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232)

녀석들의 소굴

***

호현과 호중이 어머니와 해후하는 동안 셋째 호성도 형님들의 귀환 소식을 들었다.

“······.”

호성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

호성 곁에 있던 어미 방자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가주가 된 것으로 끝이라 여겼거늘 가장 큰 걸림돌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어머니. 두 형님이 돌아오다니요! 분명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호성은 몰랐지만, 방자연은 들리는 소문을 수집하고 또 움직이고 있었다.

“가주. 살아있다는 소문이 들리긴 했어요. 혹시나 하고 원로원으로 가는 길을 우리 무사들로 채워놨지요.”

그뿐이 아니었다. 둘이 오는 길목에 살수들까지 잠복시켜 두었지만, 워낙에 많은 인마가 함께 들이닥치는 통에 살행을 시도하지도 못했다.

‘살수들이 제대로 처리했다면 골치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왜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단 말입니까!”

중부전장에서 돈으로 산 무사들의 꼭대기에 방자연이 있었기에 이들을 향한 명령은 방자연의 입에서 나왔다. 아들이 가주가 되었음에도 방자연은 모든 권한을 내어놓지 않고 자신이 붙들고 있었다.

“아드님. 지금 내게 따지는 겁니까?”

“······.”

방자연의 서슬 퍼런 눈빛에 호성은 목을 움츠려들었다. 진가장의 가주가 되었음에도 호성은 여전히 어미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원로원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모용 세가와 서문 세가에서 이번에 들어온 무인들을 고려하면 생각지 못한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진가장으로 들어온 이들의 숫자는 상당했다. 중부전장의 무사들은 오직 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들이었기에 그들과 같은 결속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만약 무력으로 상대하자면 쉽지 않을 터였다.

“두 세가의 무인들은 상관없지 않을지···. 이미 진가장엔 정무맹과 협의맹의 주요 인사들이 상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호현과 호중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내가 만약 그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 그럼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이대로 두고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가주가 되셨으면 생각을 좀 해보세요. 언제까지 어미가 진가장의 대소사를 맡아서 처리해야 합니까?”

“하지만 난···.”

진가장에 자신을 따르는 무사들은 한 줌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중부전장에서 산 무인들이라 어머니의 명령을 우선하고 있었다.

“기다려보세요! 이 어미가 녀석들의 움직임을 파악해볼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후에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 이미 아드님이 가주 자리를 차지했으니, 명분은 우리가 갖고 있어요.”

“···저는 어머니만 믿겠습니다.”

꺼림칙하지만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무사들을 증원해야겠습니다.”

“또 할아버지의 힘을 빌린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얘기다. 지금까지 진가장에 들어온 중부전장의 무사들이 상당한데 또 늘려봐야 자신이 가진 가주의 힘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럼 뾰족한 수라도 있습니까! 무력이라도 든든해야 아드님의 자리를 지킬 것 아닙니까!”

“아, 알겠습니다. 자꾸 뭐라 하지 마세요. 저도 잘해보자고 여쭙지 않겠습니까.”

힘이 없는 지금은 어머니께 반박도 한 마디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아드님은 중부전장 없이 아무것도 못 합니다. 괜히 가주랍시고 나서지 말고 내 말대로나 하세요.”

“······.”

‘내가 원한 진가장의 가주 자리는 이런 게 아니었어.’

호현과 호중이 나서기 전부터 방자연과 호성 사이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따로 형님들을 만나야겠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호성은 오늘에서야 어미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진가장에 혼란을 일으킨 호충은 마교의 본거지를 앞에 두고 있었다.

‘제기랄. 가자면 갈 수도 있겠지만···.’

거대한 전각 가까이 도착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썩을. 경비 무사들까지 촘촘하게 깔아두셨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담을 넘으려 했으나, 수시로 마인들이 주변을 돌고 있었다. 그저 주변을 배회하는 듯이 의뭉을 떨고 있지만,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를 서는 마인들이다.

“······.”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호충은 내공을 더욱 갈무리하며 뒤로 빠졌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 녀석들을 자극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마화평이 이 안에서 누굴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했지만, 당장은 마교의 소굴을 파악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 마교를 자극하면 경계가 삼엄해 질 가능성이 오 할, 본부를 옮길 가능성이 오 할이었다. 둘 다 호충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안에 있는 너! 지금은 되돌아가지만, 나중엔 나와 직접 마주하게 될 것이다!’

호충은 전각 높은 곳을 노려본 다음 들어온 길을 조심히 되짚어 나갔고, 곧 골목을 벗어나 아버지가 들어간 전각으로 향했다.

‘보는 눈이 많아도 너무 많다.’

창문으로 들어가려해도 객잔 밖에 오가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이들이 전부 마교도는 아니지만, 마공을 익히지 않은 마교도가 있다면 자신이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럼? 정문으로 들어가야지.’

지금 호충은 접객각주 현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서옵셔!”

호충은 여정이 힘들었다는 티를 잔뜩 내며 자리를 잡았다.

“아이구. 다리가 부서지겠네. 가서 백주와 오리구이를 내와라. 차부터 가져와. 먼지를 하도 마셔서 목이 쩍쩍 갈라질 지경이야.”

“예이. 곧 대령하겠습니다요.”

호충은 먼저 나온 싸구려 차를 호로록 들이키며 주변을 확인했다.

‘마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변인들과 마주하고 있어.’

마차를 호위하던 마인들은 본래 이곳에 상주하던 이들을 만나 편히 대화를 나눴다. 마치 오랜 이웃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인사를 나누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그들의 태도에서 보이는 익숙함은 확실했다.

‘역시 모두가 한통속이었던 거야.’

진짜 손님으로 보이는 이들을 몇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마교도라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한참 기다리자 술과 오리구이가 나왔고, 호충은 요리를 나르는 점소이에게 물었다.

“객잔에 묵어갈 방이 있느냐?”

“물론입지요. 빈 방이 있습니다요. 다만 값이 싼 방은 다 나간 터라···.”

호충은 비싼 방을 팔아먹고자 하는 점소이의 상술이 오히려 기꺼웠다. 자신이 원하는 방도 좋은 방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만 묵겠다. 먹고 올라갈 터이니 넓고 좋은 방으로 준비해다오.”

호충은 구리 동전 몇 개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고, 점소이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구리 동전을 품으로 가져가며 허리를 접었다.

“대인께 가장 좋은 방을 내드립지요. 깔끔하게 청소해두겠습니다.”

“너는 점소이로 대성하겠다. 하하하.”

여기라도 하오문 지부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저 점소이도 언젠가 하오문의 문도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호충은 이후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요리와 술에만 관심을 보였고, 무척 피곤하다는 듯이 객잔의 숙소로 올라갔다.

“어이구구. 삭신이야.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이나 다시 길을 나서야겠군.”

호충은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는 마인들 곁을 지나며 허리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방에 들어온 호충은 한 칸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버지의 방에 집중하며 창을 열었다.

“여기도 상당히 번화한 곳이구나. 사람들이 참 많아.”

창밖을 향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자, 반응이 있었다. 건너편 창이 열리며 진휘평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지. 아들 호충이 인사드립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진휘평은 전음을 들었음에도 호충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저 밖을 구경하는 것처럼 멀리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다.

[잘 하셨습니다. 마화평의 뒤를 쫓았으나,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마화평이 들어간 거대한 전각은 마인들이 물샐 틈 없이 방비하고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이곳이 마교의 본부로 보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다른 곳을 빙빙 돌아 이곳에 다시 돌아오실 것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각에 접근한 것이다. 깊이 들어가진 못했어도 마교의 전각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

진휘평은 잠시 놀란 기색이었지만, 금방 신색을 회복했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산서의 신강입니다. 마교의 소굴을 확인했으니, 훗날 마교에 대응할 때에 요긴하게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마교는 과거 두 번이나 황궁에 뒤통수를 맞았다. 호충은 마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거든 적어서 방에 남겨두십시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제가 찾겠습니다.]

“······.”

고개를 끄덕인 진휘평은 아쉬움을 감추며 창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진휘평이 사라졌지만, 호충은 조금 더 밖을 살폈다.

‘여긴 마교도 천지네.’

신강엔 일반 백성보다 마교도의 비율이 높았다. 등짐을 지고 가는 일꾼도, 건들거리며 걸어가는 동네 건달도 마교도였다.

‘장을 보러 나온 저 여인도 살갑게 마교도 상인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호충은 이들의 행동을 하나씩 자세히 살폈다. 물건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수시로 돌아다녔고, 곧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주고받는 돈에 차이가 있어.’

진짜 외부인의 경우 조금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었고, 마교도와 안면이 있는 이들은 조금 더 저렴한 값에 물건을 가져갔다. 덕분에 진짜 외부인과 마교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

호충은 이쪽을 올려다보는 몇 명을 인식하며 고개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거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말이야. 제발 비만 오지 말아라.”

호충은 구름을 살피는 듯이 하늘을 올려보다가 창을 닫았다.

‘호굴도 이런 호굴이 없네.’

외부인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놈들이었다. 자신들이 차지한 영역을 철통같이 지키며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네 놈들에게 들킬 내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녀석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지금은 휴식이 우선이었다.

호충은 그간 마차를 추적하며 쌓은 피로를 완벽하게 풀어내기 위해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을 떠올렸다. 경혼무흔의 심법을 사용해도 되겠으나, 경혼무흔은 무공을 더욱 원활히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피로에 절어 있는 지금은 환체강림천이 더욱 유용했다.

‘나는 하늘이자 우주일 것이니···.’

환체강림천의 구절을 떠올리며 몸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누가 이불을 덮고 잠에 빠진 것 같은 호충을 아무리 살펴도 심법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심법과 결을 달리하는 내가공부이기 때문이다. 호충이 괜히 환체강림천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

늦은 밤.

검은 옷으로 도배한 한 인영이 진가장의 모처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창을 열고 방에 발을 디뎠다. 침상에 누워있을 누군가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침상엔 젖혀진 이불만 반겨주고 있었다.

‘어디로 갔지?’

척.

그의 의문은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이 답해주고 있었다.

“!”

“···검이 목에 닿았음에도 동요가 없군. 넌 왜 이곳에 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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