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232)

왕호 복귀

***

우락부락한 용모의 사내가 길을 걷고 있다면 대부분 눈치를 보게 되는데, 그 숫자가 열이 넘어가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헙.”

“도, 돌아가세.”

멀리서 이들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은 저마다 뒤로 돌아 다른 방향으로 향했고, 일부는 길가로 몸을 피했다. 일부 가게는 은근슬쩍 문을 닫으며 장사를 접기도 했다. 덕분에 이들이 지나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우락부락한 용모의 사내들이 허리춤엔 거대한 도까지 패용하고 있었기에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저벅저벅.

우르르 사내들이 지나간 다음, 사람들은 서안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흑패에 일이 생길 모양이야.”

“오랜만에 서안 뒷골목이 시끄럽겠어.”

그들이 가는 방향에 서안 흑패의 본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락부락한 용모의 사내들은 서안 흑패의 전각 앞에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서 짧은 머리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다들 몸가짐을 조심하라. 대형을 만나면 예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예!! 패주!””

패주라고 불린 인물은 바로 왕호였다. 대답하는 사내들은 예의를 다한다고 하면서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왕호 외에는 누구에게도 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쿵쿵.

왕호가 대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왔다.

“헙! 누, 누구냐!”

서안 흑패의 대문을 지키던 하오문의 문도는 다른 흑패에서 쳐들어왔나 싶어 잔뜩 긴장했다.

“천수흑패의 왕호다. 대형을 뵈러 왔다.”

“천수흑패의 왕호?”

“진···. 아니 송 문주님이 나의 대형이시다.”

“아~.”

그제야 긴장을 푼 조직원이 대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훈련 때문에 오신 모양이구려.”

왕호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크크. 그렇지.”

“헌데 전각을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이곳은 서안 흑패의 전각이고, 훈련을 위한 전각은 다른 곳이라오.”

서안에는 하오문의 수련용 전각이 따로 있었다.

“여기가 아니야?”

“안내해 드리겠소.”

왕호는 뒤따르는 사내들과 다른 전각으로 향했고, 거기서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왕호! 하하하.”

“사중환.”

사중환은 왕호를 기쁘게 맞이하며 물었다.

“뭘 이리 많이 끌고 왔어?”

“크크.”

왕호는 자랑하듯 이들의 정체를 입에 올렸다.

“감숙성(甘肅省)의 모든 흑패를 재패하고 오는 길이야. 이들은 각 성읍의 패주들과 휘하의 주먹께나 쓴다는 놈들이지.”

“오오! 왕호 네가 감숙을 차지했구나!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

호충이 서안에 돌아오고 벌써 두 해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 사이 왕호는 감숙 전역의 흑패를 하나로 통합하고 의기양양하게 서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하하.”

왕호가 웃는 와중에 난주(蘭州) 흑패의 패주였던 이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섰다.

“너는 뭘 믿고 왕호 형님께 무례하게 구느냐. 이 형님이 예의를 심어주랴?”

“······.”

사중환은 자신을 향해 뿔을 드러내는 인물을 보고 왕호에게 물었다.

“애들 교육이 아직 덜 됐구나?”

“······뭐. 그래서 이리로 데려온 것도 있지. 잘 부탁해.”

난주 흑패를 포함한 감숙의 패주들은 여전히 사중환을 깔보고 있었다.

“몸도 부실해 보이거늘···.”

“한주먹도 안 되겠군.”

“방귀만 뀌어도 기절할 것 같은뎁쇼?”

“그거 재미있는 말이군. 하하하.”

“저 놈을 잡으면 여기도 왕호 형님의 구역이 되는 건가?”

“왕호 형님이야 말로 중원을 재패하실 분이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나서야 합니다.”

사중환은 이들의 말을 들으며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핫. 왕호. 먼저 들어가 있어. 이들은 내가 적당히 교육해서 비연에게 넘기지.”

“살살해줘.”

“하오문에 그런 단어가 있을 것 같은가?”

“···새끼들 여기선 예의를 갖추라니까. 말을 안 들어 처먹네.”

왕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고, 사내들과 사중환이 남았다. 사중환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나서지 마라. 나름 각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놈들이니 내가 직접 예의를 알려줄 것이다.”

““예. 영창 대협.””

감숙의 패주들은 사중환을 대협이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나도 대협 소리 참 많이 들었지. 주천(酒泉)에 대협하면 나였는데 말이야.”

“왕호 형님 만나기 전엔 나도 돈황(燉煌)의 대협이었거든?”

“······.”

사중환은 자신의 애병인 두 개의 단창을 내려놓고 몽둥이를 들었다.

“오늘부터 너희는 하오문의 특별한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아직 예의가 부족하니, 본 교관이 너희들 머리에 기초 예의를 각인시켜주마.”

“훗. 저자가 지금 예의라고 하는 말을 들었소?”

“예의하면 우리가 아닌가. 내가 먼저 나서겠다. 저자에게 진짜 예의를 알려주지.”

처음 나섰던 난주 흑패의 패주가 앞으로 나왔고, 사중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타앗.

부웅. 붕. 휘리릭.

몽둥이의 검은 그림자가 난주 흑패의 패주 위로 가득해졌다.

뻐버버버벅.

털썩.

난주의 패주는 주먹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사중환의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감숙의 패주들이 눈을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위험을 경고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

“!”

“!”

“먼저 맞는 놈이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힘 조절이 서툴렀다. 이제 본 교관을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어서 오너라.”

“···고, 고수.”

자신들이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수였다.

“어허. 안에 왕호가 기다리고 있어서 시간이 없거늘. 안 오면 내가 가마.”

사중환은 곧장 감숙성 각 지역의 흑패주들을 다지기 시작했다.

빠각. 뻑.

“꺼억.” “끅.”

“이것들아. 여기가 감히 어딘 줄 알고.”

뻐걱.

“으악!”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있어?”

뻐버벅.

“커흑.” “나 죽네!”

사중환은 한참 곡소리가 나오고 나서야 몽둥이를 내려놓고 단창을 등에 걸쳤다. 그리고 전각 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향해 말했다.

“저것들 챙겨서 훈련소로 보내라. 비연에겐 무공이 아닌 예의부터 확실하게 주입하라 이르고.”

“예! 대협. 광도 대협께 분명히 전하겠습니다.”

“끄으윽.”

널브러진 감숙의 패주들은 하나씩 하오문도의 손에 들려 훈련장으로 향했다.

왕호는 금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중환을 웃으며 맞이했다.

“하하하. 성질은 여전하시네.”

“넌 뭐하느라 애들을 저렇게 풀어놨어?”

“말로 한다고 들을 놈들이야? 그리고 저것들 뭉쳐놓자면 나는 호방한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

“좋은 건 다 네가 몫이냐? 그건 대형께서 하실 일이야.”

“하하. 그나저나 대형은 왜 안 보여? 내가 감숙을 차지했음을 알려드려야 하는데 말이야.”

왕호는 섬서에 이어 감숙까지 완전히 차지했으니, 자신의 공이 크다 여기고 있었다.

‘섬서 만큼이나 거대한 지역을 차지하지 않았는가. 대형께서 이를 아신다면 나를 높이 평가하실 테지. 이제 내가 하오문의 이인자다!’

사중환은 태연하게 왕호가 기함할 소식을 전했다.

“대형은 작년에 하남성과 호북성, 호남성을 차지하셨고, 올해는 안휘성와 강서성, 복건성을 차지하신 다음 강소성과 절강성을 도모하고 계신다. 대형은 너무 바빠서 서안에 붙어있지도 못해.”

“뭐? 어디어디?”

이미 호충은 섬서를 넘어 중원을 넘보고 있음이다. 이미 남쪽의 주요 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수도를 도모하는 중이란다.

“네 놈이 감숙을 정리하겠거니 여기시고 그리론 가지 않으신 게야.”

“···썩을. 그럼 중원 전역이 이미 우리 하오문 손에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잖아?”

지금까지 하오문이 차지한 성은 가장 먼저 차지한 섬서성과 마지막에 차지한 감숙성을 포함해 무려 여덟이다. 지금 호충이 가 있다는 강소성과 절강성까지 더하면 열에 이르니 중원 전역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침 강소성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통을 넣으셨다. 네가 왔으니 네가 가면 되겠구나. 가서 대형의 심부름이나 해라.”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도 아니고 심부름이나 하란 말이야?”

‘제기랄. 이인자는 어림도 없겠어.’

감숙성을 차지하고 의기양양했지만, 자신의 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형과 함께 하는 하오문의 문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고절한 무공을 익혔으니 몸이 근질근질하잖아. 너까지 손쓸 일은 없어. 힘쓰는 일은 훈련소를 통과한 문도들이 주로 맡아서 하니까 너는 대형 만나서 술이나 마셔. 너무 일을 많이 벌이셔서 좀 말려야 할 정도다.”

“······.”

호충이 내린 무공을 익힌 하오문의 주요 인물들은 익힌 무공을 뽐내고 싶어 안달했다. 마침 하오문은 중원 전역으로 확장을 진행하기 시작했으니, 힘을 쓸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나와 비연도 이번 훈련을 끝내면 중경과 귀주로 가서 지역 흑패를 정리하고 돌아올 생각이야.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

“······.”

“왜 말이 없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데···. 천수 흑패의 동생들도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감숙성의 흑패를 정리했다고!”

“수고했다니까 그러네.”

“에잇!”

자신의 공은 호충도 아닌 사중환의 공치사를 듣는 것으로 끝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으니, 오늘은 푹 쉬고 천천히 출발해.”

“그나저나 무공은 많이 익히셨나?”

왕호는 사중환의 무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룡진을 극성으로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공을 쌓는 것은 힘들어졌지만, 무공은 내가 더욱 뛰어날 것이다.’

무공이라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우리끼리 우열이라도 확인하시려고?”

“······.”

왕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사중환은 왕호를 노려보다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큭. 대형은 이런 것까지 다 짐작하고 계셨단 말이지.”

“뭐?”

호충은 사중환과 옥비연, 왕호가 서로의 무공을 겨루고 싶어 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고절한 상승 무공을 익힌 이들이 한 단체에 몸담고 있으니 뻔한 일이었다.

“대형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마.”

“뭐라 하셨는데?”

[내 허락 없이 너희끼리 대련하면 향후 수련지도는 없다.]

“힉! 대형이 무공을 안 가르쳐주신다고?!”

“그래. 우리끼리 대련해봐야 서로 상하기 밖에 더하겠냐? 그리고 대형도 없는 곳에서 우리끼리 붙으면 누가 말려? 그러다가 하나 죽으면 어쩌라고?”

“제길.”

사중환은 아쉬워하는 왕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감숙에서 심득을 좀 깨달으셨나? 자신만만하시네?”

“···붙으면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

“나도 마찬가진데 말이야.”

후웅.

사중환은 잠룡진을 풀며 내공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그에 맞춰 왕호도 지금까지 억눌렀던 내공을 풀어놨다.

우웅.

고된 수련을 이겨내고 큰 힘을 얻었으니 어찌 써보고 싶지 않겠는가.

“크흐. 우리가 붙으면 정말 재미있겠는데 말이야. 감숙엔 내 상대가 없었거든.”

감숙의 흑패주들은 고작 이류와 삼류를 오갔기에 왕호와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이제야 자신과 비등한 상대를 만났기에 몸이 달아올랐다.

“아쉽구나. 아쉬워.”

사중환도 마찬가지였다. 옥비연의 경우 자신을 형님으로 대우하기도 했고, 평소 함께 수련하며 서로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련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오래 외부에서 홀로 수련한 왕호의 경우 한번쯤 무공으로 겨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왕호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냥 우리끼리 대형 몰래 겨뤄보면 안 되겠소?”

“아서라. 어르신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

“···어르신?”

“너도 알잖아? 송 영감님.”

“아···.”

“허락 없이 대련하다가 송 영감님께 걸리면 죽는다.”

“에이. 죽기는 뭘 죽는다고···.”

왕호는 화산 밑에서 송 영감을 마주했던 당시를 기억해 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이제 어르신도 내 상대가 아니지.’

송 영감이 지고한 경지의 검사로 보이던 당시의 자신과 제대로 무공을 익히고 단련한 지금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

사중환은 송 영감을 무시하는 왕호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오오. 우리 왕호 형제가 자신감이 넘치니 내가 주선하지 않을 수 없군. 어떤가? 어르신과 붙어 보시겠나? 대형께서 우리끼리 대련하지 말라하셨지 영감님은 논외로 치셨거든.”

“영감님과? 에이. 나이도 지긋하신 분에게 무슨 실례야?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다치긴 다치겠지. 물론 어르신이 아닌 네가 다치겠지만.”

“···하! 이젠 내가 골골 거리는 영감님도 상대하지 못한다는 거야?”

“어차피 인사도 드려야 할 터이니 같이 가세.”

“그래. 가지.”

왕호는 자신만만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중환은 이후에 일어날 재미난 상황을 그리며 왕호를 송 영감에게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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