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32)

뇌룡(雷龍)

***

사천(四川)의 성도(成都)에서는 무림맹의 창설을 위한 첫 대회합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었다.

“중원 전역에 존재하는 무림 방파에 초대장을 발송하기로 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소.”

“무림의 지혜가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이옵니다.”

자신이 낸 안건이지만, 호현은 공을 무림의 인사들에게 돌렸다.

“또한 이번 첫 회합을 통해 중원 무림에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요. 작은 무림 방파는 정파 무림의 일원이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고···.”

“무림맹은 이들에게 소정의 회비를 걷을 뿐이지요.”

무림맹에 입회하는 것은 아무나 가능하지만, 매년 회비를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무림맹의 이름이 가볍지 않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초기 입회비는 대부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이후에 정파라는 이름을 유지하려면 조금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이미 이름 있는 방파는 하잘 것 없는 수준의 비용이지만, 세가 약한 무림 방파의 경우 등골이 휠 정도의 연회비였다.

“무림맹의 주요 방파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지 않겠습니까. 겨우 그 정도 부담도 버거워한다면 정파 무림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을 것이오.”

“옳습니다. 정파라면 그에 걸 맞는 세를 갖추고 있어야지요.”

문제는 무림맹 창설에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무림 방파가 이들을 눈 아래로 보는데 있었다. 이들은 상승 무공이 흔적을 감춘 무림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있었다. 뛰어난 무림인이 없으니 문도의 수가 많은 무림 방파가 힘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이다.

화산의 무환 장문인은 이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중원 무림에서 정파를 표방하자면 세보다는 의로운 정신을 높이 사야하지 않을지···.”

“하지만 당장은 정파 무림의 힘이 하나로 모여야 할 것입니다. 매년 납부할 회비에 관해서는 나중에 회합이 끝나면 통보하기로 하고 우선은 소정의 입회비만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호현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가주. 실로 현명한 발언이셨소.”

“하하하. 태자 전하께서 괜히 진가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지요.”

“이렇게 지혜롭고 명석한 이가 맹주의 위에 올라야 하지 않을지···.”

이들의 눈엔 탐욕이 가득했다.

‘아무리 영특하다 한들 진 가주는 너무 어리지.’

‘진 가주를 맹주의 위에 올려도 상승 무공이 없으니 얼마나 상대하기 쉽겠는가.’

‘자리는 주되 실리는 챙길 것이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하하.”

호현은 벌써 자신이 맹주로 추대된 것 같았다.

“무림맹의 초대 맹주를 선출하는 일은 무림의 동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질 것이니 아직은 누가 될지 모르는 일이오.”

“······.”

무당의 송호 장문인는 여전히 맹주 자리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림 대회를 통해 열 손가락 이상에 들어야 맹주의 기본 자격을 가질 것이니, 일정 이상의 무공도 없이 무림의 맹주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겠지요.”

무림맹의 초대 맹주자리를 저들끼리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명망 있는 무림 방파의 추천이 필요했고, 무림 대회를 통과해 순위권 안에 들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 아니라 최상위 무인 열 명을 뽑는 무림 대회가 개최되는 이번 무림 대회합이었다.

호현은 날선 송호 장문인의 말에도 활짝 웃으며 답했다.

“하하. 무공을 게을리 익히지 않았으니 장문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진 가주.”

더 날을 세울 수는 없었다. 무당도 진가장에 상승 무공을 허락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무림 대회합 준비는 마무리 되어 가고 있으니 이쯤하고···.”

당문의 당세천이 나섰다. 공론화하여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최근 기이한 서찰을 받았는데, 혹시 나만 받은 것인지 묻고 싶소.”

“기이한 서찰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실전한 무공을 찾아가라는 내용의 서찰이었소.”

“!!”

“!!”

“······.”

몇몇은 놀라서 몸을 움찔 거렸고, 대부분은 침착하게 당세천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당세천은 무림의 인사들을 유심히 살폈기에 이들의 보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나만 서찰을 받은 것이 아니군.”

“흐음.”

“큼큼.”

모두 불편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해댔다.

“서찰에 나와 있기를 무림 대회합을 진행하기 전에 일 차로 접선하고 이후 비급을 구입할 돈을 가져오면 본문의 진본 상승 무공을 전달하겠다고 하였소. 여기 모인 분들 중 이 서찰의 내용을 믿는 분이 있을까 싶어서 노파심에 말씀드리겠소.”

쿵.

당세천은 거대한 탁자를 치며 말했다.

“시중에 상승 무공의 가본이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소. 우리가 상승 무공을 찾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소. 감히 무림의 중추인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거짓된 서찰을 보내는 놈을 가만둘 수 있겠소? 나는 이 녀석을 만나러 가서 한줌 독수로 만들어 버릴 것이오.”

“당 가주. 서찰을 보낸 이가 진본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짐작은 하지 않는 것이오?”

“오히려 무림의 중추인 우리 모두에게 서찰을 보낼 정도로 확신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 않겠소.”

“···하. 지금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녀석은 여기 있는 무림 방파의 비급을 전부 들고 있다는 말과 같음을 알고 있소? 이게 말이 되는 일이오?”

“···그, 그건 조금 의심 할 수 있겠소.”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긴 하지.”

당세천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자신만 그와 같은 서찰을 받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거액의 비급 대금을 마련해 비급을 구매했을 것이다.

“이렇게 어설프니 그런 사기꾼이 활개를 치는···.”

벌컥. 끼이익.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둔 임시 무림맹 회합장에 누군가 활짝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당사자가 왔으니 직접 말씀하시구려.”

송재호의 얼굴을 한 호충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왕호가 따르고 있었다.

“누구냐!”

“당 가주께서 방금 나를 부르시기에 밖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왔소.”

호충은 귀를 후비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도 귀가 간지러워서 말이오.”

“내가 언제 그대를 불렀는가! 밖에 누구 없는가?”

“괜히 친절한 무사들에게 화풀이 하지 마시오.”

그 사이 문밖을 살피고 돌아온 무사가 알렸다.

“무사들이 당했습니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무림맹은 무림맹이었다. 무림의 고수라고 불릴만한 각 방파의 무림인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들은 무림맹의 심처까지 소리 없이 들어온 것이다.

챙. 챙챙!

각 세가의 가주와 장문인들이 칼을 빼들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무사들을 해치고 함부로 들어오는가!”

“하하하. 초대장을 받고 온 손님이라 이리 환대하시는 겁니까? 정말 대단한 환대라 몸 둘 바를 모르겠소.”

호충은 자신에게 칼을 겨눈 이들에게 한 걸음 나아가며 포권지례를 보였다.

“하오문의 초대 문주인 송재호라 합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비급을 팔겠다고 서찰을 남겼소. 그리고 무사들은 잠시 잠들었을 뿐이니 걱정할 것 없소.”

“하오문?”

중원 무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무림 방파에 초대장을 보낸 터라 어디가 어디인지 다 기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초대 문주라 하였으니, 문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당세천은 크게 웃으며 나섰다.

“아하하하. 사기꾼이 제 발로 호굴에 들어오셨군.”

호충은 사기꾼이라는 말에 당가에게 보낸 서찰의 내용을 밝혔다.

“저는 당 가주께 당가의 뇌룡(雷龍)심법을 팔겠다고 서찰에 남겼지요.”

당가의 잃은 비전은 뇌룡 심법은 당가의 암기술의 정화라고 할 수 있었다. 뇌룡 심법이 없는 당가의 암기술은 그저 숙련된 암기술에 지나지 않았고, 독공을 더해야지만 큰 위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를 거짓이라 여기고 있소?”

뇌룡심법이라는 말에 흔들리긴 하였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가에서 실전한지 오 백 년도 넘은 심법이다. 그걸 어찌 이름도 없는 무림 방파가 갖고 있겠느냐!”

“내가 갖고 있는 걸 어쩌겠소. 당가에서 구입하기 싫다면 거절해도 상관없소. 여기 뇌룡(雷龍)심법을 사겠다는 이는 많을 것 같으니까.”

휘익.

당세천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고, 무림의 인사들이 눈을 빛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뇌룡심법이 과거에 얼마나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는지 무림의 인사들도 익히 기억하고 있었다. 뇌룡심법은 타 무공과의 포용력이 높은 심법이었기에 검문이건 도문이건 탐을 내는 것이다.

‘내가 사지 않으면 이들이 당가의 심법을···.’

“누가 사지 않겠다고 하였는가! 진본임을 확인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견본품을 들고 온 참이오. 내가 서찰에 남길 수 없어 직접 들고 왔소.”

호충의 품에서 종이 뭉치가 들려나왔다.

“당문의 뇌룡심법 일부를 필사한 것도 여기 있고···.”

호충의 손에 들린 종이 뭉치에 당세천의 눈이 고정되어 있었다.

“서문 세가의 풍운도법도 있고···.”

“허읍!”

“모용세가의 신공이라는 석성신공, 악가장의 악원창법, 무당, 종남, 점창, 소림······. 소림은 좀 많군.”

호충의 입에서 무림 방파 대부분에서 실전된 무공들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화산파와 남궁세가, 제갈세가의 비급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은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화산의 장문인과 세가의 가주님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이미 팔아먹은 비급을 또 팔아먹을 수는 없었다.

“휴우.”

“휴우.”

“휴우.”

셋은 서로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

“!”

“!”

‘화산과 제갈 세가도 상승 무공을 되찾았구나.’

‘남궁과 제갈은 상승 무공을 갖고 있었어!’

‘남궁과 화산파는 상승 무공을 보유했군.’

오직 셋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

호충이 설명하는 사이 그 뒤로 돌아가 출입구를 막은 인물이 있었다. 진씨 세가의 공동가주를 맡고 있었던 호성이었다.

‘네 녀석을 사로잡으면 내 공이 얼마나 크겠는가.’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이미 왕호는 곁눈질로 녀석의 움직임을 모두 담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비급을 경쟁도 없이 넘길 수는 없겠지요. 비급의 소유는 경매를 통해 결정할 것이오.”

“!!”

호충은 무림의 인사들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몰아치고 있었다.

“아차. 이걸 아직도 제가 들고 있었군요. 알아서 확인하시지요. 심도 깊은 대화는 그 다음입니다.”

촤라락.

호충의 손을 떠나간 종이 뭉치가 탁자에 펼쳐졌다.

“······.”

“······.”

“······.”

“······.”

“······.”

“······.”

기이한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모두가 상승 무공에 몸이 달아 있었다.

호충의 입에 거론된 무림의 인사들이 탁자로 달려들기 직전에 호현이 나섰다.

“잠깐! 멈추십시오!”

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충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진씨 세가의 무공은 없는가.”

화산과 남궁, 제갈의 무공을 찾지 못했다며 사과했기에 비급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진가장의 무공 비급에 관해서는 아예 사과도 없었고, 입에 올린 목록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잃을 무공이라도 있으셨소?”

“······.”

“근본도 없는 가문은 빠지는 편이 좋겠소만.”

으득.

진호현은 가문의 전통이 그리 길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그래도 실전한 가문과 문파가 자신들의 무공을 알아보기 편할 터···. 그대가 이들을 세워 두었으니 나눠주는 정도는 할 수 있겠구려.”

“······.”

‘저것들 중 하나라도 본장에서 사야할 것이다.’

화산파의 무공이 없다고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호현은 얼른 탁자로 가서 종이 뭉치에 손을 올렸다.

“견본이라 하였으니, 확인해보면 알 터. 당 가주께서 먼저 가져가서 확인하시지요.”

“큼.”

당세천은 거짓이 분명하리라 여기며 뇌룡심법의 일부가 적혔다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

한참 내용을 살핀 당세천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당세천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으로 모두 알 수 있었다.

‘진본이야.’

‘진본임이 틀림없다.’

호현은 확실하게 결론내리기 위해 물었다.

“당 가주님. 당 가에서 실전한 뇌룡심법이 분명합니까?”

“···그, 그런 것 같소.”

초반부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한 뇌룡심법이지만, 고절한 깨달음과 당가의 정신이 녹아 있었다.

“그것도 당왕께서 직접 집필하신 뇌룡심법으로 보이오.”

당가의 암호라고 할 수 있는 의미 없는 구절까지 고스란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가의 가주들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구절이었다. 또한 이 구절은 당대의 가주들마다 조금씩 변형되는데, 적힌 구절은 몇 번이나 서재에서 읽었던 당왕만의 특별한 구절이었다.

“다, 당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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