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나온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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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중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파진후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선배님들께 고합니다. 저는 이자와 무공을 겨루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자가 봤다는 인물은 누구요?”
“진가장을 위협에서 구해주시고 여기까지 달려와 저를 도와주신 고수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환술을 사용할 수 있다 하시었는데, 그 분이 저를 대신하여 사국도 문주와 겨룬 것으로 보입니다.”
“허! 환술을 사용하는 무림의 고수가 남아 있었단 말인가?”
무림의 힘이 융성했던 오백 년 전에도 환술을 쓰는 무림인의 찾기 힘들었다. 일류무공조차 희귀해진 지금은 환술을 사용하는 무림인이 없다시피 했다.
“저도 직접 보진 못했으나, 정황상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가장의 무사들이 저와 길을 떠났다는 날은 이미 제가 길을 떠나고 하루가 지난 다음입니다.”
진가장의 무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 그럼 그 분이 공자님이 아니셨다는 말입니까? 공자님이 도주를 명한 덕분에 저희는 반 이상이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모든 무사가 운이 좋지는 않았다. 분양의 호현과 함께했던 무사의 목이 잘린 것처럼 마교도에 쫓기던 몇몇 무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일부가 살아남아 무림인들과 함께 홍동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분은 떠나기 전날 무관에 방문했던 분이다.”
“그분은 소리 없이 사라지셨다고 들었는데···.”
“파 대협께서 내게 먼저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길을 떠났다. 파 대협이 끝까지 남아 너희를 지켜주신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무사들이 비명에 갔으니, 내 죄도 크다.”
“아아.”
둘의 대화에 화산의 현인이 끼어들었다.
“대체 파 대협이라는 고수가 누구요?”
“저희 진가장도 인연이 깊은 것은 아닙니다. 진가장에서 분양을 거처 홍동까지 경공으로 달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높은 경공술을 가지셨다고 생각했는데, 무공까지 고강하셨던 모양입니다. 또한 마교의 행사에 반하여 진가장을 도왔으니, 의로운 심성을 가지셨다는 것도 확실하지요.”
“음···.”
현인도 오는 길에 만나지 않았겠는가. 송동석이라고 이름을 밝힌 월하검문의 문주도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숨겨진 노고수였다.
“그런 분들이 없진 않지. 마침 우리도 오는 길에 은인자중 하던 무림의 고수를 만났으니 말일세.”
이제 패도문의 사국도가 남는다.
“사 문주.”
“예. 도장.”
“지금 그대가 얼마나 큰일에 휘말렸는지 알 것이네.”
“예, 예.”
무려 마교다.
패도문이 정무맹에 속하지 않았어도 마교는 대부분 무림인들의 대척점에 있는 단체였다.
“그대는 장문소라는 인물과 얼마나 오래 인연을 맺었는가.”
“대략 일곱 해는 되었습니다. 패도문이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덕분에 지금까지 홍동의 유지들과 깊은 친분을 맺고 있었지요. 그가 마교도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관련자를 모두 만나봐야겠군. 패도문을 도와준 이들부터 시작하지.”
진호중이 현인의 말에 되물었다.
“그들이 모두 마교도란 말입니까?”
“여기 사 문주처럼 이용만 당했을 수 있지. 만약 그대가 말한 파 대협이 아니었다면 진공자는 사 문주를 맞이하여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이겨도, 져도 사 문주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야. 만약 사 문주가 승리했다면 이후 정파 무림의 보복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고, 패배했다면 당연히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신비 고수가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사 문주가 살아남았고, 마교도는 진 공자를 잡지 못했지.”
딸꾹.
사국도는 그날 자신이 진 공자를 상대한 이후에 발생할 문제는 그려본 적도 없었다. 그저 장문소의 말대로 진가장을 몰아내고 다시 홍동에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말만 믿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 문주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장문소의 지시에 진가장을 적대하였어. 사 문주가 마교도였다면 이렇게 남겨두지도 않았을 것이네. 다른 마교도처럼 그들의 본거지로 데려갔겠지.”
“내, 내가 이용만 당했다니···.”
“다만, 마교도 임에도 이미 홍동에 자리를 잡은 인물들은 남겨두었을 것이네. 그들을 찾아 발본색원해야 하네. 마교의 영향력을 최소화 하자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지. 그러니 지금부터 사 문주는 우리를 도와야 할 것이야. 사 문주는 이를 통해 이용만 당했는지 마교도의 하나인지 증명해야 그대의 혐의를 벗을 수 있네. 알겠는가?”
“···예. 도장.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현인은 홍동에서 먼저 와서 파악한 일들을 위주로 묻기 시작했다.
“우선 대천문에 대해 말해보게. 분명 대천문은 홍동에서 패도문과 경쟁하는 방파라고 알고 있네만, 이번엔 같이 일을 진행했더군.”
“대천문의 문주도 저와 함께 일을 도모했으나, 장문소가 마교도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천문의 문주를 심문하는 이들이 더 자세히 파악할 것이네. 그러니 가감 없이 모든 것을 말하게.”
“···대천문과 함께하게 된 것도 결국 장문소라는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찌된 일인고 하니······.”
장문소가 알았다면 뒷목을 잡았을 일이다. 사국도는 오래전 일까지 세세히 기억해내며 장문소와 관련이 있는 자들을 불기 시작했다. 사국도가 지금까지 둔재라는 평가를 받아온 것은 판단이 느려서이지 기억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진호중과의 대화 또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가. 또한 난해한 구절로 가득한 무공비급을 익히자면 최소한의 머리가 있어야 했다.
사국도는 한 문파의 문주인 고수였다.
“···지금까지 장문소를 통해 소개받은 상회와 전장을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줄줄 나오는 군. 최소한 이들 중 하나 이상은 장문소와 깊이 결탁하고 있었을 것이야. 당장 이들을 잡아들여 확인하도록 합시다. 인원을 나누겠소. 무당과 점창은 목재상으로 가시고, 서문가는 지역 유지들을 찾아주시오. 화산은 패도문에 돈을 빌려준 전장으로 가서 지부장을 만나보겠소.”
“예! 도장.”
정파 무림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분양과 홍동에서 마교를 돕던 교인들이 하나씩 수면으로 올라왔다. 중요 마교도는 없었지만, 나름의 성과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마교의 일처리 덕분이었다.
“네게 명령한 자가 누구냐! 누구의 명으로 패도문을 도왔느냔 말이다!”
“아무리 너희가 우리를 잡아들여도 신교의 세상이 올 것이다. 하하하하”
정무맹의 뇌옥에 끌려온 마교도는 모진 고초를 당하고도 광기어린 눈을 빛냈다.
“···젠장. 마교는 죄다 미친놈들뿐이군.”
이번에 잡아들인 마교도 중 마공을 익힌 몇 안 되는 인물이었는데,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마공을 익히지 않고 오로지 마교의 교리만 배운 마교도의 경우엔 아는 것이 없고, 마공을 익힌 놈들은 입을 열지 않는 악순환이었다.
마교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에 진척이 있을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도 오랜 시일이 소요되었고, 결국 정파 무림은 적당한 성과를 얻었음에 만족하고 일의 마무리를 결정했다. 더 이상 협의맹에 영역 확장의 빌미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가장이 산서에 진출한 것만으로 충분히 위험했다.
다시 두 맹의 회합의 열렸다.
무당의 송호 장문인이 단정 지어 말했다.
“정파 무림은 마교의 계략을 훌륭히 막아냈소. 이쯤에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문의 당세천은 당연하다는 듯이 반박했다.
“마교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중원 무림에 위협을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
아직까지 당문은 주변으로 세를 확장하기 못 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시간을 끈다고 달라지진 않을 것이오. 차라리 상시 감시 체제를 구축하고 여기서 일단락지어야 할 것이오.”
송호 장문인의 말에 정무맹의 인사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장문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마교도는 광신에 빠져있기에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고, 애초에 녀석들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도 않았다합니다. 마교가 뿌리 뽑힐 때까지 계속 주시해야 하는 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무리 옵니다.”
“옳소. 특히 마공을 익힌 마인의 경우 겉으로는 마공을 익히지 않은 듯 보였소. 눈앞에서 마인을 마주해도 알아차리기 힘든 실정인데, 지금과 같이 대대적인 수색을 진행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지요.”
새로이 화산파 장문인으로 등극한 무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히 마교의 마공이 위협적입니다. 작금의 무림은 절정급 마인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소. 이들을 상대할 고수들은 이미 모두 원로원에 가 계시지 않소.”
이에 협의맹 인사들도 고개를 동조하며 나섰다.
“그렇지요. 절정급 마인이 있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던지···.”
“고작 다섯이었다지만, 능히 문파 하나를 상대하고도 남을 것이오. 누가 절정급 마인을 상대할 수 있겠소.”
“······.”
당세천은 아미를 찌푸리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절정급 무인의 부재는 황궁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가장의 공동가주로 올라선 진호현도 회합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로군.’
진호현은 모용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모용태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오. 진 가주. 말씀하시게.”
송호 장문인의 허락에 진호현이 생각한 바를 풀어놨다.
“이번에 진가장은 절정급 마인들에게 공격을 당해 크게 낭패를 당했지요. 무림 세력 각자가 따로 마교를 찾으면 이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모두가 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진가장이 당한 것처럼 자신들도 당할 수 있다는 염려였다. 진호현은 모두의 공감대를 얻으며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사안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우리 맹에도 절정급 무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듣기로 일부 방파가 절정 무공과 무인을 숨겨두고 있다 들었습니다.”
“!”
“!”
이런 일은 함부로 공론화할 사안이 아니었다. 황궁의 행사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절정 무공의 문제를 꼬집자는 것은 아닙니다. 중원 무림이 발전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황궁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당세천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진 가주는 혈기가 넘치는 젊은 나이라 지금까지 뱉은 말은 이해하고 넘어가겠네. 하지만 그 이상을 입에 올리지는 말아야 할 것이야.”
진호현은 당세천의 날카로운 눈빛을 부드럽게 받아내며 말했다.
“민감한 사항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할 방법도 없이 이 문제를 입에 올린 것은 아닙니다. 당가주님.”
“해결할 방법?”
“그게 대체 무엇인가?”
“무슨 수로 해결을 해? 진 가주는 함부로 허황된 말을 입에 올려선 안 될 것이네. 지금까지 상승 무공으로 멸절한 문파가 한둘이던가!”
절정 무공과 절정 무인을 규제하는 황궁의 행사를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무림은 숨죽이고 몸을 낮추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곧 모용세가에 경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
모용세가의 경사와 지금의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몰라 다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했다.
“제가 함부로 드릴 말씀은 아니군요. 모용 가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겠습니까?”
“험험. 그러는 편이 좋겠군.”
모용태는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용태는 이곳에 모인 가주들과 장문인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진즉 원로원으로 갔어야 할 이 몸이 아직 가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소.”
후우웅.
모용태는 지금까지 갈무리해둔 내공을 풀어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완연한 절정의 내공이었다.
“헙!”
“아직 지고한 벽을 넘지 못했으나, 일 갑자는 확실히 넘어섰다오.”
“허, 헌데 어찌 아직···.”
왜 원로원에 들지도 않고 이렇게 자신의 무공을 드러낸단 말인가. 혹여 누군가 이 일을 관에 고발한다면 모용 세가는 꼼짝없이 금의위의 방문을 받아야 할 터였다.
“본인의 맏아들인 청이 아주 어여쁜 딸을 낳았고, 손녀는 지금 무림에서 일봉으로 불리고 있소.”
모용태가 본론을 꺼내기 위해 하는 말임을 알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그 아이가 특별한 인연을 만났소. 둘의 인연이 이어진지 오래고 나이가 차 혼례를 준비 중이라오.”
각 가문과 무림 방파의 후지기수 사이에서 일봉인 모용희를 흠모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그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것이다.
“희의 배필이 될 분은······.”
모용태는 주위에 앉아 있는 무림의 인사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바로 황제 폐하의 적자이신 태자 전하 시라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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