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232)

남궁 한천

***

호충과 화진이 객잔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인물들이 있었다. 상당히 젊어 보이는 청년과 그보다 조금 나이가 있는 남자였다. 둘의 허리춤에 검이 달려있는 걸 보면 둘이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의 미색이 실로 대단하군.”

“공자님? 여인의 얼굴도 안 보입니다만···.”

폭이 넓은 검을 패용한 이들은 황산을 주름잡고 있는 남궁 세가의 인물들이었다.

“딱 보면 알아. 미인은 면사로 가려도 숨길 수 없거든.”

“······이미 옆에 남자가 있는데요?”

무사는 공자라고 불린 남자를 말리기 위해 뻔히 눈에 보이는 여인 옆에 있던 남자를 상기시켰다.

“사랑은 고난이 필수인 법이다. 고난을 이겨낸 사랑이야 말로 값진 법이지.”

“아직 인사 한 번도 나누지 않으셨으면서 사랑이라뇨.”

앞서 나가도 한참 앞서 나가고 있었다.

“어허.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는 법이야.”

“에효. 그러다 가주님이 아시면 경을 치십니다. 안 그래도 일전에 그리 혼나셨으면서···.”

이와 같은 일이 처음도 아닌 모양이다.

“그 얘긴 왜 또 꺼내나? 그리고 실패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일 뿐. 사내의 의지를 어찌 꺾을 수 있겠어?”

“지난날의 실패들은 오늘 일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같은 여인에게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새로운 여인에게 들이대고 있는데,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두고 봐. 오늘 저 여인을 내가 차지하고 말 것이다.”

“그냥 가주님이 주선해주시는 적당한 혼처의 여식과 혼인하시지요.”

남궁 세가의 가주는 자식을 혼인시키려고 많은 혼처를 주선했었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남궁 가의 공자는 아버지가 주선한 혼처의 여식이라는 말에 발작하듯 소리쳤다.

“걔들은 못 생겼어! 내 자식이 날 닮지 않으면 그년들을 닮을 거 아니야!”

“······.”

남궁 세가의 공자 곁에 함께하던 무사는 고개를 저으며 포기해버렸다. 아무리 마음을 돌리려 해도 소용없었다.

“스물다섯 번째 시도라고 기록하지요.”

“벌써 그렇게 많은 인연이 있었나?”

“···인연이 아니라 그냥 들이대다 실패한 겁니다. 따귀도 무수히 맞으셨지요. 예전엔 젊은 날의 치기어린 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젠 나이도 있으신데···.”

“큼. 오늘은 분명 성공이야. 가자.”

“혹여 남궁 세가라는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실 생각입니까?”

“···그럼 내 검이나 잘 갖고 있어.”

폭이 넓은 검은 황산에서 남궁 세가의 인물임을 증명하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에효. 너무 맞으신다 싶으면 나서겠습니다.”

“···안 맞을 거야! 분명 날 더 좋아할 거라고!”

“설마요.”

남궁 세가의 공자는 보무도 당당하게 객잔으로 향했다.

“나 남궁 한천은 오늘 인연을 만날 것이다.”

“스물다섯 번째 실패가 기다리고 있겠지요.”

“쫌 조용히 해!”

“예입.”

***

호충은 함께 온 하오문의 문도에게 별채를 잡아둘 것을 부탁하고 객잔 삼층에서 화진과 마주하고 앉았다.

“여긴 차밭도 유명하고 임산물이 많아 산나물과 버섯 요리가 많아. 그리고 두부 요리는 다른 곳과 비교도 할 수 없다고 했어.”

“우아. 다 먹어볼래요.”

“동감이야.”

호충이 점소이를 부르려고 몸을 돌렸는데, 멀쩡한 사내 하나가 가로막았다.

“안휘의 요리는 진한 맛이 특징이오. 또한 큰 접시에 담아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소.”

“그렇소? 그럼 알아서 내와 보시오.”

호충이 사내를 객잔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뱉은 말이었다.

“그대가 내려가서 주문하고 올라오시는 것이 어떻겠소?”

“···객잔 주인이 아니었나?”

“나도 객잔의 손님이오. 점소이가 무척 바쁜 것 같아 하는 말이오.”

호충은 얼른 사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하외다. 내가 착각했소.”

“다녀오시오.”

사내는 호충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호충이 일어난 자리에 앉았다.

“······.”

화진은 너무나 당연히 자리에 앉는 모습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대도 내게 관심이 있었나 보오. 거절치 않으니 기껍습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일행이 곧 돌아오실 터이니 자리를 비켜주시지요.”

“나는 황산의···.”

한천은 남궁 세가에서 왔음을 밝힐 수 없어 이름만 밝혔다.

“본인은 한천이라 합니다. 그대의 방명을 들을 수 있겠소?”

“······방명은 함부로 알릴 수 없습니다.”

본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가까운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특히 지아비가 있는 여인은 이름을 모르는 이에게 밝히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화진이 호충을 지아비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와 내 인연이 이어질 것인데, 어찌 방명을 일러주지 않는단 말이오?”

“···인연?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그대의 자태를 보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소. 그대는 나와 맺어질 인연이오. 그대도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소?”

어느새 삼층으로 올라온 호충이 그 말을 듣고 있었고, 화진은 호충이 올라왔음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

“다 들어서 알지만, 왜 내 자리에 앉아 있는지 해명 좀 해보시오. 듣고 결정하리다.”

호충이 왔음을 보고도 한천은 당당했다.

“···늦었군.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자리를 비우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이미 그녀는 나를 선택했다.”

“말이 필요 없는 자였어. 대화가 통하질 않네.”

드륵.

한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배를 들이밀었다.

“통하지 않으면? 나를 어쩌시려고?”

“어휴. 이런 상대는 쉽지 않은데 말이야.”

미친놈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였다.

“하하. 단번에 날 알아봤군. 그녀를 포기해라. 그녀는 내가 차지할 것이다.”

“······.”

호충은 이 미친놈을 어떻게 치울 것인가 고민하다가 근처에서 이곳을 주시하는 인물을 찾아냈다. 눈빛을 보아하니 아는 얼굴인 모양이었다.

“거기 당신. 이 사람을 아는가?”

“······모르오.”

무사는 자신과 함께 온 한천을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런데 왜 검을 두 개나 들고 있지? 분명 그 검은 다른 사람의 검인 것 같은데 말이야.”

“···잠시 맡아둔 것이오.”

“남궁 가의 검을 맡아두었다면 그대도 남궁 가의 무사가 아닌가. 황산에 방문한 외지인이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생각인가?”

“젠장. 내가 남궁 가의 무사인 것은 맞으나, 저 사람은 모르오.”

“···그럼 시체는 치워줄 수 있겠는가?”

“!”

“광인을 대화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그를 해치지 마시오.”

호충은 내공을 무사에게 집중했다. 자신의 무공 수위를 일부 드러낸 것이다.

“!”

‘고수. 그것도 가주님과 비등하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그는 당장 내 도에 목이 떨어질 것이야.”

“······썩을.”

그제야 무사가 움직였다. 방금까지 모른다고 했던 한천의 곁이었다.

“공자님. 갑시다. 따귀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이러다가 죽겠습니다.”

“기다려봐. 무림인이면 가문을 드러내도 상관없잖아.”

호충은 한천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남궁 세가임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남궁 세가라고 하면 내가 겁이라도 먹을까봐?”

“···여긴 황산이오만?”

황산은 남궁 세가의 안방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턱.

호충의 손이 도병에 올라갔다.

한천은 손을 뻗어 무사의 품에 있던 검갑을 잡았다.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무공을 겨루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풋. 이거 재미있게 흘러가네. 그럼 내려가지. 나도 내 여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검을 들지.”

“네가 패하면 저 여인은 내 연인이 될 것이다.”

“미안하지면 그럴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둘이 눈을 마주치며 노려보자 화진이 입을 열었다.

“또 제 미모를 알아봤다며 적당히 넘어가시려고요?”

“···광인이라도 눈은 제대로 박혔는데 말이야.”

화진의 생각대로 조금은 봐줄 생각이었다. 이런 일로 매번 시체를 치우자면 한도 끝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적당히 하시면 제가 가만있지 않겠어요.”

화진의 말에 오히려 한천이 코웃음을 쳤다.

“훗. 들 고양이 같은 매력도 있었군. 아주 앙칼져. 흐흐흐.”

화진도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거기 당신. 이리 나와 봐요. 차라리 내가 상대할 테니까.”

호충은 얼른 화진 가까이로 다가가 작은 말소리로 전했다.

“워워. 쉬고 있어. 여기서 일 키우면 내 계획에 차질이라고.”

화진도 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남궁 세가에서 왔음을 기억해 냈다. 또한 호충이 남궁 세가에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두고 보겠어요.”

“그쪽은 어서 내려가자. 당신은 저 여자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려.”

“대결이 끝나고 이리로 올라올 때는 하나 일 것이야.”

“에효. 그야 가봐야 알 일이고.”

한천과 함께 왔던 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둘을 따라 내려갔다.

***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온 호충은 상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포권하며 예의를 보였다.

“서안의 옥비연이오. 나는 도법을 쓰겠소.”

지금 호충은 옥비연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옥비연의 황룡살도(黃龍殺刀)를 쓰려고 검이 아닌 도를 패용하고 있었다.

“남궁의 한천이다. 나는 당연히 검이다.”

“한천? 남궁가의 소가주?”

무림의 일에 관심을 두며 기억하던 정보였다. 남궁 세가에 오면서 가주의 아들 정도는 미리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귀동냥은 하고 사는구나. 그렇다. 내가 바로 남궁 가의 소가주 남궁한천이다.”

“······.”

호충이 말을 하지 않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한천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물러선다면 목숨은 부지할 것이다.”

“···하아. 남궁 가는 대체 자식들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뭐라?”

“하긴 내가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진가장만 해도 개차반인 자식들이 가득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한천은 양반이었다.

‘그래도 애새끼가 무작정 덤빈 것도 아니고 나름 예의는 지켰어. 그 새끼들 보다야 낫지.’

게다가 남궁 가는 손이 귀해 가주의 아들이 하나뿐이었다.

“그래. 집안에서 귀하게 키웠을 거야. 나 혼자 잘났다고 대우받으며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암. 그러고도 남지.”

“혼자서 뭐라 지껄이는가?”

“응. 너 잘났다고. 빨리 덤벼. 적당히 밟아주고 얼른 올라가서 밥이나 먹게.”

“하! 네가 오늘 그녀 곁으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았다니까 그러네. 얼른 검이나 뽑아.”

한천의 손이 검병에 닿자 무사가 얼른 조언했다.

“공자님. 상대는 고수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나도 고수다!”

무사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한천 대신 호충을 돌아보며 썩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제발 우리 공자님을 살려주십시오.’

“하여튼 눈치는 옆에 있는 놈들이 더 있다니까. 시체 치울 일은 없게 할 테니 걱정 놓으시게.”

“감사합니다.”

한천은 무사와 호충의 인사를 듣지 못하고 검을 뽑아 공격을 감행했다.

채앵. 타앗!

“네가 감당할 검은 천풍검법이니라!”

“오호. 확실히 소가주는 소가주네. 벌써 거기까지 익혔어?”

무거운 중검이 바람에 나부끼듯이 날아들었다. 남궁가의 중검을 배우기 전에 익히는 쾌검이었다.

챙. 챙.

빠른 검이 무색하게 호충의 도가 검식을 중간에서 막아내며 거리를 벌렸다.

“더 보여주시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한천은 천풍검법의 보법을 충실히 따르며 정석적인 검식을 선보였다.

‘확실히 위력적인 쾌검식이긴 하나···.’

챙. 챙챙.

천풍검법의 쾌검을 맞이하여 어렵지 않게 검을 막아내고 또 일부는 흘려보냈다.

‘변초가 익숙하지 않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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