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232)

지도자의 숙명

***

“지금부터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면 아프지 않게 단칼에 죽여주마.”

죽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우선···.”

“대, 대인. 살려주십시오.”

“아직 질문도 안 했는데, 누가 함부로 입을 열라고 했지?”

호충의 말에 왕호가 나섰다.

“감히···.”

빠악. 빡. 뻐벅.

“끄어억.” “꺽.”

“대형께서 말씀하시는데, 입을 열어?”

왕호의 폭력은 잠시간 이어졌고, 단단한 주먹과 발에 차인 놈들은 흘러내린 피와 흙먼지가 섞여 금방 지저분한 몰골로 변해버렸다. 호충은 왕호의 행사를 말리지 않고 조용히 지켜봤다. 그 모습이 이들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이제 하문해도 될까?”

“······.”

“의제. 얘들이 이제 답을 안 한다?”

“죄송합니다. 대형.”

다시 왕호가 다가오자 얼른 입을 열었다.

“하, 하명하십시오!”

“늦었다.”

간단한 호충의 답에 왕호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뻐억.

“끄아악.”

.

.

.

호충은 왕호의 교육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답할 준비는 되겠지?”

“옙!”

왕호에게 하도 맞아 괴상한 몰골로 변했지만 답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너희들 손에 죽은 이가 열이 넘느냐?”

“······.”

“······.”

“······.”

넘는다고 하면 죽을 것 같고, 아니라고 하자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버릴 것 같았다. 답이 늦자 호충은 왕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이. 물 주먹. 똑바로 안 하냐?”

“무, 물 주먹이라뇨. 대형. 제 주먹에 맞아죽은 패주 놈도 있습니다. 맞은 놈들도 제 주먹이 돌덩어리 같다고 했는데···.”

“얼마나 네 주먹이 무섭지 않으면 그 허약한 애들이 또 이러겠냐? 엉?”

“뒈질까봐 살살했더니···.”

꿇어앉은 놈들은 겨울바람에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제, 제발 그만···.”

“대인. 살려주십시오.”

“저 봐. 묻지 않아도 입이 자동으로 열리네? 맞아보니 물 주먹이었지? 그치?”

“썩을.”

왕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니 원망치 마라.”

“아아···.”

“오늘 뒈지겠···.”

빠악!

이번엔 아까와 강도가 달랐다.

“X새끼들이 날 물로 봐? 엉?”

뻐억. 뻑!

녀석들은 왕호의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픽픽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

이젠 호충이 질문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있는 놈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참 수고스럽네.”

“······.”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과하게 힘을 쓴 왕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사기도 손발이 맞아야 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내가 대충 분위기 만들어주면 네가 이 새끼들 기강 좀 잡아서 고분고분하게 만들면 끝나는 일을···.”

그러면 간단하게 취조하고 녀석들을 죽일지 말지 선택하려 했었다. 아프지 않게 죽인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호충은 이들이 운영하던 작은 도박장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다들 정신 차리게 만들어서 안으로 들여보내.”

“옙.”

호충은 벌써 다 도망갔을 줄 알았던 도박장의 손님들이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음이 의아했다.

“뭐 얻어먹겠다고 아직까지 붙어 있어? 안 나가! 새끼들아!”

도박에 빠지면 마누라와 자식새끼까지 판다는 말이 있었다.

“판을 끝내야 가지 않겠소? 주사위 굴리던 놈이나 불러오시오.”

“···허.”

“내가 여기서 잃은 게 얼만데 그냥 가란 말이오?”

“맞소. 내 돈 다시 따기 전에는 어림도 없소.”

“······.”

호충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하지만 곧 하류 인생의 고달픈 삶과 이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였다. 일반 양민들에게 여가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함부로 여행을 떠나지도 못하고 차력사들의 공연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된 노동과 입에 풀칠할 정도는 작은 보수가 전부인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노름은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았다.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문화생활이 바로 도박이지.’

“하. 그래 좋다.”

호충은 이들이 앉아 있는 도박판에 놓인 대나무로 만든 통을 들었고, 그 안에 세 개의 주사위를 넣고 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시작하지.”

따그락따그락.

“꼴에 재미난 도박을 즐기는 군.”

세 개의 주사위로 진행하는 주사위 도박은 간단한 규칙으로 진행된다. 일(一)과 이(二), 삼(三)이 나오면 무조건 지는 패이고, 사, 오, 육이 나오면 무조건 이기는 패가 된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패가 나오지 않고 세 주사위의 합이 가장 큰 수를 만들어 내거나 셋이 같은 숫자를 만드는 표자(豹子)를 높이 쳐주는 노름이었다. 결국 四(사), 五(오), 六(육)이 최고의 패, 그 다음이 육(六)이 셋인 육표(六豹)가 다음의 패였다.

도박판에 앉은 이들은 호충의 손에 들린 대나무 통만 주시하고 있었다.

“크크. 돈 안 걸어? 나는 내 주머니의 전부를 걸지.”

“나도 들어가지!”

“나도!”

“이런 판에 빠질 수야 없지.”:

돈에 눈이 돌아간 노름꾼들이 저마다 자신의 돈을 걸었다.

“어허. 많이 부족하네. 겨우 이걸로 되겠어? 내 주머니에 금원보도 들었거든?”

“가져온 전부를 걸지!”

“나도야!”

“나도! 내가 이걸 것이다!”

모두의 돈이 도박판에 올라가자 호충은 손에서 흔들던 대나무 통을 바닥에 탕하고 내려왔다.

터엉. 찰그락.

“어휴. 마지막에 좀 흔들렸나보네.”

“어, 어서 들어봐.”

남은 놈들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대나무 통만 지켜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아···.’

호충은 통을 훌쩍 들어 안을 보여줬다.

“히익! 불통수(不通数)!”

“제기랄···.”

“내가 먼저 잡았어야 하는데···.”

불통수는 지금 호충 앞에 있는 세 주사위의 숫자인 四(사), 五(오), 六(육)을 이르는 말이었다.

“자. 너희 중에 불통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 판은 내가 먹는다. 얼른 굴려봐.”

쉽게 나오지 않는 수임에도 녀석들은 얼른 대나무 통을 잡고 흔들었다.

“나도 나오겠지!”

딸그락딸그락.

한참 통을 흔들며 감을 잡던 그가 만든 숫자는 사(四)가 셋인 사표(四豹)였다. 상당히 좋은 패에 속하지만 불통수가 나온 이상 소용없었다.

“이게 왜 이제 나와? 아까 나왔으면 내가 다 먹었을 텐데···.”

“내 차례로군! 나야말로 불통수를 만들어 낼 것이다!”

텅.

이 녀석은 아예 꽝을 뽑았다.

“···일(一), 이(二), 삼(三) 제기랄!”

다음 녀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三), 삼(三), 六(육). 끝장이다.”

호충은 판에 있는 돈을 모조리 품으로 끌어갔고, 도박에서 패한 녀석 중 하나가 소리쳤다.

“사기다! 넌 사기를 쳤어!”

“이 사람아! 사기라니! 여기서 함부로 사기라고 우기면 뒈지는 거 몰라?”

“흡!”

화가 나서 사기라고 소리쳤던 놈이 얼른 입을 손으로 가리고 호충의 눈치를 봤다.

호충은 이런 놈들에겐 아무런 말도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놈들은 매가 약이다.’

“밖에 왕호 있느냐!”

“예! 형님!”

“손님들이 몸이 근질근질 하다 신다. 가시는 길에 시원하게 안마라도 해드려라.”

“하하하. 개운하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안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할 놈은 없었다.

“자, 잠깐. 저 놈만 그랬는데 왜 저희까지···.”

호충은 이들이 혹할 말로 꼬드겼다.

“맷값 벌어갈 생각 없어? 밖에 있는 놈 주먹이 조금 어설퍼서 조금만 맞아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럼 내가 밖에 녀석 수련비로 조금 챙겨주지. 어때?”

“······.”

“······.”

“······.”

가진 것을 다 잃은 터라 집에 들어갈 엄두도 안 나던 참이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어설프다는 것도 용기를 내게 했다.

“좋소! 그럼 잘 챙겨줘야 하오.”

“크크. 당연하지.”

“나도 하겠소.”

“나도 하지!”

“다 같이 나가보게. 나도 곧 따를 터이니.”

셋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놈을 제압하고···.’

‘이 놈의 돈을 챙길 수도···.’

‘그럼 금원보가 생긴다.’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왕호는 이들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이참. 형님은 너무 날 아껴주신다니까.”

힘 조절이 미숙한 자신을 위해 이렇게 친히 대련상대까지 보내준 것이다.

‘이번엔 쉽게 기절시키지 말아야지.’

도박꾼들은 지옥의 입구에 발을 들이밀었다.

툭. 투둑.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주먹이 날아와 닿기는 하는데, 맞아도 아프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 이거 순 맹탕이었군.”

“이러니 우리보고 상대하라고 했겠지.”

“잘하면 이길 수 있지 않겠나?”

눈을 빛낸 셋은 동시에 덤벼들었고, 왕호는 아까와 달리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힘을 조금 올려볼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의 움직임은 왕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제대로 주먹을 뻗지도 못하고···.’

살짝 고개를 뒤로 빼고,

‘발은 어딜 차려고?’

낭심을 노리고 날아든 발은 지그시 밟아 버렸다.

‘어쭈? 칼도 들었어?’

작은 칼을 숨겨두었다가 찔러오는 녀석의 장심에 왕호의 주먹이 닿았다.

퉁.

칼을 든 놈은 그 자리에서 숨을 꺽꺽 거리며 주저앉았고, 낭심을 차던 놈은 다리를 밟혀 움직이지 못했다. 어설프게 주먹을 날렸던 놈만 다음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멀뚱하게 서 있었다.

“다시 와봐라. 이번엔 조금 더 힘을 조절해보지.”

“······.”

“······.”

“······.”

셋은 그제야 상대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칼까지 휘두른 마당에 뒤로 뺄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 상대할 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익! 단 번에 끝내버리자. 내가 녀석의 뒤로 돌아가 붙잡지.”

“좋아!”

“끄윽. 끝은 내가 맺겠다.”

“······.”

‘상대가 앞에서 듣고 있는데 계획을 다 말하면 당해주겠냐?’

한동안 투닥 거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비명 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높아졌다.

***

호충은 밖이 잠잠해진 다음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왕호는 기절했던 놈들을 하나씩 깨워 가옥으로 들이밀었다. 노름꾼이 아니라 처음 왕호가 상대했던 도박장 주인과 그 패거리였다. 노름꾼들은 한참 얻어터지고 나서 돈은 필요 없다며 모두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대형. 들어가겠습니다.”

“오냐.”

우르르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들어오자마자 무릎부터 꿇었다.

“······.”

“······.”

“······.”

이번엔 교육이 확실했는지 눈을 내리깔고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들어보니···. 사람 많이 잡았더라? 이건 답하지 않아도 좋아. 이미 손님들에게 모두 확인했으니까.”

도박장에서 돈을 잃은 놈들까지 조심할 정도라면 평소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을 상하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남경에 이런 흉악한 놈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황도 군사들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쯧쯧즛.”

“······.”

“······.”

“······.”

“왕호야.”

“예. 대형.”

“네가 생각했을 때 이놈들이 새 사람이 될 것 같으냐?”

“흠. 불가(不可)라 생각됩니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했군.”

“!”

“!”

“!”

이들이 놀란 틈에 호충의 손가락에서 발출한 기운이 혈을 짚었다.

툭. 투둑. 툭. 툭.

녀석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먼저 나갈 테니, 이곳 가옥과 함께 태워버려라.”

“하지만···.”

왕호도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녀석들 몸에서 피 냄새가 너무 짙게 난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을 헤친 것 같구나.”

“그래도 변명할 기회는 주시지요.”

“···그러자. 저승의 염라대왕도 변명은 들어주겠지. 대신 한 놈의 말만 듣겠다.”

호충은 이들의 면면을 보다가 처음 왕호에게 단검을 찌르려고 했던 놈의 혈을 풀었다.

툭.

“어디 변명할 말이 있으면 해보아라.”

“저, 저는 형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그럼 너는 종범. 쟤는 주범. 판결은 사형. 끝.”

“!”

툭.

다시 혈이 제압된 녀석의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주범의 변명도 들어보시지요. 형님.”

“에이. 귀찮게.”

툭.

형님으로 불렸던 놈은 혈이 풀리자마자 변명을 쏟아냈다.

“집에 아픈 노모를 모시고 있으며,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어쩔 수 없이···.”

“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다른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 집안의 가장을 죽였구나. 역시 판결은 사형이다!”

“!”

호충은 녀석이 다시 변명을 입에 담기 전에 혈을 짚어 버렸다.

툭.

왕호는 대형이 너무 성급하지 않나 싶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더 들어본다고 다를 것 같아?”

“···아닙니다. 말씀대로 하지요. 이들은 살아남아봤자 양민들에게 해악을 끼칠 것 같습니다.”

“이놈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야. 첫 번째 놈은 이미 피에 절어 살행을 즐기는 놈이었고, 이놈은 가족도 없는 놈이었다. 둘 다 거짓을 입에 올렸어.”

호충의 말에 왕호는 두 사람을 돌아봤는데,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니 호충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정으로 죽어야 할 놈이었던가···.’

호충은 어째서 이들의 거짓말을 알았는지도 설명했다.

“사람은 거짓을 말하면 미묘한 신체의 반응을 보인다. 눈동자의 위치, 혈의 흐름도 순간 달라지지. 너도 나 정도가 되면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아···.”

왕호는 자신이 알 수 없는 새로운 경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형은 거짓말까지 다 알아볼 수 있으셨구나!’

“예. 대형. 그럼 처리하고 갈 터이니 먼저 가시지요.”

“네게만 이런 짐을 떠안게 하겠느냐. 무리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뒤에서 명령만 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앞에 나서서 구정물을 뒤집어 써야하는 것이 지도자의 숙명이다.”

“···휴우. 부끄럽습니다. 예. 그럼 지켜보시지요.”

왕호는 혈이 잡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패거리 앞에 섰다.

“너희에게 악감정은 없다. 너희는 지금까지 너희가 죽인 이들의 원혼이 행하는 일이라 여겨라.”

왕호의 주먹이 허공을 격해 순식간에 다섯 번을 움직였다. 외부인에 처음 선 보이는 왕호의 진신 무공이었다.

퍼버버버벙.

권기의 발현.

다섯의 가슴으로 날아든 권기는 가슴 안으로 파고들어 순식간에 심장을 파혈시켰다.

툭. 툭툭. 퉁. 퉁.

다섯의 시체가 나란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죽이기는 하되 고통까지 주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

그 모습을 본 호충은 말없이 밖으로 나갔고, 왕호는 가옥 곳곳에 불을 붙였다.

둘은 멀리 떨어져서 타오르는 집을 구경했다.

“왕호.”

“예. 대형.”

“한 지역을 차지하자면 잔인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어설프게 달려드는 놈들이 없어. 괜히 자비를 보인답시고 이런 놈들을 살려 보내면 계속 귀찮은 놈들이 달라붙어 더 많은 피를 봐야 한다. 우리 하오문의 문도들이 감당할 피가 자꾸만 늘어나는 셈이지. 차라리 당장 피를 보는 것이 낫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의 일은 저들 사이에 소문이 돌 것이다. 일이 조금은 수월할 것이야.”

도박장에 왔던 손님들이 돌아와 이들이 맞이한 결말을 떠들고 다닐 것이다.

“오늘 많은 가르침과 보살핌에 감사합니다. 대형.”

평소와 같은 감사 인사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너는 내 의제가 아니냐. 내가 없으면 네가 나를 대신해야지.”

“!!”

왕호는 놀라면서도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책임감. 일문의 문주가 진 짐이 이토록 무거웠던가.’

당장 자신이 문주가 되라는 것도 아닌데 묵직한 바위가 가슴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누구보다 많은 피를 봐야하는 하오문주의 자리는 누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책임감만 가득했다.

‘대형은 하오문을 개파하고 매일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좋아할 일이 아니긴 하지. 높은 자리엔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법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예···. 문주님.”

대형이 오래도록 문주를 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술이 다 깨버렸어. 한잔 더 할까?”

“좋습니다.”

오늘의 흉한 기억을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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