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232)

남경의 왕호

***

“어허. 유 단주.”

“죄, 죄송합니다. 문주님.”

“언행을 삼가 하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것이다.”

“예. 문주님.”

“무엇보다 양민들이 이번 일에 엮이면 곤란해.”

“······.”

‘역시 문주님은 높은 이들보다 낮은 이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군요.’

유도영은 호충과 마주할 때마다 하오문의 문도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오문이 중원 대부분을 차지한 것보다 하오문의 문주가 가진 철학이 너무나 흡족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현인들의 지고한 가르침을 세상에서 실천하는 인물이었다.

“유 단주는 이번 일과 관련한 이들이 움직이는 경로를 살피되, 문도들은 위험을 감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하게. 그저 지나다가 보면 본 것이고, 못 봤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문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덕분에 문도들이 의심받을 일 없이 정보를 얻고 보내줄 수 있습니다.”

호충의 명은 오히려 하오문을 감추고 정보를 모으는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대신 유효한 정보를 물어온 문도에겐 확실하게 보답하게. 그래야 작은 일도 놓치지 않고 보고할 테니 말이야. 하오문의 여유자금이 넉넉하니 어렵진 않을 거야.”

“덕분에 남경의 정보단 단원들이 피똥을 싸는 중입니다요. 흐흐흐.”

호충이 데려온 하오문의 중요 문도들을 주축으로 남경 정보단을 창설했는데, 이들은 남경의 하위 문도들이 가져온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길가에서 떠는 주정뱅이의 헛소리까지 세세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라도 걸리면 돈이 되니 작은 정보도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일 것이다. 앞으로는 중원 전역의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해야 할 터. 그 때는 지금 보다 더 큰 단이 되어 있을 것이야.”

화진이 이끄는 루방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보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들과 통합하여 제대로 정보단을 창설하고 정보를 팔아먹을 생각이다. 정보를 필요로 곳은 중원 무림의 방파들만이 아니다. 중원 정계의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거대 상인들과 지방의 유지들도 갖가지 정보를 원할 것이다. 하오문은 이렇게 모은 정보를 기루를 통해 은밀하게 팔아먹을 수 있었다.

‘나라의 말을 전하는 창구가 될 수도 있지만···.’

신문이 없는 중원에서 황궁과 관부의 일을 백성에게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백성의 바람을 황궁에 전할 수도 있음이야.’

백성들의 입을 대변하여 황궁에 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중원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언론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 진휘평이 황제가 된다는 가정을 세웠을 때의 가능성이었다. 역천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하오문은 그저 무림 방파의 하나로 끝이었다.

“정보단 단원들은 성심으로 정보를 취합하겠습니다. 하오문의 성장에 꼭 도움이 되겠습니다.”

“하오문의 성장이 아니라 문도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위함이다. 더 나아가 백성의 삶이 나아지고 나라를 평안케 함이다. 단체가 개인의 위에 있지 않고 나라가 백성의 위에 있지 않다.”

유도영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저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문주님.”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안 오는지 모르겠군. 서안에서 도착하면 바로 출발하라고 했었는데 말이야.”

“감숙성의 왕 대협 말씀이십니까?”

“그래. 왕호 녀석 말이야.”

얼마 전 서안에서 서찰이 도착했다. 왕호가 감숙을 재패해 흑패주들을 이끌고 서안으로 왔고, 서안에서 문주를 돕기 위해 남경으로 출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서안에서 온 서찰은 이미 보고 드렸고···. 중간인 강서성 남창에서 출발한 서찰이 한 번 더 도착했습니다. 조만간 이곳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얼씨구? 서찰보다 늦어? 이 새끼 빠져가지고···. 오기만 해봐라.”

“···사람이 어찌 말과 전서구보다 빠르겠습니까.”

“그냥 사람이면 그 말이 맞겠지만, 내 의제는 그래선 안 되는 거야!”

“······.”

유도영은 문주님의 의제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서찰에도 서찰이 도착하고 곧 있으면 자신이 도착할 거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안에서 남창까지 도달한 시간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내가 직접 무공을 사사한 놈이 말보다 느려? 비둘기보다 느려? 분명 내가 훈련시켜준 그때부터 지금까지 팽팽 놀았다는 말이거든! 남창에서 서찰 도착한 게 언제야?”

“어제입니다만···.”

“그럼 오늘까지만 봐준다. 오늘 내로 안 오면 그 새끼는 인생 조지는 거야.”

“······.”

유도영은 이런 거침없는 문주의 말투를 듣고서야 자신이 몸담은 하오문이 뒷골목을 대표하는 방파라는 것을 상기하곤 했다.

“유 단주도 마찬가지야. 여기 일 대충 마무리되면 바로 서안 본부로 가서 기본 무공을 수련하고 와. 가서 제대로 못 배우면 유 단주도 조진다. 알았어?”

자신은 몸을 쓰는 문도가 아님에도 하오문의 기본 훈련을 거쳐야 했다. 그래도 자신이 무림 방파의 하나인 하오문에 입문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조진다는 말이 무슨 뜻이신지···.”

분명 욕인 것 같은데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X까고 뒈질 때까지 쳐 맞는다고.”

“아···. 이해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험한 말이었다.

“우선 유 단주는 정보단 때문에 바쁠 테니 가봐. 나는 애들하고 뒷골목 정리하러 갈 테니까. 왕호 이 새끼 오면 시키려고 했는데, 결국 또 내가 나서야하잖아. 에잉.”

“그럼···. 저도 남경 정보 단원들을 조지러 가겠습니다.”

유도영은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자신의 문주를 닮고 싶었다.

“오오. 습득이 아주 빠르군. 좋아. 가서 조저.”

“옙! 문주님.”

.

.

.

그날 남겨 정보단은 자신들의 임시 단주로 임명된 인물이 생각보다 강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이. X새끼들아. 누가 이걸 이렇게 분류하래?”

유도영은 단원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서류 더미에서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찾아낸 것이다. 마교의 움직임으로 보이는 정보였다. 주정뱅이의 헛소리로 볼 수 있었지만, 늦은 시각 일단의 인물들이 어느 커다란 장원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검은 무복에 검도 멋있더라. 크흐. 나도 그 놈처럼 건장한 놈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큰 전각에 살고 싶었다고!]

다른 곳에서 전해진 정보와 더하니 진 왕야와 마교의 인물들이 움직였음을 알 수 있었다.

“···노, 놓친 것 같습-.”

“눈깔이 동태눈깔이야? 이걸 왜 못 봐! 이렇게 하나씩 놓쳐서 일을 그르치면 어떻게 할 거야! 나중엔 우리 정보단까지 다 들통나!”

“죄송합니다!”

“너 나 뒈지는 꼴 보고 싶냐? 엉? 문주님이 우리 정보단을 얼마나 챙기시는지 몰라? 문주님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을 해야 할 거 아냐!”

“예, 옙.”

“니들이 놓치면 니들 인생만 조지냐? 내 인생도 조지는 거야!”

“···그런데 조지는 게 뭡니까?”

“X까고 뒈질 때까지 문주님한테 쳐 맞는다고! 너 문주님이 흑패 정리하는 거 못 봤냐? 온 몸의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쳐 맞는 거야!”

“힉!”

“인생 조지기 싫으면 눈깔 똑바로 뜨고 분류해! 알았어!”

““옙!!””

***

늦은 시각 몇몇 하오문도들과 자잘한 시전 뒷골목의 양아치들을 정리하고 돌아온 호충은 자신을 기다리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문주님. 왕 대협이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오늘을 넘기진 않았습니다.”

유도영이 도착한 왕호를 안내한 것이다.

“헤헤. 저 왔습니다. 대형.”

“어쭈? 웃어? 그리고 대형? 여기가 어딘데 대형이야?”

남경 흑패의 본거지를 차지한 하오문이다. 왕호가 도착한 곳은 하오문의 남경지부인 셈이었다. 게다가 하오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유 단주까지 있으니, 공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무, 문주님. 감숙의 왕호가 문주님을 뵙습니다.”

“유 단주는 나가보도록.”

‘오늘 왕 대협이 험한 꼴을 보겠구나.’

“···예. 문주님.”

“······.”

왕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감숙에 있을 때만해도 모두가 눈 아래로 보였는데, 하오문에 도착하고부터 눈치 볼 일만 많아졌다.

‘제기랄. 오늘 대형 기분이 안 좋네.’

왕호의 예상대로였다.

“나와 오래 수련한 천고의 기재 왕호가 어째서 이렇게 늦었을까?”

“······.”

“서찰이 오고 다음날 도착해? 감숙에 고만고만한 놈들 정리하느라 무공을 단련할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대려거든 대가리부터 박고.”

“읍.”

‘그 핑계를 댔다간 큰일 날 뻔 했군.’

“어쭈? 대가리 안 박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가 합당하지 않으면 오늘 뒈질 줄 알아라.”

“서, 서안에서 가르침을 받느라 몸이 성하지 않았습니다.”

“엉? 네가 서안에서 가르침을 받아? 누구? 사중환? 옥비연? 걔들이 널 가르칠 수준이나 되냐?”

“···어르신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호충은 왕호가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왔는지 알고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송 영감이 그랬다면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고. 송 영감이 그랬구나! 많이 다쳤느냐?”

“크흑. 뼈마디가 성한 곳이 없습니다. 어르신께 얼마나 맞았는지···.”

“영감쟁이가 무공에 맛 들리더니 우리 의제를 쥐 잡듯이 잡았어.”

“제 무공이 부족하다며···. 대형을 만나는데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는 기대에 맞출 수 없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검식이 연이어 날아오는데, 저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충은 월하답보의 정중동에 심취한 송 영감이 왕호를 어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영감 눈에는 왕호가 부족하게만 보였겠지.’

이젠 능숙하게 검기를 날리고 정중동을 무리 없이 펼치는 송 영감이다. 사중환과 옥비연, 왕호가 같이 덤벼야 송 영감과 겨우 동수를 이룰 정도였다. 시작부터 내공과 무공의 수준에서부터 극명하게 차이가 있었는데, 오로지 검에 파고들며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아 부으니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허어. 고생 많았다. 몸은 괜찮고?”

“오는 길에 조금씩 회복해서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강골 아닙니까.”

“그래. 그래. 그럼 늦을 수도 있지. 이렇게 일찍 도착한 것이 용하다.”

“허응.. 감사합니다. 대형!”

호충은 눈물바람을 보이는 왕호를 달래주고 자리에 앉혔다.

“어서 앉아.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공연히 세워뒀어.”

“역시 저는 대형 밖에 없습니다.”

“큭. 그래서 배우긴 많이 배웠어?”

“···어르신이 천천히 검식을 펼치면 한두 번은 막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호. 송 영감과의 일대일 대련에서 그 정도만 대응해도 훌륭한 일이지.”

“그렇습니까? 하하하.”

“그래도 내일은 내가 직접 의제의 무공 수위를 확인해야겠군.”

“······.”

왕호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제 천룡출두(天龍出頭)는 할 줄 압니다···.”

호충이 예전에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던 대월천룡권의 초식 중 하나였다.

“그건 당연하고!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은?”

무공의 이름과 같은 초식인 대월천룡권은 마지막 절초였다. 내부의 기운을 외부로 방출해 천룡의 형을 만들어야 하는 대월천룡권은 홀로 익히기 쉽지 않은 초식이었다. 무엇보다 내공의 깊이가 없이는 배우기 어려웠다.

“···고작 흉내만 내는 수준이지요. 부끄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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