법도 없다. 우리 둘 중에 하나가 가주를 맡겠다고 한다면 어찌 무림의 인사들이 우리를 지지하겠느냐.”
“···하나 같이 맞는 말씀이라 더욱 듣기 싫어지오.”
호현은 호중의 뜻이 이미 자신과 같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훗. 우리의 경쟁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 할 것이다.”
“······그 전에 계산은 확실하게 합시다.”
“계산?”
호중은 손을 척 내밀었다.
“내 놓으세요.”
“뭘 말이냐?”
“매화검법.”
“!”
“나도 그걸 익혀야 형님과 동등해지지 않겠소. 아버지가 익히고 있었다면 분명 비급을 가져온 형님께도 익히라 하였겠지요. 아무리 아버지 면상이 두꺼워도 비급을 받았는데, 입을 씻기야 하셨겠소.”
“······.”
호현은 호중이 여기까지 요구할 줄은 몰랐다.
‘이 녀석의 자질이 범상치 않은데···.’
호중은 자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호현이 보는 호중은 아니었다. 형제들에게 내린 진강십이검만 해도 호중이 가장 빠르게 익혔다. 호현이 조금 나았던 것은 조금 더 일찍 아버지께 진강십이검을 사사받아 익혔기 때문이었다.
“고민하지 말고 내놓으세요. 어차피 늦게 익히는 것이니 따라잡힐 일이 있겠소.”
“···진가장에 돌아가면 주도록 하지. 비급은 함부로 외부로 나갈 수 없기에 진가장에 모셔 놨다.”
“하지만 잊지 마시오. 오늘은 형님의 뜻에 따르지만, 나는 셋째와 다르오.”
“우리 형제가 셋이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 넷째도 잊지 마라.”
“큭. 웃으라고 하는 소리요?”
“당연하지.”
“푸하하. 그거 재미있는 농이었소.”
이들이 손에 넣었다 생각하는 매화검법은 이미 화산에 돌아왔다. 아무리 무공을 익혀도 내세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매화검법이 아니라 진강이십사검이라고 불러라. 이것을 제대로 익히면 앞으로 산서진출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들이 진출하려는 산서는 애초에 마교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큭. 혹시 넷째도 알고 있소?”
“그래. 녀석에게 절정 무공을 내릴 수 있다고 얘기했더니 쉽게 넘어오더구나.”
또한 이들이 무시하는 넷째 진호충은 신화경에 오른 무인이 되었고, 황가의 자손 임이 확실하지 않던가.
“하하하. 아이고. 배야. 나를 웃겨죽일 작정이오? 하하하.”
호현과 호중이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았다.
“농은 여기까지다. 얼른 무사들을 정비하자. 진가장에 들어가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셋째가 움직이기 전에 빨리 무림의 인사들과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알았소. 서문 세가의 위세를 보여드리지.”
“큭. 그럼 나는 모용 세가의 힘을 보인다고 해야 하느냐?”
“당연하지 않소? 셋째와 작은 어미의 기세를 꺾으려면 안팎으로 힘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어머님을 뵙는 일이다. 자식 걱정에 잠도 못 주무셨겠지.”
“······.”
‘하아. 형님은 도저히 못 당하겠다.’
자신은 오로지 가주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현의 시야는 넓고도 넓었다.
‘어째서 거기까지 생각하신단 말이오.’
그리고 심각한 대화 끝에 농을 던지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용인술도 대단했다.
‘나는 매번 형님한테 지는 구려.’
하지만 말은 곱게 나가지 않았다. 인정해버리면 앞으로 계속 인정하게 될 터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소. 별 걸 다 걱정하시오.”
“그럼 됐다. 무사들도 잠시 쉬었을 터. 나는 무사들을 확인해보겠다.”
호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호중도 얼른 따라나섰다.
“혼자 가기요? 같이 갑시다!”
두 형제의 무사들은 잠시 쉬었다가 곧장 자장으로 진입해 진가장을 향해 달렸다.
“이랴!”
.
.
.
진가장은 돌아온 두 아들로 인해 소란해졌다.
“아들!!!”
“호중아!”
두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두 어미가 뛰쳐나와 반겼다.
“어머니! 소자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쁠 것인가. 눈물 바람으로 아들을 맞이하는 어미들은 아들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아들! 우리 아들!”
“아가. 호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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