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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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휘평은 교주가 이미 마화평에게 보고 받았음을 인정하는 말을 들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수도 없이 내게 청했던 일이다. 나는 이제야 마음을 먹었고, 대계의 첫걸음을 시작하겠다.”
교주는 진휘평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역천은 시작부터 끝까지 마교의 주도아래 진행되어야 했다.
“대계의 시작은 내가 정할 것이다. 진 왕야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야.”
“변방의 장군들을 직접 만나자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또한 유림의 거목들과 낙향한 대신들까지 만나자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는가. 교주는 그들이 나를 만나지 않고 서찰로 대계에 합류하리라 여기는가?”
“······.”
역천의 대가는 달콤할 것이나, 일이 실패하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황위에 올릴 진휘평을 만나지도 않고 역천의 무리에 들어올 대신은 없을 것이다.
‘어디 날뛰어 보아라. 그래봐야 그대는 마교의 손에 있을 것이니···.’
“···본격적이시군.”
“그대들의 내게 무례했던 과거는 잊을 것이나, 앞으로의 노고는 잊지 않을 것이다.”
마화평은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교주를 돌아봤다.
“교주님. 우선 시작은 좋지 않습니까.”
“아직 때가 아니나, 왕야의 말이 옳다. 미리부터 준비해 세를 규합하면 대계를 수월하게 성공할 것이다. 그럼 왕야는 어디부터 시작하겠는가?”
“남경(南京)을 지키는 장군과 여전히 황궁에서 형님 곁을 지키는 대신들이 첫 단추다. 먼저 이들을 휘하로 거둬야 변방의 장군들도 편히 마음먹을 수 있을 것이다.”
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무리 과거 힘을 과시했던 진휘평이라도 지금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며 세를 규합해야 했다.
“허나 아무리 세를 규합해도 명분 없이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백성들에게 황제가 바뀌어야할 명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그대들이 이미 생각해두었으리라 여기고 있다.”
“호오. 한 번 시작하니 거침없군.”
“교주는 답하라. 그대는 명분을 준비해두었는가?”
“왕야는 그 부분을 걱정할 필요가 없네. 앞으로 민초들은 새로운 황제가 등장하기를 기원하며 하늘을 향해 치성을 드릴 것이야.”
“함께 대계를 도모하자면 모든 것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상세히 고하라.”
“황제를 지지하는 대신들의 비위가 하나씩 밝혀질 것이다. 매관매직(賣官賣職)을 포함하여 과거시험을 조작한 일까지 밝혀지면 황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수족들을 잘라내겠지.”
저잣거리에서 들을 수 없었던 심각한 국정의 문제였다.
“!!”
“겨우 이런 일이 놀라운가? 전혀 몰랐는가? 그대의 형제는 사실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유능하지.”
“감히 나라에서 내린 관직을 사사로이 사고판단 말인가?! 또한 엄중한 과거시험에 조작이라니!”
“진즉에 알려줄 걸 그랬군.”
“하!”
“또한 황궁의 내밀한 일들이 민초들에게 흘러갈 것이네. 그 이상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라 입에 올리기 어렵군.”
“······.”
진휘평은 마교가 황궁에 상당한 수의 세작을 심어두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황궁만이 아니다. 대신들의 비위까지 수집하고 있었다면 그 정보력이 상당하다는 뜻.’
진휘평은 아들 호충에게 발을 빼라고 전하길 잘했다 여기며 입을 열었다.
“오래 준비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 옳지. 만약 기대에 어긋나면 어쩌나 걱정했다네.”
“크크. 이제 그대의 말이 끝났으니 이쪽 말도 들어봐야겠지?”
교주는 슬며시 자신의 기운을 드러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천마신교는 우리가 새로이 옹립한 황제에 의해 국교로 선언될 것이다.”
“······.”
“또한 관은 무림과 철저하게 선을 지키며 서로를 방관할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상승무공 규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그게 전부인가?”
“······.”
작은 반발이라도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기에 교주는 살짝 김이 빠졌다.
“나머지는 차차 일을 진행하며 조정하기로 하지.”
“대수롭지도 않은 일.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하겠네. 나라에서 신교를 국교로 삼았다고 해서 타 종교를 핍박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일세. 나라의 백성들은 저들의 종교를 자유로이 가질 수 있을 것이네.”
“그, 그게 무슨···.”
마화평이 나섰지만, 교주가 들어 올린 손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 부분은 신교가 노력해야 할 일. 받아들이지. 훗날 신교는 누구보다 많은 백성이 믿고 따르는 종교가 될 것이야.”
“자신만만하군. 어차피 종교는 종교일 뿐. 백성들을 속여 정신을 홀리고 세상을 어지럽히지만 않는다면 천마신교를 나라의 종교로 인정할 수 있네.”
천마신교가 혹세무민을 일삼는다면 내치겠다는 말이었지만, 이미 앞날의 일을 계획하고 있는 교주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당연한 일이다. 백성들이 내세를 걱정하지 않고 인세를 편히 살아갈 수 있으면 족하지.”
“그렇게 말하니 정말 한 종교의 지도자답군. 그대와 정말 잘 어울리는 자리야.”
진휘평의 뼈있는 말이다.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그 자리에 만족하라는 뜻이었다.
“······.”
“먼 길을 달려오느라 노곤하니 먼저 가보겠네. 나머지 상세한 일은 마 장로와 논의하기로 하지. 어차피 그대의 허락이 필요할 것이나, 매번 그대와 마주하는 것은 더욱 피곤할 것 같거든.”
“···잊지 말게. 왕야. 그대의 부인과 아들이 내 손에 있네.”
교주가 인질을 입에 올렸음에도 진휘평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차. 그대에게 당부한다는 것을 깜빡했군. 교주는 현명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야. 내 아들은 내 뒤를 이어 황제의 위를 물려받을 것이고 부인은 황후의 자리에 오를 것인 바. 예를 다하여 모셔야 할 것이네. 알겠는가?”
“······.”
진휘평은 마화평을 두고 그대로 교주전을 빠져나갔고, 마화평은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꿇어앉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교육을 해두었어야 하는데···.”
“···아주 기고만장이군. 누가 보면 벌서 황제가 된 줄 알겠어.”
“교, 교주님. 제가 진휘평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됐다. 대계에 동참하겠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용인할 수 있음이야. 왕야가 부인이라고 알고 있는 그녀는 신교의 교인이고···.”
호충의 예상대로 북궁초연을 빼닮은 그녀는 천마신교의 교인이었다. 마교는 미색이 빼어난 교의 여인들을 골라 진휘평에 보였고, 진휘평은 그 중 잃었던 부인과 닮은 여인을 골랐던 것이다.
“자식 녀석은 잘 크고 있으나, 왕야와 반대편에 서있지.”
“녀석은 일이 잘못될 것에 대비한 수단에 지나지 않지요. 대계를 진행하며 활용할 수도 있으나, 왕야가 끝까지 모른다면 아비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마교는 황궁의 태자와 진휘평의 아들을 바꿔치기 하고 훗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또한 호충이 예상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역천에 성공한 다음 기존 황제의 아들인 태자가 어찌될 것인지 짐작하지 못했을 뿐이다.
“진 왕야는 신교가 어째서 신교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약을 준비해두겠습니다.”
“급하게 움직일 것 없다. 황제의 위에 오르기도 전에 왕야의 이지가 혼미해지면 큰일이지.”
“예. 교주님.”
“남경에 왕야의 거처를 마련하고 묵혈단을 보내 지키게 하라. 또한 홍동에서 복귀한 장 교사도 같이 보내라. 은밀하게 처리할 일이 상당할 것이다.”
“끄응. 분양과 홍동의 일은···.”
마교는 분양과 홍동에서 진가장의 자식들을 놓치고 난 이후 교의 중요한 인물들를 불러들여 발을 뺀 상태였다. 이후 정파무림의 집중 공격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화평은 덕분에 그 지역이 거론되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큰일을 성공하려 작은 일을 실패했다고 여기면 된다. 황제를 손에 쥐면 전 중원이 손에 들어올 것이야.”
“신교는 온 세상을 뒤덮을 것이옵니다. 재림천마 만마앙복. 만세만세만만세.”
“머지않았다. 내 대에 신교천하를 이루고 말 것이니···.”
과거 교에서는 다시는 황궁과 연을 만들지 말고 신교의 세를 늘리는 데만 치중하라 했었다. 두 번이나 황궁에 뒤통수를 맞았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번 교주는 다시 황궁을 도모해 신교를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번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다.’
***
정파 무림의 인사들은 분양과 홍동에 투입되어 마교도를 찾느라 분주히 오갔다. 홍동에는 화산의 도인들이 먼저 도착해 마교도를 찾는 일에 착수한 상태였고, 이후 정무맹과 협의맹에서 파견된 무림의 인사들이 도착해 합류했다. 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마교도를 찾았지만, 마교도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이번 계획의 핵심을 맡았던 마교도들은 일이 틀어지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교도와 함께하던 지역의 문파들만 수난을 겪어야 했다. 홍동에 도착한 현인은 무림인들과 함께 지역 문파의 수장을 만나 묻고 있었다.
“바른대로 말하라! 네 놈은 분명 마교도와 함께 진 공자를 핍박하지 않았느냐!”
“핍박이라니! 그저 홍동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악에 불과했소! 게다가 진 공자와 나는 서로 무공을 겨루며 깊은 교감을 나눈바 있소. 대체 그대가 말하는 마교도는 누구요?”
홍동 패도문의 사국도는 무림의 인사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현인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진호중을 보며 물었다.
“진 공자. 사실이오?”
진호중은 사국도를 미친놈을 보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사 문주. 그대와 내가 대체 언제 무공을 겨루며 교감을 나눴단 말인가? 분명 그대는 마교의 끄나풀인 장문소와 결탁해 진가장의 행사를 막아오지 않았는가?”
“장 사부? 그는 홍동에서 신망을 얻은 학자일 뿐이었소. 그리고 진 공자는 나와 무공을 겨루며 비도를 날리지 않았는가!”
“나는 비도를 익힌 적이 없소만.”
비도를 날리지 못할 것은 아니나, 따로 비도술을 익혀 사용한 일은 없었다.
“그대의 무사들이 함께 지켜봤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면 확실할 터! 어찌하여 나를 이리 대하는 것인가!”
“하!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가서 그날 있었다던 진가장의 무사를 데려오라!”
진호중이 전혀 모르는 것처럼 무사를 데려오라고 말하지 사국도가 그날의 일을 입에 올렸다.
“진 공자는 분명 그날 내게 이리 말했네.”
[지금까지 제가 무례한 것이 있었다면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앞으로 홍동에서 패도문과 분쟁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
“또한 이렇게도 말했지.”
[다만 오늘은 길을 터주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제 아비가 사경을 헤매고 계시기에 본가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부디 사정을 봐주시옵소서.]
“그래서 내가 그대에게 효성이 깊은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보내주겠다고 말해주었네. 그대는 은혜를 잊지 않겠다 말해놓고 이제 와서 모두 잊었다고 말하는 겐가?”
“······.”
진호중은 사국도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진가장의 무사 하나가 다가와 전한 귀엣말을 듣고서야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공자님. 사 문주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날 공자님은 자장으로 떠나시는 길에 사 문주를 맞이하여 훌륭히 상대하시고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
“확실히 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사용하신 비도술이 조금 의아하긴 하였으나, 공자님이 확실하였습니다.”
호중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이와 같은 일을 가능케 할 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파 대협이 환술을 사용해 나의 퇴로를 마련해 준 것이로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