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무림맹
***
“다, 당왕!”
“만천화우에 뇌룡심법을 녹여내 무림을 활보하신 고대의 천하제일인이 아니시오!”
당왕은 육 백 년 전 당가의 자랑이었다. 지금은 고대 무림의 비사가 전설이나 다름없이 전해지고 있지만, 천하제일인으로 칭송 받은 인물들은 확실하게 족적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중에서 독과 암기 그리고 뇌룡으로 유명했던 당왕의 이야기는 지금도 무림 곳곳에서 전해진다. 셋 중에 하나만 잘한 것이 아니라 셋 모두를 완벽하게 익혀 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무림인의 전설이었다.
“···모두 본인들의 것을 챙겨서 확인해보길 바랍니다.”
호현의 말에 모두가 나서서 자신들의 비급을 찾기 시작했다.
“허읍! 풍운도법이 여기에 있었구나!”
서문세가는 풍운도법의 초반 일부만 보고도 알아봤고,
“석성신공! 신공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이것만 있으면!”
모용세가도 석성신공을 알아봤다.
“······.”
호현은 저마다 자신들의 실전된 무공을 확인하며 눈을 빛내는 무림의 인사들을 보며 착잡한 심정이었다.
‘가문과 문파의 사활을 걸고 경매에 임하겠구나.’
저것들 중 하나라도 얻고 싶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들 확인하셨으니 이제 제가 하는 말을···.”
호충은 갑자기 뛰어드는 이로 인해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하아! 네 이놈! 비급을 전부 꺼내라!”
천둥벌거숭이 호성의 등장이었다.
챙.
호성이 칼을 빼들고 달려드는 순간 왕호는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
샤악.
호성의 칼이 왕호의 신형을 사선을 베고 있었는데, 왕호의 신형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호성의 옆에 다시 나타났다. 극성으로 전개한 신법이었다.
휘리릭.
누구도 왕호의 신형을 확실하게 볼 수 없었다.
“!”
“!”
탓.
“···무림맹에 무뢰배가 있을 줄이야.”
왕호는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호성의 다리를 걸었다.
쿠둥.
“끅.”
“별것도 아닌 것이···.”
퍼억. 부웅.
왕호의 발에 채인 호성의 신형은 짚단처럼 가볍게 벽까지 날아갔다.
쿵.
왕호는 팔을 풀며 기절한 호성에게 다가갔지만, 이어진 호충의 말에 몸을 멈췄다.
“왕호. 그만.”
“예. 문주님.”
“···이 정도 소란은 봐드리는 걸로 하지요. 중요한 거래가 시작되는데, 혼란은 피하는 편이 좋겠지요?”
“······.”
“······.”
“······.”
모두의 눈에 작은 살기가 어렸다. 아무리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라도 진씨 세가의 공동가주였다.
“아니면 실력행사도 좋습니다. 여기 왕호가 요즘 힘쓸 일이 없어서 조금 불만인지라···.”
“저 녀석의 잘못은 내가 훈계하겠소.”
호현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호성은 자신의 동생이었다. 일이 커지기 전에 나서서 무마해야 했다.
“오. 그대가 아는 이였던 모양이군. 앞으로는 무사 교육을 똑바로 하는 편이 좋겠소. 어디 감히 맹의 중요한 손님에게 함부로 칼을 휘두른단 말이오.”
‘병신 같은 새끼. 여기서 왜 칼을 휘두른단 말이야. 칼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꺼내야 하는 것이거늘.’
“······.”
호충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여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말씀드리리다. 우리 하오문은 서찰에서 설명한 것처럼 비급 경매를 진행할 것이오. 비급의 가치를 가장 높이 부른 단체 혹은 개인에 비급의 소유권을 넘길 것이오.”
“말도 안 되는 일! 어찌 문파의 비급을 다른 곳에 넘기려 하는가!”
대부분 같은 마음이었다.
‘이런 꼴을 안 보려면 빨리 구하셨어야지. 호충아. 네 덕분이다.’
‘경매로 넘어갔다면 남궁 가의 비급을 겨우 육십만 냥에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옥 공자 덕분에 제갈 가는 마음이 편하구려.’
이번에 비급이 거론되지 않은 남궁과 제갈, 화산파는 남의 일이었다.
“그럼 공짜로 드려야 하오?”
“합당한 가치를 줄 것이다!”
“합당한 가치는 경매를 통해 결정할 것이오. 또한 실전하고 오백년도 더 지난 비급일진데, 이제 와서 소유를 주장하는 것은 염치가 없지 않겠소? 혹여 다른 이가 비급을 구해 익히고 있다한들 무림 방파의 무공이니 돌려 달라 할 수 있겠소?”
“······.”
화산파의 무환은 지난날 헐값에 구입했던 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을 떠올리며 말했다.
“대부분의 무림 방파는 실전된 상승 무공을 되찾으리라 예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소. 본도는 하오문주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급을 비싼 값에 받고 싶긴 하겠지요. 누구든 아니겠소.”
남궁곤과 제갈진도 화산파 장문인의 말에 힘을 보탰다.
“그렇지요. 문파의 비급이라면 얼마나 소중합니까.”
“싸게 사려고만 한다면 선조를 욕되게 하는 것이겠지요.”
“화산과 남궁, 제갈의 비급이 없는 것이 이렇게 안타깝습니다. 제가 나중에 여러분의 비급을 찾으면 최대한 사정을 보아드리지요.”
호의 담긴 말에도 셋은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괜찮소.”
“선조의 무공은 우리가 찾아야 할 일.”
“괜한 수고할 것 없소.”
이미 익히고 있는 상승 무공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그 외의 다른 방파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차피 비급을 구입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니 얼마든지 사전에 협상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호충도 익히 예상한 터라 물 흐르듯 다음 말을 꺼냈다.
“경매는 입찰자가 많을수록 좋겠지요. 하여 중원의 돈 깨나 쓴다는 상단도 초대하였습니다. 황금전장을 포함한 중원의 전장들도 경매에 참여할 것이오.”
“!!”
“!!”
“!!”
이러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게 대체 무슨 짓이오! 하오문은 무림맹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정파 무림의 기둥이다!”
“큭. 무림맹이 두려웠다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소? 왕호. 이들이 날 겁박하는구나. 네가 날 지켜줘야겠다.”
실로 광오한 말이었으나, 곧 이어진 왕호의 실력행사가 이를 광오하지 않은 말로 만들었다.
“누가 감히 문주님을 겁박하는가.”
후우웅.
왕호의 내공 운용에 옷자락이 나풀거렸고, 안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모용가의 가주가 보였던 내공과 비견될 내공이었다.
‘호위무사의 내공이 범상치 않구나!’
‘최소 절정이다!’
왕호는 잠시간의 실력행사를 끝내고 다시 내공을 수습했다.
‘왕호면 충분하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지.’
호충이 직접 나서야할 정도로 강한 무림인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엔 아까와 같은 잔챙이 말고 조금 더 실력이 있는 분이 나서주시면 좋겠소. 그래야 우리 왕호가 재미를 느끼지 않겠소. 만약 왕호를 상대해 승리한다면 내가 가진 그대들의 비급을 모두 그냥 드리겠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아미타불! 고작 그대의 호위무사도 상대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니까···.”
호충은 방금 입을 연 소림의 석영 방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지 말고 나서라고 땡중아.”
“저, 저······.”
손가락을 들어 호충을 가리키던 석영은 불쑥 올라오는 화를 애써 참아냈다.
“···예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작자들이로다. 아미타불!”
“방장! 내가 녀석들의 버릇을 고치겠소! 하앗!”
“나도 돕겠소!”
모용태와 서문국이 나섰다.
모용태는 이미 일전에 절정급 내공을 드러낸 바 있었기에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무공을 드러낼 때라고 여기고 있었고, 서문국은 하오문주의 품에 있을지 모를 풍운도법을 얻으려 나선 것이었다.
“왕호! 가라!”
“옙! 문주님!”
무림맹에 오는 동안 크게 무공이 진보한 왕호는 자신 있게 나섰다.
“검에는 눈이 없다!”
“내 도가 무정타 여기지 마라!”
둘의 검과 도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중에도 왕호는 느긋했다.
‘어르신의 검에 비하면···.’
왕호의 눈은 너무 높아져 있었다. 모용태의 검첨은 몸을 살짝 비틀어 넘기고 서문국의 태도(太刀)는 손가락을 사용해 도면을 밀쳐냈다.
쿵.
서문국의 도는 엉뚱하게 청석이 깔린 바닥으로 향했고, 모용태는 몸을 돌려 다시 검식을 이어나갔다.
‘너무 느리다.’
왕호는 느릿하게 느껴지는 검과 도를 맞이하며 기이한 감각을 느끼는 중이었다. 호충은 왕호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부터 자주 느끼던 감각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외부 세계가 느리게 흘러가는 감각은 깊은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고수의 영역에 속했다.
“푸흐하하하.”
그 모습을 본 호충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림의 중추라던 가주들의 무공이 생각보다 더욱 형편없었고, 그에 비해 왕호는 절대적 무위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오문주는 나와 어울려 보겠는가?”
무당의 송호 장문인이 만만해 보이는 호충을 상대하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호충은 눈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좀 기다리시오. 저 재미있는 대결을 놓칠 수는 없지 않소.”
“흥. 무공에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
“······.”
호충은 잠시 고개를 돌려 송호 장문인을 노려봤다.
“내가 가르친 놈이 선전하고 있어 기꺼운 마음이거늘···. 꼭 매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그대가 저 자를 가르쳤다? 하! 허풍이 대단하-”
호충은 송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볍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찌그러져 있어라.”
퍼엉!
호충의 장심에서 발출된 장(掌)이 송호를 멀찍이 밀쳐냈다.
“커흑!”
우당탕탕.
호충은 살짝 밀쳐내려고 했지만 결과는 밀쳐낸 정도가 아니었다.
‘힘 조절은 왕호가 아니라 내가 해야겠네. 썅.’
갑작스러운 소란에 왕호를 상대하던 둘이 얼른 뒤로 물러섰다. 곧 곤란을 당하기 직전이라 뒤로 물러설 시기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계속해야지.”
“······.”
“······.”
방금 기이한 무공을 선보였던 하오문주는 대결이 멈춰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만하겠소. 송 문주.”
“호위무사의 무위가 상당하군. 하지만 무림맹에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오.”
호충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고,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입만 살아서는···.”
“······.”
“······.”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목소리였지만, 아무도 이에 반박할 수 없었다. 무당의 고수인 송호가 장법 하나에 나가떨어지지 않았겠는가.
“왕호. 됐다. 흥이 식었어.”
“죄송합니다. 문주님. 저들의 무위가 하도 기가 막혀서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어떤 점이 기가 막히던가?”
“공세가 너무 느렸습니다.”
“그렇지. 너무 느리지.”
“또한 언제 대련을 해봤는지 모르겠사오나, 무공에 깊이가 없었사옵니다.”
“문파엔 수준 낮은 무공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니, 저들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상승 무공이 없어서 저리 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을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상승 무공을 전하면 저들은 크게 성장할 테니까.”
“예. 문주님.”
“······.”
“······.”
“······.”
무림맹의 인사들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는 동일하오. 또한 문파의 실전된 비급은 우선권을 줄 것이오. 너무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뜻이오.”
“오!”
“그리고 비급의 최소 경매가는 삼십만 냥부터 시작하겠소. 그 이하로 팔 비급은 없으니 삼십만 냥이 없으면 경매장에 찾아오지 말도록 하시오.”
“···합리적인 가격이군.”
그 합리적인 가격이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호충은 여전히 광오한 태도를 고수했다.
“만약 내 뒤를 쫓아와 비급을 강제적으로 되찾고자 하는 문파가 있다면···.”
꿀꺽.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수가 많지 않을 것이니 숫자로 밀어붙여 비급을 탈취할 생각이었다.
“크게 환영해드리지.”
***